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영시식(蠅營豕息)
파리가 앵앵거리고 돼지가 씩씩대다, 이익만 보면 체면 없이 달라붙다.
파리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말은 드물다. 독침도, 날카로운 부리도 없지만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찾아 날아다니는 파리는 인간에게 불쾌감을 주고 병균을
옮기니 좋아할 수 없다.
남을 미워할 줄 모르는 시인도 ‘썩은 쥐인지 만두인지 분간도 못하고,
흰 옷에는 검은 똥칠, 검은 옷에는 흰
똥칠’한다고 파리를 욕한다(한용운).
돼지는 더하다. 사람에게 고기를 제공하고 각종 제사 때는 온 몸을 희생한다.
그래도 미련하거나 탐욕의 대명사가 된다.
파리가 앵앵거리고(蠅營) 돼지가 먹을 것을 찾아 씩씩거린다는(豕息) 이 성어는
조그만 이익에도 체면 없이 달라붙는 사람들을 나타냈다.
파리가 왱왱대며 나무에 앉는 것을 간신에 비유한 것은 고대 중국 시모음집
‘詩經(시경)’에서 비롯됐다.
小雅(소아)편의 靑蠅(청승)에 ‘윙윙대는 쉬파리 울타리에 앉았네
(營營靑蠅 止于樊/ 영영청승 지우번)’하며 임금 주변에 시끄럽게 꼬여대는
간신들을 멀리 하라고 노래했다.
樊은 울타리 번.
淸(청)나라 때의 학자 王侃(왕간, 侃은 강직할 간, 1795~?)은
‘江州筆談 (강주필담)’에서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청정하던 땅에 갑자기 똥을 버리면(淸淨地忽有遺矢/ 청정지홀유유시),
파리 떼가 몰려들어(蠅蚋營營/ 승예영영) 내쫓아도 다시 달라붙는다(驅之復集/ 구지부집).
’ 그래도 하루만 지나면 흔적도 없는데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따르는 것과 닮았다고
꼬집는다. 蚋는 독충 예.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귀양살이할 때 黃君(황군)이라는 제자가 찾아와 집 이름을
醉夢齋(취몽재)로 짓고 취해 살다 가겠다며 글을 부탁했다.
다산은 제자가 성취한 것은 없으나 사람됨이 뛰어나고 순수하며 허세가 없다고 칭찬한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파리처럼 분주하고 돼지처럼
씩씩대는데(視世之蠅營而豕息者/ 시세지승영이시식자),
그들과 비교하면 꽤 분명히 깨인 사람이다(殆了了然醒而悟者也/ 태료료연성이오자야).’
‘感興(감흥)’이란 시엔 豕息(시식)을 거친 숨 내쉰다는 표현으로 썼다.
‘세상살이 음주와 흡사하거니, 처음에 마실 때는 한두 잔
(涉世如飮酒 始飮宜細斟/ 섭세여음주 시음의세짐)..
몽롱한 정신으로 백 잔 마시고, 거친 숨 몰아쉬며 계속 마시네
(沈冥倒百壺 豕息常淫淫/ 침명도백호 시식상음음).’
돼지가 씩씩거리며 먹이를 찾는 것 대신 개가 등장하는 蠅營狗苟(승영구구)도 있다.
눈앞의 먹이를 보고 딴 놈이 가로챌까 두려워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구차한 개는
唐(당)나라의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인 韓愈(한유, 愈는 나을 유)의
送窮文(송궁문)에서 표현했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곤충이나 짐승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떳떳하지 못하게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은 숱하다.
남이 손가락질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척한다.
그러다 들통이 나면 모두 남 탓, 주위의 환경 탓을 한다. 탓할 줄 모르는 파리나 돼지보다 못한 일이다.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