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가보석재
 
 
 
 
 
 

지난주 BEST회원

 

지난주 BEST회원

 

지난주 BEST회원

 
 
 

카페 통계

 
방문
20241020
0
20241021
0
20241022
0
20241023
1
20241024
0
가입
20241020
0
20241021
0
20241022
0
20241023
0
20241024
0
게시글
20241020
0
20241021
0
20241022
0
20241023
0
20241024
0
댓글
20241020
0
20241021
0
20241022
0
20241023
0
20241024
0
 
카페 게시글
능&원&묘 스크랩 융릉(사도세자)
가보석재 추천 0 조회 11 12.06.22 10: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 화성시 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지역 사회 교재인 '우리 고장 화성'을 집필하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화성시 일원의 문화재와 유적지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융건능과 송산면 사강리 3.1운동 기념비, 남양성모성지, 남양향교 등을 돌아보는 일정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융릉의 경우는 여러 번 사진과 글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파란 하늘과 구름이 어우러져 제법 멋진 사진이 나온 것같습니다.

 

융릉 전경
융릉은 영조의 세자인 사도세자와 경의왕후로 추존된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양주 배봉산에 있던 무덤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겼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능 주변 소나무에 송충이가 많이 번식하여 소나무를 갉아먹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행차를 서둘러 와서 보니 송충이의 기승이 대단하였다. 정조가 진노하여 송충이를 잡아 이로 깨물며 “아무리 미물일 망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먹느냐?”고 꾸중하자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적당히 어우러져 융릉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왼쪽 건물은 제례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입니다. 오른쪽에 있어야 할 수복청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정자각과 융릉

조선시대의 왕릉은 홍살문과 정자각 그리고 봉분이 일직선 상에 놓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이곳 융릉은 사진에서 보듯이 정자각과 봉분의 축이 틀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봉분이 있는 자리가 더 좋은 명당이라 방향을 약간 틀어 놓았다고 합니다.


신도와 어도 그리고 정자각
정자각으로 가는 길은 박석이 깔려 있습니다. 다른 곳보다 볼록 나온 길은 신도로 신이 다니는 상징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신도 오른쪽에 조금 낮은 곳은 왕이 다니는 어도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박석이 깔린 길은 신하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이 사진에서도 정자각과 봉분의 축이 틀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융릉 정자각과 봉분


융릉 정자각과 봉분
이 사진은 바로 위에 있는 사진과 동일한 장소에서 사진기를 세로로 세워 하늘을 강조하기 위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 역시 파란 하늘과 구름을 강조하기 위해 세로로 찍은 사진입니다. 융릉 하늘 위로 용이 하늘로 오르는 듯한 구름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사진을 찍기에 정말 좋은 날이었습니다. 비가 온 뒤에 맑게 개인 청명한 하늘과 적당한 구름이 융릉의 모습을 더욱 보기 좋게 연출하였습니다.

융릉 정자각의 잡상
궁궐이나 능에 있는 건물의 지붕에 있는 동물상들을 잡상이라고 합니다. 중국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등을 표현하였다고 하는데,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융릉 입구에 있는 원대황교입니다.
원래 융릉의 금천은 조금 더 위로 올라가야 있습니다만 융릉 앞을 흐르는 개울에 돌다리를 놓아 금천교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다리는 본래 수원 비행장 아랫 동네인 황교동에 있던 돌다리로 황교동 주민들이 돌다리를 해체하여 이곳 융릉에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