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또 다른 이름
꽃나무 그늘 아래
행복이 앉았던 자리에
초록의 기쁨도 잠시 잎이 지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말았다
사랑은 다 주는 거라며
가족을 위해 행복을 퍼 나르던 남편이
그만 건널목 앞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남편은
목발을 한 채 병원을 나와
인생이란 붓을 들고
하루를 이틀처럼 일하는 걸 보곤
아내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주인집에서 운영하는 작은 마트에
취직을 해 남편보다 더 늦은 귀가를 해야만 했다
좋았던 기억들이 모두 한숨이
되어가는 것 같아 우울해지던 어느 날
일찍 퇴근해 무심코 티브이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돈이 뭔지 정말 돈 너 싫다”며
푸념을 하는 아내를 보며
빛은 늘 있다는 듯 남편은 말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정말 좋은 건 돈이
필요가 없어”
“세상 살려면 돈 없이 되는 게 어딨다고?”
“ 하늘……. 구름…. 바람…….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
그 말이
지금 비록 힘들지만,
우리 부부에게 숨 쉬는 것처럼
가슴으로 옮겨와
더 자주 하는 말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여보 이제 들어와?”
“응 당신 먼저 왔네”
아내가 들어올 때까지 냉장고에 있는
이런저런 찬으로 식사를 장만해 놓은
남편은
“당신 오늘 힘들었지
손 씻고 와 빨리 먹자”
“당신 먼저 먹지 그랬어요”
평범한 한 끼가
하루를 밝히는 식탁 위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찬으로 놓고
행복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또 다른 아침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의 핸드폰으로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게 힘이 되는 당신“
아내는
남편에게 답장을 하려고
장갑을 벗으려는데 또다시 들어온 문자
“여보 사랑해!
그리고 진짜 미안해”
아내에게
감춰진 그늘까지 알뜰히 챙기는
남편의 힘으로
하루를 튼튼히 버텨가는 아내는
이렇게 답장을 하고 있었다
“내 행복했던 기억의 시작은
당신을 만나면서였다고....”
모자란
삶의 기억들을 뒤로하고
오늘은 쉬는 날
목 늘인
가을 하늘 마당 한쪽에 놓여진
빨랫줄에 걸린 남편의 사랑을
바라보며 따뜻한 생각들로 행복해하는
아내에게
“오늘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어머님이 왜요?”
“동생이 사업이 힘들어지니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렸나 봐
그런데 편지 하나 써놓고 나가더니
연락이 안 된다네“
“도련님 사업이 아주 힘든가 보군요“
그날
두 사람은
백열등에 취한 붉은 비를 바라보며
등을 기댄 긴 그림자 사이로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들이 스며드는 밤을 보낸 뒤
나란히 아침을 걸어 나가고 있었고
먼저
퇴근한 남편의 휴대전화엔
아내라는 메시지가 떠오르며 울리고 있었다
“여보!
직원 한 사람이 관둬 버리는 바람에
사람 구할 때까지 늦게 근무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할 수 없지…. 뭐
당신 힘들 건데 괜찮겠어?"
"응 걱정하지 마!
내 기다리지 말고
당신 먼저 밥 먹어 알았지?"
그렇게
아내의 부재를 느끼며 혼자 저녁을 먹는 일이
계절이 두 번 바뀌어 가더니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에 한참을 듣고 있더니
“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라며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시동생이 찾아와 도와달라는 말에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빌려서 준
그 돈을 갚기 위해 밤늦게 야근을 하다
지하창고 계단을 헛디뎌 발목을 다쳤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응급실로 뛰어들어온 남편은
“왜 말 안 했어?
사람의 향기는
저울로 잴 수 없는 걸까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말이 없던 아내는
이불 위에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바라보면서
잎보다 꽃을 먼저 틔운 꽃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더 힘드니까“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그건 부부였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