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선생님이 자녀에게 남긴 편지를 읽으며2
물고기의 입술과 강아지의 이마 몰골...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간지 어느덧 두 해가 지나고 또 새해를 맞이합니다.
유배를 떠 날 때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고 위로했던 사람들의 소식도, 유배에서 풀릴 만한 조짐은 없고, 오히려 자신의 유배조차 잊혀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것이 자녀들에 대한 기대와 그들의 성장인데, 이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유배, 그로인한 폐족(廢族)의 화(禍)로 인해 앞날이 불투명해진 자녀들 역시 좌절과 원망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과거에 응시할 자격조차 박탈당한 이들에게 아버지가 부탁한 학문이며, 글공부, 역사공부 등의 권고는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의 마음을 갖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새해가 밝았구나.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해야 한다. 나는 소싯적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일 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보았다. ...(중략)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글과 편지로 수없이 권했는데도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예악에 관해 하나도 질문을 해오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셈이냐?
너희들이 내 말을 이다지도 무시한단 말이냐? 도회지에서 자라난 너희들이 어린 시절보고 배운 것이 문전의 잡객이나 시중드는 하인, 아전들뿐이어서 말씨나 마음씨가 약삭빠르고 비천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못된 병이 골수에 박혀 너희 마음속에 착한 행실을 즐겨 하고 공부하려는 뜻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밤낮으로 애태우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너희들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거칠어져 한두 해 더 지나면 완전히 내 뜻을 저버리고 보잘 것 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만 같은 초조감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런 걱정에 병까지 얻었다.”
갑자기 닥친 재난과 환경의 변화, 주변의 시선, 처지의 몰락, 미래에 대한 불안, 상대적인 곤궁함... 이 모든 것들이 아비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정약용 선생이 몰랐을 리 없고, 바로 이런 이유로 자녀들이 방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몸져누울 정도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오늘날 참 팍팍한 세상을 살면서 삶의 피곤함에 찌들어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해봅니다.
자녀들에게 늘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해 무엇인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갖고 있어, 여건만 되면 ‘기러기 아빠’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들.. 자신이 자녀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자신으로 인해 아이들의 장래에 절망만을 남겨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과 교육방법에 대한 정당성이나 평가를 하기에 앞서 자녀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봅니다.
정약용 선생님은 이러한 괴로움, 자책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책임을 다합니다.
자녀들의 반항이나 원망에도 포기할 수 없는 아비의 역할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들어 자녀교육의 책임을 아내나 다른 집안의 어른들에게 미룰 수 있었겠지만.. 그 염치를 챙기기 보다 피눈물이 섞인 절절함을 동원해 자식사랑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딸에게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한참 생각해봅니다.
정약용 선생님이 이 포기할 수 없는 자식사랑의 근거를 ‘고난의 혜택’이라는 설득으로 풀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 마음속에 약간의 성의만 있다면 아무리 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는 법이다. 너의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어찌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지식과 이치에 통달하는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공부 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 있고, 가난하고 곤궁하여 고생하다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인정(人情)이나 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 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이와 같은 편지가 절망 속에 방황하던 자녀들에게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고 자극이 되었는지 당장은 알 수 없으나 현실을 직시하고 벼슬길이 막힌 지금 그것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선비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부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설득에 힘을 더하기 위해, 일찍이 부모를 잃은 율곡선생, 남에게 배척을 당한 집안의 우담선생, 그리고 자신의 가문과 비슷한 난리를 겪은 성호 이익 선생을 예로 듭니다.
그리고 확신을 주기위해 자신의 부탁과 설득이 단지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나 부귀영화의 회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이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폐족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 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시를 한 구절 인용해봅니다.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하였사오나 나는 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 보다 좋으니 이다.” (시편 119:66-72)
고난과 고통의 시간에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경지에서 터득한 ‘고난당하는 것의 유익함’을 자녀에게 설득하고 있는 정약용 선생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며 ‘못난 아버지’로 인한 고통이 나의 딸에게 절망만은 아니라는 위로도 얻습니다.
정약용 선생께서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셨는지...
이런 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도 너희와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세상에 의해 버림을 받아 혼인길도 막히고 천한 결혼을 하여 ‘물고기의 입술과 강아지의 머리 몰골’을 한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는 협박까지 동원합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기에... 염치는 없어보이지만.. 저 역시 ‘물고기 입술과 강아지 머리 몰골’로 요즘 부쩍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나의 딸에게 협박을 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