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알바 신청을 해 놓았는데, 이 운명에 대해서 물은 괘는 수천 수괘가 나왔다.
이 수천 수괘의 철학적인 의미는 아주 멋지고, 또한 지금 사람들에게도 아주 많은 상상력을 준다.
수천수괘의 상징은 성장과 기다림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
수괘는 서괘전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몽은 어리석음으로, 어린 것이다. 어린 것을 기르지 않을 수 없으므로 몽괘 다음으로 수괘를 받았다. 수란 음식의 도다"
어린아이를 길러내는 데에는 기다림과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곧 음식의 상징과 통하는 것이다. 이런 상징의 에너지를 잘 이해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아, 기다린다는 것은 무언가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이는 그런 상상력과 통하는 것이구나, 그런 몸의 에너지와 통하는 것이구나, 이런 걸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상징의 말들을 실제 삶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수천 수괘의 상징은 또 아래와 같은 의미도 있다. 물을 상징하는 감괘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가 아래에 있다. 아래 말을 보자.
"건괘의 강건한 성질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마침 감괘가 상징하는 위험 아래에 처하여 위험에 가로 막혀 있으므로 기다린 후에 나아가는 것이다." 163쪽
그럼 다시 물어보자.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린 아이들에게, 성장하는 존재들에게 기다린다는 것은 무언가 황홀한 행복한 곳으로의 진행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눈 앞에 아주 험난한 위험의 강물이 도사리고 있는데, 언제 그 위험한 강물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가를 두고 기다리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기다림의 철학은 이렇게 대단한 삶의 고난을 통과하기 위한 마음 가짐의 상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보통의 에너지가 아닌 사람은 잘 기다릴 줄을 모른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호흡을 조절하면서 나의 삶을 제대로 살펴보고 천천히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언제나 위험한 강물을 한번 건너야 성장을 하는 것이니....... 섣불리 강물에 뛰어들어서는 상처가 너무나 크다.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 기다림의 괘에 대한 단사의 말씀은 아주 흥미롭다. 나가라고 적극적으로 푸시를 한다.
기다림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 빛나고 형통하며, 올바름을 지키고 있어 길하니,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 164쪽
아하, 기다린다는 것에서 일단 가장 필요한 덕목은 믿음이다. 먼저 나를 믿어야 할 것이다. 자존감이 더욱 필요한 싯점이다. 자존감이 결여되면 기다릴 수가 없다. 기다린다는 것은 나를 믿고 있어서, 그대로 밝은 빛을 뿜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믿음이 아주 중요하다. 믿음이 있으면 기다리는 때 그 자체를 즐길 수가 있다. 지금 이 시간을 즐기면서 즐거운 상상력을 가지고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 세상에 직면해서 깊은 사유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오히려 이롭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다림의 때에 대한 큰 믿음, 나에 대한 큰 믿음을 가지고 강물이 오면 그 강물을 피하지 말고 건너가라는 것이다. 무얼 한다고 하면 안돼 그러지 말고, 넌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믿음을 주는 쪽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진실한 믿음을 상징하는 풍택 중부괘도 있다. 모든 삶에서 믿음이 아주 중요하다.
기다리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대로 파멸되고 만다. 큰 강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다. 나에 대한 믿음은 곧 밝은 사랑몸을 만들어내고, 그 사랑 몸은 감각이 깨어나서 상대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불안이 찾아오고, 그러면 감각이 무디어 진다. 감각이 무디어 지면 판단도 제대로 못하고 그때 오히려 위험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위험을 앞에 둔 사람이다. 이것이 주역 철학의 아주 멋진 통찰력이다. 이걸 제대로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 위험을 앞에두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큰 철학을 요구하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이를 키운다는 것, 내가 무언가를 해 보고 싶다는 것, 이 모든 삶의 조건은 기다림의 철학을 내재하고 잇다. 시간의 개념이 그런 것이다.
수천 수 괘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강한 사람들이다. 강한 자질을 가진 건괘, 양으로 꽉 차 있는 건괘의 사람들이 믿음까지 가지고 있으면 이들은 의리가 궁핍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상징의 의미를 멋지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주역 공부가 필요하다.
상전의 말씀을 보자.
