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유를 들다 3장자는 아이들이 불난 집에서 빠져 나와 네거리에 있는 것을
사자좌에 앉아서 바라보고는 기쁘고 다행스러워하며 말하기를,
‘나는 이제 너무도 즐겁도다.
이 여러 자식들을 애를 써서 길렀는데 어린것들이 소견이 없어서 위험한 집에 들어가
여러 가지 독한 벌레들이 득실거리고 도깨비도 무서운데
맹렬한 불길마저 사면에서 타오르건마는 철모르는 아이들이 장난에만 팔린 것을
내가 이제 구해내어 재앙을 면했구나.
그러므로 여러분들이여, 나는 매우 즐거우니라,’ 하였느니라.
이 때에 여러 자식들이 아버지가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이렇게 여쭈었느니라.
‘이제 저희들에게 앞서 말씀하신 세 가지 좋은 보배 수레를 주십시오.
아까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이 집에서 나오면 세 가지 좋은 수레를
마음껏 가지라고 말씀하셨으니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얼른 나누어 주십시오.’
이렇게 아이들이 그 수레를 달라고 조릅니다.
앞에서도 누차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말하자면은 성문 연각 보살의 법인거지요.
그래서 성문 연각 보살의 법에 대한 이야기가 경전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근기에 맞춰서 가설한 방편이지요.
임시방편입니다. 그
것은 실제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됩니다.
장자는 재산이 많아 창고도 여러 개가 있고 금과 은과 유리와 자거와 마노들과
여러 가지 보물로써 큰 수레를 만드는데, 장식도 훌륭하게 하여
주위에는 난간을 내고 사면에는 풍경을 달고 황금 줄로 걸쳤으며
진주로 만든 그물이 그 위에 덮여 있고 금빛 꽃과 온갖 영락을
곳곳마다 드리웠느니라.
바로 이것은 우리들 마음에서 펼쳐낼 수 있는 가장 인간이 이르러갈 수 있는
최상의 경지, 말하자면은 부처의 경지, 부처님으로서의 삶을 표현한 것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장식품을 사방에 둘렀으며
부드러운 비단 보료를 자리 삼아 깔아 놓고 억만 량 값이 나가는
아름답고 보드랍고 곱고 깨끗한 천으로 그 위에 덮었느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한량없는 복덕과 지혜와 자비와 이런 것들을 표현한다고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사실 이 표현으로서는 상당히 부족하지요.
그러한 것들을 한껏 드러낸 이가 깨달은 분,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여기서 설명한 이런 내용들을 가슴에 가지고는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렇게 담고 있는 그런 사실들을
여기서 이렇게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거기다가
살찌고 기운 세고 몸뚱이도 잘 생긴 크고 흰 소를 수레에다 메웠는데
마부와 하인들이 앞뒤에서 모시었느니라.
이러한 아름다운 수레들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니
아이들이 환희하여 뛰놀면서 이 보배 수레를 타고 앉아 사방으로 내달리며
희희낙낙 즐겨하며 자유자재하여 거칠 것이 없었느니라.
여기서 부처님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또 이 부처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부족함이 없이 완전무결하게 갖추고 있는, 그런 우리 마음의 복덕과 지혜와
한량없는 능력과 무량한 수명, 무량한 지혜광명, 바로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것을 일일이 어떤 법수적인 그런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또 여기서는 비유니까 비유로서 이렇게 표현을 해서
우리의 그런 위대한 삶을 회복 할 수 있도록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법화경의 아주 위대성입니다.
이런 공부하는 시간이 우리의 가장 뛰어난 선택이고,
참으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다행스런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또 우리들 내면에 있는 그런 능력을 일깨워내는 그런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다행스런 시간은 없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러한 시간을 가장 뛰어난 선택의 시간이다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마음에 어떤 섭섭한 점도 있고,
아무리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봤다 하더라도,
우리들 인간이 사는 세상을 그렇게 까지 봤단 말인가?
여기 비유로서 든 그런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졌단 말인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할 때, 한편 좀 섭섭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놀라웁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사실이구요.
이 세상 지금 돌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한 것은 없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가 그대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어떤 꿈과 희망인 부처의 삶을 여기에서 또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또 중요한 것이지요.
그래서 상반되는 양면을 오늘 이렇게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