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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예배와 말씀과 사명의 자리를 선택하라
설교본문 : 에스라 7:1~28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4년 9월 28일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갈과 협박으로 성전 건축이 중단된 지 15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짓 상소문을 받고 성전 건축을 중다하게 하라는 조서를 반포한 왕이 정신병에 걸려 죽고, 그의 군대장관 중 한 사람이었던 다리오가 새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가 왕이 된지 2년이 지났을 무렵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과 경고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성전건축이 다시 시작되자 또 다시 유브라데(유프라데스) 강 건너편의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와서 협박을 하며 성전건축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의 기에 눌리지 않고 유다인들이 성전 건축을 계속하자 자기들 딴에는 성전건축을 방해한답시고 다리오 왕에게 이들이 상소문을 올립니다. 그 상소문에는 유다인들 말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해 성전을 짓고 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대제국인 페르시아의 황제가 포로백성의 성전을 짓는 일에 조서(칙령)까지 반포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리오 왕은 페르시아의 온 나라를 다 뒤져서 그곳에서 무려 480km나 떨어진 악메다 궁에서 고레스 왕의 칙령을 발견합니다. 악메다 성은 페르시아 왕의 여름별장인데 세상에 그곳에서 고레스왕의 칙령이 발견된 것입니다.
칙령이 발견되자 다리오 왕이 유브라데(유프라데스) 강 건너편 총독인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에게 조서를 내리자 그들은 즉시 왕의 명령대로 행하여 최선을 다하여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도왔습니다. 여기에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여 유다 장로들을 격려하니 성전 건축은 그야말로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어 다리오 왕 6년 아달월 15일에 완공되었습니다.
다리오 왕 6년이면 주전 515년이므로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무너진 지 꼭 70년 만에 완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70년 만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게 하신 것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힘들게 짓게 하실 것을 70년 전에는 왜 성전을 무너뜨리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다시 성전을 세우기까지 70년 동안이나 남의 나라에 포로가 될 만큼 고생을 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70년 만에 성전을 다시 짓게 하신 일에 담긴 말씀과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사의식(예배)의 회복
성전이 완공되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이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100마리, 숫양 200마리, 어린양 400마리를 드리고,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12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을 할 때에는 소 22,000마리, 양이 120,000마리를 사용했던 것(왕상 8:63)에 비하면 형편없이 적은 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바친 엄청난 양의 짐승보다 이때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의 초라한 예물을 더 기뻐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때에는 백성들의 헌신이라기보다 솔로몬의 권세의 힘으로 바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빈곤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여 자기들의 것을 바쳐 하나님께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과부의 동전 두 렙돈을 바리새인들의 많은 돈보다 더 큰 헌금이라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에 그들이 좋고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를 부실하게 드리니 그 성전을 무너뜨리셨으나, 이제 그들이 비록 초라하지만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드리니 그들을 통해 다시 성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1) 제사 의식의 회복
성전은 건물을 자랑하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의 성공 여부는 그 건물이 얼마나 아름답게 잘 지어졌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이 완공된 후에 예배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잘 드려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유다인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성전이 완공되자 즉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순차로 나누어 각 순차대로 번을 정하여 제사 의식을 행하고, 성전 봉사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아직 4개 가문밖에 오지 못했으나 부족한 중에서 그들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배가 회복되도록 한 것입니다.
2) 유월절과 무교절의 회복
성전이 완공된 후 정월 10일이 되자 유다인들은 모두 유월절 준비를 위하여 1년 된 흠 없는 양을 따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14일 저녁이 되자 일제히 따로 준비해 두었던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이때 먹는 어린 양을 유월절 양이라고 하는데, 이날에는 유다인들은 물론 이방인들 중에서 이방인의 더러운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까지 모두 다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 날인 15일부터 7일간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무교절인데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은 물론 무교절까지 온전하게 지켰습니다.
3) 이 예배를 드리는데 70년이 걸렸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솔로몬의 성전을 무너뜨리고 다시 성전이 세워져서 이렇게 예배가 온전하게 회복되기까지 70년이 걸렸습니다. 이 예배가 솔로몬 시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족하게 보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실만한 참된 예배였습니다. 그 예배 속에 이들의 진정한 마음과 헌신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곳이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기겠지만, 우리의 영원한 삶이 바로 이 예배의 자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1주일 168시간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 바로 이 예배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유다인들이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70년간 고생을 한 것처럼 그런 아픔을 겪는 자가 됩니다.
2. 율법(말씀)의 회복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완공한 후 50여 년이 흐른 뒤의 일입니다. 아닥사스다가 페르시아의 왕으로 있을 때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론의 16대손으로, 율례와 규례(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말씀에 익숙한 학자란, 단순히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그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가 페르시아 땅에서 항상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살고 있는 동안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 지은 성전에서 말씀에 기록된 대로 희생 제사가 드려지기는 했지만, 정작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리는 백성들의 삶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에 있는 동안 누가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었으니 예배 의식에나 참여하는 그저 그런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향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 지어진 성전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는 드리고 있으나, 아직 말씀을 모르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자기가 편안하게 페르시아의 왕궁에나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즉시 아닥사스다 왕에게 허락을 받아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는 갈급한 심령들에게 가르치러 가는 에스라의 헌신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그냥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간다면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습니다. 그저 고생뿐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고생의 삶을 선택합니다.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갔듯, 우리도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지도록 착하고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 일들을 통해서 혹시 몇 명이라도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온 정성을 다하여 그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3. 에스라를 도우시는 하나님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에게 아주 호의적인 조서를 반포합니다. 그 조서의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1) 원하는 자는 에스라와 함께 예루사렘으로 가는 것을 허락한다.
