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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신부님은 탐정》
## 제91화 ― 「스무 해 만에 도착한 엽서」
### ― 기다리지 못한 사람과 기다리지 않았다고 믿은 사람 ―
### 1. 은솔성당에 도착한 오래된 우편물
은솔성당의 가을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
성당 마당의 느티나무는 노란 잎을 하나둘 떨어뜨리고 있었고, 사제관 부엌에서는 박복례 마리아가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신부님! 아침 드세요!”
그러나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부님!”
두 번째 부름에도 대답이 없자 박복례는 국자를 내려놓았다.
“아이고, 또 무슨 사건이야?”
사제관을 나선 그녀는 성당 사무실 앞에서 김맑음 신부를 발견했다.
신부는 낡은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신부님, 거기서 뭐 하세요?”
“어머니, 이 우편함이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제가 여기 온 지도 삼십 년이 넘었으니 그전부터 있었겠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왜요?”
김맑음 신부가 우편함 아래쪽을 가리켰다.
“여기에 작은 틈이 있네요.”
박복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우편함이 오래됐으니까 틈도 생기겠지요.”
“그렇긴 한데요.”
그때 장태식 요셉이 공구함을 들고 다가왔다.
“신부님, 이제 그 우편함 떼어내겠습니다.”
은솔성당에서는 오래된 철제 우편함을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빗물이 스며들어 편지가 젖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장태식은 낡은 우편함을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그런데 우편함 뒤쪽 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누렇게 변색된 엽서 한 장이었다.
“어?”
장태식이 몸을 굽혔다.
김맑음 신부가 엽서를 집어 들었다.
“오래된 우편물이군요.”
박복례가 고개를 내밀었다.
“누가 보낸 거예요?”
김맑음 신부는 엽서 앞면을 살폈다.
빛바랜 풍경사진 아래에는 오래된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2006년 10월 17일.
김맑음 신부는 안경을 고쳐 썼다.
“어머니.”
“예?”
“이 엽서, 스무 해 전에 보낸 겁니다.”
박복례가 눈을 크게 떴다.
“스무 해요?”
“예.”
“아이고, 세상에! 우편함 속에서 스무 해 동안 잠을 잤다는 거예요?”
그때 사무실에서 최병철 베드로가 뛰어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박복례가 엽서를 가리켰다.
“사무장님, 스무 해 묵은 우편물이 나왔대요!”
최병철은 깜짝 놀랐다.
“스무 해 동안 배달이 안 됐다고요?”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정확히는 성당까지는 도착했는데, 받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최병철은 엽서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편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박복례가 말했다.
“사무장님이 스무 해 전에 여기 계셨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관리자로서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잘 관리하시면 되지요.”
김맑음 신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엽서의 수신인을 확인했다.
받는 사람: 정은주 세실리아
주소: 충북 은솔시 은솔성당 교리관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은주 씨에게 꼭 전해 주세요.
김맑음 신부는 엽서를 뒤집었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문장을 읽는 순간, 표정이 달라졌다.
“그날 당신을 기다리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말합니다.”
### 2. 끝내 전해지지 못한 고백
엽서 뒷면에는 정갈하지만 조금 흔들린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은주 씨.
그날 약속한 은솔역에 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날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 이제야 말씀드립니다.
그날 오후 네 시, 저는 은솔병원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가는 대신 한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읽는다면, 부디 제가 당신을 잊었다고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그날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 민수 드림.
김맑음 신부는 엽서를 내려놓았다.
박복례가 물었다.
“누가 누구를 기다렸다는 거예요?”
“정은주 씨라는 분과 민수라는 분 사이에 있었던 일 같습니다.”
최병철이 말했다.
“그런데 왜 성당으로 보냈을까요?”
“수신인이 당시 교리관에서 일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박복례는 엽서를 바라봤다.
“스무 해라…….”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동안 저 사람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살았겠네요.”
김맑음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최병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부님, 이 엽서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맑음 신부는 잠시 생각했다.
“먼저 수신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스무 해 전 사람을요?”
“예.”
그는 엽서를 조심스럽게 봉투에 넣었다.
“편지가 늦었다고 해서 전할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 3. 사라진 교리교사
은솔성당 사무실.
