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캄보디아 CEN 2012-1-7 (영문번역) Khmerization (국문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야당 : '1.7절'을 바라보는 시각
Oppositions and government continue to differ
on the meaning of the 7th Januar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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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ing Fong / DC-Cam 소장) 1979년 1월, 프놈펜 남쪽의 끄발 트날(Kbal Thnal)에서 베트남 군대의 전차가 진격 중이다. |
오늘은 폴 포트(Pol Pot)의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베트남 군대가 1979년에 캄보디아에 개입한지 33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는 '크메르루주 정권으로부터의 해방일'로서 1월7일(쁘람삐 마까라)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날의 의미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야당들과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 그리고 시민사회는 이 날을 "침략일"(invasion day)이나 "캄보디아의 베트남화를 통한 해방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1야당인 '삼랑시당'(SRP)은 <우리가 1월7일을 축하해야만 하는가?>(Should we celebrate January 7?)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여, 이 날을 해방절로서 축하해야 할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성명서는 1월7일을 해방일로서 축하하는 사람들은 매국노들(배신자들)과 매국노들에게 돈에 팔린 자들, 그리고 매국노들의 선전선동(프로파겐다)에 의해 세뇌당한 이들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외에 망명 중인 SRP의 삼 랑시(Sam Rainsy) 총재는 발언을 통해, 모든 크메르인들은 1월7일을 베트남이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크메르민족을 해방시킨다는 미명 하에 그 군대로써 침략해온 날이란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베트남의 침략군이 자신들의 침략과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화 전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소수의 크메르인 매국노들을 앞에다 내세웠다고 말했다.
삼 랑시 총재는, 심지어는 베트남이 아직 그 이름조차 갖지 못한 채 다이 비엣(Dai Viet)이나 안남(Annam)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베트남 통치자들의 유일한 바램은 캄보디아를 집어삼켜 병합시키는 것이었다면서, 그러한 정책의 결과로 캄보디아가 현재와 같이 조그마한 영토로 줄어들고 말았다고 말했다.
삼 랑시 총재는 그러한 베트남의 정책으로 인해 캄보디아는 1949년에 '캄푸치아 끄롬'(Kampuchea Krom) 영토를 상실했다면서, 베트남은 그 이후로도 캄보디아에 대한 팽창정책을 지속하여 1월7일과 같은 다양한 속임수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RP의 성명서는, 크메르루주가 1975년에 정권을 잡았던 4월17일이 없었다면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했던 1월7일도 없었을 것이란 점을 모든 크메르인들이 온존하게 알아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베트남 군대가 1970년대 초에 크메르루주 반군들을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크메르루주가 1975년 4월 17일에 정권을 잡지도 못했을 것이란 점도 기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성명서는 또한, 캄보디아의 혼란을 틈타 베트남은 크메르루주 정권에 수많은 비밀요원들을 침투시켰고, 그들이 크메르루주 정권이 크메르인들을 학살하는 데 지원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성명서는 지난 40년 동안 크메르민족이 겪었던 사건들과 고통은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대한 팽창정책을 획책한 데서 발생한 것이었다고 결론내렸다.
이와 함께, 삼 랑시 총재는 베트남이 '프놈펜의 꼭두각시 정권'을 압박하여 베트남 국경에서 더 많은 땅을 할양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의 전략은 모든 부문에서 크메르인들을 이용하여 크메르인들을 죽이는 모습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면서, 그러한 일이 경제 부문에서 나타난 것이 토지양허권을 부여하여 가난한 크메르인 농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토지를 수탈한 후 부유한 베트남 기업들에 넘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서는 모든 크메르인들이 SRP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더 늦기 전에 캄보디아가 소멸해버리는 일을 막는 것이라고 호소하면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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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C-Cam) 1979년 1월, KUFNS 소속 군인들이 프놈펜의 왕궁을 접수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
한편, 군소 제2 야당인 '인권당'(HRP: 3석)의 껨 소카(Kem Sokha) 총재도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1월7일이 크메르루주 정권이 막을 내린 날이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베트남의 꼭두각시 정권이 탄생한 날이라고 말했다.
HRP의 성명서는 크메르루주 정권이 1975년 4월 17일부터 1979년 1월 7일까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점은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성명서는 하지만 베트남 역시 캄보디아를 침공한 이후 살인적인 'K5 지뢰 벨트 계획'을 통해 크메르 민족을 전멸시키는 정책을 계속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당시 'K-5 벨트' 설치작업에 동원됐던 수많은 캄보디아인들은 크메르루주 반군에 대항하여 벌목과 둑의 건설 등의 작업을 하면서 질병과 기아, 지뢰사고 등으로 죽어갔다. HRP는 "1월7일을 축하하는 것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을 축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NGO '캄보디아 감시위원회'(Cambodia Watch Council)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1월7일을 하나의 살인정권의 붕괴일이자 베트남의 캄보디아 병합 정책을 실행하기 위한 또 다른 살인정권의 출발점이라고 묘사했다.
비판자들과 야당들의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은 오늘 1만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1.7절 33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CPP 당의장인 찌어 심(Chea Sim) 상원의장은 기념식 연설을 통해, 1월7일이 캄보디아와 그 국민들에게 제2의 생명을 주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은 1979년 1월 7일의 역사적 승리의 33주년 기념일이다. 그날의 일은 폴 포트의 학살정권을 붕괴시켰고, 우리의 조국과 국민들을 적시에 구원해냈다. 이 위대한 승리를 토대로 캄보디아 국민들은 오늘날의 모든 것을 얻어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
찌어 심 의장은 연설에서, 크메르인들은 크메르루주 정권이 가한 범죄와 비극들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루주가 '크메르 공화국'(Khmer Republic: 1970~1975)을 전복시켰을 때, 현 정권 실세들인 찌어 심 상원의장, CPP 부의장인 훈센(Hun Sen) 총리, CPP 명예 당의장인 헹 삼린(Heng Samrin) 국회의장도 크메르루주 지도부에 속해 있었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이후 1979년 1월 7일 베트남 군대에 의해 전복될 때까지 캄보디아를 살인적인 정책 속에 몰아넣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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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국가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CPP당에서 1.7일을 해방일로
경축할려면 현재 진행중인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국제재판'(ECCC)에
더욱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보여야 정당성이 부여될 텐데
수동적으로 또는 방해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모순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