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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포럼 90회 포럼
기시미 이치로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독후감
제출자 : 곽은서
일시 : 2023년 11월 7일 (화)
시작하며: 모든 인간은 대등한 관계에 있다
먼저 주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묵상했습니다(빌 2:1~5, 딤전 1:14~16).
우리는 주 안에서 모두 죄인이며 다른 이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빚진 자임을 기억하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서로 존중하며 사랑을 적용하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엡 4:11~16, 롬 12장 소명적 은사).
제1부 인생을 변화시키는 ‘역전의 발상’
실천을 위한 심리학
이 책의 제목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와 이 주제를 통해 실천의 중요성을 묵상했습니다. 저자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실천을 위한 심리학이라고 명명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관념적 신앙과 깨달음의 유희와 지적 추구의 위험성을 묵상했습니다. 영적 지식이 실제가 되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구체적으로 적용하겠습니다.(고전 3:8~15, 고후 5:10, 갈 6:8~10, 엡 2:10)
* 아들러는 “우리는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잘못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31쪽).
실패할 때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의 원인을 성령께 묻고 성령께서 변화시켜주시는 복된 삶을 묵상했습니다. 경건 서적을 통해 새로운 실패와 반복된 실패를 배우고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연단 받으며 바르게 적용하는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공동체 감각의 발견
아들러는 전쟁을 계기로 공동체 감각이라는 이론을 생각해냈습니다. 공동체 감각이란 타인을 친구로 보는 의식입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프로이트가 인간에게는 공격 욕구가 있다고 결론지었다면 아들러는 인간은 친구다는 프로이트와 전혀 다른 사상에 도달한 것입니다.
의미부여를 달리 하면 미래도 달라진다
* 아들러 심리학의 특징으로는 먼저, 인간은 누구나 같은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부여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관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같은 경험을 해도 어떻게 의미부여를 하느냐에 따라서 세계는 전혀 다르게 보이고 행동도 달라집니다.
*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어 반드시 어떤 결과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인론입니다. 원인론은 으레 결정론이 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것은 과거의 사건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므로 현재 상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들러의 목적론에서는 세워야 할 목적과 목표가 미래에 있습니다. 과거는 바꾸지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생이 우리 뜻대로 다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래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태도는 결정할 수 있지는 않겠습니까?
과거 경험은 결정 요인이 아니다
* 싫어졌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때까지는 상대방의 장점이라고 느꼈던 것이 단점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좋아했던 요인은 나중에 지어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목적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경우는 그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결점을 찾은 것입니다. 장점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바꾸지 않는 한 행동 또한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심리학이 결정론과 결별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로는 성공이나 실패의 요인이 아닙니다(49쪽, 55쪽).
원인론과 목적론의 차이
* 불안해서 바깥에 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나가지 않으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을 지어낸 것입니다.
이 장을 읽을 때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 26:13)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순전함과 온전함을 추구하는 영성인이 되기 위해, 주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복된 종이 되기 위해 더욱 게으름을 극복하도록 힘쓰겠습니다. 타협과 변명과 탓을 하기 보다는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의뢰하여 주님의 요구에 순종할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오병이어로 드리겠습니다(마 5:48, 고후 11:1~3, 시 73:28, 행 13:43). 그리고 욕망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경계하겠습니다(시 131:1~3).
선택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저자와 아들러는 어떤 행위의 목적과 선을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주제를 통해 잠언 21장 2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자기 보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이 공과를 통해 날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점검하는 훈련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사람은 행위를 보고 하나님은 심령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다? 변하고 싶지 않다?
* 저자는 의미부여라는 말을 썼는데 아들러는 이 세계에 대한 그리고 인생과 자신에 대한 의미부여를 생활양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은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자기개념), 타인을 포함한 세계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세계상), 자신과 세계에 대해 어떤 이상을 품고 있는가(자기이상), 이 세 가지를 한데 묶은 신념 체계가 생활양식입니다.
