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하나님의 은혜만이... 원문보기 글쓴이: 주 은혜 입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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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원의 과정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즉 구원의 과정(서정)을 다음과 같은 9가지의 단계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좀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의 논리적 기술이지 구원의 순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소명(부르심) → 중생 → 회개 → 신앙 → 칭의 → 수양(양자됨) → 성화 → 견인 → 영화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일방적으로 이러한 9가지의 단계를 원리로 성령을 통하여 각 개인에게 적용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나타난 구원의 서정
구원의 서정은 아홉 가지 단계로 나눈다. 소명, 중생, 회심, 믿음, 칭의, 양자, 성화, 견인 그리고 영화이다. 이 구원의 단계는 시간적으로 발생하는 순서라기보다는 논리적인 순서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내적 소명을 받은 자는 동시에 모든 단계가 함께 성취되어 반드시 구원에 이른다.
1) 소명(Calling): 소명에는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이 있다. 외적 소명은 복음의 내용을 제시받았지만 아직 구원의 효과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구원에 이르는 소명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구원으로 적용되는 내적 소명이다.
2) 중생(Regeneration): 요 3: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인간은 죄 때문에 인간 편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새 생명의 씨를 인간에게 주셔야만 구원이 가능하다. 중생은 육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요5:25). 중생은 성령의 재창조 사역으로서 무의식적이며 단 회적으로 일어나는 구원 사건이다.
3) 회심(Conversion): 회심은 단순한 뉘우침이 아니며, 그 뉘우침에 대한 행위를 수반한다. 회심한 사람은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생활의 변화가 뒤따른다. 회심의 주체 자는 성령이시며, 인간은 회심의 협력자이다.
4) 믿음(Faith): 믿음(신앙)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확실한 지식이다.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주어진다는 진리에 대한 확고한 신뢰이다.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믿음은 성령에 의한 구원의 통로가 된다.
5) 칭의(Justification):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어 죄인이 의롭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법적인 선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 것이다(롬 3:24). 칭의는 신분의 변화이며, 내면적인 삶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칭의는 믿음으로 얻게 된다.
6) 양자(Adoption): 의롭다함을 받는 중생인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편입된다. 하나님의 양자된 자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자다(롬8:17).
7) 성화(Sanctification): 성화의 근본적인 시작은 성령으로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그의 거룩하심에 연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롬6:4-6). 그러므로 근본적인 성화는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 후에 신자가 성령을 좇아 행하며 육체적인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는 점진적인 성화를 이루어간다(갈5:16-18).
8)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는 결코 버림을 당하는 일이 없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견인은 신적 은혜의 힘이며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히 3:14).
9) 영화(Glorification): 구속 전 과정의 완성이다. 성도는 근본적인 성화로 시작하여 점진적 성화를 계속하다가 완전한 성화인 영화에 이르게 된다.
위의 9가지의 구원의 과정 중에서 구원의 3시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의 과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1) 칭의구원 -
2) 성화구원 - = 구원의 3과정을 말하는 것이지 3가지 구원을 말하는 것이
3) 영화구원 - 아니다.
칭의 구원은 과거구원으로서 구원의 “씨”에 비유할 수 있고, 성화구원은 현재구원으로서 구원의 “성장”에 비유할 수 있으며, 영화구원은 미래구원으로서 구원의 “열매”에 비유할 수 있다.
※ 아브라함의 믿음의 과정
창 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5: 6 “아브람이 요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22: 6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창12: 1 = 부르심(소명)
- 창15: 6 = 칭의(법정적 선언)
- 창22: 12 = 믿음 인정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긴 하였으나 오늘의 칭의와 같은 “의로 여기시니”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받기까지는 좀더 세월이 흘렀으며 나아가 온전한 믿음의 선언인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는 말씀은 많은 세월이 지난 후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시험을 합격하고서야 받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구원의 확신은 칭의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예스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단회적,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그러나 성화구원을 거룩해지는 과정, 현재 이루어지는 구원으로서 점진적이며 일평생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칭의구원을 바탕으로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자가 영화구원을 얻는 것이다.
죤 라일 : “칭의는 성화를 반드시 동반한다.”
김명혁 : “우리의 구원의 시점과 비슷한 개념으로 지금 우리가 구원을 완전하게 얻었느냐 아니면 덜 얻었느냐 하는 이야기인데 물론 원리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 되며 완전히 구원을 얻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전히 죄를 짓는 의인이 되지 못한 생활을 한다. 원리적으로는 구원을 받았지만 현 상태는 아닌 것이다.
