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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초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선긋기권력 —경북대·충북대·전북대가 빠지다니—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ㅡ아홉 곳을 심사해 셋을 골랐구나.
ㅡ하지만 이제 이 결정은 미국 두뇌유출과 겹쳐 다시 보아야 한다.
ㅡ캐나다는 5천억을 걸고 48명을 데려갔다.
돈만 붓고 조건을 그대로 두면 연목구어다.
ㅡ대학을 골랐지 회랑을 고르지 않았다.
ㅡ대학을 키우는 일과 기관을 내보내는 일, 전력을 설계하는 일은 하나다.
1. 두 개의 발표, 하나의 국면
교육부는 9월 1일 '2026년 서울대 10개 만들기' 패키지 지원대학으로 부산대·전남대·충남대 세 곳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교당 약 700억 원, 2027년부터 2030년까지는 매년 800억 원 안팎이 투입된다. 애초에는 서울대를 뺀 아홉 개 거점국립대 전부를 대상으로 하려던 구상이었으나, 범정부 협의를 거치며 준비된 곳부터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강원대·경상국립대·경북대·전북대·제주대·충북대도 7월에 계획서를 냈지만 이번에는 들지 못했다.
부산대는 조선·해양·기계시스템·항공우주를 묶은 혁신제조융합대학과 국내 최대 규모의 AI대학, 양산캠퍼스의 산업 AX 연구캠퍼스를 내걸었다.
전남대는 첨단반도체와 미래에너지에 집중한 첨단융합대학을, 충남대는 카이스트와의 협력체계와 대덕연구개발특구·정부출연연구기관 연계를 내세웠다.
거의 같은 시기, 태평양 건너에서는 다른 발표가 있었다. 캐나다가 5억 캐나다달러(약 5천억 원) 규모의 인재유치 프로그램을 걸고 미국 대학을 떠나는 연구자 48명을 데려갔다는 소식이다.
하버드와 MIT의 이름이 명단에 올랐고, 연구비의 불확실성과 학술 자율성 침해가 결정적 이유였다. 이탈은 더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따라붙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산 삭감과 이미 승인된 과제의 동결·취소, 비자 정책 강화가 배경이다.
우리 언론은 이 두 소식을 각각 교육면과 국제면에 따로 실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 판의 앞뒤다. 국내에 세계적 연구 거점을 새로 짓겠다는 결정과, 세계의 연구 거점이 흔들리며 사람이 쏟아져 나오는 국면이 같은 달에 일어난 것이다. 이런 우연은 자주 오지 않는다.
2. 그릇을 키운다고 물이 절로 오지는 않지만
여기서 성급하게 "미국이 흔들리니 우리가 받자"고 외치면, 그 순간 이 논의는 구호가 된다. 냉정하게 숫자를 보자. 캐나다는 우리 돈 5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걸고 겨우 수십 명을 데려왔다. 그것도 영어권이고, 학제와 학회와 연구비 심사 회로가 미국과 사실상 연속된 나라다. 토론토로 가는 연구자는 나라를 옮기되 생활과 연구의 문법은 옮기지 않는다.
한국에는 그 연속성이 없다. 국가 연구비 사업의 참여 자격은 여전히 국내 기관과 국문 서류를 전제로 짜여 있고, 학내 의사결정과 심사와 행정은 한국어로 돌아간다. 배우자의 일자리와 자녀의 학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임기제 외국인 교원과 정년트랙 사이의 이중구조도 그대로다. 이 조건을 손대지 않은 채 예산만 얹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것은 "우리도 데려올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바꾸면 올 만한가"이다. 그리고 이 물음은 확대의 방식을 바꾼다. 세 곳을 더 지정하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같은 패키지를 세 번 복사하는 확대여야 할 이유는 없다.
3. 세 칸을 더 채워야 한다
첫째, 국제 트랙은 패키지 안이 아니라 패키지 밖에 두어야 한다.
이번 선정 계획서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전략산업 인력 양성과 AI 교육은 촘촘한데, 해외 두뇌를 받는 통로는 비어 있다. 예산의 일부를 해외 석학과 박사후연구원 유치 전용으로 못박고, 성과관리위원회의 핵심성과지표에 '영입 연구자의 3년 정착률'을 넣어야 한다. 몇 명을 데려왔는가가 아니라 몇 명이 남았는가로 평가해야, 전시성 초빙이 아니라 정착 조건에 돈이 간다.
그런데 앞 절에서 짚은 장벽들을 다시 보라. 비자와 영주 트랙,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참여 자격, 국문 행정, 학위와 자격의 상호인정 — 이것들은 하나같이 전국 단위의 제도다. 비자 규정을 부산대에만 풀 수는 없고, 국가 R&D 참여 자격을 전남대 소속에게만 열어줄 수도 없다. 문을 고치는 순간 그 문은 아홉 개 거점국립대에도, 카이스트와 네 곳의 과학기술원에도 함께 열린다. 그러므로 국제 트랙은 선정 3교에 붙는 한 칸이 아니라, 선정과 무관하게 따로 세워야 할 축이다.
