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의 경제학 |
꺼꾸로 |
2008-09-09 08:45:21, 조회 : 355, 추천 : 24 |
광우병의 경제학
- 시장만능의 '멋진 신세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태인(경제평론가)
아이들이 밝힌 촛불이 점점이 일렁인다. 책임을 다 하지 못한 중년 사내의 시야가 이내 흐려지면서 촛불은 파스텔톤의 들불로 부옇게 번져간다. 이 안타까운 촛불을 어떻게든 꺼버리려는 자들이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을 들먹이고 있다. 정부의 말을 듣고 있자면 금과옥조의 명확한 지침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천만에. 광우병에 대처하는 나라들의 자세는 사뭇 달랐고 그 결과 역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인다.
영국과 일본
여기 영국이 있다. 불행하게도 1985년 최초의 광우병이, 그리고 1996년 결국 인간 광우병이 확인된 나라다. 모든 것이 최초였으니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정당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6번 이상의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88년에 구성된 연구팀은 스크래피(양의 광우병)가 200년간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은 것처럼 광우병도 '종간장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안심했고 90년 5월 고양이가 전염됐지만 이 낙관은 여전히 유지됐다.
육골분(MBM)사료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돼지와 닭의 사료로도 쓰지 못하게 금지하는 조치(즉 교차감염의 예방)는 90년에야 취했고, 89년 소의 부산물(SBO)을 사람이 먹지 못하도록 했지만 강제금지는 아니었다. 또한 기계로 뼈에 붙은 찌꺼기 고기를 뜯어내는 MRM(후에 ARM으로 발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89년에 알고서도 95년에야 금지했다. 백신 등 약이나 수술도구에 의해서도 감염이 될 수 있고, 광우병 위험물질(SRM)에서 추출한 화장품에 대한 조치도 너무 늦었다.
이 모두가 당시에는 '과학적 증거'가 없는 '괴담'이었고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10년간 믿었던 국민의 불신과 공포는 하늘을 찔렀다. 당연히 팔리지 않는 소를 기르는 것은 온전히 손실이니 집단으로 소를 도살할 수 밖에 없었다. 혹자는 광우병에서 비롯된 경제적 손실이 60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고 직접적으로 광우병 대책에 들어간 돈만 11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무엇보다도 160여명의 목숨은 또 어찌하랴. 괴담의 대가는 이렇게 혹독했다.
또 하나의 섬나라 일본이 있다. 2001년 일본은 OIE로부터 위험평가등급을 받기 위해 표본 300마리를 조사했고 광우병 소가 발생됐다. 영국에 정확한 평가를 의뢰하는 동안, 폐기했어야 할 광우병 소가 육골분으로 처리되도록 하는 실수를 저질러 국민의 불신이 치솟고 9월까지 무려 40-50%의 쇠고기 소비가 감소했다.
다행히 일본 정부는 신속하게 대처했다. MBM 판매 금지나 SRM 제거는 물론, 지금 평가해도 가장 철저한 조치를 취했다. 매년 13만 마리의 건강한 소를 포함, 도축되는 소를 모두 BSE 검사하고 그 결과(지금까지 34마리 감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또한 전면적인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도입했다. 종합적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식품안전청을 신설하고 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하는 제도적 정비도 늦추지 않았다.
첫해에 265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등 지금까지 총 11조 3천억원 가량을 쏟아 부었지만 일본국민들은 이제 자신의 쇠고기를 믿으며 미국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경험을 내세워 엄격한 위생검역조건(현재 20개월 미만 쇠고기, 내장 제외)을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미국과 한국
미국은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세계에서 가장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89년 영국 소와 사료(MBM) 수입을 금지했고, 91년에는 영국 쇠고기의 수입을 막았다. 외부로부터 광우병 인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정부가 취해야 할 당연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영국이 차례로 취한 3단계 사료 조치 중 1단계만 시행하고 있으며(소의 혈액을 송아지에게 먹이고 있으니 이마저도 철저하지 못하다) 등뼈에 대한 AMR은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목장에서 죽은 동물의 도축도 막지 않으며 도축소의 0.05%-0.1%만 검사하는 데 불과하고 이력추적시스템은 도입되지 않았다.
