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일하다 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라면 먹고 자고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이래도 저래도
먹고 잔다는 것은 꼭 들어있다. 다름없는 중요한 삶의 기초이다. 요즘의 여행에선 잠자리가 세계 공유의 것이라도 되는 것인지 호텔체인점까지 생겨나
어디를 가든 따스한 물에 푹신한 침대가 갖추어 있다. 그래서 아늑한 여행길이다. 헌데 먹는 것만은 그렇지가 않다. 사는 느낌에 먹는 것의
다양함이 별미로서 존재한다. 이것마저 어디를 가든 같다한다면 아마도 여행의 맛 반 정도는 감해지고 말 것이다. 그 맛을 찾아 여행길에 오르는
이도 있다.
쇼핑천국 홍콩은 맛에 있어서도 별천지라 하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5대 요리라 하면 육류요리가 많고 만두, 교자 등
밀가루 요리가 주식인 농후한 맛의 베이징 요리, 마파두부에 매운 고추도 사용하고 향신료로 우리로선 다소 거북함을 느낄 사천요리, 홍콩에
일반적으로 퍼진 깔끔한 편에 속하는 광둥요리, 조미료가 적고 간장하고 설탕을 이용해 그런대로 우리가 먹기는 그만인 서양식에 가까운 상하이 요리,
당근으로 모양을 내고 해산물의 맛을 그대로 살린다는 신타우 항구에서 유래된 차오저우 요리를 말한다.
아무래도 마파두부나 베이징
덕을 빼고는 상하이요리나 차오저우가 우리 입맛에는 맞는다. 나는 이색적인 그들의 요리를 이참에 맛볼 수 있다는데서 실은 흥분하고 있었다. 기름을
써도 강한 불로 단시간에 볶는 것, 기름에 달궈 볶는 것, 튀겨내는 것 , 졸이는 것, 녹말가루를 발라 튀기는 것 등등 참으로 다양하니 찌고
삶고 굽고 끓이는 요리법까지 포함한다면 대단한 조리법이다. 각종 양념에 다양한 재료, 둥그런 것에 덩어리진 것, 작게 썰고 다진 것 등등
음식모양까지 합하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것저것 맛을 봐도 다 섭렵하지는 못할 것이다.
홍콩 사람들에게서 얌차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다. 차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마실 물은 안줘도 차는 내놓는 그들이다. 그런 차를 마실 때 그들은 딤섬이란 것을 같이 먹는다.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흔하게 퍼진 딤섬요리다. 홍콩에 들어서자 처음으로 맛 본 요리가 바로 딤섬이다. 그런데 비교적 온순하다 싶은 딤섬을 같이
간 동료들이 손을 못 댄다. 아내도 매한가지다. 양념을 한 만두 속이 문제이다. 산초 열매나 닭의 지방 말고도 특수하게 만든 향신료를 듬뿍
끼얹어 놓는 바람에 우선 후각에 거부감이 작용하고 만다.
담담한 것을 즐기는 우리로서는 역부족인 셈이다. 죽을 맛이 되는 표정을
살피자니 안타깝기도 하다. 누군 식욕이 넘쳐서 탈인데 누군 먹성이 시원찮아 전전긍긍이다. 김치하고 고추장을 갖고 따라나선 아내는 재빨리 고추장을
꺼내 만두 속에 채워 넣더니만 먹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중국 맛 구경은 다하였다는 생각이 대번 들었다. 그렇다고 맥도날드를 그곳 까지 와서
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그날 저녁 100불이면 시계 6개는 산다는 가짜가 판친다는 야시장에 들른 김에 그들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점을 들렸었다.
닭고기에 오리고기가 빨래 줄에 널리듯 진열장에 걸려있었다. 옆 테이블에선 털을 벗겨 생겨난 닭의
노란 기름껍질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역시 동료들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진한 향내에 동료들은 안주 없는 맥주만 마시고 그냥 나왔다. 못
먹더라도 시켜보기라도 할 것인데 하는 후회감이 들었지만 다른 동료 때문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느끼한 육류보단 해산물이 나을 것이다
싶었다.
둘째 날 저녁 우린 홍콩의 센트럴 동네 관광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탔다. 사이쿵이란 곳을 향하는 것이다. 사이란 말이
서쪽을 말하기에 그곳에서 가까운 곳이라 여겨 탄 것인데 택시는 구룡으로 향하고 있다. 말도 안 통하는 기사가 우릴 잘못 데려 갈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마침 차에 붙여진 그의 성씨는 이 씨였다. 나는 얼른 동료 한사람을 가리키며 똑같은 성이라 하였다. 그는 믿음직한 기사였다.
내가 착각하였던 곳은 사이잉판이란 곳으로 여전한 시내 한복판 상가 밀집 지역으로 사이쿵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미터기가
100불을 넘어섰다. 멀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라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윽고 구룡의 어느 어촌의 곳에 다다랐다. 바닷바람이 불자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홍콩섬과는 다른 분위기다. 180불을 지불하였으니 온 거리에 비해 오히려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산물 요리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길 변에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언뜻 일본사람이나 동양인이 좋아할 곳이라며 싸게 줄 것이라 하는 말이 들려온다. 그 호객꾼 여자를
믿어보기로 하였다. 해산물 이름을 잘 모르니 골라서 먹는다는데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필요도 없었다.
수족관에
꽉 찬 고기들 중에서 탐나는 것들만 콕콕 찍으면 그만이었다. 8인기준 랍스타 두 마리, 바다가재 10마리, 게 열 댓 마리, 새우 20마리,
생선 큰 것 1마리, 가리비 조개 8마리를 주문하니 소쿠리가 한 아름이었다. 덩치도 큰 것이 가격이 1900불이니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싸기도
하여 마침 잘되었다 하였다. 그런데 또 그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푸짐한 재료에 진수성찬이면 무엇을 할까. 치즈 범벅을 한 랍스타, 후추를
잔뜩 끼얹은 갯가재, 가루파란 생선엔 느물거리는 간장이 철렁거렸다. 원형 그대로 삶은 조개류들만이 제 맛을 다한다 하였다.
어쨌거나
그런대로 배불리 먹고 마실 수는 있었다. 나중엔 갑오징어에 대합을 추가로 더 먹었다. 그러면서도 이 좋은 재료를 우리나라 식으로 한다면 그야말로
진품일 것이란 생각이 떠나지는 않았다. 어찌 요리를 한 것이냐 로서 천차만별의 느낌을 갖는다. 특정 져진 맛에 길들여져 이미 굳어진 입맛이다.
그 간 가꾸어진 미각, 후각을 어쩌지는 못하는 것이다. 기껏 가꾸고 보살핀다는 것이 어느 한 쪽 그것도 편견에 가까웠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은 편견이 많고 남자는 오만이 많다 하더니 그런 생각도 따라서 든다. 여자들이 비위에 약한 경우가 더 많다.
다 먹고나 그들의
차를 마시다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노폐물과 기름 끼를 빼주는 차와도 같이 차분한 느낌의 마음으로 몸에 젖은 맛의 편견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해 봄직도 하다. 실제 맛의 묘미 그 감각의 결정은 뇌가 자극하는 것이고 뇌가 알아차리는 것이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 혹여 시골이니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의 막차시간이 걱정이었는데 도심지까지 구간 구분하여 교통연계가 잘되어 있었다. 우린 13명이 타는 경 버스를 타고 나와
전철을 이어 타고 호텔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아낸 피곤하였는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낸 이국에서 맛 본 해산물에 흡족하였는지
자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오늘의 즐거움으로 뇌가 그리 편견을 지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