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시인을 만나다|신작시-박상봉
짐 자전거 외 1편
연대보증 섰다가 명퇴금 다 날리고
남은 개똥 받이 한 뙈기 팔아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 시작한 아버지
그마저 실패하고 마지막 밑천으로
낡은 짐자전거 끌고 밤늦도록 이 동네 저 동네 생선 팔러 다녔다
새벽부터 싣고 다닌 마른 명태 꾸러미
잠깐 오줌 누고 온 사이 누군가 몽땅 들고 달아나버렸다는데
탕탕 두들겨 북북 찢어 놓고 싶은 한바탕 울분
말라비틀어진 북어 대가리 마냥 어처구니없는 길가에 내동댕이치고 온 아버지
소리 내어 맘껏 울지도 못하고 남몰래 흔들리며
등 굽은 어깨너머 노을처럼 저물었다
바람이 숭숭 들락거리는 단칸방에서
혼자 식은밥 떠먹으며 눈물짓다가
덜그럭 덜그럭 텅 빈 짐 자전거 문간에 들어서는 소리
들리는 것 같아
달빛 떨어져 내리는 골목길 내어다보면
서늘한 밤바람에 눈이 시렸다
-------------------------------------------
박꽃
푸른 아우라에 둘러싸인 박꽃
스물두 살에 낳은 딸아이
둥글게 떠오른다
오래전 내 품 떠났지만
지금도 명치끝
콕콕 아파 오는데
깜박 졸다 깨어보면
조그만 내 젖꼭지 빨며 자던
그 아이
건넛집 지붕 위에 달이 떠오르면
달, 달, 둥근 딸
투명한 물방울 자궁으로
나를
낳았다
-------------------------------------------------------------
박상봉
*1958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
*1981년 박기영·안도현·장정일 등과 동인지『국시』로 문단 활동 시작.
*문학카페「시인다방」경영.(1985년~ 1990년)
*1995년 《문학정신》 가을호 「쎄씨를 읽는 남자」 외 2편 발표로 문단 활동 재개.
*시집 『카페 물땡땡』, 『불탄 나무의 속삭임』, 『물속에 두고 온 귀』.
*<시인과 독자의 만남>을 비롯 지역문화 행사 200회 이상 기획·운영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문화산업 기획자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