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24일, 12시간 41분 동안 밤을 새워 달린 북한강 울트라 100km마라톤 후기>
울트라 마라톤 도전이라는 대장정에 돌입하다.
마라톤을 하면서 풀코스를 달려보는 것이 소원이었었다. 1년여 만에 완주의 성공을 이루어 냈을 때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뿌듯함과 형언 못할 기쁨, 무엇이든 못할 것 없을 자신감이 넘쳐 꽤 여러 날을 그런 행복감에 묻혀 살았던 기억이 더듬어진다. 어언 7년의 마라톤 생활은 나의 버팀목이었고 느슨해진 내 생활의 리듬이요 활력 그 자체였다.
2007년도를 진정한 마라톤의 생활로 몰입 해야겠다는 의지를 높히 치켜 세우며 새해 첫 날을 시작으로 여수,수원경기일보,보성녹차,인제내린천,남해마라톤......
하지만,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기 위한 마지막 대회로 달린 지난 번 하프대회에서는 게으름과 자만심에 빠져 크나 큰 댓가를 몸과 마음으로 톡톡히 치러 내야만 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프도 헉헉거렸는데 울트라라니! 기세 등등하여 항우장사 같았던 기개세는 어디로 사라지고 꽁지 내린 강아지꼴이 되어 버렸다.
일주일간 빡빡히 짜여진 스케줄의 하루 하루가 소중했고, 자고 나면 대회날은 턱밑에 다가오고, 마음의 비중이 압박을 더하여 점점 무거워짐은 '울트라'라는 무한 도전이 꽤나 버거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회날이 임박해지며 불안과 걱정의 마음은 더욱 지나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지경의 무아가 되어 버렸다. 아무튼 결전의 날은 내가 붙잡고 싶어도 어김없이 시간의 연속선상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대회날은 다가 오고야 말았다.
기실, 새해 벽두부터 마라톤에 정진하게 됨은 나름대로 나의 삶을 찾기 위한 초석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주변의 나의 것들은 나를 중심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고, 깨뜨리고, 고치며 이르렀지만, 지나고 나면 늘 부족했고, 바빴던 것 같으나 남는 것은 없었고, 뭔가 의미가 될 것도 무의미가 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마라톤을 하며 나를 돌아보고 바라보면서 내 일생의 반을 지내왔다고 생각하니 시점이 정확하진 않지만 새로운 마음이 일게 되었고, 앞으로의 펼쳐지는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최선을 다하여 후회하지 않을 삶을 마라톤의 힘과 매력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초조한 마음과 설레임이 어우러져 양평 양수리 북한강 울트라 마라톤 대회장 분위기는 처음 마라톤에 입문할 때처럼 울트라 초보의 신선한 충격과 같은 기분이었다. 걱정 해주며 함께 동참한 아내의 마음과 남양주에서 마라톤을 같이 시작했던 동료 형님의 응원이 곁들여지면서 불안과 초조가 약간의 희망을 내보인다.
울트라에 필요한 몇가지 준비물품을 구입하고, 방금 이야기했는데도 무얼 얘기했는지 모를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출발 시간이다. 울트라 배낭에, 물, 빵, 영양갱, 초콜릿 등등 일용할 양식과 울트라 완주 소원을 담은 희망의 주머니를 그득히 담았으나 배낭은 무겁지 않았다.
형형색색 갖가지 울트라 마라토너들의 출발은 화려했다. 그도 그럴것이 풀코스를 승화하여 울트라 100km를 달릴 건각들인데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다. 느리지만 약동하는 힘찬 달림으로 양수리 북한강 석양의 아름다움에 애써 심취하였다. 긴 여정이고 무언가에 집중해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서였다. 리드미컬한 울트라 마라토너들의 발놀림에 맞추어 산과 강이 어우러진 북한강 기슭을 달리며 건너 있으면서 보지 못했던 건너편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와 저기가 거긴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왜 북한강변에 전원주택이, 카페의 거리가 지어지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한강변 으스름의 저녁 밤 정경은 한 시간도 채 못되어 무르익는다. 한껏 멋을 낸 카페의 현란한 치장등이 바람에 흔들리는 잔잔한 물결에 반사되어 어두운 산자락에 드리워지며 한여름밤 축제의 분위기는 달아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큰 특성 중 하나인 '빨리 빨리' 는, 달려서 순위가 매겨지는 대회인데도 울트라 마라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직선거리에 주욱 늘어선 도열이 마치 모세의 기적에서 길이 열린 곳으로 꿈과 희망을 좇아가는 그 모습과도 같았다. 나도 그 대열에 합세하여 달린다는 것이 너무도 가슴벅차왔다. 욕심을 버리고, 시간을 잊고, 굽어진 도로에, 때론 언덕으로, 앞사람의 뒤를 따르며, 뒷사람의 길안내 역할도 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은, 나를 찾아 가는 긴 여정이었다.
