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
서울연합회 보광동 교회 배유미
<자전거 도둑>. 이 영화의 제목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실제로 봤다거나 잘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이유는 너무 오래 됐기 때문이다. 비디오 샾에서 찾아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먼지 냄새나는 영화를 이야기 하려는가? 영화에 대한 글을 부탁 받았을 때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했고, 자전거 도둑은 그냥 옛날 영화가 아니라 영화사의 ‘고전’이기 때문이다. 고전이 가지는 의미는 알다시피 시공을 뛰어넘는 보편성과 재해석의 가능성에 있다. 자전거 도둑 역시 그러하다. 영화는 1948년에 만들어졌지만, 2004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동일하게 (혹은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정서와 감각이 배어있고, 함께 생각해 볼만한 꺼리들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약간은 망설이기도 (사실 좋은 영화가 너무 많아서 가장 좋은 거 하나만 고르라면 못 고른다. --;;) 했지만, 자전거 도둑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자전거 도둑은 네오리얼리즘 영화다. 네오리얼리즘?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영화를 볼때 저건 무슨 주의 영화고 저런 촬영기법을 사용했고, 이런 메타포를 썼구나 하며 영화를 보진 않는다. 그건 평론가가 하면 된다. 그런데 왜 무슨 주의를 얘기하느냐....... 알고 보면 감동이 두 배가 된다고나 할까? (후훗;)
네오리얼리즘은 말 그대로 신사실주의다. 되도록 ‘현실에 가깝게’ 이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감독은 미국의 한 제작자가 케리 그랜트를 주연으로 하면 제작비를 전부 대겠다는데도 마다하고 직업 배우가 아닌 금속노동자를 주연으로 썼다. 돈과 스타를 모두 거부한 이유는? 간단하다. 네오리얼리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또 아들 역엔 거리의 부랑아를 썼고, 아내 역엔 기자를 썼다. 게다가 스튜디오 촬영은 하나도 없고, 더럽고 허름한 집,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러니까 가장 현실에 가까운 것만을 화면에 담으려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정신이 바로 네오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로마에서 오랫동안 직업 없이 떠돌던 안토니오는 어느 날 포스터 붙이는 일을 구하게 된다. 그 일을 하려면 자전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아내 마리아에게 말해 헌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구한다. 어린 아들 브루노도 따라나선다. 그러나 어느 모퉁이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쫓아가다 놓쳐서 경찰에 신고도 하지만, 경찰은 관심도 없다. 안토니오는 생계가 걸린 만큼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포를 뒤지다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를 발견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 젊은이의 집을 찾았으나 그 녀석은 빈민촌에 사는데다가 간질을 일으키며 눈앞에서 쓰러져 버린다. 동네사람들과 어머니가 나서서 그 젊은이를 감싸자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불쌍한 도둑’에게 줘 버린다. 그래서 아들과 다투다 아들이 없어진다. 안토니오는 어린애가 강에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 정신없이 아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아들은 축구장 계단 위에서 나타난다. 축구장에선 시합이 한창이다. 밖에는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안토니오는 아들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하고 자전거 한대를 훔쳐 달아나다 주인에게 붙잡힌다. 경찰이 온다. 그는 자전거 주인의 선처로 풀려난다. 하지만 아들 브루노가 그 장면을 모두 보았다. 안토니오는 석양의 거리를 허탈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아들이 뒤를 따른다.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다시 남의 자전거를 훔치는 웃지 못 할 역설. 그러나 이 역설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면 억지라고 하겠는가? 자전거를 남에게 주어 아들과 다투고, 다시 남의 자전거를 훔치고 아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안토니오와 석양 속에서 그를 뒤따르던 아들의 모습에서 나는 경멸 혹은 동정심보다는 사랑과 생명력을 느꼈다. 전쟁이 휩쓸고 간 황량한 도시, 입에 풀칠하기 조차 힘든 삶. 그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이해와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미워하다가도 동정하고, 다투다가도 사랑을 회복하는.......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희망이 아닐까? 현실은 때로 너무나 잔인하고 비참하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고, 도망쳐 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 현실 속에서 또다시 희망을 발견한다. 그러한 진리를 자전거 도둑은 꾸며서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소박하고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더욱더 눈길을 머물게 하고 큰 울림을 느끼게 한다. 화질이 좀 나쁘더라도 짜증내지 않고 볼 수 있다면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연기가 빛을 발하는 이 영화를 꼭 한번 보기 바란다.
첫댓글 누나 우리 언제 만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