상전에서 말했다.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수괘의 모습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167쪽
구름이 막 하늘로 올라갔는데 비가 아직 내리지 않았으므로 기다림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자는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 음양이 조화되기를 기다린 뒤에 비가 되는 모습을 보고서, 자신의 도와 덕을 가슴에 품고 편안하게 때를 기다리고, 음식으로 자신의 몸을 기르면서 기쁨과 줄거움으로 마음과 뜻을 조화롭게 하니, 이것이 중용에서 말하는 "편안한 곳에 거하여 천명을 기다린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167쪽
자, 이래서 수천수괘의 효사는 아주 흥미롭다.
수천수괘는 강물이라고 하는 아주 험난한 곳으로 점근해 가는 과정을 기다림의 과정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수천수괘의 음양의 배치는 양양양음양음이다.
초구효는 교외에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항심을 유지하는 것이 이로우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위험을 뜻하는 강물은 저 멀리 있고, 강물과 가장 멀리 떨어진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기다림이란 위험에 직면한 때인데, 성장한 후에 나가야 한다. 성장하기 전에 나갔다가다는 휩쓸려 버린다. 초구효는 자신이 양강한 기질 맨 아래 자리에 있어도 자질이 풍부한 존재인데, 아주 강물과는 먼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기다릴 때에도 중요한 것은 대신 항심이다. 믿음에 대한 항심을 잃지 말하야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강물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항심이 없다면 허물이 생길 것이다.
항심 恒心을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초구효의 처지는 이렇다. 예를 들어서 "지위가 없는 곳에 자리하고 또 험난한 아랫자리에 처해서 본래 허물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추구효가 만약 그 항심을 지켜서 곤궁한데도 그 절도를 바꾸지 않고 빈천하더라도 그 뜻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때의 가부를 살펴서 나아갈 만하면 나아가므로 그 허물을 면할 수 있다"고 호원은 해석한다.
살다 보면 다 이런 때가 있다. 이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데에 항심을 지킨다는 건 쉽지가 않다. 그런데 기다리는 때인 것이다. 항심을 지켜서 기다릴 수 있어야만 허물이 없는 것이다.
점은 친 사람은 알바를 신청해 놓고 물어보았다. 기다리는 때인 것이다. 알바 신청은 무언가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신청을 하는 것이다. 초구효의 경지가 새삼 가슴에 오기도 한다. 요즘은 다 살기가 힘들다. 이런 경지에서 무언가를 하려 할 때, 알바와 진정으로 내가 나가려 하는 삶의 큰 목적이 어떻게 병행해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위험을 통과해야 성장할 수 있다. 알바는 방편의 일이고, 진정으로 내가 목적하는 일 또한 있을 것이다. 위험을 통과하기 위한 방편인 알바가 진정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새삼 잘 물어야 할 것이다. 하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도 내가 지켜야할 항심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직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스스로 답을 분명히 찾는다면 알바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닐까도 싶다.
2
나는 주역에서 기다림의 수천수괘가 대중에게 아주 훌륭한 철학을 보여주는 괘라고 생각한다.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과 관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제 구이효의 말씀을 보자.
구이효는 모래사장에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구설수가 조금 있지만 결국에는 길하다. 169쪽
강물을 앞에 두고 점점 강물에 다가서고 있다. 모래사장까지 온 것이다.
모래 사장에서 강물을 앞에두고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다. 구설수가 조금 있긴 하지만 결국에는 길하다고 한다. 이는 무슨 말일까.
위험한 때에 점점 다가가니 어찌 피해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위험을 피해갈 수는 없으나 구설수 정도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말로 조금 해를 입긴 하지만, 큰 피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다릴 때 구설수가 떠돈다고 해서 믿음을 잃지 않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구설수에 사로잡히면 곤란하다. 위험의 때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이런 때에 초연하고 부드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3
구삼효는 진흙탕에서 기다리는 모습이니, 스스로 도적을 부른다. 170쪽
세 번째 기다림의 경지가 흥미롭다. 강물에 가장 가까이 간 진흙탕에 발을 들여놓은 경지이다.
위험에 아주 가깝게 갔기 때문에 도적과 같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냥 막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라고 한다. 기다림은 오히려 움직이는 것이다. 역설적인 느낌이 든다. 그냥 막연히 맥 놓고 앉아 있는 경우가 아닌 것이다. 무엇하나라도 움직여야 하는데, 그래서 위험을 피할 것이 아니라, 위험에 직면해야 하는데, 위험에 직면하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이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대단한 역설의 철학이다.
