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 天象列次分野之圖= 천상(天象)’은 ‘하늘의 모양이나 조짐’을, ‘열차(列次)’는 차례·순서를, ‘분야(分野)’는 구획을 나눈다는 뜻이다. 즉,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는 하늘의 모양을 차례대로 나눈 그림이란 뜻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395년(태조4) 권근 등 11인의 학자가 어명을 받들어 고구려 천문도를 기본으로, 새로운 관측에 따라 교정하여 석각(石刻)으로 처음 제작했다. 이후 석각의 마모가 심해지자 1687년(숙종13)에 다시 제작했다.
」는 1,467개의별을 검은 돌에 새긴 정밀순 천문도로 1247년에 제작된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보다 제작 시기가 뒤지지만 고구려에서 만든 천문도를 수정 보안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의 석각 천문도는 평양에 있었지만 당나라와의 싸움도중 대동강에 빠트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부」, 에는 고구려에 천문대가 있었으며 '일자'라 하여 천문 관측을 담당하는 천문 관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만큼 고구려는 세계적으로 앞선 천문 관측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천문학의 발달은 국가 경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농사를 기반으로 한 고구려에서 천문학을 정확한 절기를 파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농사 시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천문학을 모르고서는 농사를 제대로 지울수가 없다 고구려에서 발달한 천문학은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대의 천문학은 항해술이나 원거리 이동의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에는 별자리에 의존하여 배를 몰거나 장거리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고구려의 항해술이 뛰어 났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앞선 천문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고구려는 수레 등 무거운 철광석이나 무기들을 운반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의 개발과 수레바퀴등 기술 집약적인 부품의 제작기술 도로 등 기본 인프라 구축과 같이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시 상황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한 통신 기술도 발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국가 운영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고구려는 끊임없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활용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전문 집단이 형성되었고 그 전문집단이 것으로 보인다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더욱 발전된 기술을 개발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