최병철은 오래된 교적 관련 기록과 봉사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정은주 세실리아…… 정은주 세실리아…….”
그는 낡은 서류철을 한 장씩 넘겼다.
김맑음 신부는 옆에서 기다렸다.
“찾았습니다!”
최병철이 외쳤다.
정은주 세실리아. 당시 서른두 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은솔성당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봉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2006년 11월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연락처는 있습니까?”
“옛날 전화번호만 있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최병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박복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은주 세실리아요?”
“예. 아시는 분입니까?”
“알지요.”
박복례는 의자에 앉았다.
“그 자매님,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어떤 분이셨습니까?”
“조용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지요. 주일학교 아이들이 그 선생님만 보면 달려가 안겼어요.”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런데 왜 은솔을 떠나셨습니까?”
박복례는 잠시 생각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일이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어느 날부터 웃음이 없어졌거든요.”
박복례는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그 자매님이 마지막으로 성당에 왔던 날, 제가 물었어요. 무슨 걱정 있느냐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냥 그러더라고요.”
박복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사람을 지치게 하는 줄 몰랐어요.’
김맑음 신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 말씀을 하셨습니까?”
“예.”
박복례는 엽서를 바라봤다.
“이제 보니 누군가를 기다렸던 모양이네요.”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말했다.
“그 기다림이 끝나지 않은 채 떠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4. 엽서를 보낸 남자
엽서에는 발신인의 이름이 ‘민수’라고만 적혀 있었다.
주소는 없었다.
하지만 소인은 은솔시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맑음 신부는 엽서의 풍경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오래된 은솔역이었다.
역 앞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작은 시계탑이 있었다.
지금은 철거된 건물이었다.
“왜 하필 은솔역 사진일까요?”
그때 김하늘 안젤라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신부님, 또 사건이에요?”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하늘이는 어떻게 알았니?”
“신부님이 안경을 고쳐 쓰고 계시잖아요.”
“그것만 보고?”
“그리고 사무장님 책상 위에 오래된 서류가 쌓여 있으면 백 퍼센트 사건이거든요.”
최병철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아, 이건 사건이라기보다 우편물 전달 문제야.”
“그게 사건이죠!”
하늘은 엽서 사진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와, 옛날 은솔역이네요.”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알아보겠니?”
“네. 우리 학교 역사동아리에서 조사한 적 있어요.”
하늘은 휴대전화로 은솔역의 옛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여기가 옛날 은솔역 광장이에요. 지금은 은솔문화공원으로 바뀌었고요.”
김맑음 신부는 사진을 비교했다.
그런데 엽서의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은솔역 앞 사진관 제작.
“사진관…….”
김맑음 신부가 중얼거렸다.
하늘이 말했다.
“신부님, 은솔사진관 아직 있잖아요.”
“그렇지.”
“오래된 사진이면 거기서 아실 수도 있겠네요.”
김맑음 신부는 미소 지었다.
“좋은 생각이다.”
하늘이 어깨를 으쓱했다.
“프란치스코 홈스의 조수니까요.”
최병철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학생까지 탐정단이라고 하고 다니는군요.”
박복례가 말했다.
“사무장님도 이미 탐정단이잖아요.”
“저는 공식적으로 그런 명칭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 오미자 안나 사목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사건이에요?”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오미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은솔성당 탐정단장에게 보고도 없이 사건을 시작하면 안 되지요!”
최병철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5. 은솔사진관의 기억
은솔사진관은 오래된 시장 골목에 있었다.
유리창에는 빛바랜 가족사진과 졸업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사진관 주인 한정호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는 김맑음 신부를 반갑게 맞았다.
“신부님, 어쩐 일이십니까?”
“오래된 사진엽서 하나 때문에 왔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엽서의 앞면을 보여주었다.
한정호는 안경을 꺼내 썼다.
“이거…… 우리 사진관에서 만든 거네요.”
“기억하십니까?”
“그럼요. 은솔역이 철거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그는 엽서를 한참 바라봤다.
“이 엽서를 사 간 사람도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김맑음 신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누구였습니까?”