도적을 자초할 정도로 위험의 때에 가까이 다가서는데, 이런 때일수록 강건한 마음가짐과 신중한 사려가 없다면 당연히 낭패를 볼 것이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미완의 연속이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 여행의 연속이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믿음과 사려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큰 강물은 늘 우리 앞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삶 자체가 하나의 큰 강물과 같다. 그 강물에 나를 던지는 놀이라 생각해도 좋다. 이 강물에 나를 던지는데, 어떨 때는 배를 타듯 강물을 바람을 타고 건널수가 있다. 거룻배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도적을 자초할 정도로 위험한 선택의 연속이다. 도적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큰 믿음이 필요하고 사려깊은 사유도 필요하다.
알바를 물었는데, 이런 기다림의 괘가 나오니, 이건 또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는지. 점을 친 사람이 스스로 아하가 오는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점을 친다는 건 깊이 들어가면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심리학과 같은 놀이이다.
이 것이 중요하다.
우리들은 지금 주역 심리 카페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일반화시켜서 나중에 사람들과 같이 자신의 고민을 내놓고 주역의 말씀도 즐기고, 나의 삶도 돌아보는 실제 카페를 하나 운영해 봐도 좋겠다.
뜻이 있고, 의미가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기다리는 지금 이 수천수괘의 의미를 제대로 실천해 볼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움을 갖지 말고, 삶의 강물로 뛰어들 줄 알아야 한다. 그 큰 강물은 꼭 위험한 곳만은 아니다. 위험을 타면서 우리는 위험을 건널 수 있다.
4
육사효는 피를 흘리며 기다리는 모습이니, 스스로 동굴에서 나온다. 172쪽
육사효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
왜 피이고, 왜 구멍인가? 이 부분이 쉽지가 않다.
육음이 네 번째 있어 육사입니다. 감중련 물괘는 피인데 피를 보는 자리에 육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은 얻지 못했어도 음으로 음자리에 순하게 있기 때문에 비록 피를 보는 자리에 있지만 피를 보지는 않게 됩니다. 육사가 변하면 태상절 못괘가 되어 태위구(兌爲口)라 하여 구멍이 나오고 상육을 가리면 이허중 불괘로 밝으니 구멍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굴 속에 그대로 있으면 피를 볼텐데 험한 굴 속을 벗어났으니 피를 보지 않게 되는 것이죠. 대산 주역강의 1. 299쪽
하여튼 감괘에서 아래가 변하면 양양음 태괘가 된다. 태괘는 연못이나 입과 같은 구멍을 상징하니, 구멍이란 말이 낯설지는 않다.
물 속에도 구멍이 들어 있는 것이다. 동한다는 것은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라 해도 좋겠다. 그런데 그 동굴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나온다는 말은 무엇일까.
저 대산 선생의 주역 풀이는 이렇고 정이천 선생의 주역풀이를 보자.
육사효는 음유한 자질로 위험에 처해 있으니, 아래에 세 양이 전진해오는 것을 당하여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 상처입고 있는 자이므로 "피를 흘리며 기다린다"고 했다.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 상처를 입어 자신이 처한 곳에서 편안하게 안정을 누릴 수가 없으니 반드시 자신이 처한 곳을 잃게 되므로 "동굴에서 나오게 된다"고 했다. 동굴이란 사물이 편안히 처하는 곳이다. 172쪽
동굴이란 사물이 편안히 처하는 곳으로 보았다. 대산주역에서는 동굴을 피를 보는 것으로 해석을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에서 육사 효 또한 큰 흉함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해석을 한다.
"이치에 따라 유순하게 때를 따르고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 다투어 경쟁하지 않으니, 흉함에 이르지 않을 수가 있다. 유약한 자질로 음한 위치에 자리하니, 다툴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양한 태도로 강경하게 대처했다면, 반드시 흉하게 될 것이다. 중정의 덕이 없는데 오히려 강경한 태도로 위험 속에서 다투어 경쟁하면, 흉함에 이를 뿐이다." 172쪽
잘 해석을 해야 할 것 같다.육사효는 기다림의 때에서 이미 내가 위험한 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육사효 부터는. 이런 위험한 때에 처하면서 기다리는데 약한 사람은 당연히 상처를 입지 않을 수가 없다. 이때가 아주 중요하다. 상처를 입으면서도, 강경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서 자신의 약함을 알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피를 흘리면서 기다린다는 지혜는 과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이 육사효에 대한 다른 해석들을 옮겨본다.
