내시 김처선의 용기 <경북매일신문칼럼 2008,2,29,금>
최근 사극드라마 ‘왕과 나’의 주인공 내시 김처선은 이 시대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이다. 내시 김처선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성삼문(成三問) 등이 중심이 되어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을 복위하려고 했던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죽은 사람의 유복자 김처선은 어릴 적 친하게 지낸 폐비윤씨를 사모하여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하여 내시가 된다. 윤씨도 마음으로는 김처선을 사모했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랑이었다. 성종은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윤씨를 질투하고, 윤시 또한 자기마음에서 떠난 성종을 질투하고 그러다 윤씨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간신배들에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결국 폐비 당한다.
그 후 김처선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을 지켜 연산 군이 왕위에 오르는 걸 보지만 결국 폭군의 연산군에게 직언하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김처선은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의남자'에서도 나온다. 장항선씨가 연기한 영화속 김처선은 목매달아 자살하였지만 역사와는 사뭇 다르다.
연산군은 자신에게 올곧게 직언한 김처선과 그의 양자 이공신을 죽인다. <연산군일기>에는 죽였다는 말만 있고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연려실기술>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김처선은 관직이 정2품이었다. 연산군이 어둡고 음란하였으므로 김처선이 매양 정성을 다하여 간하니, 연산주는 노여움을 속에 쌓아 둔 채 겉으로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궁중에서 임금이 처용(處容) 놀이를 하며 음란함이 도를 지나쳤다. 김처선은 집안 사람에게, “오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말하기를,“늙은 놈이 네 분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통하지마는 고금에 전하처럼 행동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였다. 이에 연산주가 성을 참지 못하여 활을 당겨 쏘아서 갈빗대에 맞히자, 김처선은 “조정의 대신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늙은 내시가 어찌 감히 죽음을 아끼겠습니까. 다만 전하께서 오래도록 보위에 계시지 못할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하였다.
연산군은 화살 하나를 더 쏘아 공을 땅에 넘어뜨리고, 그 다리를 끊고서 일어나 다니라고 하였다. 이에 처선은 임금을 쳐다보면서 “전하께서는 다리가 부러져도 다닐 수 있습니까.” 하자, 또 그 혀를 자르고 몸소 그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었는데, 죽을 때까지 말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죽은 뒤 부모의 묘가 파헤쳐지고 처(處)와 선(善) 두 글자의 사용이 엄금되었으며, 본관인 전의도 없어지는 등 수난을 당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일에 연좌제를 적용하는 건 기본이었고, 김처선의 집을 못으로 만드는 것도 부족하여 연산군은 김처선의 처處자에 대한 사용금지 명령을 내린다. 공식문서에 사용하지 못함을 물론이요 24절기 중 하나인 처서(處暑)도 조서(徂暑)로 고치라는 명을 내린다.
김처선의 직언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영조 27년인 1757년의 일이다. 이 때 영조의 명으로 김처선을 위한 정문이 세워진다. 그가 죽은 지 253년 만의 일이다.
내시 김처선은 세종부터 연산군 까지 일곱 왕을 시종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김처선은 충분히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김처선은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시대를 한탄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면서 바른 정치의 길을 왕들에게 제시했다.
연산군은 어린시절 어머니가 일직죽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성인아이적인 병세를 나타낸다. 어린시절 사랑받지 못한 그는 당연히 여인과 술을 가까이하고 폭군 정치를 펴므로 결국 짧은 왕위를 마치게 된다.
이렇게 김처선을 증오하던 연산군은 결국 김처선의 말대로 오래지 않아 보위에서 쫓겨나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김처선은 평소의 소신을 가감 없이 밝힌 충신이다. 적어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왕에게 아부나 방정 떠는 공신들보다 달랐다. 김처선은 강직하고 역사의 굴곡가운데서도 용기 있는 참신한 인물이었다.
지금 이명박 당선인에게는 김처선 같은 참모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어 대통령이 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직한 직언을 아끼지 않는 충신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족한 것은 2%가 모자라는 참모들의 직언이었다.
내시 김처선의 인간미 넘치는 마음가짐은 정치에 앞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불이익과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말하는 용기와 소신이 필요하다. 내시 김처선의 올 곧은 소신과 용기는 정치인들에게 새겨야 할 덕목이다.
<김기포, 포항 기계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