“젊은 남자였어요. 서른다섯쯤 되었을까요.”
“이름은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한정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 생각났습니다.”
그가 손뼉을 쳤다.
“민수 씨!”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어떤 분이셨습니까?”
“은솔병원에서 일하던 분이었어요.”
“의사였습니까?”
“아니요. 병원 사회복지사였지요.”
김맑음 신부는 엽서의 문장을 떠올렸다.
그날 오후 네 시, 저는 은솔병원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한정호는 잠시 생각했다.
“강민수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몇 년 전에 은솔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돌아왔다고요?”
“예. 지금은 은솔시 외곽에서 작은 공부방을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한정호는 엽서를 다시 바라봤다.
“그런데 신부님.”
“예?”
“그 엽서, 아직도 전달이 안 됐습니까?”
김맑음 신부가 놀랐다.
“무슨 뜻입니까?”
한정호는 천천히 말했다.
“그 남자가 엽서를 사면서 그러더군요.”
‘이번에는 꼭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 말은 이전에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뜻일까?
### 6. 강민수가 기다리지 못한 날
은솔시 외곽의 작은 공부방.
낡은 단층 건물 앞에는 아이들의 자전거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문 옆에는 손글씨 간판이 걸려 있었다.
〈햇살 공부방〉
김맑음 신부가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잠시 뒤 중년 남자가 문을 열었다.
쉰다섯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누구십니까?”
“은솔성당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남자는 반갑게 인사했다.
“아, 신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강민수 선생님이십니까?”
“예, 접니다.”
김맑음 신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은주 세실리아 자매님을 아십니까?”
그 순간 남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은주 씨를…… 어떻게 아십니까?”
김맑음 신부는 엽서가 담긴 봉투를 꺼냈다.
“스무 해 전에 보내신 엽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강민수는 봉투를 바라봤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엽서가…….”
그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아직도 있었군요.”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습니까?”
강민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6년 가을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은솔병원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정은주는 은솔성당 주일학교 교리교사였고, 두 사람은 지역 아동복지 봉사활동을 하며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봉사 동료였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두 사람은 은솔역 앞에서 만나 앞으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강민수는 다른 도시의 복지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상태였다.
그는 정은주에게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약속은 2006년 9월 23일 오후 네 시.
장소는 은솔역 시계탑 아래였다.
하지만 강민수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그날 오후 세 시쯤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돌보던 아이가 응급실로 왔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복지기관의 지원을 받던 열 살 소년이었다.
강민수는 오랫동안 그 아이를 도와왔다.
그날 아이에게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연락 가능한 보호자를 찾기 어려웠다.
강민수는 병원으로 향했다.
의료진은 치료를 진행했고, 그는 필요한 보호·지원 절차를 돕고 아이 곁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정은주에게 연락하려고 했지만,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다 되어 꺼져 있었다.
“다른 전화로 연락할 수도 있었겠지요.”
강민수가 말했다.
“하지만 그때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무사한지만 생각했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밤늦게 은솔역으로 갔습니다.”
“은주 자매님은요?”
“없었습니다.”
강민수는 한참 말이 없었다.
“당연하지요. 여섯 시간이 지난 뒤였으니까요.”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저는 그날 이후 더 큰 실수를 했습니다.”
“어떤 실수입니까?”
“제가 설명하면 은주 씨가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는 설명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 7. 서로 다른 기억
김맑음 신부는 강민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왜 설명하지 못하셨습니까?”
강민수는 한숨을 쉬었다.
“은주 씨가 저를 원망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닙니다. 며칠 뒤 성당으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정은주는 그를 만나지 않았다.
강민수는 그녀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뒤 편지를 썼다.
그러나 보내지 못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엽서를 작성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김맑음 신부가 가지고 있는 엽서였다.
“왜 집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는 은주 씨가 어디에 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사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만 들었거든요.”
“그래서 성당으로 보내셨군요.”
“예. 교리교사로 봉사하고 있었으니까요.”
강민수는 엽서를 바라봤다.
“저는 그 엽서가 전달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다시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강민수는 힘없이 웃었다.
“답장이 없었으니까요.”
김맑음 신부는 잠시 생각했다.