머지 않아 어둠이 찾아오면서 새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10여km를 지난 긴 마라톤 대열은 더욱 길어지면서 달리는 속도에 자동으로 단체에서 삼삼오오로 나뉘어지며 어느 새 신청평대교 위를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지친 몸을 청평대교 밑으로 푸웅덩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25km 청평댐에 이르러 준비된 급수대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털썩 주저 앉아 입에 딱 맞는 찰떡파이를 먹으며 쉬고 있노라니 아내의 걱정어린 전화가 들려왔다. "잘 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잘 자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뻥뻥 쳐댔다. 속으로는 아직 반도 못 갔는데 걱정은 되었지만,
서둘러 정리를 하고 출발을 했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 길은 파주에 전근가기 5년 전에 마석에서 청평댐쪽으로 차를 몰아 자주 달리던 곳이어 정겨운 느낌마져 드는 주로였다. 초입에 길거리 카페 몇 개를 지나면 가로등도 없이 호수를 끼고 달려야 하는 경치 좋은 코스이지만 캄캄한 밤이라 볼 수가 없다.
깜깜한 밤은 반딧불이의 행렬로 이어지며 색다른 볼거리를 안겨준다. 앞서가는 마라토너들의 앞뒤로 달린 조명등 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반짝하며 하늘을 나는 듯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풀코스를 달릴 때 언덕이 많으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리는 데 울트라에서는 전혀 반대가 되어 버렸다. 약속이나 한듯이 높은 언덕을 만나면 모든 반딧불이들이 천천히 유영을 하며 지칠대로 지친 반딧불이의 다음 날갯짓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였던 것이다. 휴식의 언덕에서 평지로 이어지면 앞서가던 반딧불이의 힘찬 날갯짓을 시작으로 다음 반딧불이는 그 다음 반딧불이로 연쇄적인 이동을 재촉했다. 지친 나머지 심지어는 언덕이 많았으면 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자신을 보고 혼자 웃었다.
함께 달리다가, 혼자 달리다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달렸다. 40km에 다다르니 식사를 제공하는 임시 식당이 차려졌고 참았던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다. 배는 고팠지만 지친 몸은 그 맛있는 국밥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어도 완주를 위해 억지로 밀어넣었다. 이내 일어서 반환점을 향해 출발을 하는데 자동차 기어가 변속되듯이 달리는데도 단계가 있었다. 좀처럼 저단기어에서 고단기어를 넣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힘들던지 50km 반환점이 10km거리인데 방금 달린 40km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깜깜한 주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반딧불이가 '화이팅'을 외치며 선두로 지나쳤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하여 내렸고 땀과 섞이면서 빗물인지 땀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냈다. 하나둘씩 반대편에서 오는 반딧불이들이 잦아지면서 "울트라, 힘!" 이라는 화이팅을 선물했다. 칠흑같은 어둠이라 남이섬은 보이지 않았지만 배려하는 '화이팅'소리에 반환점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분명 앞서 간 반딧불이들의 숫자를 셀수 있을 정도였으니, 바나나와 물을 보충하고 시계를 보니 1시를 알린다. 힘을 보탰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신발은 질퍽였고 몸의 무게는 점점 더해만 갔다.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준비한 우비를 챙겨 거추장스런 팔 부위는 잘라 버리고 입으니 영락없는 허수아비 폼이었다. 왼쪽 새끼발가락이 물집이 잡히는지 언덕에서 걷다가 달릴 때는 쓰라림이 고통을 더한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아서부터는 좁혀지는 거리에 힘이 실어졌고 인내하고 감내할 수 있었다. 청평댐을 지나 한 번더 쉬고 수박으로 목마름과 지친 몸을 달랬다.
신청평대교를 지날때는 속도가 아니었다.
기계적인 반복의 페달질이었지만 발아래로 펼쳐지는 희미한 물안개는 새벽이 오는 희망을 안겨주었고 내리는 빗방울은 오히려 시원함을 선사하며 남은 20km를 몰아갔다. 마라토너들 간의 거리는 더욱 벌어져 앞선 주자도 뒤에 선 주자도 보이지 않고, 순위도 달라지지 않는 홀로 달리기이지만 이렇게 내가 새아침의 여명을 맞이하며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10여 킬로미터!
주린 허기와 스러져가는 기운의 쇠잔함이 온 몸으로 전해지고 발가락의 통증은 고통을 지나 무감각의 상태로 되어 버렸다.
멀리 양수리가 보인다.
이 정도면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을 해 보았다.
그 동안의 힘든 여정을 돌아보며 해 낼 수 있다는 가슴 벅참과 감사함, 고마움, 살아 있음, 희망, 행복, 기쁨 등등, 알 것도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명은 어둠을 잠재우고 새로이 펼쳐질 새아침을 잉태하였다.
내리던 비도 그쳤고, 구름속에서 간간히 비쳐지던 햇살은, 비 온뒤의 상쾌함으로 울트라 마라톤의 긴 여정을 축하라도 해 주듯이 오늘의 나를 반겨준다.
골인 지점이 지척이다.
카메라 렌즈에 포즈를 취하며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을 때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첫댓글 늦었지만 대단한 한경택 올해는 더 큰일 꼭 소원성취되길 진심으로 빈다
경택아 울트라 마라톤 완주 축하한다.너무 멋지다~~~^^
경택아!! 다음엔 자동차로 경기하는것은 어떠냐? 과속 카메라 무시, 신호 무시하고 목숨만 살짝 보존하고... 생각있으면 콜해?
대신 차량은 3300cc 이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