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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길 (한계삼거리 - 통일전망대 검문소)
코스소개 (총거리 65k)
한계삼거리 - 백담사 입구 - 용대동 삼거리 - 진부령 정상 - 진부령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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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신유원지 - 광산2리 마을회관 - 간성향교 - 대대삼거리 - 거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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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 해수욕장-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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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국토종단여행의 북쪽 종착지에 다다랐다. 아니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통일전망대를 10킬로 앞에 두고 서 있는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도보로는 출입이 안된단다. 나는 걸어서 국토종단여행을 하기 때문에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고 몇 번 부탁하다가 담당자가 너무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설득을 포기하고 말았다. ‘차량은 되고 사람은 안된다’는 논리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럼 어디에서 출입 허가를 받아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국방부 정보국에 출입허가신청을 해보라는 말뿐이다. 될지 안될지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투다. 자기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여행하다가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수많은 여행기에서 읽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찰들이 생각이 난다.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타지크스탄, 우즈베크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경찰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돈을 뜯기 위해서 외국인 여행자를 아무런 이유 없이 불러 세우는 것은 기본이고, 배낭을 뒤지다가 현금이 나오면 바로 자기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파렴치한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러시아가 붕괴된 후 각각의 민족국가 단위로 독립하면서 아직 사회질서와 치안질서가 엉망이라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여 년 전에 교통위반자를 상대로 돈을 받았던 우리 경찰을 상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어쨌거나 금년 1월에 정선에서 시작하여 통일전망대를 종점으로 시작한 도보여행을 마쳐 마음이 후련하다. 앞으로는 정선터미널에서 출발하여 해남 땅끝마을까지 걷는 일만 남았다. 코스 선정 문제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단 전체 목표의 일부를 무사히 마친 셈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북쪽으로 향하는 전체 여정 중에서 최악이었다. 근로자의날(5월 1일)부터 석가탄신일(5월 2일)을 거쳐 어린이날(5월 5일)까지 5일 동안의 황금연휴인데다가, 날씨도 맑았지, 거기에 사흘 내내 교통량이 엄청난 46번과 7번 국도를 따라 설악산과 동해안을 옆에 끼고 가는 길을 걸어야 했다.
46번 국도가 한계령으로 가는 길(44번 국도)과 갈라지는 한계삼거리에서 미시령으로 넘어가는 길(56번 지방도)과 갈라지는 용대삼거리 마을회관 앞까지 15킬로는 정말이지 목숨을 내놓고 걷는 최악의 길이었다. 한계삼거리에서 용대리까지 터널을 뚫고 4차선으로 도로 확장공사가 진행중인데다가 속초와 설악산으로 넘어 가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어지고 있었다. 매연을 얼마나 마셨는지 밤에 잘 때 목이 아플 정도였다. 이번 여행 중에 차량을 그렇게 많이 만난 적은 처음이다. 거기에 갓길도 없지, 길은 완전 S자 커브길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차선에 서 있어도 욕을 하거나 크락숀을 울려대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유명 관광지를 끼고 있거나 교통량이 많은 길은 도보여행 코스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좋은 경험이었다. (이번 여름과 가을에 다시 가보니 공사가 완공되어 차들이 거의 새로운 길로 다니고, 구길엔 차가 거의 없어 절경을 감상하면서 여유있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동서을버스터미널에서 12시에 원통 가는 버스를 탔으나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오후 3시에야 원통에 도착했다. 거진까지 가는 버스여서 버스를 탈 때 버스기사에게 가는 도중에 한계삼거리에 좀 내려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으나 버스기사는 퉁명스럽게 거절했다. 원통에서 내려 지난 주에 여행을 마친 한계삼거리까지는 택시로 이동했다. 원통에서 약 5킬로 거리로 요금이 6천원이 나왔다. 택시기사가 이렇게 날씨가 더운데 어떻게 걸어다니느냐고 나를 걱정해준다.