“선생님은 답장이 없어서 은주 자매님이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하셨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엽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강민수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군요.”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저는 그 사람이 저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엽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은주 자매님은 선생님이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강민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스무 해 동안 서로 다른 기억이 쌓여 있었다.
한 사람은 버림받았다고 믿었다.
다른 한 사람은 용서받지 못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진짜 마음을 듣지 못했다.
### 8. 엽서에 없는 이야기
김맑음 신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강민수가 그를 불렀다.
“신부님.”
“예?”
“사실 그날 이야기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다시 앉았다.
강민수는 천천히 말했다.
“그 아이는 제가 오랫동안 돌보던 아이였습니다.”
“예.”
“이름은 준호였습니다.”
강민수는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꺼냈다.
사진에는 어린 소년과 젊은 강민수가 함께 웃고 있었다.
“준호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있었습니다. 보호해 줄 어른이 많지 않았지요.”
“그랬군요.”
“그날 병원에서 준호가 제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강민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아저씨도 저 혼자 두고 가실 거예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차마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날 이후 준호가 안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여러 기관과 함께 도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도시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은주 자매님과 함께 떠나려던 계획도요?”
“예.”
강민수는 한숨을 쉬었다.
“저는 은주 씨가 그런 삶을 원하지 않을 거라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직접 물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못 물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예.”
“준호를 돌보신 것은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강민수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은주 자매님이 어떤 선택을 하실지는 자매님께 물으셨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강민수는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저는 그 사람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사람의 마음을 제 마음대로 결정해 버렸군요.”
김맑음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강민수에게 오래 남았다.
### 9. 정은주를 찾아서
정은주의 행방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옛 연락처는 모두 바뀌어 있었다.
성당 기록에도 이사한 도시의 이름만 남아 있었다.
김맑음 신부는 개인 정보를 함부로 확인하거나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당시 정은주와 함께 봉사했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본인이 원한다면 성당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서윤 기자도 도움을 주었다.
“신부님, 정은주 씨가 예전에 지역 아동교육 활동을 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교육 일을 하십니까?”
“그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관련 단체를 통해 연락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지는 마시고요.”
한서윤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본인이 원하실 때 연락하시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뒤.
은솔성당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최병철이 전화를 받았다.
“찬미 예수님. 은솔성당입니다.”
잠시 뒤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수화기를 가린 채 김맑음 신부를 불렀다.
“신부님.”
“예?”
“정은주 세실리아 자매님이라는 분이십니다.”
김맑음 신부는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찬미 예수님. 김맑음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조용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제가 정은주입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무 해 전 제 앞으로 온 엽서가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여자가 물었다.
“혹시…… 보낸 사람이 강민수라는 분입니까?”
김맑음 신부가 대답했다.
“예.”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숨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 여자가 말했다.
“그 사람은…… 아직 은솔에 있습니까?”
“예. 계십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맑음 신부는 기다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매님, 엽서를 직접 받아보시겠습니까?”
긴 침묵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예.”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 10. 스무 해 만에 돌아온 여자
일주일 뒤 토요일 오후.
은솔성당 마당에 작은 여행가방을 든 여자가 들어섰다.
쉰두 살의 정은주 세실리아였다.
짙은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새치가 보였다.
그녀는 성당을 한참 바라보았다.
“많이 변했네요.”
김맑음 신부가 다가왔다.
“정은주 세실리아 자매님이시지요?”
“예, 신부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정은주는 미소 지었다.
“성당은 많이 달라졌는데, 느티나무는 그대로네요.”
그때 박복례가 사제관에서 나왔다.
“어머!”
정은주가 돌아봤다.
“마리아 어머니!”
박복례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두 손을 잡았다.
“은주야!”
정은주의 눈가가 붉어졌다.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아이고, 이게 얼마 만이야!”
박복례는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정은주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너무 늦었지요?”
박복례는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늦긴 뭐가 늦어. 이렇게 왔으면 됐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잠시 뒤 사제관 응접실.
김맑음 신부는 정은주에게 엽서를 건넸다.
“이것입니다.”
정은주는 두 손으로 엽서를 받았다.
빛바랜 은솔역 사진.
익숙한 글씨.
