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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자락의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산자락
영산강 자전거 종주 ○ 일시 : 2015.10.03.~04 ○ 참여인원 : 3명( 산자락 . 여산. 산오름) ○ 코스 : 춘천 - 광주 - 담양 -담양댐 - 담양읍 - 광주시 - 나주시 - 무안군 -영산강 하구둑 - 목포 터미널 - 광주 - 춘천시 - 귀가 ○ 종주거리 접근거리 - 들머리 10km - 종주길 133km - 날머리 4km 총 종주거리 : 147km ○ 구간 거리 및 통과시간 :
○ 후기 우리나라 5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은 담양 용추산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담양호에 잠시 모였다가 다시 원율천을 흐르고 담양읍을 흘러서 죽록천을 이루고 신천(新川), 대교천(大橋川)을 합쳐서 창강(滄江)이 되고 다시 삼지천(三支川)과 건천(巾川) 등 과 합쳐서 창진을 이루고 다시 장성 삼성포(三聖浦)로부터 흘러오는 황룡강과 합류한 그리고 그 하류인 왕자대를 지나 여참산(呂站山)으로부터 출발한 지석강과 합류해서 광난강(廣難江)을 만들어 나주에 이르고 서남으로 금강을 지나 영산포에 이르러 목포 앞바다로 흐르니 이것이 영산강이다. 그 영산강을 담양댐에서 하굿둑까지 자전거로 답사하는 자전거 종주 길에 나섰다. [담양호와 추월산] 영산강 종주는 사대강 자전거길 중 제일 마지막에 달리게 되었다. 조금 더 천천히 준비하고 자료도 읽고 그 지역 여러 가지 면면을 공부하고 가야 되는데 아직도 일상에 치이다보면 허둥지둥 대다가 떠나자마자 후회하게 되고 아쉬움부터 마음가득 담아가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을 다반사로 해대니 한심하다. 아침 일찍 광주행 고속버스에 자전거와 함께 몸을 싣는다. 4시간 반을 버스를 이용하여 가는데 차창 밖 스치는 산야와 황금빛 논과 밭은 차마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광주 터미널에서 담양 행 버스로 갈아타고 담양에 도착 한 시간은 14시가 지난시각 늦은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조립한 후 담양댐을 향하여 출발한다. 토요일이라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된 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복잡한 지역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 담양댐으로 향한다. 우레탄으로 조성된 길은 쿠션이 좋아 바퀴가 굵은 산악용 자전거에는 유리하지만 로드 전용 자전거는 힘 좀 써야 될 것 같다. 드디어 댐 아래 삼거리 인증센터에 도착한다. 아차, 이제야 인증수첩을 집에 두고 왔음을 알았으니 어찌하랴 그대로 댐으로 오르면서 생각하니 허망한 웃음만 나올 뿐 이제와 후회 해본 들 소용없으니 빨리 잊을 수밖에……, 숨이차게 언덕을 오르니 드디어 담양호가 보인다. 이곳에도 가뭄이 심하여 담수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호반 건너 높은 산이 보이는데 암봉으로 기세가 대단해 보인다. 주변 어른들께 물어보니 추월산(731m)이란다. 이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하여 댐 아래 인증센터로 향한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담양댐에서 영산강 하구둑까지 영산강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야 지역을 지나는 터라 광활한 풍광과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길이며, 담양댐에서 시작한 길은 담양과 광주를 거쳐 나주에 이르고, 몽탄대교를 건너 무안 땅에 들어서면 강은 이미 넓은 바다를 닮아 서 건너편 강안이 멀리보일 지경이다. 무안을 벗어나 목포에 들어서면 종착점인 영산강 하굿둑이다. 인증수첩을 소지하지 않고 왔으니 방법은 수첩을 별도로 하나 더 구입하는 방법인데 관리소 같은 건물은 출입문이 잠겨있어 불가능하고, QR코드를 사진 찍는 사이버 인증을 하고 종주계획서 뒷면에 인증 도장을 찍는 방법으로 인증을 하고 출발한다. 둑길을 지나고 코스모스가 자전거 길 절반을 차지한 길을 따라 힘차게 페달을 저으며 간다. 도중에 비행훈련장을 지나는데 제법 이용자들이 많이 보인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16시가 지난다. 금월교를 다시건너 메타세콰이어 인증센터에 들러 인증절차를 거치고 메타세콰이어 길 앞에서 사진을 찍고는 뒤돌아 나와 다리를 건너 담양교를 향한다. 담양교 부근에는 오늘 세계 대나무축제를 여는 통에 자전거길이 폐쇄되어 학동교와 향교교 사이에서는 전남 도립대학교 교내로 우회하여 학교 정문을 나와 강 우측을 지나 담양교에서 다리를 건너 강둑길을 달리게 된다.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달리는 강둑길은 막힘없다 강안에 억새가 한창 피어나 은빛 물결을 이루어내고 흙빛 갈대가 대조를 이룬다. 오례천과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좌측으로 오례천을 따라 오르다 마항교를 건너 바로 우회전하여 다시 영산강변으로 접근하여 달리다보면 증암천과 만나게 되고, 증암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영산강은 강폭이 넓어지는 만큼 그 붉기를 더하고 석양에 비친 갈대는 가을의 스산함을 미리 이야기해 준다. 여기서 사진 몇 장을 담아가지고 목도축이고 다시 출발하여 달린다. 고창과 담양을 잇는 영산교를 지나 달리다보면 자전거길 양쪽으로 대나무를 인공조림 하여 대나무사이를 달리다보면 인증센터가 나오는데 정작 대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숲은 강 건너에 있으니 아쉽다. 