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또 나는 들었습니다. 임금자리로부터 큰 소리가 말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거처가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처를 두실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And I heard a great voice out of heaven saying, Behold, the tabernacle of God is with men, and he will dwell with them, and they shall be his people, and God himself shall be with them, and be their God.(KJV)
And I heard a loud voice from the throne saying, “Look! God’s dwelling place is now among the people, and he will dwell with them. They will be his people, and God himself will be with them and be their God.(NIV)
지금까지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것들을 많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들은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났습니다.(KJV 등 다른 역본에서는 하늘에서로 번역됨) 어떤 내용입니까?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누가 한 말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5절 말씀을 고려할 때, 이는 보좌에 앉으신 분 곧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되었든 이 말씀은 참으로 기쁘고 감격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장막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지으라고 한 성막을 연상케합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그 목적을 말씀하셨었습니다.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즉,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져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고 싶은데, 바로 성막을 통해 그들 중에 거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한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해서 열 두 지파가 네 지파씩 동서남북을 둘러 진을 쳤습니다. 이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 또한 같습니다. 성도들 한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그 성막이 이스라엘 진 밖으로 옮겨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모세는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 한 가운데 거하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고 싶었지만 역겨워 더 이상은 함께 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비 내리는 이 아침,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는 성막의 이름도 회막이라고 바꿔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바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의 모습입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로 하나님의 성막은 늘 자기 백성의 진영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문 밖, 바로 그곳에 고난 당하신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 한가운데에 하나님의 성막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이 성막은 진영 밖으로 옮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치욕을 짊어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젠 고난 받으신 어린 양 예수님이 아니라 승리하신 왕되신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