허문호 : “…구원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게 된다.”
사도바울은 로마로 가서 순교하기 직전, 자신의 믿음이 가장 상숙된 시기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였다.
딤전 1: 15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따라서 구원의 확신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칭의구원에 대하여는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하며, 성화구원을 이루기 위한 아픔과 회개가 있어야 하며, 재림으로 성취될 영화구원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성화 없는 칭의는 존재할 수 없다. 참된 칭의는 성화를 동반하게 되어 있다. 성화는 칭의 받는 자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칭의와 마찬가지로 성화도 은혜요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
※ 3대 신앙인의 신앙 비교
1) 루터 = 믿음을 강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 17) 당시 교황권이 행위 구원을 주장함에 반대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강조이다. “믿음으로 구원받기는 행함으로 구원받기 보다 더 어렵다”
2) 칼빈 = 하나님 절대 주권을 강조
하나님 영광이 구원의 최종, 궁극적 목적이다. 예정교리를 주장하나 인 간의 의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 다는 것이 칼빈의 입장이다. 따라서 칼빈은 믿음과 행함을 동일하게 강 조한다. “믿음과 행함은 기차의 두 레일이다.”
3) 웨슬레이 = 성화를 강조
성화는 감리교교리의 중심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 절대주?에 반 대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지만 인간의 성화 과정에 강조점을 둔 것뿐이다. 역사신학자 레온 힌즈는 “웨슬레이는 죄 와 성화의 실질적인 개념을 뒷받침했다”고 말하였다.
위 3사람의 위대한 신앙인들 사이에서 갈등을 느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결코 어느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맡기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루터의 믿음관을 통해 구원의 기본원리를 세웠고, 웨슬레이를 통해서는 믿음의 결과인 성화를 알게 하셨으며, 칼빈을 통해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있음을 알도록 하셨다.
3. 성화의 상징들
1) 구약 출애굽의 예표
고전10: 1~12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애굽구원 → 광야구원→ 가나안땅 구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 아래 있고 홍해바다를 건넌 것은 복음적으로는 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를 구원의 3과정으로 표현한다면 칭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행 7:38)에 나와서도 우상숭배하고 간음하다가 다 멸망을 받았는데 이는 결국 그들이 성화구원에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가나안 땅으로서 이는 성도가 영화구원을 통해 얻게 될 천국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
요13:4~10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겸손이나, 섬김을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도덕적, 교훈적인 의미도 있으나 더 깊은 의미로는 구원과 관계된 이야기이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미 목욕한 자”란 구원의 과정에 있어서 칭의 구원을 받은 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박윤선박사는 이 부분에 대해 “원죄를 씻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발을 씻는다는 것은 날마다의 죄의 문제를 회개하는 성화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성화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루터 : “나는 1초에도 수많은 죄를 짓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며 흠이 없어야 한다.
살전 3: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 5: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계 14: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4. 구원에 대한 오해의 문제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다. 그 믿음조차도 인간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거나 오해하여 믿음의 생활에 있어서 나태하거나 영적인 방종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은 그러한 자들에 대하여 경고한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 12)
1) 죄인일지라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살전 5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초림의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나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재림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에 대하여는 용서하시되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하여는 반드시 심판하신다. 죄인은 천국에 갈 수 없으며 단지 회개한 죄인들이 들어갈 뿐이다.
2)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
마22: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13 :29~3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먼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 47~ 50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마 25: 1~13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있는지라…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 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두리라…”
어떤 이들은 교회에 나오기만 해도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에 나온 자가 믿음 생활을 잘하여 칭의와 성화를 통해 영화구원에 이를 것을 전제로 하여 말하는 것이지 결코 교회에 출석하는 정도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교회에 나왔을지라도 잘 믿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가 섞여 있다. 교회 안에서 성화 구원을 이루는 자만이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3) 구원은 넓은 문이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며 나아가 속죄의 피를 흘리심도 온 인류를 위한 것이기에 구원은 모든 인류를 향한 넓은 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만인 구원설) 그러나 성경은 항상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한 것임을 성경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노아 시대 때에 홍수 속에서 노아의 8식구만을 구원한 것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에서 롯의 3식구만이 구원 받은 것은 구원의 문이 좁은 문이라는 것을 잘 입증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들은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것이다.(고전 10:5)
4) 범죄하면 책에서 지워 버린다?