그녀는 첫 문장을 읽자마자 움직임을 멈췄다.
“그날 당신을 기다리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말합니다.”
정은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 글씨…….”
그녀는 손끝으로 엽서의 글자를 어루만졌다.
“정말 민수 씨 글씨네요.”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기다렸다.
정은주는 엽서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11. 여섯 시간을 기다린 사람
정은주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신부님.”
“예.”
“그날 저는 은솔역에서 여섯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습니다.”
“오후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요.”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조금 늦는 줄 알았어요.”
오후 다섯 시가 되었을 때는 걱정했다.
여섯 시가 되었을 때는 화가 났다.
일곱 시가 되었을 때는 불안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정은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그날 민수 씨에게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오지 않았어요.”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며칠 뒤 민수 씨가 성당으로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맑음 신부가 물었다.
“그런데 왜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무서웠습니다.”
“무엇이요?”
“그 사람이 정말 저를 떠나겠다고 말할까 봐요.”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정은주가 말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적어도 마지막 말은 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참 어리석지요?”
김맑음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는 누구나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정은주는 엽서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 사람도 저처럼 두려웠군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저를 잊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덧붙였다.
“그 사람은 제가 자기를 용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겠지요.”
김맑음 신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은주는 엽서를 가슴에 안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답을 정해 버렸네요.”
### 12. 스무 해 동안의 삶
김맑음 신부는 정은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매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정은주는 미소 지었다.
“다른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방과후 교육과 지역 아동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누군가를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여러 선택을 하게 되더군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즐거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은솔역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은주는 창밖의 느티나무를 바라봤다.
“그날 이후로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싫어졌어요.”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물었다.
“강민수 선생님을 만나고 싶으십니까?”
정은주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 뒤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스무 해가 지났잖아요.”
“그렇습니다.”
“이제 와서 만나면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김맑음 신부는 잠시 생각했다.
“꼭 특별한 말을 준비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정은주가 그를 바라봤다.
“그냥 그날 하지 못한 질문부터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질문이요?”
김맑음 신부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정은주는 오랫동안 그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을…… 한 번은 해야겠네요.”
### 13. 은솔역 시계탑 아래에서
다음 날 오후.
옛 은솔역이 있던 자리는 작은 문화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차역 건물은 사라졌지만, 붉은 벽돌 시계탑 일부는 기념물로 남아 있었다.
정은주는 그 앞에 섰다.
스무 해 전에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는 서른두 살이었다.
오늘은 쉰두 살이었다.
그녀는 시계탑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기는 그대로네요.”
그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은주 씨.”
정은주가 천천히 돌아섰다.
강민수였다.
그 역시 많이 변해 있었다.
검은 머리에는 흰머리가 섞였고,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은주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강민수였다.
“오랜만입니다.”
정은주가 대답했다.
“네. 정말 오랜만이네요.”
강민수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정은주는 그를 바라봤다.
“무엇이 미안한가요?”
강민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도요.”
정은주는 조용히 말했다.
“저도 미안한 일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당신이 찾아왔을 때 만나지 않은 거요.”
강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먼저 상처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정은주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서로 미안하다는 말만 하다가 또 헤어질 건가요?”
강민수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면 안 되겠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은주가 물었다.
“민수 씨.”
“예.”
“그날…… 무슨 일이 있었어요?”
강민수는 그녀를 바라봤다.
스무 해 동안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14. 그날의 진실
강민수는 준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갑자기 병원으로 향해야 했던 일.
아이 곁을 지키며 밤늦게까지 기다렸던 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길을 혼자 결정해 버렸던 일까지.
정은주는 아무 말 없이 들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녀가 물었다.
“준호는 어떻게 되었어요?”
강민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잘 자랐습니다.”
“정말요?”
“예. 지금은 서른 살이 되었어요.”
정은주도 미소 지었다.
“다행이네요.”
강민수가 말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민수 씨처럼요?”
“예.”
그는 웃었다.
“가끔 저한테 잔소리도 합니다.”
“무슨 잔소리요?”
“밥 제때 먹으라고요.”
정은주는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강민수는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
스무 해 전 은솔성당 마당에서 자주 듣던 웃음이었다.
