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정민의 정체/ 임 해량
수연은 일요일 오전 아홉시 경에 아무도 없는 이모 양장점에서 나와 정민을 만나러 역전 광장으로 나갔다.
역에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의 환한 얼굴들과 도시로 떠나는 이들의 부푼 눈빛이 대조적이었다.
아침나절 가을하늘은 높고 청명해 그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눈이 부셨다
수연은 역전 꽃밭 벤치에 앉아서 꿀을 찾아 나르는 벌들을 바라보았다.
생명을 위해 아침부터 활발하게 움직이는 벌들의 모습이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수연의 빨간 비로드 바바리가 꽃인 줄 알았나 벌들이 날아와 앉으려고 해서 수연이 벤치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요 녀석들 어떻게 예쁜 아가씨는 알아보고 모여들다니, 저리 가거라 휙~^^ "
수연이 놀라 돌아보니 검은색 티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받쳐 입은 단정한 정민이 환하게 웃으며 수연에게로 날아드는 벌을 쫓고 있었다.
" 어머 정민 씨 아니에요. 일찍 왔네요."
정민은 씩 웃으며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 열 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삼십 분 빨리 왔네요. 수연씨, 우리 역전 안으로 들어가서 모닝커피 마셔요."
정민이 수연의 손을 이끌자 수연은 부끄러운 듯 정민의 손에 이끌려 역전 안으로 들어갔다.
정민은 수연을 의자에 조심히 앉히고는 커피자판기에서 믹스커피 두 잔을 뽑아왔다.
" 수연씨 커피 드세요. 저 수연씨와 이런 곳에서 커피 마시고 싶었어요., 천천히 마시고 할머니께 가요. 할머니께서 수연씨 대접한다고 아침 겸 점심으로 식사 준비하고 계세요. 제가 특별히 당부 했거든요."
수연이 고운 손으로 정민의 어깨를 두들겼다.
" 아니 정민 씨, 있는 대로 먹으면 되는데요. 할머니 힘드시게요. 그리고 저도 정민씨와 자판커피 마시고 싶었어요."
정민은 자기 어깨를 치는 수연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수연씨 오늘 더욱 귀엽네요. 하하 "
수연이 정민이를 흘겨보며
" 아니 감히 누나를 놀리다니, 호호~"
수연과 정민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가을빛처럼 맑았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고 나자 역전을 나와서 정민의 집을 향해갔다.
정민의 동네로 들어가자 길가에 가을꽃들이 곱게 피어 수연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수연은 그동안 꽃이 슬플때 자주 위로해 줬기에 오늘 만큼은 수연이 웃어주고 싶어서 마음껏 미소를 보냈다.
정민은 골목길이 굽이져서 수연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정민이 수연의 보드라운 손을 꼭 쥐며 미안한 얼굴을 했다.
" 수연씨 힘들죠, 미안해요, 택시를 타고 왔어야 했는데요. 골목이 좁아서요."
수연은 정민의 손의 감촉이 너무 포근해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해서 정민의 팔을 더 끌어안으며.
" 정민 씨와 이렇게 팔짱 끼고 꽃의 환영을 받으며 가니까 너무 좋아요. 동네가 참 정겹네요. "
정민도 싱그러운 들꽃에 눈짓을 보내고, 수연의 고운 눈망울에 살포시 눈빛을 포갰다.
수연이 도착한 정민의 집은 지은 지 오래돼 보이는 작은 벽돌집이었다.
스레트 지붕에 마당이 없어서 길가로 문이나 있었다.
정민이 수연의 손을 놓으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수연을 인도했다.
" 수연씨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안으로 들어가요. 할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실 거에요."
정민이 씩 웃으며 수연을 집안으로 들이고 할머니를 불렀다.
" 할머니 수연씨 왔어요."
그러자 머리가 하얗게 세시고 허리가 구부정하신 할머니께서 수연을 보더니 활짝 웃으시며 반기셨다.
" 처자가 수연 양이라고 했지요?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 이름이라서요. 수연 양 만나 보고 싶었어요."
수연은 정민의 집 마루로 올라서서 정민이 할머니를 보는 순간, 그녀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귀염이 할머니가 분명했다.
수연은 너무 반가워서 정민이 할머니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 할머니 흑흑흑 "
수연은 정민 할머니를 뵈니 너무 반갑고 또 많이 늙으셔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정민 할머니의 야윈 가슴이 그동안 손자를 키우면서 수많은 세파를 견디셨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솟구쳤다.
할머니와 정민은 수연이가 할머니 품에 안겨 울자 얼떨떨해했다.
정민이 할머니가 흐느끼는 수연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 안으셨다.
" 처자 왜 우는 건디요. 늙은이를 보니 할머니 생각이 나나 보네. 그만 울고 밥해 놨으니 없는 반찬이지만 같이 먹어요. 어서~"
정민이 할머니가 방안에 벌써 상을 차려 놓으셔서 정민은 밥통에서 밥을 푸고 할머니는 국을 퍼오셨다.