진부령과 미시령으로 올라가는 길은 도로공사로 엉망진창이었다. 설악산과 진부령에서 내려오는 북천은 맑은 계곡물과 주변 산자락 풍경으로 아기자기하고 소담한 멋을 지녔던 옛날의 자태를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몇 년 전부터 보아 온 모습이지만 정말 저래도 되는지 저걸 막을 힘이 없는 나로서는 가슴만 답답하다. 지금은 북천 한 가운데로 우람한 육교가 횡단하여 지나가고, 멀쩡한 산허리를 잘라 터널을 뚫고, 계곡을 매립하여 길을 넓히고 있다. 저 말없는 산하가 얼마나 불편하고 통증이 심할까. 환경연합이나 녹색연합 또는 지역의 환경단체들은 무얼하고 있는지. 다리도 이왕 만들 거면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난간이라도 목재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을텐데, 꼭 저렇게 우악스럽게 만들어야만 하는지.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룬 한계령휴게소 건물은 지금도 얼마나 보기가 좋은가.
도대체 강원도청이나 인제군 양양군 고성군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관광의 개념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관광을 진흥해야 지역경제가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만이 가진 훌륭한 관광자원을 스스로 망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대량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대량관광(mass tourism)의 시대는 접고, 적은 수의 관광객이 돈은 많이 쓰면서 관광지의 자연환경에 부담은 적게 주는 특화관광(specialised tourism)의 시대를 열고 있다. 생태관광, 문화예술관광, 의료관광, 레저스포츠관광, 컨벤션전시관광, 종교관광, 모험체험관광, 해양체험관광, 농장체험관광, 오지트래킹관광, 축제이벤트관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설악산국립공원이 부근에 또는 품안에 안고 있는 한계령 진부령 미시령을 넘나드는 길과 계곡물은 그 자체로 천연 관광자원이나 다름없다. 굽이 굽이 느리게 돌아가는 고갯길과 그 길을 따라 자연스레 서나서나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요즘 유행하는 슬로우라이프(slow life) 개념에도 딱 맞는다. 자연 그대로 엄청난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와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한 세대(30여년) 정도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가 선진국처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회가 되면, 북천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저 육중한 다리는 흉물스런 괴물로 지탄을 받아 다시 철거될 지도 모른다. 청계천 육교처럼.
당국자들은 왜 자동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 관광객의 편리만 생각하는가? 관광객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도로가 사람 중심으로 바뀐다면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나처럼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도로 주행이 너무 위험해서 자전거여행이나 도보여행을 자제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다니는 관광객을 유치하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자연과 대화하고 감상하는 여유여행자(slow tourists)를 유치하는데 힘쓰면, 장기적으로는 해당 지역경제에 훨씬 더 큰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다.
특히 이동 중에 화석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친환경적인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내 생각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내에 있는 국도와 지방도에 자전거와 도보여행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갓길만 제대로 만들어 놓아도 돈을 많이 쓰면서 친환경적인 관광객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 수조원씩 들여서 4대강 주변에 새로 자전거길을 낸다고 난리법석 떨지 말고.
차량을 타고 씽씽 지나가는 관광객보다는 자전거여행이나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숙박업소나 식당을 이용할 가능성이 더 많다. 이런 여행자들은 당일 치기로 원거리 관광지를 여행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현명한 관광정책은 외부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돈을 많이 쓰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지나치는 수많은 행락 차량에 신경쓰느라 백담사 들어가는 용대2리를 어떻게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용대2리까지 올라오면서 북천 계곡에서 원앙새를 3쌍이나 본 것이다. 지난 주에도 3쌍을 보았는데 이번 주에도 3쌍을 보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밖에 나오면 사람보다 이런 자연스런 풍경에 더 위안을 받는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다. 그 탐욕이 이렇게 자연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행태는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버팔로의 가죽만 벗겨가고 몸통은 강물에 모두 버려버리는 미국 초기 이민자들의 탐욕과 다를 게 없다. 이와 반대로 현지인인 인디언들은 버팔로 사냥철이 되면 미리 희생되는 버팔로의 영혼을 비는 제사를 지내고, 꼭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하여 기본 개체수를 유지하고, 가죽이든 고기든 전혀 버리는 일이 없이 모두 음식이나 일상용품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 한마디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만해마을’ 같은 좋은 관광시설을 이 골짜기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백담사에서 운영하는 만해마을은 용대2리 조금 못미친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다. 개인 숙박이나 대규모 수련회 또는 세미나나 워크샵도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몇 번이나 가본 곳이라서 이번에는 들르지 않았다. 특히 잠자리가 일품인데,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눈 아래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도로 건너로는 앞 산이 한 눈에 가득 찬다. 특히 단풍이 흐드러지는 가을철이나 함박눈 휘날리는 겨울철에는 정말이지 마음에 맞는 사람과 술을 한 잔 마시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그런 곳이다.
