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김민섭 중위>
<콩사랑> 식당안에 있는 조각상을 바라보는 필자
<야외에서>
<식당밖에서>
<미륵바위와 함께>
<아들과 함께>
<파로호에서 아내와 함께>
강원도 화천에서 아들 면회
오랫 만에 시간을 내어서 아들을 면회하러 출발했습니다. 케이크를 하나 사서 금곡에서 출발해서 마석쪽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섰는데 조금 가더니 자동차가 꼭 막혀서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중간에 간식거리를 파는 분들은 대목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에게는 자동차가 막히는 것이 좋아보였습니다. 차라리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고속도로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모험입니다. 혹시 고속도로가 더 막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쨌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나온 여행길은 행복했습니다. 고속도로도 조금 정체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종인터체인지를 지나니까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자연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천안함의 소식이 들려오면서 북한의 소행임이 드러나고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국민들이 북한의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한반도의 상황이 불안해지는 것같아서 염려되기도 하지만 여행길은 행복했습니다. 자연이 좋고 고속도로가 너무나 잘 닦여져있습니다. 그곳은 여유롭게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의 발전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경춘고속도로를 거쳐서 다시 중앙고속도로 춘천방향으로 가다가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려서 빙과를 하나 아내와 함께 먹었습니다. 이곳에서 네비게이션의 인도를 따라 춘천을 거쳐서 화천을 향했습니다. 시원한 호반의 도시 춘천을 지나는 것이 참으로 유쾌했습니다. 춘천호에는 소양강 처녀 뱃사공이라는 작은 동상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다가 내가 논산훈련소에서 자대에 배치받기 전에 머물었던 102보충대대를 지나갔습니다. 벌써 오래전입니다. 1978년이니까 32년 전입니다. 그 때에는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요. 강원도 골짜기에 까지 가는 것이 너무나 초라해서 가능하면 춘천에 남아서 군대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결국 간곳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27사단 77연대 1대대까지 갔습니다. 27사단은 교육사단으로서 훈련도 세고 군기도 세고 추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상급부대에 남고 싶었습니다. 예루살렘보다는 갈릴리를 선택했던 주님의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편안한 곳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요. 휴가 나올 때에 후방이나 춘천같은 상급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이곳 102보충대로 온 이후에 가능하면 상급부대에 남고 싶은 열망은 있었지만 계속해서 말단 대대본부까지 내려갔습니다.
춘천호옆으로 난 길을 통과해서 신포리를 거쳐서 달거릴 통과한 뒤에 화천읍까지 가는 길입니다. 이곳 달거리에서 자대에 배치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벙커 작업을 하기 위해서 행군을 해서 이곳까지 걸어왔습니다. 발에 맞지 않은 군화를 신고서 이곳까지 오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요. 오래 전의 일이지만 추억이 새롭습니다. 시멘트포대와 자갈이나 모래를 담은 마대자루를 등에 메고 산꼭대기까지 나르면서 작업했던 이야기를 내가 아내에게 여러번 했던지 아내는 벌써 10번 정도 들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도 나는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나게 말합니다.
무거운 시멘트나 모래와 자갈을 지고 고생하면서 산꼭대기에 올라오면서 군대가 더럽다고 욕하면서 불평했는데 산꼭대기가 올라서면 춘천호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면 비오듯 하는 땀이 씻겨져 내려가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군대생활도 할만하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 나는 마치 대한민국을 혼자 지키는 애국자인것처럼 들떤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천에 도착했는데 아직 아들은 도착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화천읍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시장터를 구경했습니다. 순대가 먹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워서 맛좀 볼려고 했는데 주인은 최소한 삼천원짜리부터 판다고 해서 사먹지를 못했습니다. 화천은 읍단위로 도시로 주변에 수많은 군부대가 있어서 군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이어 발전이 많은 곳은 아닙니다. 그래도 화천은 아름다운 곳이고 춘천호의 상류지역이며서 파로호가 시작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은 겨울에는 파로호를 중심으로 산천어로 유명하고 여름철에는 화천토마토 축제로 유명합니다. 아들을 만나서 화천의 명소인 붕어섬으로 갔습니다. 붕어섬의 지명의 유래는 이 섬이 붕어모양을 닮은 타원형이어서 그렇게 불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석가탄신일 휴일을 맞이해서 놀러왔습니다. 주변에 아예 면회를 와서 이곳에 파티를 연 가족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차를 파킹해놓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소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후에 군대에도 기강강화로 인해서 새로운 근무분위기가 형성되어서 긴장이 고조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식사 장소로 콩사랑이라는 음식점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들과 함께 우리 부부는 맛있는 저녁을 나눴습니다. 식당주인 부부는 서울에 살다가 이곳에 이사와서 자연적인 경관을 갖춘 음식점을 만들고 장사하는 중이었습니다. 식당안팎에 여러 조각작품이 전시되어있는데 식당 주인의 아들 하나가 조각가여서 그 작품을 이곳에 전시했다고 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화천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파로호를 구경했습니다. 파로호는 1944년에 세워진 호수입니다. 넓은 호수에 물이 많이 빠져 있습니다. 북한에 금강산댐이 생겨난 후에 금강산댐에 담수를 시작한 후에 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낚시질하는 분들도 눈에 뜨이고 차량을 싫고 출발을 기다리는 배도 있었습니다. 꼭 방문하고 싶은 파로호를 방문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댐을 건설하는 것은 늘 논란이 됩니다.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홍수철에 물을 가두놓고 필요한 경우에 물을 흘려보내야 하는가가 늘 논쟁의 대상입니다. 댐은 꼭 필요하지만 댐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기에 항상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위해서 시장에서 과일을 좀 사서 아들이 근무하는 화천군 상서면 사방거리로 출발했습니다. 아들을 보내면서 부대의 대대장을 우연찮게 만났습니다. 아들을 칭찬해주는 대대장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아들을 면회하고 오는 아내와 나는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곡동까지 오는 길을 네비게이션이 빠른 길이라고 하면서 산길을 안내했습니다. 이 산길은 낮에는 좋은 관광코스가 되지만 밤이라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집에 돌와오니 둘째 아들 은섭이가 오랫만에 집에 와서 라면을 끓여먹고 저와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졌던 가족 나들이가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좋은 가정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은섭이와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 함께 기도했고 우리 가정을 향한 주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을 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