미국의 자랑은 2003년 12월 캐나다에서 도입된 소를 빼고는 광우병 소가 발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미 충분한 예방정책을 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일본과 유럽에서는 30만 마리에서 50만 마리당 한 마리 꼴로 광우병소를 발견한다는 점에 비춰 보면 과연 이 주장을 믿을만 할까?
폭스와 피터슨은 유럽 수준으로 미국에서도 '고위험 소'를 검사한다면 99.999%의 확률로 광우병 양성 소를 찾아낼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재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과 광우병 소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과 정보수집, 처리 능력을 가진 미국이 이렇게 미온적인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미국 자본의 힘과 로비 정치 때문이다. 2004년 미국 정부의 추가대책은 7개 대기업으로 이뤄진 강력한 축산업자들의 로비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과학적 근거'가 없이 비합리적인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불필요하고 값비싼 검사를 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지속적인 비용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축산업의 몰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스탠리 프루시너는 미 하원 코커스에서 전수검사를 지지했다. "은폐는 좋은 방책이 아니다"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것은 태양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이 그랬듯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미국의 광우병 예산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01년 40억원에서 03년 210억원으로, 그리고 05년 600억원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은 사후 약방문식의 정책이 앞으로 초래할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 역시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을 따라, 즉 미국 수준의 조치만 취하고 있다. 극히 미미한 조사만 하고 있으니 광우병 소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발견되지 않았다. 역시 사후에야 약방문을 지을 요량이다.
문제는 미국 축산기업에게 한국이 아주 중요한 나라라는 데 있다. 미국 축산업의 이윤마진은 2% 수준이다. 즉 소비자들에게 인기있는 살코기만으로는 거의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각 국민의 식생활 차이는 이들 기업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의 애널리스트 시베링하우스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시한다. 미국에서는 거의 소비 되지 않지만 일본,한국 등 아시아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창자, 혀, 목둘레살 등 소의 부산물 10 부위를 수출한다면 한 마리당 100달러 남짓, 즉 10만원 정도를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500킬로짜리 소 한 마리가 100만원에서 120만원을 호가하고 있으니 부산물 수출은 황금알 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이것이 미국이 한미 FTA 착수, 타결, 그리고 의회비준 등 단계마다 전제조건으로 쇠고기의 추가개방을 요구한 이유인 것이다. 바로 광우병 경제학의 핵심은 이런 사실이다. 미국 축산업체의 이익을 위해 국제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과학적 증거로 삼아서 상대 국가 내의 지배계급과 연합하라!
결국 우리의 광우병 대책 수준도 미국 이하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증거와 국제적 기준'이다. 현재의 혼란을 미봉하기 위해 현실에 눈을 감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눈을 감으라고 요구하는 건 더더욱 위험하다. 세계의 사례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해서 철저한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더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현재의 협상을 중단하고 일본 수준의 광우병 대책을 수립하고 신속하게 집행하는 일이다. 일본과 캐나다의 사례를 참조해서 주먹구구로 계산해 보면 한국에서는 5년간 약 5000억원에서 6000억원을 투입하면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상태를 만들 수 있다.
정부는 한우 등 국내 소의 고급화로 수입개방의 파고를 헤쳐나가자고 호소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의 화우를 예로 들기도 했다. 정말 그게 방향이라면 바로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앞으로 쇠고기 시장은 '값싸고 질좋은'가의 여부가 아니라 안전성에 의해 고급과 중급, 그리고 저급으로 나뉘어지게 될 것이다. 정말 고급 시장을 유지하려면 우리의 소부터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장차 세계인들의 믿음을 사야 할 것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동시에 경제적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문제는 간단하다. 사전예방원칙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사후약방문을 따를 것인가? 일본과 EU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국과 미국을 따를 것인가? 여기에 우리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 촛불을 꺼뜨려서는 안된다. 국내의 축산업체들이 광우병 전수검사를 요구하는 것은 극히 바람직하다. 정부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국민의 건강을 먼저 생각할까, 아니면 미국 축산업체의 이익을 생각할까?