겨우 겨우 14킬로쯤 걸어 용대삼거리 조금 못 미쳐 용대쉼터에서 민막을 하기로 했다. 1킬로만 더 가서 진부령길과 미시령길이 갈라지는 용대삼거리에서 쉬고 싶었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도로를 걷기에는 너무도 위험했다. 날이 밝은 낮에도 위험한 상황인데. 헤드랜턴도 없었다. 지난 주에 준비한다고 다짐하고선 또 까먹은 것이다. 길가에 있는 민박집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지난 겨울동안 여행하면서 이렇게 빈 민박집을 수없이 보아왔다. 겨울 동안은 비수기라 손님이 없기 때문에 성수기인 여름이 올 때까지 집을 비우는 것이다.
근처를 둘러보았으나 민박집은 이곳 하나 밖에 없었다. 황태해장국을 파는 옆집 아줌마에게 민박하냐고 물었지만 안한단다. 그리고 이 부근에는 민박이 없고 좀 더 올라가거나 용대리 입구로 내려가야 한단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동할 수도 없었다. 민박집 뒷마당을 보니 계곡물이 흐르고 빈터가 있었다. 거기에 텐트를 치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문이 없는 창고 안에 텐트를 치면 비가 내려도 비를 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창고 안에는 빈 냉장고 등 주방기구가 잔뜩 놓여 있었다. 텐트를 칠 때 주의할 점은 가능하면 비나 눈이 내려도 텐트가 젖지 않을 장소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붕 역할을 할 수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 중에 배운 학습효과다.
대강 텐트를 쳐놓고 어둠 속에서 렌턴을 켜놓고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아까 백담사 입구 용대2리 마을에서 사온 삼겹살과 김치로 대강 저녁을 떼웠다. 이상하게도 장거리 트레킹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심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몸에서 육류고기를 요구한다. 우리 인간이 육류고기 소비를 줄여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데, 이렇게 육류고기를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친환경적인 여행을 위해 도보여행을 한다고 말하기는 좀 염치없는 짓이다.
밤새 몸을 뒤척이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마도 낮에 마신 커피 때문이리라. 나는 커피나 콜라를 마시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민감성 체질이다. 무시무시한 바람이 계곡을 뒤흔든다. 금방이라도 텐트가 날아갈 것만 같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동물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잠을 깼다. 물가에 사는 수달들이 먹이를 두고 싸우는 소리인가? 그 소리에 옆집 개들이 놀라서 엄청 짖어댄다. 새벽부터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밤에 기상청에서 강원도 쪽에 강풍주의보를 내렸는데 괜찮냐고. 내 여행에 무심한 마누라도 과부되는 건 싫은가 보다.
진부령(해발 520미터)은 설악산에 있는 고개 중에서 가장 완만하고 산세도 아담하다. 인제 쪽에서 동해안 쪽으로 넘어갈 때는 더 그렇다. 해발이 낮아서 계곡 규모도 작고, 길도 아기자기하다. 지나다니는 차량도 적어서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그런데 계곡물이 가리산천처럼 아주 맑지가 않고 계곡물이 흐르는 바닥이 거무튀튀하다. 아마도 계곡을 따라 군데군데 군부대나 민가들이 있어서 생활하수가 처리되지 않고 계곡물로 흘러들어가서 그럴 것이다. 이런 계곡물 오염현상은 인제 귀둔리 고개와 가리산천 사이의 4킬로 구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계곡물만 보면 부근에 민가나 축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정도가 되었다. 언뜻 보기에 아주 맑은 계곡물도 자세히 보면 그 정도가 각각 다른 것이다.
미시령길이 갈라지는 용대동에서 진부령 정상까지 6킬로는 다니는 차가 별로 없었다. 동해안으로 넘어가는 차들이 용대동에서 대부분 미시령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 이렇게 호젓하게 길을 걷는 것은 처음이다. 도보여행은 이래야 제 맛이다. 오늘은 사람과 차량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여행이다. 어제는 차량이 사람을 무자비하게 윽박지르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비참한 여행이었다.
힘들지 않게 진부령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진부령미술관과 몇 개의 펜션과 슈퍼를 겸하는 민박이 있고, 오른쪽으로 약 2킬로 지점에는 알프스스키리조트가 있다. 우리나라에 스키장이 많이 생기기 전에는 이 스키장이 스키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떨어져 문을 닫고 말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미술관은 휴관중이었다. 아쉽다.