분야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미국에서 밀려나오는 연구자는 아무 데서나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적 연구비가 끊긴 분야에서 나온다. 2025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에서만 1,996건의 과제가 취소되거나 중단되었고, 연방기관을 떠난 STEM·보건 분야 박사가 10,109명으로 전년의 두 배를 넘었다. 네이처 설문에 응한 미국 연구자 1,600여 명 가운데 넷에 셋이 이주를 고려한다고 답했고, 실제로 국외 일자리 지원은 32%, 캐나다 쪽만 보면 41% 늘었다. 그리고 삭감은 실험실에만 간 것이 아니다. 2025년 4월 2일 하루에 국립인문재단의 보조금 1,200건 이상이 종료되었고 직원 3분의 2에게 해고가 통보되었다.
이번에 선정된 세 곳이 내건 간판은 조선해양·항공우주, 첨단반도체·미래에너지, 그리고 대덕 연계다.
정작 오송에 질병관리청과 국립보건연구원을 곁에 둔 충북대,
첨단의료복합단지와 방사광가속기를 곁에 둔 경북대,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원들이 모인 혁신도시를 곁에 둔 전북대는 그 자리에 없다.
인문 쪽은 더하다. 반도체 공정은 대만도 하고 미국도 한다. 그러나 신라의 고분과 서원의 목판과 익산 미륵사지의 석탑을 현장에서 붙들고 평생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 여기뿐이다.
경주와 안동을 낀 경북대, 익산의 백제와 전주의 조선을 낀 전북대가 가진 것은 예산으로 만들 수 없는 자산이다.
게다가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미 이 문화에 접속해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를 연구 주제로 삼는 흐름은 대학 정책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배우러 오는 사람은 이미 있는데, 정작 그들이 눌러앉아 연구할 자리는 열려 있지 않다. 저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을 그어 한계를 지운 탓이다.
회랑이 없는 곳도 마찬가지다. 제주의 화산지질과 해양, 강원의 산림과 접경은 종합 허브로 키울 대상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현장 하나로 걸면 된다.
이것은 그릇이 작다는 문제가 아니라 그릇의 종류가 안 맞는다는 문제다. 그러므로 경북대·충북대·전북대를 더 지정해야 한다.
둘째, 대학이 아니라 회랑을 골랐어야 한다.
연구자는 대학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산다. 대학만 키우면 교수는 수도권에 살고 고속철로 출근하며, 캠퍼스는 밤에 빈다. 지난 8월 이 지면에서 사법기관의 지방 분산을 이야기하며 카를스루에를 들었는데, 그 도시는 여기서 다시 봐야 한다.
카를스루에의 인구는 30만이다. 그런데 이 도시를 30만짜리 도시로 읽으면 틀린다. 라인강 상류 회랑의 한가운데에 있어 하이델베르크와 만하임이 기차로 45분, 슈투트가르트가 한 시간 안쪽이고, 국경 너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가 붙어 있다. 행정구역은 30만이지만 연구자가 실제로 쓰는 생활권은 유럽 최대의 인구 축이다.
그 위에 300년 동안 무언가가 계속 얹혔다. 1715년 바덴의 새 수도로 지어진 궁정도시였기에 주립극장과 국립미술관을 가졌고, 1825년 독일 최초의 폴리테크니크가 여기 섰으며, 1886년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실증한 곳이 이 학교다.
주도(州都)를 슈투트가르트에 내준 뒤에는 1950년에 연방대법원을, 1951년에 연방헌법재판소를 받아 '법의 수도'가 되었다. 1956년 국립연구소가 들어서 2009년 대학과 합쳐졌고, 1972년 독일 최초의 정보학과가 생겼으며, 2019년에는 독일 최초의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가 되었다.
도시의 명성이 대학을 키운 것이 아니다. 회랑 위에 계속 무언가를 놓아준 것이 명성과 대학을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보존된 유산이 아니라 매일 작동하는 기관이었다.
극장은 지금도 공연을 올리고 법원은 판결을 내리며 미디어예술센터는 작품을 제작한다. 우리 지방 도시들이 가진 축적은 두께로 치면 결코 얇지 않은데, 대부분 유물의 형태로 있고 기관의 형태로 있지 않다.
신라가 거기 있다는 것과 신라를 연구할 자리가 거기 있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이번 선정의 단위를 다시 보게 된다. 정부는 국토공간 대전환 전략과의 정합성을 첫 번째 심사 항목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우리 국토에서 연구자가 실제로 사는 단위는 도시가 아니라 회랑이다. 대구·구미·포항·경주·울산이 하나이고, 대전·세종·청주·천안이 하나이며, 전주·익산·군산·새만금이 하나다. 이 눈으로 보면 결과가 이상해진다. 대전권에서는 충남대가 뽑혔는데 같은 회랑 안 오송의 충북대는 빠졌고, 대구권은 통째로 빠졌다. 국토 전략을 기준으로 삼았다면서 국토를 회랑으로 읽지 않고 대학을 낱개로 고른 것이다.