* 사람들은 대부분 ‘일부러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보다는 지금 이대로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즉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면서 변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데도 변하지 말자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로마서 8장 12절~14절에서 들려주는 소욕의 문제를 묵상했습니다. ‘못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 이 공과를 통해 저 자신을 바르게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마자 소욕을 바르게 다스리어 영으로 사는 영성인이 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동기와 목적을 바르게 점검하기 위해 늘 성령의 빛 비춤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거울, 검) 앞에 제 자신을 두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영적 멘토와 영적 친구와 영적 멘티의 도움을 통해 제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고 영으로 살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무엇이 생활양식을 정하는가
아들러는 본인의 결단이 생활양식을 정한다고 말합니다. 생활양식을 결정할 때 영향 인자는 유전, 환경(부모자식<가족 가치, 가족 분위기, 문화>과 형제자매 등의 인간관계)이 있습니다.
* 아들러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주제를 통해 달란트 비유와 므나의 비유와 청지기의 비유와 열처녀 비유를 묵상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리기 위해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직 주님과 사랑의 연합을 위해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이 모든 일을 한다면 이 역시 영적인 야망 또는 욕망이 됨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나를 위해 나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면(이룸, 성취, 업적) 행위적으로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욕망이 되기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무익한 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눅 17:10, 고후 11:1~3). 성령께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종으로 이끄시길 소원합니다. 나로 살지 아니하고 주님으로 살며, 나를 위해 행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해 행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원합니다. 날마다 회개에 민첩하고 점검하며 늘 깨어있는 삶이 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갈 용기내기
* 인간관계는 고민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 또한 얻지 못합니다.
*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겠다는 결심을 버리면 생활양식은 변할 것입니다. 단 결심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먼저 무의식중에 몸에 밴 자신의 생활양식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생활양식을 선택합니다. 다만 그전에 어떤 생활양식을 선택하면 좋을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2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 욕구다
* 인간은 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선)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문제는 무엇이 자신에게 선인지 판단할 때 착각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선을 추구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아들러는 이것을 우월성의 추구하고 했습니다.
아들러의 우월성의 추구를 통해 달란트의 비유를 묵상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성장해야 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충성해야 합니다.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라는 원칙 가운데 달란트를 남기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나의 나라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또한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종이 되기 위해서 더욱 달란트를 계발하도록 힘쓰겠습니다.
* 우월성의 추구와 짝을 이루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아들러는 이 두 가지는 인간에게 모두 있기에 어느 쪽이든 노력과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된다고 말합니다. 아들러는 모른다는 열등감(이상 속 자신과 현실 속 자신의 비교에서 생김)과 더 알고 싶다는 우월성의 추구는 인간과 세계에 수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너무 강한 열등감은 열등콤플렉스, 너무 지나친 우월성의 추구는 우월콤플렉스라고 부르면서 둘 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2부의 핵심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를 알려주고 바르게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열등콤플렉스와 우월콤플렉스가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에도 큰 해가 됨을 묵상했습니다.
(롬 10:1~4, 고전 3:3~8, 갈 5:14~15)
겉보기 인과율과 인생의 거짓말에 현혹되지 마라
* 열등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하지 않는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찾으며 현실의 과제를 외면하려 합니다.
* 아들러 심리학에서 열등콤플렉스는 열등감을 핑곗거리로 삼는 것을 가리킵니다(A라서 B를 하지 못한다, A가 아니라서 B를 하지 못한다). 이것을 겉보기 인과율이라 했습니다.