여기서부터 간성까지 22킬로는 내리막길이다. 내려가자마자 바로 동해안에 닿는다. 내려가는 길에 진부령유원지와 장신유원지 그리고 그냥 유원지라고 이름 붙은 몇 개의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전혀 유원지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연휴인데도 놀러 온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평창군이나 홍천군 그리고 인제군과 달리 고성군은 내륙지방의 관광투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해안 쪽에 투자를 치중해서 그런가?
소똥령 부근에서 너무 배가 고파 어제 한계삼거리 휴게소에서 산 옥수수 하나를 꺼내 요기를 했다. 어제 따뜻할 때는 쫄깃쫄깃하고 차진 게 맛있더니 오늘은 퍽퍽하게 굳어서 영 맛이 없다. 그래도 아무 거라도 배를 채워야 하니까 꾸역꾸역 씹어서 물과 함께 목에 밀어 넣는다. ‘소똥령’이라. 이름이 재미있다. 고개 모양이 소똥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나?
이번에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하면서 자주 목격한 것인데, 곳곳에 산불예방 차량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들이 산에 출입하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큰 산불로 영동지방이 막대한 피해를 입어서 해당 시군이 부쩍 신경을 쓰는 거 같다. 진부령 조금 아래에 있는 진부리에서도 한 할아버지가 고갯길 구석에 ‘산불조심’이라고 적힌 빨간 깃발을 매단 낡은 승용차 한 대를 세워두고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귀가 좀 어두우신 거 같았다. 좀 크게 소리를 질러야 겨우 알아들으신다. 일당을 받고 아르바이트로 그 일을 하고 있단다. 또 다른 곳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지난 주에 한계령 아래에서 보았던 어떤 차에는 사람은 어디 가고 ‘산불조심’ 깃발만 홀로 나부끼고 있었다. 산불로 인한 피해가 엄청난 것에 비하면 이렇게 해서라도 산불을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 지역에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의 소득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고. 좋은 아이디어다.
오후 2시 반쯤 장신1리 길가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사발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진부령 동쪽으로는 식당이 아주 드물어 식사시간을 놓친 것이다. 주인아줌마가 떡 몇 개를 비닐봉지에 싸서 먹으라고 주신다. 아직 말랑말랑하다. 오늘이 초파일이라서 음식과 떡을 만들어 앞에 있는 부대에 가서 장병들에게 나누어주고 오는 길이란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부처님 은덕을 많이 입는다.
가게 앞에 앉아서 사발면을 먹고 있는데, 참새 한 마리가 먹이를 입에 물고 처마 밑으로 들어간다. 아마 그 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양이다. 주인아줌마가 빗자루를 집어 들더니 참새집 입구를 마구 후려친다. 참새가 똥을 싸면 가게 앞이 지저분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 맞은 편에 있는 제비집도 부셔야지. 마침 제비집에서도 새끼가 자라고 있었다. 제비는 복을 갖다주기 때문에 있는 게 더 좋단다. 아이고, 불쌍한 참새.
