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나갔더니 평소 안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밭 한쪽에 사람 눈에 잘 안 뜨이도록 작은 둥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들짐승이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둥지를 발견한지 이틀이 지나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요. 바람도 세차게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로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찮은 미물도 월동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합니다.
우리 자오 쉼터도 서서히 월동준비를 합니다. 보일러도 점검을 하고, 물탱크도 얼지 않도록 집을 만들어 줍니다. 무성하던 풀들도 어느새 초라하게 변해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한포기의 풀과 같다고 하는데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요즘 쉼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고, 또한 전화로 상담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까워오니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쉼터에서 살고 싶다는 내용들입니다. 일단 오셔서 면담을 해 보면 참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일곱이나 있는데도 늙은 어머님을 모시기 싫어 시설에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생계를 위해 돈을 벌러 가기 위해서는 장애인 아이를 버려야만 하는 현실을 만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는 세상은 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는지요.
자오 쉼터 대표인 양미동 집사님은 그들과 면담을 하실 때 반드시 조건을 말합니다. 쉼터에 들어오면 첫째는, 예수를 믿고 함께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자오 쉼터에서 복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한 영혼이라도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려는 사랑인데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니 연락을 끊어 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요즘은 지체장애 4급인 종섭씨가 입주하여 우리와 함께 열심히 쉼터를 가꾸어 간답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조금씩 고쳐가고 만들어 가는 나날이랍니다. 11월이 가기 전에 몇 명의 가족이 더 입주할 것 같아요. 우리 쉼터는 크고 아름답고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건축이 되어 있지만 190평의 건물에 20명의 가족만 입주시켜서 가족이 옹기종기 사는 것 같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답니다.
텃밭에 배추를 심었어요. 우리 쉼터 가족들이 한 겨울을 지낼 김장을 담그기 위해서지요. 고추 농사도 그럭저럭 되어 저희들이 김장할 고춧가루는 만들었어요. 김장도 준비하고 보일러 기름도 준비하고, 다목적 보일러에 사용할 화목과 갈탄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봉사 온 분들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군고구마 파티도 열게 하려면 밭에 심었던 고구마도 캐어서 잘 간수해 놔야겠어요. 이렇게 월동 준비를 하면서도 며칠 전에 심방을 갔던 어느 장애인 가정을 생각합니다. 전에 어느 시설에서 살면서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기에 이제는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시설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그분을 생각하며, 우리 자오 쉼터에는 가족의 사랑이 있는 축복된 장소로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벌써 겨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