* ‘만약 …라면’이라는 말도 자주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실적인 노력을 했다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우수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즉 우월콤플렉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조금이나마 열등콤플렉스와 우월콤플렉스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르게 극복하기 위해 오늘을 사는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기회의 날에(오늘) 주를 위해 구속사에 성실하길 원합니다. 충성하길 원합니다. 주님을 알고 얻고 소유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복된 삶에 더욱 충실하겠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원함은 무의미하기에, 주님께서 영감을 주실 때마다 대가를 지불하여 실제(순복과 헌신)에 이르도록 힘쓰겠습니다. 타성에 젖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익숙함에 속지 않고 날마다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도록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당신 생각만큼 당신에게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 자신을 실제보다 우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 우월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정말 우월한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만하지 않습니다. 우월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남보다 우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쓰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씁니다. 또 우월콤플렉스를 가진 사람 중에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치를 깍아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왔는지 불행자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우월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지금의 자기 모습을 알아차리자
* 여기서 왜라는 원인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어떤 목적이 있기에 열등콤플렉스와 우월콤플렉스에 빠지느냐는 겁니다.
이 주제를 통해 주님과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목적하고 주님의 사람들을 사랑했던 사도 바울의 추구와 헌신을 묵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의 목적 안에서 주님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하도록 힘썼습니다.
(마 6:33, 빌 3:7~14, 고전 4:1~5, 고후 10:18, 골 1:28~29, 엡 4:11~16)
경쟁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 건전한 열등감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가 아니라 이상 속 자신과 비교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통해 빌립보서 2장 12절~14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모두가 제각각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 누군가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그저 앞을 향해 착실히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고 의식하면서 걸으면 그걸로 족합니다. 모든 기준은 자신입니다. 설령 누군가에게 추월당한다 한들 지금 있는 장소에서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건전한 우월성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 아들러는 우월성의 추구를 공헌과 공동체 감각(타인을 친구로 인식)으로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진실로 인생의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월성의 추구로서 다른 모든 이들을 풍요롭게 하려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밀고 나아가는 그런 사람이다.”
이 주제를 통해 함께, 같이 주님을 목적하고 주님을 따르는 복된 공동체에 속했음을 묵상했습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위해 존재하는 복된 종이 되길 소원했습니다. 주님은 생명의 원천이시고, 우리는 생명의 통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주님의 생명을 나누어주십니다(생명의 전이). 그 결과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우리와 함께 선한 영향력을 끼치십니다(갈 2:20, 골 1:28~29). 남은 생애동안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님을 위해 주님의 사람들을 바르게 사랑하고 섬기는 복된 삶이 되도록 성장과 변화와 달란트 계발에 힘쓰겠습니다(마 6:33, 요 15:4~5, 갈 5:22~23, 빌 3:7~14, 엡 4:11~16, 요일 3:16).
3부 인간관계 전환하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 인간관계는 고민의 원천이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 또한 인간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피할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의미부여를 다시 해야 합니다. 타인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여겨야만 합니다. 그러면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처럼 주를 위하고 그를 위하여 나를 바꾸려고 힘쓰겠습니다. 반대로 나를 위해 그를 바꾸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바르게 주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역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다’라는 착각
* 타인을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다(혹은 중심이고 싶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사례가 광장공포증입니다.
* 응석받이로 자라난 아이는 자신의 바람이 곧 법이 되기를 기대하도록 길러집니다.
주목받고 싶은 아이
* 오랫동안 교육자와 심리학자의 관심을 끌어온 한 가지 감정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개인심리학에서는 더 이상 두려움의 원인(~때문에)을 찾고자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두려움의 목적(주목받고 타인을 지배하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합니다.
타인의 인정은 필요한가
* 인정 욕구가 생긴 이유에는 응석받이로 자란 것과 더불어 상벌 교육의 영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칭찬받지 못한다는(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알면 적절한 행동인 줄 알면서도 하지 않습니다.