나도 어릴 때는 겨울에 참새를 참 많이도 잡아먹었다. 그 때는 먹을 것이 귀할 때라 참새나 산비둘기 등을 많이 잡아 먹었다. 참새를 잡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공기총을 쏘아 잡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새망을 쳐서 잡는 것이고, 세 번째는 평상을 뒤집어 지주대를 세우고, 그 밑에 먹이를 뿌려놓고 참새를 유인하여 압사시켜 잡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참새집을 직접 습격하여 잡는 방법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도 마지막 방법이 제일 스릴있고 재미있다. 이 방법은 사전준비가 좀 필요하다. 우선 평소에 참새들이 어디에서 자는지 확인을 해두어야 한다. 그럴려면 해질 무렵부터 요것들이 어느 처마 밑으로 들어가는지 그 구멍을 정확히 확인해두어야 한다. 그 다음엔 사다리를 준비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 어두워지면 손전등을 들고 참새집 부근에 모인다. 주의할 점은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참새가 알게 되면 다시 날아가 버리니까. 그 다음엔 제일 용감한 애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팔뚝을 새집으로 밀어넣어 자고 있는 참새를 잡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부작용이 많았다. 처마기와를 잘못 건드리면 비 올 때 비가 새기 때문에 어른들한테 들키면 혼쭐이 나기도 한다. 또 집구렁이도 처마에서 자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재수 없으면 구렁이를 만진 애가 놀라서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황당한 사건도 벌어지곤 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똥물을 마시고 부기를 빼곤했다. 병원과 약이 귀했던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나무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타박상을 입으면, 대나무를 똥통에 박았다 맑은 똥물이 그 안에 차면 그 물을 환자에게 먹였던 것이다. 그래도 ‘참새집습격사건’은 우리 악동들에겐 가장 재미있는 겨울날의 소일거리였다. 잡은 참새는 껍질을 벗겨 불에 구워먹으면 정말 맛이 있었다. 그 때는 시골에서 겨울밤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맨날 먹는 고구마는 비교가 안되었다. 그래서 ‘소고기 한 근과 참새고기 한 점을 안바꾼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호주에서 유학할 때 어느날 설걷이를 하고 있는데, 부엌 앞에 서 있는 나무에 참새가 몇 마리 나타났다. 그 후에도 그 놈(년)들은 계속 날아와서 재미있게 놀곤했다. 우리 참새와 정말 똑같았다. 그때까지는 참새가 한국에만 사는 텃새인줄 알았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마치 한국에서 날 따라서 호주로 날아온 것처럼 반가웠다. 그런 참새를 어릴 땐 그렇게 많이 잡아먹었으니.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난 진심으로 그 참새들에게 사과했다. “참새야, 정말 미안하다. 니 조상들을 내가 철없이 마구 잡아먹어서. 이 싸가지 없는 인간을 부디 용서해주라.” 내가 어릴 때는 왜 친환경 자연교육을 안시켰는지 모르겠다.
광산2리 마을회관에서 4킬로쯤 떨어진 건봉사를 가고 싶었으나 하필 오늘이 초파일이라서 사람이 너무 붐빌 거 같아 포기하고 간성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더구나 아까 진부휴게소에서 어떤 어른이 건봉사 북쪽 길은 민간인 출입금지라고 해서 더 낙심했다. 지도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교동리에 이르자 길 왼쪽으로 간성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시골에 있는 기와집치고는 제법 기품이 있고 규모도 상당히 크다. 정선에서 여기까지 본 집 중에서 관공서를 빼놓고서는 가장 큰 거 같다.
간성 삼거리에서 4킬로를 더 걸어 6시경에 반암해수욕장에 있는 ‘행복민박’에 방을 정했다. 카드는 안되고 현금으로 3만원이다. 길 맞은 편에 있는 황토방 민박은 골방인데도 새집이라고 4만원을 달랜다. 너무 힘들어서 더 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아침 8시 30분에 길을 떠나 32킬로를 걸었다. 너무 늦은 어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좀 일찍 여장을 풀었다.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방도 따뜻했다. 너무 피곤해서 백사장에도 나가지 않고 남은 밥과 맥주 한 켄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10시부터 잠이 들었다. 아침 6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곤하게 잘잤다. 몸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던 어제와 달리 오늘 아침에는 몸이 가뿐하다.
강원도에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관광업소들이 너무 많다. 받는 곳보다 안받는 곳이 훨씬 많다. 지난 1월 정선에서부터 오늘까지 신용카드를 받은 업소는 지난 주에 하룻밤을 지낸 군량밭에 있는 ‘푸른농원’ 딱 한군데 뿐이었다. 영세업소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관광강원’을 주창하는 강원도의 구호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씁쓸한 사례이다.
돈이 떨어져서 현금을 빼기위해 거진항에 들렀다. 서울을 출발할 때 10만원을 인출했는데 어디에 썼는지 벌써 다 떨어졌다. 매번 여행 때마다 15만원씩 준비해서 다녔으나 역시 10만원으로 2박 3일을 여행하기는 좀 부족한 것 같다. 강원지역은 일단 왕복교통비가 4만원쯤 드니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카드가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현금이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수협에 갔으나 문이 잠겨 있어서 그 앞에 자리잡은 페밀리마트에 가서 5만원을 뺐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쓸 돈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날씨가 더울 때 도보여행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단 음식은 금물인데.