한미 FTA와 사전예방원칙의 무력화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의 시초는 한미간 위생검역조건 개정이었다. 그러나 직접적 계기가 된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어느 덧 시장만능의 세계가 우리들의, 특히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됐다. 따라서 그것이 의료민영화나 교육시장화, 공기업 민영화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촛불의 진화였다. 결국 촛불은 아이의 생명에서 시작해서 사회의 생명, 자연의 생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공공성 파괴에 대한 광범한 우려를 기름으로 삼아 타올랐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정권타도"라는 구호는 2006년 봄, 한미 FTA를 추진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명박정부의 경우 이 구호는 정권이 시작된지 불과 1개월만에 앳된 아이들의 입에서조차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모든 생명을 시장에 맡기자는 공공성 파괴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은 광범위한 주제이지만 여기에서는 생명과 직접 연관된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 보기로 하겠다. 누구나 다 알듯이 쇠고기 시장 개방은 한미 FTA 착수의 선결조건이었고(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쇠고기가 이때 나왔다), 체결 이후에는 한미 FTA 비준의 선결조건이 되었다(촛불집회를 불러 일으킨 내장과 뼈포함 모든 쇠고기의 수입으로 개정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되새겨야 할 사실은 쇠고기 협상에서 나타난 대립 양상이 한미 FTA 비준 후에는 거의 전 사회적 이슈에서 되풀이되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환경과 건강문제에서 사전예방의 원칙이 미국 고유의 통상 논리에 의해서 원천적으로 부정되기 때문이다.
쇠고기 수입의 예를 들자면 미국은 한국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려면 그 과학적 증거를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주장은 '필요불가결 증명'(necessity test)의 응용이다. 즉 30개월을 기준으로 수입규제를 하려면 그 규제가 필요불가결함을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사후예방의 원칙에 대비해서 '사전증명의 원칙'이라고 부를 만하다. 쉽게 말해서 사전예방의 원칙이란 아직 확증할 수는 없지만 생명이나 자연에 치명적일 위험이 존재한다면 우선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인 반면, 사전증명의 원칙은 그 위험을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상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즉 생명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기업 이윤을 먼저 보호할 것인가의 대립인 것이다.
미국과 EU가 호르몬 사용 쇠고기 수입 규제를 놓고 WTO에서 지루하게 공방을 벌이는 것도 이 두 원칙이 결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르몬 사용 쇠고기가 인체에 해롭다는 것은 오랫동안 널리 먹고 난 후, 어떤 질병이 만연한 뒤에야 비로소 표본이 만들어지고 이제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 질병이 과연 호르몬 사용 쇠고기 때문인지에 관해서 끝없는 '과학적 실증 공방'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의 소 1억 마리 중 무려 6천만 마리를 소유하고 있는 미국 축산 대기업은 수의학계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끝없이 발주하고 있으니 이 논쟁에서 사전예방의 원칙이 완승을 거두리라 기대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이다. 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논쟁이 100년을 끈 것은 그 좋은 예이다.
한미 FTA 협상 중에 섬유관세를 조금 더 인하하는 대가로, 일개 산자부 국장이 보건복지부나 농림부와는 아무 상의도 없이 덥썩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진 LMO(유전자 변형생물체) 규제완화도 똑같은 경우이다. LMO라는 완전히 새로운 생물체가 인체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어떻게 미리 증명할 수 있겠는가? 이미 곡가급등을 빌미로 LMO 옥수수가 대량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모든 과자 원료에 다 들어가는 이 LMO 옥수수가 우리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병을 안겨 주고 나서야 우리는 과학적 공방을 시작할 수 있을 터이다. 과연 왜 그래야 하는가? 섬유류 수출을 얼마간 늘리려고(사실 관세를 내려도 이른바 '원사기준' 때문에 혜택은 일부분에만 돌아간다)? 광개토대왕을 광고에 등장시켜 마치 한미 FTA만 맺으면 미국 시장을 정벌할 것처럼 선전하면서 한국 정부는 이렇게 알량한 수출증가(1년에 최대 2억 달러 추정)와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맞바꿨다.
나아가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벌어진 에틸사 사건(Ethyl case)은 이 문제가 신물질 일반에 광범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식 FTA가 사전증명의 원칙에 강제 실행수단을 부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 바로 그것이다. 캐나다 정부가 미국 회사 에틸이 수입하는 MMT가 신경계통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를 기초로 수입 금지 법안을 제출하자 에틸사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2억 5천만달러를 요구하는 투자자 국가 제소를 했고 결국 캐나다 정부는 이에 굴복해서 13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법안을 폐기했다.