쑨 잉퀘이, 양 이밍의 <주역>(현암사>에서 옮겨보면.
객:육사는 이미 위험에 빠진데다 벌써 상처를 입고 피바다 속에서 때를 기다릴 따름인데, 그런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탈출합니까?
주: <주역정의>에 "혈血이란 살육과 상해의 땅이요, '혈穴이란 위험과 함몰의 장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육사는 비록 위험 속에서 상해를 입어 지극히 위태로운 상태에 있으나 그 자신이 음유하면서도 득정하기 때문에 설사 피바다 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냉정하게 위험에서 벗어날 시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형세에 순응하고 변화에 순종하는 것이죠. 그렇게 처신 행사할 수 있다면 결국 험난함을 평탄함으로 바꾸고 위험과 함몰의 와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객: 주周 왕조를 세운 희창(姬昌: 주 문왕은 일찍이 상商의 紂王에 의해 유리(유里)에 갇혔지만 태연자약하게 형세가 변하기를 기다리면서 팔괘 연구에 몰두했지요. 64괘는 바로 주 문왕이 옥중에서 확대 연역해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에는 풀려났는데, 그런 기개와 풍도는 결코 보통 사람이 훙내낼 수 없는 일이지요. '피바다에서 기다리니 능히 험난한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온' 본보기라고 하겠습니다. 113~114쪽
육사효는 가만히 보면 대단한 경지이다. 어려움에 빠져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눈물나는 경지를 말한다. 살다보면 우리는 인생에서 이런 경우를 만날 때가 있다. 어찌보면 작가가 작품을 쓴다는 것도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냥 맥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온갖 어려움이 닥쳐오는데, 마치 일상의 삶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때를 거치는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형세와 변화에 순응하면서 험난함을 평탄함으로 바꾸어낸다고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물에 빠진다는 것, 험난함을 상징하는 물괘에는 공부의 의미가 들어 있다. 이걸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오히려 험난할 수록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 공부를 한다는 것도 대단한 믿음이 없으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점을 친 사람은 알바를 물어보았는데, 알바도 가볍게만 생각할 수는 없겠다. 힘든 경우가 오더라도,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믿음과 공부의 기운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변화와 형세에 순응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위험을 벗어날 수가 있다.
5
구오효는 술과 음식으로 기다리니, 올바름을 굳게 지켜 길하다.
구오효는 양강하고 중정을 얻었으니 기다리는 것도 여유가 있다. 술과 음식으로 편안히 잔치하면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어서 상육효는 이렇다.
상육효는 동굴에 들어가는 모습이라, 부르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이 올 것이니, 공경하며 맞이하면 끝내는 길할 것이다. 174쪽
정이천 선생은 동굴은 편안히 안정을 이룬 장소로 보고, 여기에 들어가 편안히 멈추어 있으면 뒤따르는 자가 반드시 온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도 참고로 하자. 역시 위 <주역>에서
주: 상육은 이미 위험의 극단에 다다라서 결국 험난한 구렁텅이에 빠진 상황입니다. 스스로 헤어날 길이 없으니 외부의 구원을 기다릴 수 밖에 없지요.
객 : 상육은 기질이 음유하니 아무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세 사람의 불청객이 찾아온 것은 참으로 뜻밖인데요, 이는 또 어떻게 된 겁니까?
주: 선생은 상육과 정응하는 구삼에 주의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양강한 구삼은 양효로서 양의 자리에 있어 대단히 적극적이므로 자발적으로 달려와 상육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이와 초구까지 대동하여 세 양이 잇달아 달려와서 함께 구원의 손길을 뻗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세 사람의 불청객으로서 그들은 의협심이 넘치는 세 '검객'과도 같습니다.
객: 세 양이 함께 달려와 구원하니 상육은 당연히 그들을 공경하겠죠? 116쪽
기다릴 때, 위험한 상황도 끝이 오게 마련이다. 기다리다 보면 뜻하지 않게 귀한 소식을 안고 오는 조력자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늘 저런 조력자를 만난다. 피를 흘리면서도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조력자가 찾아오게 되어 있다.
성장과 기다림의 철학을 말하고 있는 수천 수괘는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 괘는 여러번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생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