거진해안도로를 돌아 화진포에 도착했다. 우회하는 해안도로를 걷는데 해녀 두 사람을 보았다. 동해안에도 해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직접 자맥질을 하는 경우는 처음 목격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도 한 번인가 본 기억이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에 서서 한참이나 내려다 보았다. 철조망으로 방책선을 쳐놓아서 해녀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군당국의 허가를 받은 현지 어부나 해녀들만 해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 모양이다. 방책선에 붙여놓은 경고판에는 “군당국의 허가 없이 해안에 출입하는 자는 군형법 00조에 의해 처벌을 받습니다”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냉전시대의 유물이다.
화진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웠다. 내가 본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아늑하고 해변과 소나무숲이 잘 어우러진 멋진 휴양지였다. 해양박물관과 군인들의 휴양시설인 화진포콘도도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리잡고 있었다. 당대의 실세들이었던 김일성과 이승만 그리고 이기붕의 별장들이 모여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입장료를 2천원이나 받았다. 신기한 것은 입장료 징수원이 다문화가족이었다. 외모로 보아서 베트남이나 태국 출신처럼 보였다. 한국말을 참 잘 한다는 내 말에 “감사합니다.”라고 또렷이 대답했다.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저렇게 다문화가족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우리와 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다. 나는 호주에서 외국인으로 10년이나 살아서 그런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자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화진포에 있는 별장 셋 중에서 김일성 별장이 단연 압권이었다. 우리가 원수로 여기는 김일성이 화진포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별장에서는 바다와 해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몸매가 빼어난 금강송이 집을 둘러쌓고 있었다. 정말 명당이었다. 미산계곡에서 보았던 개인산장이 산속의 명당이었다면 이 집은 해안가의 명당이었다. 이기붕의 별장은 그 아래 안쪽으로 200여미터쯤 떨어진 곳에 역시 아름드리 금강송에 둘러쌓인채 쓸쓸하게 서 있었다. 당시 누렸던 권세에 비하면 소박하고 아담한 집이었다. 이승만의 별장은 바닷가가 아니라 화진포 호수 안쪽 산자락 저멀리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이승만의 성격이 바다에 이는 파도처럼 격정적인 풍경보다는 호수처럼 잔잔한 분위기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해안에 와서 곰치국을 먹지 못하고 돌아가면 후회할 거 같아서 대진에서 곰치국을 찾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곰치국을 파는 집이 없었다. 모두 어판장에 있는 ‘부두집’으로 가보라는 말 뿐이었다. 나는 처음엔 ‘부부집’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어판장에 가서야 ‘부두집’ 간판을 발견했다. 식탁이 서너개에 불과한 아주 조그만 식당이었다.
주인아줌마에게 곰치국을 주문했다. 지금은 곰치국이 안된단다. 오늘은 배가 나가지 않아서 곰치가 아주 비싸고 그나마 생선도 없단다. 황당했다. 동해안에 곰치가 없다니. 내가 그걸 먹고 싶어서 배 고픈 것도 참고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생대구가 싱싱하니 대구탕을 먹으란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식사를 다 마치고 나니 어부 한 분이 비닐봉지에 무슨 생선인가 싸들고 들어왔다. 난 단박에 그것이 곰치를 손질한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 어부아저씨는 3인분 탕을 끓여서 배달해달라고 한다. 아마도 이 식당이 어판장 바로 앞에 있으니까 자주 이렇게 생선을 갖다주고 요리비만 따로 지불하는 단골인 모양이다. 내가 “곰치인가요?”라고 묻자, 이런 비아냥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 요즘은 비싸서 아무나 못먹어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비싸도 난 먹고 싶은데. 그래봤자 1인분에 만원 밖에 더 하겠어. 춘천에서 8천원이니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국이 춘천 ‘동해곰치’에서 파는 곰치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한 번 먹어본 아내는 “그게 뭐가 맛있냐”고 핀잔이지만 난 그렇게 시원하고 개운한 국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사연은 이렇다. 내가 춘천 한림대에 직장을 잡고 어느 날 동료들과 곰치국을 잘하는 집에 갔다. 그 전까지는 이 음식을 어디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도 별로 팔지 않는 음식이다. 생선이 하얗고 흐물흐물한게 보기에 영 꺼림칙했다. 그런데 국이 다 끓고 국물을 한 숟갈 떠먹는 순간 좀 과장하면 나는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렇게 맛있는 국은 처음이었다. 예상과 달리 비린 맛이 전혀 없고,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한 그런 음식이었다. 그 뒤로 나는 곰치국 매니아가 되었다. 나중에 속초에 가서 먹어본 곰치국은 조리법이 춘천과 달라서 그런지 맛이 별로였다.