출 32: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수 24: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리라”
겔 3: 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으리라”
계 13: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서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 된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도록 인도하신다.(견인)
택함 받는 자와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성경은 분명히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을지라도 돌이켜 악을 행하고 회개치 않을 때에는 그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5)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 얻는다?
롬 10: 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 7: 21~22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약 2: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 인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마음으로 믿어(칭의) → 의에 이르고(성화) →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영화)
즉 여기서 말하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칭의와 성화의 과정을 거친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말하는 것이다.
6) 우편 강도의 구원 문제
눅 23: 42~43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자가상의 우편 강도의 구원을 평생 죄를 짓더라도 한순간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편 강도의 구원의 사건은 구원에 강조점이 있다기보다는 회개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구원은 아무리 엄청난 죄인일지라도 참 회개를 하면 용서받는다는 특별한 경우의 문제이지 그것이 일반적인 구원의 개념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7) 지푸라기 구원(부끄러운 구원)의 문제
고전 3:11~15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본문은 믿음의 공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오해하여 믿음의 행함이 없이 잘 믿지 못할지라도 입으로 시인하였으면 부끄러운 구원 정도는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서 구원받은 자가 이 땅에 살면서 행한 일에 대하여 그 공력을 시험하는 상급에 관한 말씀이지 구원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구원이 있다기보다 어떤 의미에서 구원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당당히 얻는 것이다.
엡 3: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계 2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5. 행위와 행함
엡 2:9~10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고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화 구원을 강조함에 있어서 혹 행위로 구원 받는가? 라는 오해가 생길 수가 있다. 물론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딤후 1:9, 롬 3:27~28, 엡2:7~9)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은 온전한 구원을 받을만한 믿음은 은혜 가운데 더욱 선한 믿음의 행함을 요구한다.
약 2: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마 23: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행하고 행치 아니하며”
※율법 아래 행위와 은혜 아래 행함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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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아래의 행위 |
은혜 아래의 행함 |
1 |
율법 : 행위의 법 |
새 계명 : 행함의 법(요15:10,14, 요일3:23~24, 2:4~6) |
2 |
육신의 법 |
심령의 법(히7:16, 롬7:22~23) |
3 |
죽이는 법 |
살리는 법(롬8:2~10, 고후3:6~7) |
4 |
정죄의 법 |
의의 법(고후3:9, 마5:43~44) |
5 |
저주의 법 |
사랑의 법(사65:15, 요15:12) |
6 |
종이 되는 법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 (갈4:3~7, 4:21~26) |
7 |
매이는 법 |
자유하는 법 |
믿음이란, 그 믿음의 대상에 있어서 그의 뜻과 계획과 성품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가며 순종하고 닮아가는 실천적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 구원을 얻을 수가 없지만 동시에 믿음의 의로 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믿음인 것이다. 즉, 믿음의 행함은 율법의 완성임과 동시에 구원을 성취하는 믿음의 완성이다.
약 2:14~26 “형제들아 만일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영혼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익한 것이며, 귀신도 가지고 있는 지식에 불과한 외식에 속한다. 하나님은 행함을 통해 그 믿음이 증명되는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를 원하신다.
칼빈 : “믿음과 행함은 두 레일이다.”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나 그렇다고 행함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율법적 행위로서는 구원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루터가 야고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한 것은 자신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고 연구하다 보니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푸라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참된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일 뿐이다. 우리의 예배나 헌금, 봉사생활 등은 구원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인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더욱 잘 믿고 많은 믿음의 행위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
박형룡 : “은혜는 구원을 입은 사람들을 율법의 좁은 길로 더욱 몰아넣는다.”
