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써 가톨릭 교회는 새해를 맞이하며,
기다림의 대림시기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비유처럼
여행을 떠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우리는 알지 못하는 반면,
미지(未知)의 시간에 주인이 돌아온다는 것 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마치 첫사랑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지낸다면
올해도 반드시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한 가운데 다시 태어나시어
참된 평화와 완전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쉽게도 새해 인사와 더불어
작별 인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 강론이 3년간의 중동 소임을 마치고 떠나는
저의 회고이자 마지막 강론이 될 것 같습니다.
2020년 11월,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아켐을 맡게되었고,
코로나 여파로 허물어져가던 중동 한인공동체들을
아켐이라는 우산 아래 다시 재건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그동안 기록해 놓은 사목일지를 뒤척여보니
640여개의 강론 글을 썼고,
수많은 온라인 미사, 교육, 피정
그리고 오디오 강론과 팟캐스트
심지어 부활축제도 온라인으로 해왔더군요.
또한, 흩어져 있는 공동체들과 가정들을 방문하기 위해
다섯 차례의 백신을 맞았고
100번이 넘는 PCR 검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한 동안 두바이 성당이 폐쇄되었을 때,
셋방살이하듯 샤르자 성당까지 빌려
저와 두바이 교우들 모두 먼 길을 오가기도 했습니다.
코로나가 사람들을 울타리 안에 거두었지만,
교우들이 영적인 팬데믹에 잠식되지 않도록
다양한 시험적인 프로그램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들이었습니다.
회상해 보건데
식어가는 신앙에 불씨를 살리려
마치 심폐소생술을 하는 급박한 마음으로
줄곧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추억이 또 뭐가 있을까요?
그동안 사용한 자동차의 주행거리를 3년으로 나누어보니 매일 100Km 이상을 운전한 셈이더군요.
내가 차인지 차가 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놀라운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고
시속 160km로 사막의 모래먼지를 가르며 달리던 그 길 위에서
천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무사히 사목을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항공 마일리지는 모으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중동 지역을 수차례 오가며
엄청나게 많은 탄소를 배출했을 것입니다.
주중에는 본당사목으로,
주말에는 교포사목으로,
때때로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중동의 다른 국가 공동체들을 방문해왔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제가 머물러 있는 시간이 고작 3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주교좌 성당에서의 사목을 병행해야 하다보니,
체감상으로는 10년은 넘은 듯한 느낌입니다.
아마도 일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회개할 것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그간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고
머리숱도 많이 빠졌가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이 조차도 보속이라면 보속이겠지요.
아켐 사목을 하면서
어느 특정한 공동체에만 편향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느 공동체와도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고
그만큼 마음을 온전히 다하지 못한 듯하여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모든 이를 사랑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지난 3년간 존경하는 선배 선교사인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대로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1코린 2:9 ㄱ) 제 일은 손수 해결하려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육신이 하나인 까닭에
많은 분들의 손과 발을 빌려야만 했습니다.
특별히, 아켐 회장단과 사무국장이신
박수경 말가릿다 자매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회상해 보건데
중동 땅에 발을 딛자 마자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각 공동체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동 땅에 한인 공동체가 시작된 지
곧 45년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둘러 각 공동체의 역사 자료를 모으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세상의 모든 역사자료를
가장 상세히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지요?
마치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잘 정리하여
후대 공동체에게 넘겨 주셨듯이
여러분 공동체도 여전히 성령의 역사 안에 함께하고 있기에
남겨야 할 페이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동 지역의 특성상,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한인 교우들이 대부분 이기에
소중한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자료들을 모아야 했습니다.
50주년 금경축을 향한 이 기초작업에
2년 넘게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하는 시간을 보냈고,
다행히 몇몇 교우들께서
그 간의 자료를 충실히 정리해 두셨기에
이 작업이 순조로울 수 있었습니다.
각 공동체에서 자료를 모아주신 교우들과 편집위원들 그리고
저희 수도회의 몇몇 수사님들의 도움으로
다행히도 제 소임기간 안에 이 작업을 마칠 수 있었고
이미 인쇄와 배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 방대한 작업에 기꺼이 참여하고 기쁘게 봉사해주신
두바이 차연경 모니카 자매님과
쿠웨이트에서 이미 귀임하신 김기철 야고보 형제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오늘
지난 45년간 열사(熱砂)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인 공동체들을 돌보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리며
신앙의 결실을 담은 역사시리즈를 봉헌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늘 함께 계셔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이 은총의 해에 45주년 기도문을 받치면서
매일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고
신앙을 새롭게 쇄신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개인의 성화에 늘 힘쓰시기를 빕니다.
세상을 쫓기보다는 하느님을 열망하십시오.
자신을 복음화하는데 더 열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마음에 간직하셨으면 합니다.
공동체로부터 뒷걸음 치는데에 익숙해지지 마십시오.
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가톨릭 신자는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불가의 금언처럼
자기가 만든 허상의 하느님을 허물어 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속의 개인주의를 과감히 넘어서서
공동체에 한발 더 다가가시길 바랍니다.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만큼 어리석고 처량한 것은 없습니다.
서먹서먹한 교우관계를
서로 더 신경을 써주고 챙겨주는 관계로 나아가십시오.
그것이 섬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곧 부임하시는 김성인 미카엘 신부님을 잘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홀로 많은 일을 해나가야 하는 고된 소임이기에
여러분의 끊임없는 기도와 적극적인 따름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신부님으로부터 한 발치 떨어져 있지 말고,
오히려 한 발치라도 가까이에 머무르도록 하십시오.
목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양은
그만큼 많은 유혹과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김성인 미카엘 신부님과 함께하게될 여러분 모두는
하느님으로 부터 크나 큰 은총을 얻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중동에 왔지만
신부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첫 사랑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시고,
우리들은 더 낳은 삶을 위해서 이곳에 왔지만,
신부님께서는 영원한 삶을 선물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막무가내이며 단점이 많은 저와는 달리
신부님께서는 매우 겸손하시며 인자하시기에
여러분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지내실거라 믿습니다.
아울러
그간 저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고개 숙여 용서와 화해를 청합니다.
저는 5년 반 동안의 대중사도직을 잠시 멈추고
은혜롭게도 그리스도 안에 깊숙히 머무는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쉼 없이 지내온터라 차곡차곡 누적된 피로가
더 이상 회복되지 않기에 이 나약한 육신의 탓으로
선교사로써 그리고 사목자로써의 역할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그 동안 입로만 떠들어 대던 사목현장을 떠나
본연의 수도성소로 돌아가 기도와 허드렛일을 하며
회개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저의 원의가 받아들여져서
소임을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어주는 삶‘으로부터
이제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는 삶’이라는
개인적인 화두를 가슴에 품고 떠납니다.
감히,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 못하는 인생이니
또 만나자는 무책임한 약속은 과감히 거두어 버리고
천국에서 재회할 날을 기약하며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가톨릭 신자답게 주님 만을 찾고
오직 주님 안에서 항상 기쁘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은총의 대림시기가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