생대구탕 지리로 점심을 먹고 다시 마지막 여정을 떠났다. 그런데 뜻밖에 복병을 만났다.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전망대 출입을 가로막은 것이다. 차를 탄 사람 이외에는 출입이 안된다는 거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몇 번 실갱이를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언제쯤이나 이런 냉전 이데올로기가 없는 자유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전망대 출입신고소에서 하릴없이 되돌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 1킬로쯤 내려오자 무송정이란 마을에 노선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기사는 어디가고 빈 차만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서있다. 사무실 문을 열어보니 기사아저씨가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카멜에서 배낭을 풀고 앉아서 차가 떠나기를 기다렸다. 이 노선버스로 속초로 가서 거기에서 서울로 갈 생각이었다. 대진에서 시외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기사아저씨가 버스시간을 잘못 맞추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한다고 해서 서울행 버스편이 많은 속초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시골에서 노선버스에서는 가끔씩 재미난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탄 버스 안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떤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씬한 아가씨는 빈 자리가 있는데도 자리에 앉지 않고 청간정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를 그대로 서 있었다. 다른 승객들에게 자기 이쁜 몸매를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하철에서 몸매가 이쁜 아가씨들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계속 옮겨다니는 심리와 흡사하다.
또 한 아가씨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오는지 부케를 들고 장식이 요란하게 붙어있고 번쩍번쩍 빛나는 아주 화려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의상도 아주 눈부셨다. 조금 더 가서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버스에 올라탔다. 스님은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그 아가씨가 앉은 자리의 맞은 편이었다. 쓰고 있는 벙거지 모자의 가장자리 테가 다 닳아 있을 정도로 검소한 모습이었다. 스님의 수수한 회색 장삼과 하얀 고무신과 양말이 그 아가씨의 화려한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성(聖)과 속(俗)의 대비라고나 할까. 나는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순간적으로 “사람 사는 모습이나 태도가 이렇게도 대조적일 수도 있구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운명대로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진에서 속초까지 가는 동안 나 혼자 조용히 즐긴 참 재미있는 버스안의 풍경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서울을 떠날 때보다 더 극심한 교통체증이다. 체증으로 미시령 대신 한계령으로 버스가 우회했는데도 속초에서 동서울까지 5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더구나 속초에서 택시기사 아저씨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주어야 했는데,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주는 바람에 다시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되돌아오느라 한 시간이나 더 늦게 출발했다. 한계령휴게소는 난리북새통이 따로 없고, 한계령 내려가는 길에는 4륜차 한 대가 벌러덩 뒤집힌 채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제는 제발 이런 우악스런 여행 말고, 좀 느리고 여유있는 여행에 사람들이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 (2009년 5월 1일 - 3일).
교통
동서울에서 한계삼거리까지 직접 가는 버스는 없다. 인제나 원통까지 가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동서울에서 양양이나 속초행 버스는 주로 인제와 원통을 경유하기 때문에 한계삼거리에서는 차를 세워주지 않는다. 인제와 원통을 경우하는 속초나 양양행 버스는 교통편은 거의 20-30분에 한 대씩 운행된다. 자가용은 동홍천까지 영동고속도로보다는 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고, 교통체증이 심한 경우에는 춘천에서 양구를 거쳐 인제로 나가도 된다. 춘천-양구간 도로가 일부 구간이 공사 중이기는 하지만 잘 정비되어 있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대진이나 거진, 고성(간성), 또는 속초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숙박
한계삼거리에서 통일전망대 검문소까지 가는 길은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다양한 숙박업소가 많다. 호텔, 팬션, 모텔, 여관, 민박, 유스호스텔 등. 숙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용대동삼거리에서 간성 구간까지 26킬로미터 구간에서는 민박들이 동절기에는 영업을 안하는 집이 많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저녁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식당
유명 관광지답게 이동하는 길목에 식당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많은 식당들이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출발할 때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주변 관광지
이 코스는 설악산국립공원과 동해안을 끼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사찰로는 백담사와 건봉사가 인기가 좋고, 용대자연휴양림과 알프스스키리조트도 유명하다. 동해안 쪽으로는 가진해수욕장, 반암해수욕장, 거진해수욕장, 화진포해수욕장, 초도해수욕장, 화진포 해양박물관, 김일성 이승만 이기붕 별장, 통일전망대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