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제도의 변화로 자기주도 학습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며 부모나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따로 특강과 캠핑이 운영될 정도다. 이런 프로그램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자존감 기르기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느낌을 말합니다. 자존감은 능력의 정도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실이 다져져 있어요. 자신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겁니다.”
손석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자신감은 이걸 잘해내는 실력이 있다고 우쭐대는 마음으로 실제로 어떤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때 생긴다. 단순히 자신감만 높은 아이는 좋지 않은 결과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의 탓으로 돌려 내실이 없다.
스스로 발전하는 아이의 필요조건, 자존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매사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지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을 잘 배려해 주변에서도 인기가 좋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반대로 생각하면 돼요. 매사에 부정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죠.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자신을 비하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무시합니다.”
흔히 부모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자녀가 바로 자존감이 높은 아이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 ‘저렇게 해라’ 하며 말을 한다. 아이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칭찬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부모와의 대화가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핵심인 것은 틀림없지만 모든 말이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 오히려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상처를 주는 일이 상당히 많다. 결국 아이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줄어 타인에게 의지하는 일이 생긴다. 자존감은 한때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 결국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자존감을 키우는 핵심 키워드는 인정과 칭찬
아이의 자존감을 어떻게 키워줘야 할까? 손석한 전문의는 아이가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맞다’, ‘잘하고 있다’, ‘괜찮다’ 하는 인정과 칭찬, 격려가 필수다.
“단순히 멋지다, 똑똑하다와 같은 식의 칭찬이 아니에요. 아이가 납득할 만한 한 이유여야 하고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이나 노력에 대해 칭찬해줘야지요. 칭찬할 게 없어 보이는 말썽꾸러기도 마찬가지예요. 생활 속에서 보이는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 칭찬하는 것이 좋아요. 단, 거짓으로 칭찬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매일 싸우던 아이가 오늘 싸우지 않았다면 그것도 칭찬할 거리가 된다. 오늘 하루 편식을 안 했다거나 잠을 잘 잤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 아이에게 비교적 덜 부정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서 스스로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존감은 어느 한 시기에 생기는 것이 아니지만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기가 있다.
“언어 능력을 형성하는 만 2세 전후에 처음으로 자존감이 형성됩니다. 아이가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때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먼저 인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칭찬하면 아이의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만 6~7세도 자존감을 높이는 데 특히 중요한 시기로 꼽는다. 옳고 그름에 대한 흑백논리에 대해 아이들이 예민해지는 시기로 틀린 것에 대해서는 아이가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옳고 바른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야 한다. 칭찬의 내용뿐 아니라 태도에 있어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부모의 칭찬을 거짓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태도나 눈빛,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도 아이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입니다. 말과 태도가 일치하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가 일부러 자신을 위해서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핵심 이유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가 자신 없어 하는 약점을 상쇄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대안을 얘기해준다면 아이는 쉽게 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
아이의 자존감을 튼튼하게 만드는 대화 노하우
1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어 구체적으로 칭찬한다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자존감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행동에 보람을 느끼고 실수나 잘못을 줄이려고 노력하게 만든다. 아이 스스로 방을 청소했을 경우 ‘네 스스로 청소하다니 다 컸구나! 잘했다’와 같이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칭찬하는 것이 아이 자존감을 높이는 좋은 칭찬이다. 그러나 ‘방을 청소하다니 놀라운데!’와 같은 칭찬은 예상외의 반응이라는 부모의 생각이 배어나오는 반응으로 오히려 아이의 자존감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시험 성적이 잘 나왔다면 똑똑해서 백점을 맞았다는 식의 칭찬은 피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한 과정이 아닌 결과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아이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 똑똑해 보이는 것에 더 치중할 수 있다. 또 시험 성적이 떨어졌을 때 똑똑해 보이지 않는 걸 알게 돼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2 아이의 속마음을 읽어낸다
현재 아이의 감정 상태나 의도를 읽고 아이에게 말을 해준다. 예를 들어 아이가 TV 만화를 보면서 재미있게 웃고 있다면 ‘영수가 지금 재미있어서 기분이 좋구나’라고 말한다. 아이가 친구와 다투고 난 후 씩씩거리고 있다면 ‘가희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구나. 친구와 다투고 나서 화가 났지?’처럼 말하지 않은 속마음을 엄마가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아이로 하여금 엄마가 자신의 기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이 기분이 좋은지 또는 나쁜지에 대해서 엄마가 잘 알고 싶어 한다고 느끼며 엄마에게 자신이 매우 소중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반면 TV를 보며 웃는 아이에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이제 그만 보고 빨리 공부해’라는 말은 아이의 긍정적인 기분을 방해하거나 중단시킨다. 자신의 기분을 무시당한 아이는 엄마에 대해 반감을 느끼게 된다. 친구와 싸우고 씩씩거리는 아이에게 ‘넌 친구와 다투고 나서 뭘 잘했다고 씩씩거리고 있어’라는 말은 아이의 감정 표현을 억압하는 동시에 비난으로 받아들이게 하므로 주의한다.
3 아이 말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들려준다
같은 현상을 두고 부모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자존감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다소 비만 체형인 아이가 밥을 잘 먹을 경우 ‘이제 그만 먹어. 그렇게 먹다가는 더 살이 쪄서 진짜 비만이 되고 성인병에 걸려’라고 말하는 것은 현상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아이의 문제 행동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아이의 자존심을 깎아내릴 수 있다. ‘너, 돼지야? 그렇게 먹어서 더 살찌면 아무도 너를 상대하지 않아’라고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아이의 문제 행동보다 오히려 아이의 인격 자체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말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저하시킬뿐더러 반항심, 분노, 적개심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반면 ‘준석이가 밥을 잘 먹으니까 키가 크려고 하는 것 같아. 몸도 튼튼해질 거야. 그런데 체중이 너무 나가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음식을 조절하자’라는 말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해석을 적용시킨 사례다. 자존감을 지켜주면서도 부모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다.
4 아이에게 자율성 또는 선택권을 주는 말을 한다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부모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 많다. 이때 아이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느낌을 자연스레 갖게 돼 자존감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엄마, 저 오늘 무슨 옷 입어요?’라는 질문에 ‘네가 마음에 드는 옷으로 골라서 입어 봐. 고르기 힘들면 엄마에게 보여준 후에 함께 결정하자’와 같이 아이의 주관적인 선호도를 인정해주는 말이 좋다. 이를 통해 아이는 더 독립적인 개체로서 인정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저기 안방의 첫 번째 서랍 속에 있는 파란 바지와 그 아래 서랍의 빨간 티셔츠를 입어’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받으면 아이는 점차 의존적이 되어버린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들을 피하게 된다. ‘아무거나 입어. 넌 그런 것마저 엄마에게 하나하나 물어보니?’와 같은 비난은 아이를 성가신 존재로 만든다. 부모의 관심 또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는 화가 나거나 슬퍼진다.
5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만 지적한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만 야단쳐야 자존감도 살리고 행동 수정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게 명확하게 지적하고 ‘본래 네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어쩌다 생긴 실수다’라고 말해준다. 또 앞으로 이런 걸 고치기 위해서 엄마가 어떤 것을 지적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못된 아이나 형편없는 아이라는 식으로 아이의 인격 전체를 깎아내리면 아이의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지므로 주의한다. 여성조선 글 소아정신과 전문의 손석한 박사 | 취재 박미진 기자 | 사진 신승희 참고도서 「이제 부모가 말을 걸 차례다」(손석한, 파라북스) 입력 : 2011.06.29 08:30
공부 잘하는 특별한 아이들의 남다른 대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