6. 성화
성화(거룩)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성도의 경건한 삶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의 죄의 오염을 제거한다.(롬 6:17~18) 성화를 통해 점점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골3:9~10)
이 성화의 삶은 현세에서 완성되지 않는다.(갈 5:17) 종국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는 거룩해진 성화의 성도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성화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1) 하나님의 명령
레 19: 2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벧전 1: 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고 거룩할찌니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곧 구원 받을 성도들이 거룩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 거룩이라는 단어의 의미
1) 구약적 의미
거룩이란 단어의 구약의 중심 단어는 콰다쉬(qadosh)로서 이는 “다른 것으로부터의 분리, 즉 일반적이고 세속적인 사물이나 사람으로부터의 분리”를 말한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그들의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구별되게 행하는 것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자신을 성결케 하는 것이 거룩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거룩, 즉 구별되게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모든 것들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2) 신약적 의미
신약에 있어서 거룩이란 의미로 쓰이는 중요한 단어는 하기오스(hagios)이다. 이 단어는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이 세상의 죄된 행위로 부터의 구별이며 둘째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한 구별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의미에서 거룩이라함은 죄 가운데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영적인 성별이며 나아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거룩 = 성화
-성도 = 거룩한 무리
-하나님은 거룩 = 하나님의 자녀도 거룩해야 됨
-성화 = 성령의 역사
하문호 : “죄는 아직도 신자의 속에 남아 있다. 이 잔존 죄를 몰아내는 작업은 일평생 계속되며 결코 현세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이며 이 축출 작업은 중생에서 시작하여 계속 진행 중이므로 현재진행중인 구원이라고 말하게 된다.”
성화의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같이 거룩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후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시다.(요14:8~9, 고후4:4, 골1:15, 히1:3) 따라서 성화의 목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벧전 2: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성화는 칭의나 양자와 같이 법적선언이나 신분상의 변화가 아니라 신자 개개인 안에서 현실적으로, 체험적으로 일어나는 거룩한 변화이다.
성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 변화를 요구하는데 소극적으로는 우리의 죄악된 성향을 점차적으로 제거시키는 것이요, 적극적으로는 거룩한 성향을 점차로 증진시켜서 참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점진적인 성화란 무엇 인가?
점진적인 성화는 근본적인 성화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며, 진행된다. 성경에 성화에 대한 권면과 명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는 indicative에 근거한다. 거룩한 삶의 지침들은 근본적인 성화의 바탕에서 지킬 수 있는 변화이다. 그래서 성경이 요구하는 거룩한 삶은 근본적인 성화의 바탕을 전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후에 변화된 사람의 새 생명의 자연적인 표출이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점진적인 성화이다.
점진적인 성화는 성령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성화와 성령의 사역은 두 측면에서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먼저 성령 충만은 근본적인 성화의 실체를 매일의 삶 속에 경험케 하시고 점진적으로 실현시켜 주신다. 성령이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을 매일 공급해 주신다. 성령 충만하게 살면 변화된 성화된 삶의 모습과 열매의 실재를 체험하면서 산다.
우리가 공기 속에 존재하듯, 물고기가 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듯이 점진적으로 성화되는 사람은 성령을 떠나서는 살 수 있다. 새사람은 다른 말로 성령의 사람이다. 새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존재인데, 그 형상의 중요한 특성은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새사람, 성령의 사람은 항상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삶을 산다. 우리의 거룩함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새사람은 자기 안에 자가 동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매일 같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할 때만 성화의 실체를 체험하면서 살 수 있다. 아주 기능이 좋은 냉장고를 하나 사 놓고, 전기 소켓을 꼽아 놓지 않으면 음식이 다 썩는다. 우리의 믿음이 전기 소켓에 비유한다면 성령은 원동력인 전기에 비할 수 있다.
점진적인 성화는 근본적인 성화와 칭의 이 두 바탕 위에 세워져 있고, 성령의 은혜로만 우리 안에 실제화 되고 체험된다. 그래서 점진적 성화의 원동력은 칭의와 근본적인 성화와 성령의 은혜이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때 “오직 믿음”을 강조해야 한다. 오직 믿음의 채널을 통해서 오직 은혜가 점진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밀려들어온다. 그 은혜에 우리가 이끌림을 받아서 마음도 새로워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점진적인 성화를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다.
2) 성화의 방법
① 십계명의 준수
신 4: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 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십계명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의 조건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구원성도의 신앙표준은 십계명을 하나님의 복음, 사랑의 복음으로 깨닫고 지키는 것이다.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신앙의 표준이다. 십계명은 믿음의 순종을 위한 성도의 의무사항이다. 십계명을 지켜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구약적
의미는 이미 완성되었으나 십계명의 그 믿음은 영원한 것이다.
십계명을 지키는 생활은 구약에서는 육체적 생명을, 신약에서는 영적 생명을, 종말에는 영육 간에 생명을 얻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준법생활이다. 십계명을 절대 믿음의 표준으로 여겨 준수하는 노력이 있을 때 성령의 역사로 거룩해지며 그것이 성화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도 잘못된 것이며, 율법폐기론자도 잘못된 것이다.