종주 시작을 일찍 했다면 다리건너 대 숲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떠나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갈 길이 먼 길손은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린다. 여기서부터 진행방향으로 강에 걸린 붉은 다리가 유난히 눈에 띄는데 인터넷에서 보았던 영산팔경의 하나인 지야대교이다. [지야대교]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시간이라는 밧줄에 묶인 우리는 기념사진만 찍고 갈 수밖에~ 지야대교를 지나 첨단대교를 향하면서부터 서서히 저물어가기 시작하여 자전거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억새가 아름답게 피어난 강변의 모습을 찬찬히 둘러보며 달리는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데 첨단대교를 지나고 또 다른 영산교를 지나 광주역으로 들어가는 철교를 통과한다. 영산 7경인 풍영정도 못보고 계속 땅거미 속을 달린다. 그렇게 내려 달리다 서창교아래서 앞서가던 일행들과 잠시 쉬면서 물과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쉰 다음 자전거 등을 밝히고 달리기 시작하여 20여분 달리니 드디어 어둠속에 승촌보가 다가온다. [나주시 사진을 빌려옴 야간이라 승촌보 사진촬영 안됨] 보 좌완에서 보를 건너서 인증부스를 찾아보니 어둠속이라 힘들다. 헤매다 약 300여 미터 좌측 영산강 문화관 앞에 인증센터를 찾아 인증을 하고 나주시를 향한다. 강둑을 따라 내려가다 나주대교에서 시내 쪽을 방향을 바꾸어 나주 목사고을 시장에서 유명 음식점을 수소문하니 나주곰탕 하얀집을 일러주어 그 집을 찾아가니 역시 실내가 복잡하다. 마침 빈자리가 나와 수육과 수육곰탕을 시켜 소주와 함께 남도의 밤을 부드럽게 하고 잠자리에 든다. [나주시내 남고문] 방은 자전거 세대를 넣고도 세 명이 넉넉하게 잘 정도로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역시 곰탕으로 아침을 먹고 나주역 앞을 통과하여 영산대교 앞에서 우회전하여 영산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황포돛배 정류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출발하는데 홍어냄새가 진동한다. 역시 홍어마을답다. 강둑길을 달리다보면 자전거 길은 만봉천을 만나 좌회전하여 만곡교까지 올라와 다리를 건너 우회전 하게 된다. 도로를 따라 난 자전거 길을 가다보면 급한 오르막을 만나는데 허우허우 오르면 길은 다시 급한 내리막길 마을 안 골목으로 들어가다 우회전하여 소똥 냄새 가득한 집 앞에서 좌회전하여 강둑으로 올라선다. 강둑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다시 영산교 이제 몇 번째 영산교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계속 달려가다 보면 죽산교를 지나게 되고 계속 곧은길을 달리다보면 인증센터 안내표지가 나오고 드디어 죽산보에 도착한다. [죽산보] 죽산 보에서 후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기념사진 촬영 후 다시 출발하는데 강 물빛이 아침 햇빛에 붉게 물들어 몇 장 더 사진을 찍은 후 벌써 저만치 앞서간 일행들을 쫓아서 속도를 올린다. 몇 구비의 큰 커브를 그리며 강 건너를 보니 무안 땅이다. 넓어진 강물을 바라보며 달리다보니 앞에 강 쪽으로 산이 가로막고 길은 강을 버리고 마을안쪽으로 향하게 되고 척고제라는 저수지로 올라서서 우회전 하게 되고 바로 긴 급경사 길을 숨이 턱에 닿도록 올라서니 느러지 인증센터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사진촬영과 인증을 마치고 느러지 전망대로 향하여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사진을 찍은 후 [느러지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이곳을 출발하여 내리막을 달려 화정마을 회관 앞을 지나 넓은 들녘을 가로질러 다시 강둑으로 올라선다. 강을 따라 잠시 달리다보면 긴 다리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다. 몽탄대교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강둑을 따라야 되지만 도로공사관계로 한 블록 더 들어가서 농로를 따라가다 당호리 앞에서 둑길로 접어든다. 또다시 바다처럼 넓어진 길을 달리게 되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영암 쪽에 월출산에 취하여 사진 몇 장 찍다보니 일행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제 20km도 남지 않은 종착지 느긋하게 가자며 월출산과 억새 갈대를 카메라에 담으며 천천히 이동한다. 약 30km 정도 떨어진 영암의 월출산(809m)은 국립공원으로써 20여 년 전에 다녀간 곳으로 정말 다시 먼발치에서나마 그 멋진 자태를 바라보니 이 종주길이 더욱 의미가 있게 다가온다. [영산강 주변 억새와 월출산] 일로읍 부근 영암 천과 합수 점을 지나면 산을 우측에 두고 자전거길이 나있는데 유일하게 이곳 만 비포장인 곳이 있어 속도전용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아무래도 내려서 끌고 가야 할 듯싶다. 강변 상점에서 마침 막걸리를 팔고 있어 마른 목을 축이며 충분히 쉰 다음 다시 출발하여 청호리 마을 앞길을 따라 진행하여 상사바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강둑으로 올라서게 되고 좌측으로 아름다운 다리가 보이는데 무영대교이다. [영암 월출산] [파란하늘과 영산강] [억새와 영산강 그리고 월출산] [무안의 평원] 아무래도 무안과 영암의 첫 자를 사용하여 이름을 짓게 된 것 같다. 또다시 강둑을 따라 가다보면 영산 제1경 영산낙조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오고 각종 조형물과 전망대를 설치하여 이곳에서 잠시 쉰다. 이곳에서는 목포시내 유달산과 우리의 종착지인 하굿둑 조형물이 잘 보이는 지점이다. [무영대교] [오른쪽이 유달산] 휴식을 끝내고 다시 출발 둑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파트가 보이는 지점에서 남창대교까지 우회전하여 남창대교를 건너 좌회전하게 되는데 이제 목표지점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자전거길 주변에 해당화 열매가 꽃처럼 붉어 자꾸만 눈길이 간다. 드디어 수변 생태공원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달리면 마지막 인증센터가나오고 133km의 영산강 자전거 종주를 마치게 된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강가를 달리며 남도의 파란 하늘과 황금 빛 들녘, 푸르른 숲과 가을이 짙게 녹아든 강물과 노닌 1박2일간의 영산강 종주를 마친다.
