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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한숙희씨 사진입니다 ^^)
그저께 여성문화유산 투어를 다녀와서 참... 느낌이 좋았습니다.
한밭문화마당에 대해 깊이 고마운 마음이 들어 자주 가는 까페와 블로그 게재용으로 그날 했던 것들, 들은 것들, 느낀 것들 잠깐 써봤습니다.
한밭문화마당 모든 선생님들~ 정말 멋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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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 서포 김만중의 연고지라는 사실과...
우암 송시열의 조상들인 은진 송씨의 '나와바리'였다는 이야기...(그래서 대덕구 송촌동일까...)
그리고 개성에서 대전까지 아이 들쳐업고 걸어온 조상 할매를 기리는 우암의 비문...
대전이 아버지 사후에 남편의 사위노릇 않음을 편지로 일갈하는 기개높은 사대부 여성이 살았던 동네라는 것...
그제 한밭문화마당에서 여성주간을 맞아 주최한 대전지역 여성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는디...
대전의 과거와 과거에 살았던 여러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된 게 재밌고 유익하다.
대전의 생태, 문화예술에 대해 알고 경험하는 것이 늘어감에도 대전의 역사에 대해 공백으로 남아있던 게 덕분에 조금 채워진 느낌이다.
영양만점 답사 기획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까지, 마음 기울여 살펴주신 한밭문화마당 모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세 인물을 조명했는데 먼저 조선 사대부가에서 남편이 관직에도 못 오르고 몸으로 마음으로 떠도는 바람에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높은 지성과 호연지기를 지향했던 김호연재.
국가 보물로 지정된 동춘당을 둘러보고 호연재가 살았던 그 옆의 집도 문앞까지 가봤는데, 시와 일생사가 아직 전혀내려와서 생생한 캐릭터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남편이 벌이가 없으니 관아에 쌀 꾸러 가는데, 이 에피소드를 녹여 작시, 이 또한 호연하지 않은가, 하는 그의 호방한 캐릭터, ㅋㅋㅋㅋ 멋지다.
또 남편이 과거 시험 엉망으로 보고 돌아오니 아들 시켜서 아빠 답안지 가져오라 하고서는, 흠 있는 글귀를 지적하여 말하기를 "나는 합격이 될지 알지 못하겠다"...(아이구 그 남편 속 좀 쓰렸겠다...)
두 부부의 사이가 아주 화목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여성 지성인으로 살아가기 참 고단했을 17,18세기에 시대를 무색케 하는 발언도 작심한듯 던진다. "지아비가 버린다면, 나 또한 매달리지 않으리."
기가 보통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그의 가정사를 놓고 이러니 저러니를 떠나, 자신의 생각과 올곧음에 대한 판단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그 기개가 놀라울 따름.
김호연재에 대한 책도 있던데 인터넷으로 그의 시를 좀더 찾아봐야겠다.
두번째로 만난 고흥 유씨란 분은 우암 송시열의 먼 할머니(우암이 9대손)인데,
고려시대, 사별 이후 재가가 당연한 시절에도 어린 아들을 들쳐업고 개성에서 대전 시가로 도망쳐와 가문을 번영케 한 인물이다.
우암이 이 할머니에 대한 극진함과 프라이드를 담아서 대덕구 중리동에 세워진 정려각의 비문을 썼단다.
"...고흥백의 딸이 낭장인 송극기의 아내가 되었는데 나이 20세에 홀로되므로 그의 부모가 그를 재가시키려 하자 그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5,6백 리나 되는 먼 길을 도보로 걸어서 회덕(현재 대덕구)의 시가로 도망쳐와서 그 절개를 온전히 하였다. 그의 자손이 지금 거의 만여 명이나 되는데(송씨는 다산 집안이라는 안내 쌤의 설명ㅋㅋ) 지금의 주상 전하와 왕비 전하가 모두 그의 외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창 나이에 절개를 굳게 지킨 보답이라고 한다. 이는 비록 타고난 천성이 특이해서 그런 것이지만 또한 어찌 고흥 유씨의 세덕의 소치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행동한 조상 할매에 대해 송씨 집안의 애정은 아직도 깊다고 한다. 할매의 남편은 그닥 존재감 없이...ㅋㅋ
자신을 있게 한 이에 대한 보답이랄까.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정말 양지바른 곳에 할매는 묻혀있더라. 요즘은 효재 남편으로 더 유명한 임동창 씨가(신기가 있다네...이분이) 이곳에 와서 할매는 지금 정말 편안하게 계신다고 말했다나.
덧붙이면, 송시열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전국 좋다는 곳에 가면 이분의 '낙서'가 없는 곳이 없다...ㅋㅋ 하긴, 박력있는 글씨체, 지금 봐도 너무 멋진데, 아마 당대 사람들도 스타 싸인 받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특히 당대 문인 빅3 중 한 명인 이 분께 비문을 받는 건 대단한 영광이었다 한다.