② 주일 성수
겔 20: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펴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안식일(주일)은 영원한 규례Dl다. 그 의식은 폐하였으나 안식일(주일)의 정신과 의미는 영원한 것이다. 안식일(주일)은 천국의 모형으로서 천국의 교제, 천국의 안식을 이 땅에서 미리 맛볼 수 있는 축복의 날이다. 성도들은 거룩한 안식일(주일)을 지킴으로 점점 거룩해져(성화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히 4:4~7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안식에 들어가지 모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시95: 7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모압 광야에서 순종치 아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것을 거울로 주의 음성을 들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인 주일을 성수함으로서 영원한 구원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자.
시 58: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③ 참된 예배 생활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 제1계명 = 예배의 대상(오직 하나님 한 분)
- 제2계명 = 예배의 방법(우상을 만들거나 절하지 말라)
- 제3계명 = 예배의 거룩(망령되이 행하지 말라)
- 제4계명 = 예배의 때(안식일:주일)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아는 자은 마땅히 예배하는 삶으로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언약은 예배를 통하여 성취되어 왔다. 구원의 제물을 통한 제사는 바로 신약의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모형인 것이다.
예배는 인간 창조의 목적이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최고의 방법이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예배중심의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예배가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삶 그 자체가 예배가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주일 예배, 수요 예배, 금요 예배, 구역 예배, 새벽 예배, 가정 예배 나아가 생활 전부가 예배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참된 예배의 삶을 드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④ 말씀
행20: 32 “지금 우리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참된 구원적 신앙은 지 ․ 정 ․ 의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것이다. 말씀을 듣고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장성하여 하나님의 지식에 까지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통하여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명령을 깨달아 순종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딤후 3: 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⑤ 기도
딤전 4: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
살전 5: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 “은혜의 방편 3 가지”
말씀 / 기도 / 성례
기도는 생명있는 성도의 영적 호흡이다. 육의 사람이 호흡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듯, 영의 사람은 기도를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며 성화되어 가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사귐이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귀며, 기도를 통해 그 영이 거룩해 지는 것이다.
루터 : “새벽에 내가 두 시간 기도하지 않으면 그 날은 마귀가 이기는 날이다.”
⑥ 헌금
민 18: 8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출 34: 19~20 “ 무릇 초태생은 다 내 것이며…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신 16: 13~ 17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헌금생활 속에는 단순히 물질, 예물을 드린다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앞에서 성도들이 드리는 사랑과 감사의 응답적인 행위가 포함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헌금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하나의 진실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주일 헌금 속에는 성수주일의 신앙이 들어있는 것이며, 감사헌금 속에는 감사생활의 신앙이 들어있는 것이며, 십일조 속에는 구원의 감사에 대한 표현이 들어있는 것이며, 선교헌금 속에는 전도, 선교의 신앙이 들어있는 것이다.
결국 헌금생활은 성도의 성화의 삶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영화구원에 이르도록 힘쓰는 성도라면 온전한 헌금생활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⑦ 초대교회 성도의 삶
행 2: 37~4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로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 2:37~47까지를 보면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영원한 이상적 신앙의 모델인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 7가지가 나온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은 바로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의 모습이요 영화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믿음의 모범이다.
a. 37절 → 어찌 할꼬?의 회개운동 = 회개관(나 때문이다!)
b 42절 →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 = 말씀관(주야로 묵상!)
c. 42절 → 기도에 전혀 힘씀 = 기도관(무시로 기도!)
d. 44, 45절 →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나눠줌
= 물질관(무소유!)
e. 46절 →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씀 = 교회관(교회 먼저!)
f. 46절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음
가정관(작은 천국!)
g. 인사 → 마라나타 = 재림관(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7. 결론
※ 바울의 신앙
딤전 1: 15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이 이 말을 할 때는 로마로 가서 순교하기 직전 즉 믿음이 가장 좋은 때이다. 믿음이 초기가 아닌 성숙한 믿음의 시기에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였다는 것은 회개, 성화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칭의 구원의 징표는 성화의 생활로 나타나며, 나아가 성화구원을 이루는 삶은 영화구원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 구원의 개념 및 구원의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들어가며,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인내로 성화구원을 이루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며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자!
-출처- 이광복목사
출처: 하나님의 은혜만이... 원문보기 글쓴이: 주 은혜 입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