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일본말부터 가르쳐서야
젖먹이 아이는 ‘아빠, 빠빠, 파파’ 하고 아버지를 부른다. 어머니를 부를 때는 ‘엄마, 맘마, 마마’ 한다. 이런 말을 유아어 또는 아기말이라고 한다. 일테면, “맘마, 까까, 어부바, 지지, 찌찌, 뗏찌, 맴매, 쭈쭈, 꼬까, 치카치카, 붕붕, 띠띠빵빵, 아야, 꼬꼬, 멍멍이, 야옹이, 응아, 쉬” 따위 말들이 그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있듯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쓰는 말로 어린아이나 부모, 식구 또는 친척, 가까운 이웃 사이에 쓴다. 그러니 젖먹이 때를 지나면 되도록 쓰지 말아야할 혀짤배기 말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아빠’나 ‘엄마’ 같은 말도 젖먹이 아이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어미, 아비가 되고서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은 그 말보다는 아기들이 쓰는 말 속에 남은 일본말 찌꺼기를 말해보려고 한다. 다들 아는 말인데 조금만 눈여겨 보면 ‘어라, 이 말이 정말 우리말인가?’ 싶은 말들이 있다. 젖먹이 아기말은 아무래도 흉내내는 말이나 되풀이하는 말이 많고, 혀짤배기 소리나 ‘땅집, 코끼리차, 뼈 사진’처럼 남다른 생각으로 만들어낸 말들도 많은 게 특징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소리나 모양을 흉내낸 말도 아니고 혀짤배기 소리도 아닌, 말밑을 궁금한 말들이 있다. 다음에 드는 아기말들을 보자.
“○○야, 찌찌 먹고 넨네하자!” 할 때 쓰는 ‘찌찌’, '넨네' 같은 말은 어디서 온 말인가. 찌찌는 아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분유를 타 먹일 때 쓴다. 일본말로는 ‘젖’을 ‘치치(ちち)’라고 한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찌찌’가 일본말에서 온 말이라고 분명히 해놓았다.
찌찌(←<일>chichi[乳]) 「명사」어린아이의 말로, ‘젖’을 이르는 말.
그러니 찌찌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할 말이다. 그 다음 ‘넨네’는 ‘잔다’는 말. 그런데 이 말은 일본말 ‘넨네(ねんね)’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로는 "“○○야, 젖 먹고 자자!” 해도 얼마든지 될 말이다.
이 말은 어떤가? 아이한테 “자꾸 그러면 맴매한다!”고 할 때. 이 말은 아이가 무언가 잘못했을 때 아프게 때려주거나 회초리를 들겠다고 할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맴매’일까? ‘매’를 겹으로 쓴 말인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말에도 ‘멘메’가 있다.
생각난 김에 ‘어부바’라는 말. 이 말을 어떤 때 쓰는지 모두 알 거다. 가수 장윤정 노래 가운데 ‘어부바’가 있다. “어부바 부리 부리바 내 사랑 나의 어부바 어부바 부리 부리바 사랑해요 어부바 미운 다섯 살 애기 같아요” 같이 시작한다. 여기서 ‘부리 부리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부바’는 아이한테 업히라고 하거나 아이가 업어달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소리로 보면 우리말 ‘업다’에서 온 말 같기도 하다. ‘업어 봐’ 하고 닮아서 ‘어부바’처럼 바꿔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말에선 이 말을 ‘온부(おんぶ)’하고 말한다. ‘업는다, 기댄다’는 뜻이 있다.
이 말은 어떤가? “맘마 먹고 꼬까옷 입자” 할 때 ‘꼬까옷’은 어떤 옷인가? 한껏 멋을 부려 입은 옷을 말한다. 비슷한 말로 ‘꼬까신’도 있다. 최계락이 쓴 ‘꼬까신’이라는 동시에도 이 말이 나온다. 꼬까신은 ‘빛깔이 알록달록하고 고운 신’을 말한다. 그런데 왜 ‘꼬까’가 ‘곱다’는 뜻을 품었을까? 꼬까옷을 달리 ‘때때옷’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일본말 ‘뻬뻬(ベベ)’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맘마’는 ‘만마(まんま)’와 비슷하지만 딱히 일본말 영향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에비! 이건 지지야, 만지지 마!” 할 때, ‘에비’나 ‘지지’ 같은 말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말사전을 보면, ‘어비’ 또는 ‘에비’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다음과 같이 풀어놓았다.
에비 [Ⅰ]「명사」아이들에게 무서운 가상적인 존재나 물건. ≒어비01[Ⅰ]. ¶ 자꾸 울면 에비가 업어 간다./그렇게 떼를 쓰면 에비한테 잡혀간다. [Ⅱ]「감탄사」아이들에게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무서운 것이라는 뜻으로 내는 소리. ≒어비01[Ⅱ]. ¶ 에비, 이건 만지면 안 돼./에비, 그러면 못써요.
‘에비’가 잡아간다고 하면, ‘에비’가 이름씨꼴로 있어야 하는데 ‘에비’를 그저 ‘무서운 가상적 존재나 물건’으로만 풀어놓았다. 그런데 일본말사전에 보니 ‘에비(おに)’가 있다. ‘악마, 귀신, 영령’이라는 뜻이다. ‘지지’는 더럽거나 지저분한 것을 만지려고 할 때 말릴 때 쓴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말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일제강점기 때 쓰던 일본말이 여태 우리말 속에 숨어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한테 쓰는 말이다. 바꿔쓸 만한 말이 없다면 모를까 얼마든지 우리말이 있는 말들이다.
일본에 사는 김송이 선생님한테 이런 말들을 일본에서도 쓰는가 하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을 보내주셨다. 김송이 선생님은 ≪낫짱이 간다≫, ≪낫짱은 할 수 있어!≫ 같은 책을 우리말로 내기도 했다.
“이런 ‘유아어’를 우리 한국에서 아직껏 썼다니 놀랬어요. 일본에서는 전문가들이 벌써부터 ‘유아어’를 정확한 말로 (바꿔) 대해줘야 옳은 말을 쓸 줄 알게 된다며 젊은 엄마나 아빠들을 교양하고 있어요. 그래서 거의 안 쓰는 말들이에요. 우리나라에선 혹시 젊은 사람들도 쓰나요? 아마도 식민지 시기의 잔재라 싶은데 어떤지요?”
여기서 ‘우리나라’는 지금 발 디디고 사는 이 땅을 말한다. (2013.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