수연은 정민이 할머니를 보자 옛날이 떠올라 밥을 먹으면서도 자꾸만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정민이 수연의 모습이 이상했지만, 오랜만에 자기 할머니를 보니까 수연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러나 보다 생각했다.
정민 할머니가 밥을 먹는 수연을 유심히 보더니 미소를 지으셨다.
"수연 양이 너무곱네 그려, 어쩌면 저리 순하게 생겼을까~, 반찬이 맘에 드는지 모르겠네. 맛이 없어도 많이 들어요."
수연이는 할머니께 눈물 고인 눈을 감추고,
" 네~^^ 할머니 모두 다 맛있어요. 그리고 손녀 같은데 말씀 놓으세요. 참 정민씨, 밥 다 먹었으면, 오다 보니 가게 있던데요. 음료수와 사탕과 빵 사올래요.할머니 드시게요."
할머니께서는 극구 말리셨지만 수연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정민이에게 쥐여 주며 망설이는 정민의 등을 떠밀었다.
정민은 씩 웃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 할머니 다녀 올게요. 수연씨 저 금방 갔다 올게요. 밥 천천히 먹고 있어요."
" 아니에요 정민 씨 천천히 와도 되요. 소화도 시킬겸요. 그리고 할머니 좋아하시는 걸로 신중히 골라야 해요."
수연은 할머니 뵈러 오면서 일부러 아무것도 안 사 온거였다.
할머니와 단둘이 얘기할 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정민이 문을 열고 나가자 수연이 할머니께로 바짝 다가앉았다.
" 정민 할머니 저 돌산에 사는 임 수연이예요. 할머니 그때 샘 집에 사시던 귀염이 할머니지요. 네~ 맞죠?"
할머니는 수연이가 애써 캐묻자 수연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셨다. 그러고는 한참 생각하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수연의 두 손을 덥석 잡으셨다.
" 아니, 이게 누구야! 수연이 아니야, 돌산의 그 어린 수연이가 이렇게 컸구먼! 수연 양 정말 반가워요. 이거 꿈은 아닌데 뭔 일이데! 수연이를 만나다니, 몰라 볼 정도로 이쁘게 컷구먼."
수연은 할머니 손을 꼭 붙잡으며 할머니께 안타깝게 물었다.
" 그런데요 할머니, 정민 씨가 돌산에 살던 것도 모르던데요. 혹시 기억을 잃었나요. 정민씨가~^^"
할머니는 수연의 잡은 손을 놓고는 흐르는 눈물을 수건으로 훔치시며 말씀하셨다.
" 사실은 정민과 작은 얘와 여동생이 사는 대구로 떠나던 날, 정민이 열병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인해 돌산에서의 기억을 다 잃었지 뭐야. 수연 양 부탁할게, 우리 정민이에게는 어릴 적 돌산에서의 일을 모른척해 줘요. 기억이 돌아오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아픈 일이라서~^^ 알았죠?"
수연이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대문을 열고 정민이 들어왔다.
정민은 사서 온 물건을 내려놓고 할머니와 수연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 아니 두 분 얼굴이 왜 그러신데요. 무슨 헤어진 할머니와 손녀가 상봉한 듯합니다."
그러자 수연은 사탕과 빵은 할머니 심심할 때 드시라 하시고 할머니께 먼저 음료수를 따라드렸다.
" 할머니 많이 드세요. 제가 앞으로 자주 놀러 올게요. 할머니 맛난 것 사가지고요."
할머니는 너무 기뻐 주름진 얼굴이 환해지셨다.
정민과 수연은 그릇을 닦고 나서 수연이 정민의 방 구경한다고 하자,
" 수연씨 실망하지 말아요. 으흠~"
정민이 못 이기는 척 방문을 열자 방은 아담했고, 책장이 놓여 있는데 책이 가득 꽂아져 있고 책장 옆에는 기타가 놓여줘 있었다.
그런데 방 안에서 국화 향기가 퍼져 나왔다.
정민의 방 책상 위에 색색으로 포장된 들국화 꽃다발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민은 들국화 꽃다발을 수연에게 안겨주는 거였다.
수연은 꽃다발을 받자 너무 좋아했다.
" 정민 씨 저에게 주려고 준비한 거예요. 와 너무 예쁘네요. 저 들국화 너무 좋아하는데~^ 고마워요 정민 씨! "
꽃다발을 받아 든 수연의 모습이 청초한 들국화와 잘 어울렸다.
수연의 들뜬 모습을 바라보는 할머니와 정민의 표정이 뿌듯했다.
첫댓글 말없이 돌아서는 아픔 소설이 벌써
9회 까지 왔군요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감사드립니다
평강의 날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