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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철제 칼. 육차모라고도 한다. 칼날 수가 총 7개로, 곧은 칼날 양쪽에 작은 칼날이 각각 3개씩 더 붙어 있다. 한국에는 실물과 문헌이 전해지지 않으나 일본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그 이름이 보이고,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석상신궁)]에 그 실물이 전해진다. 이 칼의 몸체에 상감되어 있는 명문의 내용은 표면에 <태화 4년 9월 16일 병오 정양일에 백련강철(百鍊鋼鐵)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이 칼은 많은 적병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므로 제후국의 왕들에게 나누어줌이 마땅하다. ○○○가 제작함>이라 하고, 뒷면에는 <선세(先世) 이래로 아직 이 칼이 없었던 바 백제의 왕세자 기생성음(奇生聖音)이 왜왕지(倭王旨)를 위하여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라>라고 하였다.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과 표기된 제작연대를 고려할 때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에 하사되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1935년부터 1936년에 걸쳐 발굴조사하였던 부여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에서 칠지도의 일부로 생각되는 유물이 발견되어 보고된 바 있다. |
일곱 개의 가지 달린 칼, 칠지도!
백제 근초고왕이 칠지도를 왜왕에게 보낸 까닭은?
4세기 후반,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주었다는 명검, 칠지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의 이 칼은
일본역사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국보반열에까지 올랐는데 -
일본학계는 칠지도의 발견에 왜 그토록 열광했는가?
또한 그들의 주장대로 칠지도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품인가?
그리고 백제왕은 왜 일본왕에게 칠지도를 주었는가?
백제 근초고왕 시대에 제작된 칠지도를 통해
4세기 백제의 모습과 고대한일관계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1. 칠지도는 왜 일본의 국보가 되었나?
서기 369년, 백제에서 만들어진 칼, 칠지도 - 그런데 이 칠지도는 현재 일본 국보로써 이소노가미 신궁의 출입금지구역에 보관돼있다. 일본학계는 칠지도를 백제의 헌상품으로 규정하며 임나일본부설(고대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의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일본의 주장대로 칠지도는 백제가 일본왕에게 바친 헌상품이었을까? 의문을 풀어줄 유일한 열쇠는 칠지도 표면에 새겨진 61자의 금상감 명문 뿐이다. 헌상이냐, 하사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여온 한일역사학계 -
1600여년 전에 새겨진 61자의 명문이 말하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2. 단조방식으로 과연, 가지달린 모양의 칼을 만들 수 있을까?
- 1600년 전 칠지도 복원을 실험한다!
길이 75센티미터의 칼날에 금상감 명문이 새겨져있는 칠지도 -
제작진은 실물과 똑같은 크기와 형태로 칠지도를 다시 제작해 1600여년 전 제작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복원한다. 칠지도의 제작 방식은 철을 두드려 만드는 단조방식 - 이는 칠지도 명문의 ‘조백련철’, 즉 백번 단련한 철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입증되고 있다. 일반 칼처럼 일자형이 아닌 좌우로 여섯 개의 칼날이 달려 있는 칠지도 - 미리 만든 틀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 주조방식이 아닌 두들겨 만드는 단조방식으로 이런 섬세한 디자인을 만들기란 현대의 기술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 일본왕에게 주는 칼을 제작하는데, 이렇게 특별한 기술과 노력을 동원한 백제의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3. 3만여 명을 동원해 축조한 둘레 4킬로미터의 거대 저수지
- 강력한 왕권을 과시한 대공사의 흔적 ‘김제 벽골제’
서기 330년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저수지로 알려져 있는 전북 김제의 벽골제 - 고대사에는 벽골제의 최소 둘레가 거의 4킬로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돼있다. 연인원 3만 2천여명이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공사 - 이는 당시 백제왕조가 강력한 왕권 하에 대규모 인력관리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4세기 중반에 이미 이 정도의 국력을 과시했던 백제가 과연 칠지도를 일본에 헌상했을까? 칠지도가 제작된 4세기 후반, 근초고왕 시대로 돌아가 백제와 일본의 국가적 위상을 되짚어 본다.
4. 나무를 숭배한 북방유목민족과 동아시아의 신앙!
- 칠지도의 독특한 모양과 수목신앙의 연관성을 조명한다
중앙의 칼날을 축으로, 양쪽으로 뻗어 나간 여섯 개의 가지. 명문에도 ‘예로부터 이런 칼이 없었다’고 천명할 정도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이다.
제작진은 그 원형을 북방유목민족과 동아시아의 수목신앙에서 찾아본다.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써 나무를 숭배하고 그것을 세계의 중심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었던 고대인들 - 그 신성한 나무의 형상을 본 따 칠지도를 만든 것은, 백제가 세계의 중심임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자신감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반도를 뛰어 넘어 동북아 중심으로 우뚝 서고자 했던 4세기 백제인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느껴 본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지식인, http://www.kbs.co.kr/1tv/sisa/hdhistory/vod/vod/1360542_137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