정은주가 물었다.
“그런데 민수 씨.”
“예.”
“왜 저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강민수는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저와 함께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은주는 한참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그걸 왜 당신 혼자 결정했어요?”
강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했어요. 당신도 그걸 알았잖아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당신과 함께 아이를 돌보는 삶을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강민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제가 두려웠습니다.”
정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두려웠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정은주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한 게 아니라, 서로에게 솔직해질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강민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정은주가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강민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정은주가 웃었다.
“저도요.”
그녀는 시계탑을 바라봤다.
“다행이네요.”
“무엇이요?”
“우리가 서로를 오해한 채 살았지만, 그동안의 삶까지 모두 불행했던 것은 아니라서요.”
강민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 15. 다시 시작한다는 말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가을 햇살이 오래된 시계탑을 비추고 있었다.
강민수가 물었다.
“은주 씨,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정은주는 웃었다.
“우선 내일 집으로 돌아가야지요.”
강민수도 웃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다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고요.”
“여전히 바쁘시네요.”
“민수 씨도 공부방 운영하시잖아요.”
“예.”
잠시 뒤 강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정은주가 그를 바라봤다.
“예?”
“가끔 연락드려도 될까요?”
정은주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연락이 안 되면 다시 연락해 주세요.”
강민수가 웃었다.
“알겠습니다.”
“답장이 없다고 혼자 결론 내리지 마시고요.”
“예.”
“그리고 중요한 이야기는 엽서 한 장에만 맡기지 마세요.”
강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정은주는 가방에서 낡은 엽서를 꺼냈다.
“그런데 이 엽서는 참 고맙네요.”
강민수가 물었다.
“왜요?”
“스무 해나 늦었지만, 결국 제게 왔잖아요.”
그녀는 엽서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이제는 기다리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두 사람은 한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누구도 서둘러 일어나지 않았다.
스무 해 전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젊은 시절의 약속을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살아온 시간을 존중하며, 앞으로 어떤 관계로 지낼지는 천천히 알아가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16. 탐정단의 엉뚱한 추리
은솔성당 사제관.
오미자는 정은주와 강민수가 만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손뼉을 쳤다.
“드디어 만났군요!”
최병철이 말했다.
“회장님, 너무 큰 소리 내지 마십시오.”
“왜요? 좋은 일인데!”
박복례가 차를 내오며 말했다.
“만난 건 잘됐지요. 하지만 그다음 일은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오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요.”
그때 김하늘이 물었다.
“신부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뭐니?”
“엽서가 어떻게 스무 해 동안 우편함에 있었던 거예요?”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장태식 형제님이 확인해 주셨어.”
장태식이 설명했다.
“옛 우편함은 안쪽에 철판을 덧댄 구조였어. 철판이 조금 벌어져 있어서 얇은 엽서가 그 사이로 들어간 모양이야.”
“그럼 스무 해 동안 아무도 몰랐던 거네요?”
“그렇지.”
최병철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관리상으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박복례가 말했다.
“사무장님, 그때는 사무장님이 계시지도 않았잖아요.”
“그래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오미자가 웃었다.
“사무장님은 스무 해 전 우편함까지 책임지려고 하세요?”
최병철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기록은 세월이 지나도 중요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최병철은 반색했다.
“그렇지요?”
“그래서 새 우편함은 관리가 잘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최병철이 즉시 수첩을 꺼냈다.
“이미 점검표를 만들었습니다.”
하늘이 웃었다.
“역시 베드로 사무장님!”
오미자가 말했다.
“그런데 신부님, 이번 사건은 누가 해결한 거예요?”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당연히 우리 탐정단이지요!”
그때 이도현 형사가 사제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탐정단입니까?”
오미자가 반갑게 외쳤다.
“형사님! 스무 해 전 사건을 해결했어요!”
이도현이 김맑음 신부를 바라봤다.
“신부님, 이번에는 또 무슨 사건입니까?”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우편물 전달 사건입니다.”
“우편물이요?”
“예. 스무 해 동안 전달되지 못한 엽서였습니다.”
이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번에는 경찰이 필요 없었군요.”
“그렇습니다.”
