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
오늘은 설날, 아침에 차례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앞 마당을 내려다 보니 설날 때때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애들 모습도 보이지 않아 설분위가 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그렇지만 설날은 설분위기가 나야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고향의 설날의 모습들을 천천히 회상해 본다. 그 시절 시골의 설날 아침은 유독 눈이 많이 내렸다. 설 하루 전, 음력 그믐날 밤에 내린 눈은 축복이었고 모든 것을 덮어주는 용서였다. 설날을 맞는 한낮의 허물들을 다독거린 밤의 정화였다. 그래서 눈 내린 설날의 시골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이런 날 꼬마들은 그냥 눈길을 달리기만 하면 우쭐 나이 한 살을 또 먹었다. 요즘 나는 설이 오면 서러워진다. 옛적 시골의 설날 모습을 보곺아도 모두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살 한살 나이를 더해 가는 무거움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연륜 속에 세월을 담지 못하고 세월 속에 연륜을 보태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설날 아침이 오면 꼬마들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후 저수지로 몰려가 꽁꽁 언 어름 위에서 썰매를 신나게 탔다. 요즘의 스케이트처럼 멋지고 날이 붙은 가죽신발의 것이 아닌, 동네 형들이 나무 토막을 잘라 그 밑에 굵은 철사를 깔아 만든 것이었지만 잘도 나걌다. 이처럼 설날은 아이들에게는 제일 기다려지는 명절이었지만 어른들은 설 준비와 운명처럼 다가오는 나이먹기 때문에 그리 기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고민을 몰랐던 우리들은 나이 한살 더 빨리 먹어면 으즛하게 보일까 생각했고 부지런히 친지와 동네 어른들을 찾아 세배드리면 세뱃돈도 벌 수 있어 설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설 전날의 목욕탕 안 모습은 욕객들로 초만원상태였다. 평소 아이들은 쇠죽물에 손발을 담구고 묵은떼를 벋겼지만 설날 전날 목욕탕에 가 1년치의 떼를 한꺼 번에 배꼈다. 그렇기에 탕물에 떼가 둥둥 떠다니는 것은 보통이었고 옷통도 모자라 번호표를 받아 기다려야 했으므로 당시의 목욕탕은 추억을 반추하는 공간이자 아이콘이다. 거기에다 어머니가 준비해 둔 설빔을 보고 또 쳐다보면서 언제 먹을 수 있을까 조바심을 가졌고 부침개 부치는 냄새는 담을 넘어 이웃까지 날아갔고 그 냄새에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며 연신 코를 킁큼거렸으며 까치도 추위에 떨고 있는 감나무에 앉아 울고 있었다. . 또 설날에 신을 미리 사둔 운동화를 몇 번이나 신어보고 설날 오기를 기다리면서, 설 전날 밤에는 머리맡에 가지런히 두고 내일 신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신발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차 잠도 설치곤 하였다. 운동화 한 컬레는 당시 아이들에게 가슴이 요동치는 설레임을 주었다고 손자에게 말하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세월이 흐르니 아이들에게 추억과 낭만을 안겨 줄 문화적 장치들이 사라지고 있다. 색다른 의식으로 설날 아침, 할머니는 가장 먼저 가족 수만큼 사 둔 복조리를 안청마루 처마 끝에 걸어 놓고 가족의 복과 건강을 가정신인 조왕님께 빌었다. 정성드려 기원했던 할머니의 소망을 조왕님께서 잘 받아주셔서 가족 모두는 한 해 동안 건강했다. 조왕님께 예를 표하는 의식이 끝나면 차례를 지낸 후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면 덕담과 세뱃돈을 주셨고, 동네 친지 어른들도 찾아뵙고 세배를 드렸다. 그 때 어른들은 쌈지에 아껴 접어 둔 돈을 주시면서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게"라고 한결같이 덕담을 주셨는데 요즘 어르신들도 똑 같이 말씀하신다.
오늘은 설날, 흰눈이라도 내리면 복이 소복히 쌓인 듯 가슴이 설레일터인데... 하얀 마음을 갖고 온 흰눈이 내리면 그 속에 뛰놀던 강아지처럼 동화의 세계로 달려 갈 수도 있을 텐데... 흰눈길을 밟으며 가면 절로 마음이 깨끗해 지던 세뱃길. 그 눈을 밟으며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면 몸과 마음이 새록새록 했는데-- 그때의 '뽀득뽀득', 그 순결한 소리는 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그 눈부시게 아름답던 길이 유난히 오늘 더 그리워진다. 내년 설에는 나무들 모두가 하나같이 뿔 고운 순록이 되는 눈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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