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글의 짧지 않은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성후와 관련되어 특별히 떠오르는 추억이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 남다른 특기나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걸 보면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이 분명한 것 같다. 96년 당시우리가 주최한 노동문학교실에 수강생으로 처음 참글에 들어왔다. 그때 뒷풀이 자리는 주로 창원 공단관리청 옆 잔디밭이었으며 그곳에서 우리는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차성후는 그때 다리에 철제 보조 장치를 한 채로 뒷풀이에 참석했고 원을 그리고 앉아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차례에서 그가 처음 불렀던 노래는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 뿐> 이었다. -저런 노래는 사람들이 모인 이런 자리에서 안 어울리는 데 - 라고 그 당시 나는 생각을 했다.
임시모임이 끝나고 신촌 김여사와 차성후가 나의 차에 탔다. 먼저 신촌 김여사는 새로 산 나의 차에서 음악이 듣고 싶다고 시디를 뒤적거렸고 들을 만한 노래가 없다고 투덜대다가 선택한 노래는 내가 가끔 차안에서 잠을 잘때 듣는 음악이었다. 그때 차성후의 자세는 뒷자석에서 운전석과 조수석을 양팔로 걸치고 정중앙에 앉아 '그 음악은 아이다 꺼라!' 라며 신촌 김여사의 음악선택에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나는 신촌 김여사가 좋아 할 만한 노래를 골라 들어보라고 틀어주었는데 신촌 김여사는 마음에 들지 않은듯 양 입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이 노래 김현식이가 부르면 참 좋은데' 라는 나의 자조적인 대사가 나오자 정중앙 뒷자리에서 심각하게 앉아있던 차성후는 비호같이 내 말을 잘라 받았다. "아! 그래 ! 있다이입니꺼 내가 김현식이 앨범을 1집에서 4집까지 한꺼번에 사게 되었거든예 어떤 여자 때문에, 들어보이께네 참 좋데예" 그때 까지만 해도 내가 김현식을 좋아 하니까 하는 접대성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형님! 인자 그여자 하고 별볼이 없거든예..... 그 시디......형님이 인수 하이소 내 싸게 주께예"
신촌 김여사와 나는 웃었다. '차슥! 사업하두만 유머 많이 늘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촌 김여사도 즐거운가 보다. 그 다음 이어지는 대화는 당연히 음악에 대해서였다. 대화의 중간에 차성후는 그 시디이야기를 또 했다. "형님 김광석 시디 인수하라카이께네!" 김광석? 분명히 김현식이라 하지 않았나? 눈이 동그래져 신촌 김여사를 봤다. "성후씨 아까 김현식이라고 했거든예?" 신촌 김여사의 말에 잠시 뻤대던 차성후는 숨이 죽어 "우째든 그래! 김광석이!" 나는 그때 생각했다. 술이 취한거구나, 점수를 매긴다. 인지 능력 50%
신촌 김여사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 온다. 인지능력 100%인 사람은 50%인 사람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언어를 구사하느라 피곤 했을 터이므로 잠시 쉴 수 있는 배려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잠시동안의 침묵조차 허용하지 않고 발화되었다.
"그건 그렇고..... 사람들은 어찌 집에 잘 들어갔습니꺼...... " 조용히 웃고 있는 100%에게 50%는 거듭 확인을 한다. " 집에 잘 보내줬냐고요? ..... 웃기만 하시네....." 내가 한 마디 했다. " 어른인데 저그 집 알아서 찾아갔겠지 뭐" 그제서야 안심이 된 듯 성후는 등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 아~~ 우리 동무들도 집에 가고 , 잘 들어갔다쿠이께네 다행이네" -집에 손님이 찾아와서 중단 했다가 다시 연결합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까지 신촌 김여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금전 까지 창작 2반 모임 날짜를 챙기며 수첩에 적고 사람들과 손흔들고 헤어졌는데, 그의 인지 능력은 이제 절반 이하 30%대로 추락한다.
나는 성후를 배려 해서 그를 내려 주는 순간 까지 되도록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도 이제 지쳤는지 더 이상 말을 않는다. 나는 신호를 기다리다가 시디를 꺼내 음악을 틀었다. 그 시디의 첫번째 음악이 하필이면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이었다. 그러자 그의 언어 구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우와 좋은 노래 있었네, 있었는데 아까 영희는 이상한 노래 틀고 그랬지?" 나는 모른척 성후에게 물었다. "성후니 이 노래 좋아하나?" "뭐 옛날에 쪼~끔, 많이 부르긴 불렀지예, 이노래 이거 20년도 넘은 노래입니더 내가 군대 제대하고 막 나온 노래 거든예" 숫자까지 거론하며 노래의 연도를 얼추 맞추고 있었다, 내가 짐작 했던 그의 인지능력에 혼돈이 온다.
성후를 내려 주고 집으로 오면서 그 음악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후는 자신의 진지함을 조금씩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 참글 초창기 정기적으로 만난 성후와 나는 서로의 집안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의 집안 내력과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짧은 이야기도 사실 그때 들은게 전부였다. 아무튼 그때 성후는 나 보다는 성후 자신이 먼저 사람에게 다가갈려고 했던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의 성후모습과 행동은 진지함을 가장한 농담과 농담을 가장한 진지함이 때때로 헛갈리고 있다. 그래서 성후를 집에 데려다 주는 그날도 실제 술이 취했는지 아니면 웃기기위해 취한 척 하는 것인지 금방 알 수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일부러 성후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 술이 취했는지, 취했다면 얼마나 취했는지 확인까지 했다.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회원들에게 성후는 실체가 몽롱할 것은 분명할 것이다. 성후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실체가 별 볼일 없어서 항상 드라이아이스 효과로 자신에 대해 신비함을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사람들이(내가) 왜곡하는 것인지.
참글 초창기에 가졌던 사람에 대한 진지함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첫댓글 신촌 김여사라는 정말 거시기하다. 앞으로 이 호칭은 사절이다.
나는 딱 좋다. 뭐! 성후 씨의 진지함에는 나는 관심이 없다. 그날의 술취한 성후씨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성후 씨! 김광석 씨디 내가 접수합니다. 싸게 주모... 그리고 쌀장사가 잘 되기를 ..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