* 삶이란 기브 앤드 테이크가 아닙니다. 인정 욕구가 있는 사람은 테이크를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산다는 것은 기브 앤드 기브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공헌감을 느끼면 인정 욕구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이 주제와 함께 엡 2:10, 갈 6:8~10, 행 20:35, 요 21장, 계 19:8, 21:2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
* ‘인정 욕구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다’라는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 방법은 타인에게 관심 기울이기입니다. 아들러는 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귀를 듣고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기가 공동체 감각의 정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타인이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기입니다. 세 번째 방법은 과제의 분리입니다. 이것은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과제의 분리: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 어떤 일의 최종 결말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최종적으로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일이 누구의 과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인간관계에서 문제는 다른 사람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해 들어감으로써 일어납니다.
타인과 협력해야 해낼 수 있는 과제도 있다
*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의 최종 목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타인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단 그러한 경우에도 과제의 분리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 도저히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과제는 누군가에게 협력을 요청합니다. 거꾸로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할 때는 최대한 협력하면 됩니다. 이것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공동 과제로 삼기라고 말합니다.
4부 자신과 타인에게 용기 불어넣기
저자와 아들러가 들려준 주제와는 동일하지 않지만 4부 주제를 읽으며 영의 협력자로써 혼을 바르게 설득하고, 권면하고, 위로해야함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자랑(칭찬)할 것이 있어야한다는 말씀을(갈 6:4) 바르게 적용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옳은 행실을 해드리는 기쁨을 더욱 묵상하며 적용하겠습니다.
공동체 감각이란 무엇인가
* 타인과 관계 맺기가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 감각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됩니다(178쪽).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은 타인과 나누는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들러는 이를 개인의 행복과 인류의 행복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공동체 감각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주제를 통해 에베소서 4장 11절~16절 말씀과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과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다른 지체들과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고 나누는 삶의 중요성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2장 19절~21절 말씀과 데살로니가전서 3장 6절~8절 말씀을 통해 더욱 주님을 알고 얻고 소유하고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생명의 전이가 풍성하게 나타나는 복된 주님의 종이 되길 소망했습니다. ‘함께, 같이 그리고 홀로’의 삶이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야함을 묵상했습니다(눅 6장, 영성수업).
* 공동체 감각에서 공동체란 기존 사회가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이상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전체(공동체)에 대한 공헌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공헌, 타인에 대한 관심(공동체 감각, social interest), 협력입니다.
모든 것은 자기수용에서 시작된다
* 공동체 감각에 대해 세 가지 관점으로 설명하는데 첫 번째는 자기 수용입니다. 자신을 받아들이려면 나는 특별히 좋거나 나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인간관계는 고민의 원천도 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나 행복 또한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수용을 통해 주님의 관점으로 나를 바르게 알고, 타인을 바르게 알기를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2절~16절, 롬 1장 6~7절, 롬 8장 28~30절, 롬 11장 29절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에 감사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나와 그, 그리고 우리의 의미와 가치를 인식하고 사랑해야함을 묵상했습니다.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심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하심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3장 3절과 고린도후서 4장 6~7절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서 항상 저를 통해 영광 받으실 복된 삶을 은총으로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공헌하고 있다
* 두 번째는 타인 공헌(감)입니다.
신뢰: 조건 없이 누군가를 믿는 것
* 세 번째는 타인 신뢰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조건 달린 신용이 아니라 조건 없는 신뢰에 기초할 때 비로소 성립됩니다.
* 이상 세 가지 요건은 순환구조를 이룹니다. 요컨대 자신을 받아들이려면 공헌감이 있어야 하고 공헌감을 갖기 위해서는 타인이 적이 아니라 친구로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면서(받아들이면서) 타인을 적으로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야단치지 않고 용기 불어넣기
* 아들러 교육론의 기본은 용기부여에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가 공동체 감각을 갖고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합니다.
* 필요한 경우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칭찬하지 않고 용기 불어넣기
* 용기를 낼 수 있게 돕는 것을 용기 부여라고 합니다. 다만 이 말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타이에게 뭔가를 시키려고 술수를 쓰라는 뜻은 아닙니다. 용기 부여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공헌에 주목하고 다른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인사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고마워’라는 인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