이제 정부는 투자자국가제소권의 위력을 잘 안다. 어느 공무원이 이런 어마어마한 위협을 무릅쓰고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만들겠는가. 미리 알아서 기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광범하게 나타날 것이다. 알려진 투자자국가제소 사례 중 1/3이 건강과 환경에 관한 사건이었다. 결국 한국은 모든 꼬투리를 없애기 위해 미국의 건강 및 환경 기준을 따르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공무원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굳게 믿고 있는 미국의 이 기준은 세계적으로 가장 수준이 낮은 것이다. 로비정치라는 미국 자본주의의 특징이 가져온 결과이다. 결국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한미 FTA의 비준은 국민의 건강과 자연의 수호를 국제협약의 수준에서 무력화하는 일대 사건이다.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우리는 영국의 광우병이 대처수상 시절의 사료규제 완화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8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시장만능의 기조가 이제 대륙의 맨 끝, 바다 건너 한국에서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촛불은 어느 덧 시장만능론에 입각한 모든 정책이 우리들의, 특히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자각했다.
장대비가 세차게 몰아쳐도 타오르는 촛불에 놀란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대운하, 전기, 수도, 개스, 그리고 의료민영화, 영어몰입교육 등을 하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이 모든 약속은 헌신짝이 되었다. 공기업 민영화는 이제 공기업 선진화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마구잡이로 시행되고 있다. 국제중학교에서는 영어로 모든 수업을 다하며 수도는 장기위탁 방식으로 선진화되고 발전소의 소매부문, 개스의 도매부문 민영화 계획도 언론에 흘러나오고 있다. 대운하 역시 4대강 정비사업 속에 숨은 채 언제라도 수면 위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일일이 폐해를 거론할 지면은 없지만 이러한 민영화/규제완화는 현재 제공되는 최소한의 필수적 공공서비스도 무너뜨린다. 예컨대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건강보험(정보의 비대칭성), 교육(외부성이나 평등 지향) 등 가치재 산업을 민영화하면 고급 서비스 시장이 발전하는 대신 공교육이나 공공의료에 투입되는 자원과 인력이 줄어들어 사실상 공공성이 무너지게 된다. 일반 국민은 그 동안 당연히 누리던 공공서비스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전기, 철도, 개스, 수도, 우편 등 네트워크 산업의 경우에는 자연독점과 교차보조의 필요성 때문에 공기업이 담당해 왔다. 이런 산업을 민영화하면 일반적으로 공공요금이 상승하는 가운데, 특히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공급되는 서비스 가격은 급등하거나 서비스 자체가 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떠한 민간기업도 교차보조금까지 주면서 이런 서비스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폐해 때문에 영국의 철도는 일부 재국유화했으며 미국 아틀란타시는 상수도의 장기위탁계약을 폐기했다.
한미 FTA는 한번 민영화되거나 규제가 완화된 분야에서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라도 되돌아갈 길을 끊어 버린다.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민영화를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서비스 분야의 현재 유보리스트에 적용되는 래칫 조항(역진불가능 조항)이나 투자자 국가제소권은 재국유화, 또는 공적 규제의 강화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경제적 양극화로 곤궁해진 서민의 마지막 버팀목인 보편적 공공서비스마저 영영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2-3년 최대의 경제문제는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을 계속 들쑤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될 것이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부동산 규제의 완화, 그리고 한반도 대운하는 전 국토에 투기 붐을 일으킬 것이다. 수출지상주의와 함께 건설 붐은 바로 박정희식 성장 전략이다. 결국 이명박정부의 경제정책은 낡은 80년대식 신자유주의에 더 구닥다리인 60-70년대식 박정희주의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박정희식 전략이 21세기에도 통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수입물가를 부추겼고, 부동산 붐은 허망한 풍선을 극단으로 부풀릴 것이다. 마치 폰지게임처럼, 또 서브프라임 모기지 게임처럼 파국 직전의 정점을 향해 경제는 치달을 것이다. 달뜬 열광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세계경제의 침체, 중국경제의 쇼크가 단숨에 거대한 버블을 터뜨리는 순간을 2-3년 내에 목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시장만능론의 폐해는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안을 준비하고 또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서두에 멕시코형 길이라고 명명한대로 지배계급의 뜻대로 더 많은 개방화, 더 많은 민영화를 국민이 선택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시장해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해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특히 바야흐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를 생태문제, 농업문제에 시장 해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공공성을 강화해야만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고 지지를 얻을 것인가? 여기에 해답이 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투쟁은 우리가 공동체적 해법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촛불로 밝혀 주었다.
200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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