영산강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의 영산강이 옛날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영산강’이라 불리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나주에 정노인이 살았는데 그는 아무 근심이 없어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이를 전해들은 원님이 자신도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이 편한날이 없는데 평민으로서 근심이 없다니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정노인을 불렀다. 그리하여 자신의 여의주를 주며 “그대가 기특하여 여의주를 주는 것이니 잘 보관하였다가 내가 보고 싶다고 할 때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정노인을 보낸 후 원님은 사공에게 일러 정노인을 배로 건네주며 여의주를 강에 빠뜨리도록 일을 꾸몄다. 여의주를 잃어버린 정노인은 근심걱정으로 몸져눕고 말았다. 한편 정노인이 구슬을 강 속에 빠뜨렸다는 보고를 받은 원님은 정노인에게 한달 후에 여의주를 가지고 오라고 전하였다. 전갈을 받은 정노인은 곡기를 끊고 몸져누웠는데, 이를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생각하여 잉어를 사서 정노인의 밥상에 올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정노인이 잉어의 배를 가르자 자신이 물 속에 빠뜨렸던 여의주가 잉어 뱃속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정노인은 기뻐하며 원님을 찾아 여의주를 내놓자 이번에는 원님이 깜짝 놀랐다. 원님은 여의주를 찾은 내력을 듣고 감복하여 “과연 당신은 하늘이 낸 분이요”하며 자기가 꾸몄던 사실을 고백하고 후에 큰 상을 내렸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정노인은 잉어를 잡았다는 광탄강가에 글방을 세우고 그 이름을 며느리의 이름을 따서 ‘영산서원’ 이라 했고 이로 인해 이 강을‘영산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산강에 대한 명칭은 본류에 여러개가 있으며, 지류에 대해서도 수십개가 있다. 여러 개가 사용되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영산강'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이 되었을까. 호남의 내륙을 관통하는 영산강은 예로부터 이 지역 수운(水運)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조선의 조창(漕倉) 가운데 하나인 영산창(榮山倉)이 영산포에 설치되었다. '창(倉)'이라는 것은 세곡(稅穀)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영산창은 조선 전기 9개의 지방창고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당연히 그 일대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주변의 강 이름을 '영산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영산'이라는 지명 자체는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영산'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기록에는 고려말엽 왜구들이 섬에 대한 노략질이 심해지자 흑산도 사람들이 나주 남쪽 남포강가에 피난 와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영산현(榮山縣)'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산'은 '흑산'을 지칭하는 말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이른바 '공도정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섬에 대한 왜구들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아예 섬을 비워버리게 하는 정책이다. 매우 소극적인 해양 정책으로 고대에 융성했던 우리의 해양문화가 발전보다는 단절의 길로 들어선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당대 섬에 사는 사람들을 육지로 옮겨와서 살게 했다. 그때 지금의 신안군 흑산도(영산도) 부근 사람들이 나주 남포로 이주해서 살았기 때문에 '영산'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의미이다. 이런 자료를 통해 '영산포'나 '영산강' 모두 그 뿌리가 깊은 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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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야 읽어 보내요!산자락님 덕분에 종주 잘하고~
즐거운 자전거 여행이였습니다 다시한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