전북 회랑은 더 선명하다. 새만금개발청은 8월 20일, 현대차그룹이 9월에 AI 데이터센터 건축심의를 신청하고 내년 3월 착공한다고 밝혔다. 9조 원 규모 투자의 핵심 시설이 로봇 제조공장과 함께 1산단에 들어서고, 내년 말부터는 태양광 발전과 수소 생산시설도 단계적으로 착공한다. 국가 최대의 인공지능 투자가 들어오는 회랑인데, 그 안의 대학은 이번 지원에서 빠졌다. 국가가 대학을 고르는 기준과 기업이 부지를 고르는 기준이 어긋난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지정은 대학이 아니라 회랑을 단위로 해야 한다. 2027년에는 대구권과 대전권과 전북권이 들어와야 하고, 그것은 경북대·충북대·전북대를 뜻한다. 이미 6월에 거점국립대 총장들이 같은 말을 했다. 충남대는 2027년에는 모든 거점국립대가 참여하도록 확대해야 한다고 했고, 충북대는 아홉 곳 전면 지원에서 세 곳 선별로 축소된 것이 서열화를 굳힐 수 있다고 했으며, 전북대는 해마다 세 곳씩 순차로 선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선정된 대학조차 확대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무겁게 읽어야 한다.
기능을 옮기는 일도 이 눈으로 보면 길이 넓어진다. 후보지를 세 도시로 좁히면 기관 이전은 부산이냐 대전이냐의 다툼이 되어 교착된다.
스위스가 로잔·루체른·벨린초나·장크트갈렌에 최고법원 기능을 나눠 둔 것은 양보의 산물이 아니라 선택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1998년 서울에 설치되었다가 2000년 대전으로 옮겨 전국을 관할하는 특허법원이라는 선례가 있다. 신설이 논의되는 중대수사청과 공소청, 이전이 거론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여러 도시에 나누면 각 도시는 자기 몫을 얻고 어느 도시도 전부를 갖지 못한다.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이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국제학교와 의료와 주거는 대학 예산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능이 모여야 생긴다.
셋째, AI대학 신설은 곧 전력 계획이다.
부산대는 국내 최대 규모의 AI대학과 양산캠퍼스 AX 연구캠퍼스를, 전남대는 중대형 AX 전주기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이 계획들이 실현되면 각 캠퍼스는 상당한 전력을 먹는 시설을 안게 된다. 지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겪고 있는 송전선로 갈등은 수요를 먼저 세우고 전기는 나중에 국가가 끌어다 주는 순서에서 비롯됐다. 밀양의 기억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같은 순서를 다시 밟을 이유가 없다.
반대 순서를 밟고 있는 곳이 마침 새만금이다. 2020년 이곳에 2조 원 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던 계획은 계통 연결이 풀리지 않아 5년이 지나도록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이번 구상이 다른 것은 전기를 멀리서 끌어오는 대신 발전원과 소비처를 한 권역 안에 두었다는 점이다.
태양광과 수전해 설비를 데이터센터와 함께 짓는 순서이고, 사업 주체들 스스로 이를 지산지소(地産地消)라 부른다. 국가가 수십 년간 재정과 규제로 풀지 못한 구조를 기업이 수익성 때문에 찾아간 셈이다.
거점대학의 AI 인프라도 처음부터 분산형 자립 전원과 함께 설계해야 한다. 호남권의 재생에너지 자원과 지난 5월 특별법이 통과된 영농형태양광은 전남대의 '미래에너지' 특성화와 그대로 이어진다.
캠퍼스가 자기 전기를 스스로 조달하는 실험장이 되면, 연구 주제와 연구 조건이 하나가 된다. 세계에서 좋은 연구자를 부르면서 그들이 쓸 전기는 남의 동네 송전탑에 기대는 것만큼 낯 뜨거운 일도 없다.
4. 자리를 비워두는 일
신릉군은 문지기 후영을 맞으러 갈 때 수레의 왼쪽 자리를 비워두고 몸소 고삐를 잡았다. 허좌이대(虛左以待),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린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값진 사람은 크게 지은 집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워둔 자리를 보고 온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그릇을 키우는 일이다. 700억과 800억은 그릇의 크기다. 그러나 사람은 그릇이 커서 오지 않는다. 앉을 자리가 비어 있고, 그 자리가 자기를 위해 비워졌음을 알아볼 때 온다. 국제 트랙 한 칸, 회랑이라는 한 칸, 자기 전기를 대는 캠퍼스 한 칸 — 지금 비워두어야 할 자리는 이 세 칸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세 대학의 교문 안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세계에 내놓은 문화의 원류가 흐르는 자리, 그 물길 위의 도시들이 지금 문 밖에 서 있다.
세계 연구의 중심이었던 미국의 대학이 흔들리는 국면은 예사롭지 않다. 지구 차원의 시각에서 대비해야 할 때다.
예산배분권을 가졌다고 함부로 선을 긋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