이도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입니다.”
그때 박복례가 주방에서 말했다.
“형사님, 점심 드시고 가세요!”
이도현은 즉시 대답했다.
“예, 감사합니다!”
김맑음 신부가 웃었다.
“도현아, 너는 정말 밥 먹는 데에는 망설임이 없구나.”
이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처럼 밥 먹을 시간까지 추리하지는 않거든.”
사제관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 17. 기다림에도 끝이 있을까
그날 저녁.
김맑음 신부는 성당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제대 앞 감실등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스무 해 동안 우편함에 갇혀 있었던 엽서를 떠올렸다.
엽서 한 장은 작았다.
손바닥만 한 종이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 사람의 미안함과 다른 한 사람의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김맑음 신부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때때로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는다.
거절당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답을 정한다.
그 사람은 나를 잊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나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나온 짐작일 수 있었다.
김맑음 신부는 조용히 기도했다.
“주님.”
그의 목소리가 성당 안에 낮게 울렸다.
“저희가 두려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하소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진실을 말할 용기를 주소서.”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래 기다린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기도를 마친 뒤 김맑음 신부는 한동안 앉아 있었다.
스무 해는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를 도왔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견뎌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은 오래된 오해를 풀었다.
김맑음 신부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늦게 도착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하려던 진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 18. 스무 해 만에 도착한 답장
며칠 뒤.
은솔성당 사무실에 작은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새 우편함에 제대로 들어 있었다.
최병철이 봉투를 확인했다.
“김맑음 신부님 앞으로 왔습니다.”
김맑음 신부는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정은주가 보낸 것이었다.
신부님께.
스무 해 전에 도착했어야 할 엽서를 제게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누군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만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날 제가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민수 씨와 다시 만났습니다.
우리는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민수 씨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민수 씨가 다시 전화하더군요.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
스무 해 전에는 하지 못했던 아주 평범한 일을 이제야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부님, 늦게 도착한 엽서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은주 세실리아 드림.
김맑음 신부는 편지를 읽고 미소 지었다.
그때 박복례가 들어왔다.
“신부님, 무슨 편지예요?”
“정은주 자매님이 보내셨습니다.”
“뭐라고 하세요?”
“잘 지내신답니다.”
박복례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됐네요.”
김맑음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됐습니다.”
그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새 우편함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그 안에는 편지가 스무 해 동안 갇혀 있을 틈이 없었다.
김맑음 신부는 문득 웃음이 났다.
“어머니.”
“예?”
“이번 사건의 진짜 주인공은 우편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복례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편함이요?”
“예. 스무 해 동안 엽서를 간직하고 있었으니까요.”
박복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신부님.”
“예.”
“그건 간직한 게 아니라 끼어 있었던 거예요.”
김맑음 신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요.”
박복례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물건도 사람도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거예요.”
“예?”
“엽서는 받는 사람한테 가야 하고, 신부님은 식탁으로 가셔야지요.”
김맑음 신부가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습니까?”
“그러니까요!”
박복례는 부엌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스무 해 된 엽서는 찾으시면서 매일 먹는 점심시간은 왜 못 찾으세요?”
김맑음 신부는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은솔성당의 오후는 다시 평범해졌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는 작은 기적 같은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스무 해 동안 전해지지 못했던 마음이 마침내 제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그 마음이 두 사람을 다시 젊게 만들지는 못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려 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오래된 오해를 풀어 주었고,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새로운 하루를 선물했다.
김맑음 신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기다림이 언제나 약속한 사람을 데려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다림의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오래된 상처가 조금씩 다른 기억으로 바뀔 수는 있다.
스무 해 만에 도착한 것은 엽서 한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끝내 전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진심이었다.
― 제91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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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솔성당 창고를 정리하던 박복례가 사십 년 된 어린이용 흰 첫영성체 드레스 한 벌을 발견한다.
그런데 드레스 안쪽에는 서로 다른 두 여자아이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고, 오래된 첫영성체 명단에는 그중 한 아이의 이름만 남아 있다.
김맑음 신부는 드레스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가, 태어난 직후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쌍둥이 자매와 그들을 갈라놓았던 사십 년 전의 비밀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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