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6.
믿는 구석은 있다
새벽에 남들보다 서둘러 일어났다. 파종할 비닐하우스 내부의 이랑 두 개에 물을 듬뿍 뿌린다. 호미로 좁은 줄을 만들고 여름적치마 상추 종자를 흩뿌리기 방법으로 파종한다. 종자의 크기가 너무 작고 부피가 없어 흙을 덮기조차 미안하여 어수룩해진다. 멀리서 물을 뿌리다 보면 어찌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한다. 이래서 상추가 싹이나 돋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이제와서 나를 못 믿는 것은 어디서 굴러들어 온 어리석음인지 모르겠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다. 그 핑계가 더위고 열대야였다. 워낙 더우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품종명이 ‘여름적치마’라는 상추다. “고온기에도 광택 및 적색 발현이 좋고 연중재배가 가능한 고품질 쌈채소!”라고 명기가 되어있는 종자 포장지를 받은 지 대충 손꼽아도 4주는 족히 지난듯하다.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더위가 좀 수그러들면 파종해야지 하고 미루다 보니 광복절이 되어 버렸다.
너무 더워서 힘을 못 쓰겠다. 얼마나 더우면 1994년과 2018년 더위와 비교하다 이제는 연일 최고 기록을 세운다는 보도만 반복하고 있다. 해가 지면 선선해지려나 아무리 기다려도 낮에 데워진 대지는 식을 기미가 없다. 장마가 끝난 7월 말쯤부터 연일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 막 말복이 지났으니 처서는 되어야 열대야 없는 밤잠을 기대해 볼 수 있으려나 보다.
더 이상 미루는 건 아니다. 종자 포장지의 뒷면에 재배 적기표가 그려져 있는데, 파종은 4월 초순에서 유월 초순까지이며 정식은 5월 초순에서 6월 말까지라고 한다. 수확은 7월 말에서 9월 초순까지로 표시되어 있다. 시기가 일치하는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믿는 구석은 있다. 붉은색 글씨로 “하우스/실내 재배시 연중 가능”이라 적혀있는 문구가 늘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면 연중 가능하다고 하니 믿어야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파종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 생각된다. 여전히 지나치게 덥기 때문이다. 적어도 모종을 심어야지 씨앗을 뿌리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다. 하기야 뭘 아는 게 없으니 생각으로 판단할 문제도 아니다.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요, 독서나 연구를 통한 지식도 없으며 관련 공무원의 조언을 얻지도 않고 있으니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동네 할머니에게 “지금 상추 씨앗 뿌리면 될까요?”라고 물으니 웃으면서 “해보소.”라고 했다.
여름 상추가 잘 안되면 어떤가. 늦더위에 여름적치마 품종의 상추가 광택과 적색 발현이 나쁘면 무슨 큰일이 나는가. 큰일이라고 해봐야 상추 맛을 못 보는 정도일 텐데.
첫댓글 에잇 뭐가일노???
잉! 와? 뭐가와?
자신감이 없잖아요
한번해봣는데 가을에 구수한 상추는 내가 접수한다 뭐 이래야지
아2 그런 말씀이었구만.
호기롭지 못함을 반성합니다.
비닐하우스에 심으면 어짜노
노지가 맛있지
물론 노지에 심어야 하는데... 풀밭을 어찌하리요. 이 더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