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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2세의 셋째 아들이다. 프랑스의 아키텐지방을 영토로 가지고 있었으나, 어머니 및 형제와 짜고 반란을 일으켜 부왕(父王)과 싸웠다. 1183년 형 헨리가 죽고 1189년에 부왕인 헨리마저 죽음으로써 왕위에 오른 리처드는 부왕의 대륙정책을 계승함과 동시에 프랑스왕의 누이동생과의 약혼을 취소하여, 그와 프랑스왕 필리프 2세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그러나 십자군운동이 고조됨으로써 두 사람의 공공연한 적대관계는 연기되었다. 왕은 1190년에 필리프 2세와 신성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제휴하여 제3회 십자군을 편성, 이를 주도하여 출정하였다. 그 동안 십자군을 위하여 약 8,000의 병력과 100척의 수송선을 준비하였다. 1191년 리처드는 성지 예루살렘 근처에서 적왕(敵王) 살라딘을 격파하여 3년의 휴전을 맺고(1192), 그의 용맹성으로 사자왕(獅子王)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귀국하는 도중 빈에서 오스트리아왕에게 붙잡혀 많은 액수의 몸값을 바치고 1194년에 석방되어 귀국하였다. 리처드 1세는 재위 10년 중에서 본국에는 반 년밖에 있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프랑스에서 또는 십자군원정으로 허비하여 막대한 전비를 지출하였다. 또, 자신의 몸값으로 무거운 세금을 국민으로부터 징수하였고, 정치에도 무능하였으므로 부왕시대에 눌려 있던 제후(諸侯)들의 세력이 재위 중에 다시 대두하는 일도 있었지만, 전투에서의 영웅적인 행위는 중세기의 전형적인 기사로서 좋은 평을 받았다.
(http://100.naver.com/100.php?id=57467)
죽은 이유는 자기 영토에서 금을 발견한 자작이 자기에 바치지 않자 그 성을 포위하다 전사했다네요;; 그리고 당시 돈으로 15만 마르크를 인질에서 풀려나오는 데 바쳤다네요, 아울러 영토도 신성로마제국에 바쳤다가 봉토로 받고; (http://blog.naver.com/duckgon/10268468)
......참 파란만장합니다-_-; 집안싸움해서 즉위하고 밖에 나가서 잘 싸우고 돌아오는 길에 붙잡히고-_-; 참고로 우리가 배우는 교재에는 사자심왕(Richard the lionhear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살라딘 격파라고 나오고 살라딘 이야기에선 또 그렇게 안 나오고; 개인적으로 격파는 아니라고 봅니다. 분명 두번째의 자료에선 소강상태를 유지했다고 하고, 저도 그게 더 신빙성이 가는군요. |
첫댓글 저는 게임 징기스칸 하면서 리처드1세를 알게 되었는데요..맨날 프랑스하고만 싸워요^^.., 절대 함락되지 않죠 전투력이 높아서 ㅋㅋ 아 그리구.. 그 오스트리아 왕이 레오폴드이였던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