에스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가기를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자,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땅에 아직 남아있는 자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가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2) 예루살렘 성전의 남은 기구들, 왕과 고관들이 바치는 예물들을 가지고 가라.
아닥사스다 왕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빼앗아 왔던 것들 중에서 고레스 왕 때에 미처 가져가지 못한 것들을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을 에스라 편에 모두 보내라고 명합니다. 이와 함께 아닥사스다가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과 페르시아의 고관들이 바치는 금과 은의 예물들도 함께 가지고 가라고 명합니다.
3) 예루살렘 성전에 필요한 물품들을 왕실 내탕고에서 가져다 쓰라.
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물품이나 성전의 유지 비용에 필요한 것들을 왕실 내탕고에서 가져다 쓰라고 명합니다. 이것은 유브라데(유프라데스) 강 건너편에 있는 나라들이 아닥사스다에게 마치는 조공과 세금과 관세들 중에서 가져다 쓰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만 에스라가 왕실 내탕고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한계를 정하였는데, 그 한계가 무려 은 100달란트(3,400kg), 밀 100고르(22,000ℓ), 포도주와 기름은 각각 100밧(2,200ℓ)이고, 소금은 제한 없이 에스라가 원하는 대로 주도록 하라고 주변 나라의 총독들에게 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다 쓴 후에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추후에 왕이 더 제공하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4)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대로 일꾼을 세우고, 말씀대로 재판하라.
아닥사스다는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아는 자들 중에서 재판관을 세워 유브라데 강 건너편의 모든 사람들을 재판하게 하라고 명합니다. 그 백성들 중에서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사형을 내리든지 귀양을 보내든지 가산을 몰수하든지 옥에 가두는 등 아주 엄하게 처벌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혹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가 있거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의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 명합니다.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명한 조서는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신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들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먼저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4. 예배와 말씀과 사명의 자리를 선택하는 자
에스더서와 에스라서는 둘 다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에 포로 된 때의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차이점은 에스더는 예루살렘에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고,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자들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에스더는 선택을 주제로 하고 있고, 에스라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에스더서를 큐티하면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아서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또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면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결심을 했던 것도 보았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무릎 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죽기로 한 날인 아달월 13일이 오히려 그들이 사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더서의 주제는 선택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스라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스라서는 처음에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1차 귀환자들에 의해 성전 짓기가 시작되었고, 그때 방해를 받아서 중단 되었다가 15년쯤 후에 다시 성전 짓기가 다시 시작되어 성전이 무너진 지 꼭 70년 만에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성전이 완공된 후 57년쯤 후에 하나님께서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셔서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살 때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항상 선택하며 살아야 할 것은 바로 ‘예배’와 ‘말씀’과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특히 예배와 말씀,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나라도 망하고, 이 두 가지가 세워지면 포로 백성 중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선택할 때마다 예배와 말씀과 하나님께 받은바 사명을 제일 먼저 고려하여 선택하십시오. 직장을 구할 때 어느 직장이 돈을 더 많이 주느냐를 가지고 선택하지 말고 어느 직장이 예배와 말씀과 사명을 감당하기에 적합한지를 먼저 따지십시오.
가령 월급 1,000만원 주는 곳은 주일을 지킬 수 없고, 월급 200만원 주는 곳은 주일을 지킬 수 있다면 세상의 가치로 본다면 당연히 1,000만원 주는 곳을 선택하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 매월 800만원을 손해보는 일을 각오하며 200만원 짜리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상대자를 정할 때에도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예배와 말씀과 사명입니다.
예화 : 에릭 리델
에릭 리델은 영국 대표로서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100m 경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습니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습니다. 그의 그런 결정은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에릭 리델의 100m 경기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릴 리델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에릭 리델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델보다 약간 뒤져 있었습니다. 에릭 리델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릭 리델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에릭 리델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200m 경기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 경기에도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400m 경기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습니다. 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같은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결승의 날이 왔습니다. 에릭 리델은 신들린 사람처럼 첫 코너를 돌았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하고 불안함을 표현하였습니다. 에릭 리델은 임바흐, 피치 등의 우승 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 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경기를 하기 전에 에릭의 전담 안마사는 에릭에게 이런 쪽지를 주었습니다.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In the old book it says, ‘He who gonours me. I 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그는 400m 경기의 우승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m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올림픽이라는 국가적인 행사 앞에서도 제일 먼저 예배를 고려하여 선택했습니다. 주일은 자기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주일은 주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는 예배를 선택했고, 하나님께서 그 일로 영광받으셨습니다.
※ 천국은 믿음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예배와 말씀과 사명을 제일 먼저 고려하여 선택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자가 됩니다.
5. 하나님은 언제나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을 짓게 하셨고, 에스라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게 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혹시 나에게는 어떤 것을 하라고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지, 내 마음에 주시는 하나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스룹바벨이나 에스라나 학개나 스가랴처럼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큐티를 습관처럼 하십시오. 밥 먹고 샤워하는 일이 습관이 된 것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이 습관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동안 주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살며시 속삭이며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세미하게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이 오직 주께로 향하도록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립니다.
주님
유다인들이 하나님 앞에
참되게 예배를 드리기까지
70년의 아픔의 세월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항상 주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에스라를
그 시대에 쓰신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주님의 일을 위하여
쓰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