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영의정을 역임한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의 문집인 도곡집(陶谷集)에도 순흥안씨 11대 연속 급제 사실이 나온다. 성현의 용재총화까지 고려하면 이 사안은 조선초부터 일반에 널리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안원숭의 문과급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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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집(陶谷集) 제28권 > 잡저(雜著) > 도협총설 104조항 〔陶峽叢說 一百四則〕
101. 우리나라에 과갑(科甲 문과 급제)의 성대함은 순흥 안씨(順興安氏) 집안에 안향(安向), 안우기(安于器), 안목(安牧), 안원숭(安元崇), 안원(安瑗), 안종약(安從約), 안구(安玖), 안지귀(安知歸), 안호(安瑚), 안처선(安處善), 안정(安珽)의 11대가 문과에 올랐다.
광주 이씨(廣州李氏)는 이집(李集), 이지직(李之直), 이인손(李仁孫), 이극감(李克堪), 이세우(李世佑), 이자(李滋), 이약빙(李若氷), 이홍남(李洪男), 이민각(李民覺), 이정면(李廷冕)의 10대가 문과에 올랐다.
나주 정씨(羅州丁氏)는 정자급(丁子伋), 정수강(丁壽崗), 정옥형(丁玉亨), 정응두(丁應斗), 정윤복(丁胤福), 정호선(丁好善), 정언벽(丁彦璧), 정시윤(丁時潤), 정도복(丁道復)의 9대가 문과에 올랐다.
남양 홍씨(南陽洪氏)의 홍경손(洪敬孫), 홍윤덕(洪潤德), 홍계정(洪係貞), 홍춘경(洪春卿), 홍성민(洪聖民), 홍서익(洪瑞翼), 홍명구(洪命耈), 홍중보(洪重普)와 풍천 임씨(豐川任氏)의 임열(任說), 임영로(任榮老), 임장(任章), 임선백(任善伯), 임중(任重), 임상원(任相元), 임수간(任守幹), 임광(任珖)은 8대가 모두 문과에 올랐다.
원주 원씨(原州元氏)는 원즙(元檝), 원식(元植), 원격(元格), 원적(元樀), 원철(元㯙), 원절(元梲)의 6형제가 문과에 올랐다.
단양 우씨(丹陽禹氏)의 우홍수(禹洪壽), 우홍부(禹洪富), 우홍강(禹洪康), 우홍득(禹洪得), 우홍명(禹洪命)과 전의 이씨(全義李氏)의 이예장(李禮長), 이지장(李智長), 이함장(李諴長), 이효장(李孝長), 이서장(李恕長)과 광주 이씨의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이극증(李克增), 이극돈(李克墩), 이극균(李克均)과 함양 박씨(咸陽朴氏)의 박거인(朴巨鱗), 박형인(朴亨鱗), 박홍인(朴洪鱗), 박붕인(朴鵬鱗), 박종인(朴從鱗)과 남원 윤씨(南原尹氏)의 윤구(尹昫), 윤서(尹曙), 윤길(尹▼(日+吉)), 윤철(尹㬚), 윤탁(尹晫)과 풍산 김씨(豐山金氏)의 김봉조(金奉祖), 김영조(金榮祖), 김연조(金延祖), 김응조(金應祖), 김숭조(金崇祖)와 해주 정씨(海州鄭氏)의 정식(鄭植), 정익(鄭榏), 정석(鄭晳), 정박(鄭樸), 정적(鄭樍)과 청송 심씨(靑松沈氏)의 심백(沈栢), 심상(沈相), 심벌(沈橃), 심방(沈枋), 심탱(沈樘) 등은 5형제가 모두 문과에 올랐다. 이보다 수가 적은 자는 너무 많아서 다 기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