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그리스도교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명절입니다. 시장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본강국들이 대부분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므로, 세계화의 물결을 타는 이상 이 절기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요.
시장에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을 풀고, 기쁨을 강요하며 구매욕을 자극해야 합니다. 세상은 무작정 기뻐하는데 이 기쁨의 진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스도교인인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어진 존재나 상황들에서 기쁨의 근거를 찾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 얻는 기쁨은 일시적입니다. 순간이고 길어야 몇 년 정도지요.
기쁨의 질도 종류도 천차만별입니다. 본능에 따라 오관을 통해 쉽게 얻는 쾌락에서부터 뚜렷한 인생 목표를 정해놓고 성취해가는 세련된 기쁨까지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 어떤 기쁨이든 영원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길은 없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마르지 않는 기쁨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그 기쁨은 외부 조건에 좌우됨이 없이 존재 자체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31절을 읽으면서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먼저 혼돈 속에서 빛을 창조하시고, 그 빛을 보고 좋다고 하십니다. 이어 말씀으로 피조물을 하나씩 창조하시는데 그때마다 피조물을 보시고는 "좋았다"는 기쁨의 감탄을 반복하십니다.
인간 창조를 끝으로 마침내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보시며 "참 좋았다"라고 품질보증 도장을 찍으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창조주 기쁨의 산물이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과 이 기쁨을 공유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다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물론 모든 피조물에 악과 죽음의 고통을 안겨 주게 됐습니다.
이런 인간의 한계적 조건을 잘 아시는 하느님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인류 구원을 위한 구세주의 오심이기에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분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그분이 오심을 믿고 고대하던 이스라엘 백성도 이분이 오심을 알지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 여인이 세상에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게 했습니다. 소박한 시골의 한 처녀,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은밀히 당신 계획을 통보할 때 그 인사말이 "기뻐하여라"입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분명히 세상에 기쁜 소식(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마리아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온전히 믿으며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뤄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모두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맡기고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찾아가 이 기쁨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이후 마리아의 생애에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고통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얻은 그녀의 기쁨은 그 어떤 고통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믿고 바라는 줄에 서 있습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입니까, 창조주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입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은 갖가지 감언이설로 우리를 쾌락의 환상에로 현혹합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가 창조주 하느님 사랑의 산물인 이 세상을 우리 욕구의 잣대로 상품과 약탈의 대상으로 삼도록 부추깁니다.
이제라도 늦기 전에 창조주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로 의기소침해지기보다는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드리며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
욕구의 노예로 둔탁해져가는 우리 삶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지혜의 기쁨으로 빛날 것이며, 이 기쁨의 빛은 어둡고 힘든 상황 앞에서 더 빛을 발할 것입니다. 그 빛은 오늘도 인생의 의미를 찾아나선 현자들을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중에 하나로 오신 구세주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0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