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계단아래서 물씬 풍겨오는 냄새....
어떤 이에게는 역겨울지 모르지만 맡아본 사람은 그 향기에 감회를 느낀다.
어떤 중년을 조금 넘긴 여인이 바닥에 앉아서 칼로 껍질을 벗기는 것은 더덕이었다.
더덕은 가만히 놔 두면 향기가 가만히 있지만 건드리기만 하면 진한 향기를 피운다.
식물도 생명에 위협을 느낄 때면 진한 내음을 풍겨 적으로 부터 자기를 보호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향기 때문에 더덕은 살수도 있는것을 생명을 잃고 만다.
산길을 가다가 문득 풍겨오는 더덕 내음에 주위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더덕싹이 있다.
지나다가 건드린 더덕 싹에서 풍긴 냄새다.
더덕은 자기의 잎을 뜯어먹는 천적을 쫓기 위해서 짙은 냄새를 풍겼을 것이지만 모르고 지나쳤을 더덕이 자기가 뿌린 냄새로 인해서 사람손에 캐어지게 된다.
그리고 더덕이 풍기는 그 지독한 냄새는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아서 보는대로 캐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더덕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도 많은 사람들 손에 이제는 자연생이란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나는 더덕은 보양 식으로도 유명하여 사람들은 보는대로 캐는 것이 멸종을 불렀을 것이다.
시장에서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는 더덕은 인위적으로 재배한 더덕이다.
자연생보다는 향기가 떨어지긴 하지만 재배가 늘어가면서 귀한 더덕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것이 다행인지 모른다.
하기는 우리가 먹는 모든 식품이 대량사육이거나 대량 재배거나 하지 않고 예전처럼 자연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식량난에 벌써 멸종했을지 모른다.
흔하게 먹는 과일도 몇 천평에서 몇 만평까지 과수 농가가 있으므로 우리가 질 좋은 과일을 먹을 수 있고 대량으로 사육되는 목장이 있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물에서 사는 물고기 까지도 대량으로 양식을 함으로 우리는 생선도 많이 또는 값싸게 먹을 수 있다.
그런 더덕이 예전에는 자연생에만 의존했었다.
사람들은 땅이 얼기 전의 한가한 가을에서 땅이 해동을 한 봄에 이르러 산에가서 더덕을 캤다.
시장에 파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한 더덕이다.
하도 캐는 사람들의 손길이 없어 어느거것은 하도 묵고 뿌리가 크다보니 그 속이 비고 그 안에 물이 가득 찬 것도 캔다.
누구는 한 뿌리에서 더덕 싹이 여덟개나 나온것을 캤다고 했다.
그런 더덕은 무 뿌리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귀한 더덕을 나는 아주 많이 먹었다.
더덕은 볶아도 먹고 구워도 먹고 여러가지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이 있지만 우리는 그 더덕을 장아찌를 만들었다.
나의 학교 도시락 반찬은 주로 더덕 장아찌 였는데 나는 그것이 싫었다.
더덕 장아찌는 기름을 치고 그 위에 깨를 뿌려 맛은 좋았지만 아주 산골에 사는 것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더 싫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점심 시간만 되면 함께 도시락을 드시는 선생님이 도시락 뚜껑을 가지고 내게 오셔서는 더덕 장아찌를 덜어가시는 것이다.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도시에서 사셨던 선생님에게 더덕 장아찌는 얼마나 별식이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더덕은 껍질을 벗겨 양념을 한 다음에 숯불에 구우면 고기보다 몇배나 맛이 있다.
쌉싸름한 맛과 짙은 향이 어우러지고 양념이 배인 맛은 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디서 사다가 저렇게 앉아서 하얗게 껍질을 벗기고 파는 더덕이 과연 저 여인의 하루 벌이가 될지는 모르지만 더덕을 까는 것이 겁나서 사다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 여인은 저렇게 앉아서 품팔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공짜로 더덕의 향기를 맡는다.
도심에서 맡는 더덕의 향기는 더 진하게 코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