암튼 건강체질이어서 장수하며 이 글 저 글 많이 쓴 것도 또다른 이유가 된다는데... 사약을 받고도 한 번에 안 죽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에 웃음이 난다...ㅋㅋㅋ
타고난 건강 못지 않게 선생께선 정말 3년간 이부자리 거의 펼치지도 않고 학문에 매진했다 하니, 내 10대 20대 땐 하릴 없는 당파 싸움 주범(?)처럼 느껴져 참 싫어라했던 우암 선생의 또다른 면모에 최근 몇 년 전부터 관심이 생기는 게 느껴진다.
세번째 만중님 오마니 해평 윤씨.
이분을 만나러 전민동으로 갔는데, 전민동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게도 김씨 집안 문인들 묘가 왕릉처럼 크다~랗게 동산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익겸의 묘,로 적혀있는데 김익겸이 바로 김만중 선생 부친. 만중님이 태중에 계실 때 아부지가 병자호란을 맞아 강화도에서 순절(분신)을 하여 그 정신을 기리는 곳이다.
남겨진 만중 엄니는 그 궁핍한 가정에서 아들 둘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책이 필요하면 바로 짜던 베를 잘랐다고 한다. 또 사서 시경 언해를 빌려 손수 등초(베껴씀)했는데 자획이 정묘하고 섬세함이 구슬꿴 듯 했다는.
길쌈으로 조석을 이어가는 지경에서도 항상 태연하여 근심과 번뇌한 용모가 없었다는 강인한 사대부가의 여성.
이런 높은 정신으로부터 구운몽 탄생이 이어졌다는 게 흥미로웠다. 만중님이 훗날 오마니께 얘기 지어드릴려고 한글소설 구운몽을 썼다는데... 사실 당대에도 한문으로 소설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 규방 여성들이 한글로 편지를 쓰고 했던 그런 문화였기에, 만중의 극진한 모친사랑이 소중한 한글소설로 이어진 듯 하다.
지금, 만중님의 묘는 북한에 있지만...
부모의 연고는 곧 자식의 고향이 되고, 부모의 묘를 찾지 않는 자식은 없기에, 유성문화원과 김씨 제실 등 여러 곳에서 김만중을 기린 흔적들을 만들어놓았더라.
가까우니 다음에 시간날 때 한번 더 들르고 싶은 곳.
키 큰 은사시나무가 온몸으로 바람을 표현하고, 드문드문 타래난초가 새초롬한 모습을 드러낸 멋진 묘역....
그 위에 선 시간이 참 묘한 느낌을 주었다.
대전의 가까운 곳임에도 아주 먼 곳에 와있는 그런 느낌...
이날 버스 타고 가는 동안 이 프로그램을 올해 두 번(이번에 한 번, 8월엔 외국인 대상)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작년에 국비를 지원받아 이 코스로 안내를 했을 때, 한 여성분이 깊은 감동을 받아 개인후원자로 2회분을 지원하셔서
밥값 간식값 밖에 안 되는 만원이라는 싼 참가비로 투어를 다시 기획하게 됐다네.
좋은 일을 함께 돕고 널리 알리려는 그 마음이 각각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 기분 좋더라...~
오한숙희씨가 강의에서 한 우스갯말이기도 한데
1920년대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여성단체가 활기차게 설립되기 시작한 시기에도 대전은 정~말 조용했다면서
대전이 한밭이라 밭일이 너무 많았는 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웃음보가 터졌다.
충청도 사람들은 소극적이네, 표현 안 하네, 하는 익숙한 푸념, 그 너머를 살짝 들여다보면
행동하는 용기를 가진 조상과 후손은 언제나 있어왔다는 것.
그것이 대전의 자부심이어야 할 듯...
암튼 스타 강사 예감 팍팍~ 주는 충남대 강사 문희순 님의 입담과 해박한 지식으로
몸도 마음도 머리도 채워진 느낌을 주던 답사.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말이 새롭게 와닿는다. 대전이 달라보여~ ㅋㅋ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한밭문화마당 행사에 함께 하고픈 생각이 든다.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김익겸 묘 앞 쌈밥집 잎새의 향기.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묘에 들러 인생의 먼 선배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고.
첫댓글 새봄님~ 대전 생활 1년이라 들었는데 하루답사로 3분 여인들의 삶을 다 꿰뚫고 계시니 대단하십니다^^ 학생?이 너무 똑똑하면 아니되옵니다^^ ㅎㅎ 농담이구요^^ 답사기 참으로 감사합니다^^ 블러그에서 뵙지요^^더불어 정회원으로 등업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말랑말랑 쫀득쫀득 영양만점 답사, 잘 차린 밥상에서 푸짐한 식사를 한 느낌이었구요 ^____^ 한밭문화마당 앞으로도 쭉 잘 될 것 같사와요~
말보다 글이 빠른 친구가 있는데 못지 않으십니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 알고 나면 정이 깊어집디다.
감사합니다. 대전을 알고 경험하는 시간들이 참 소중해서...이곳이 계속 계속 새롭게 느껴지네요.
문교수님께서 A학점을 주실듯합니다. 새봄님의 글에서 다시한번 배우고 되새깁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프로그램에 제가 감사합니다. 그날 생각하니 다시 기분이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