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를 지나며 김광수
신문을 깔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관심 밖으로 밀려난 단군의 후손들이
그 정황 전시품인 양 지하도 널려 있다.
암울한 역사를 지고 묵묵히 걸어 온 목숨
폐자재처럼 버려져도 조국의 품이라서
터트릴 분노도 없는가. 눈이 희멀건 그대들은
노숙자 오정교
이승의 끝이더냐 콘크리트 바닥 위로 세월이 강처럼 흐른다 건너지 못한 나루터에 흔들리는 육신이여
꾸역꾸역 모여 와 잃어버린 영혼은 종이상자에 갇혀 말리고 오그라든 사지 위로 옥죄어 오는 과거가 구더기로 우글댄다
아! 어찌 할거나 여기는 서울역 지하도 영등포에도 종로거리에도 낙엽처럼 구르는 군상들을 밖은 어둡고 종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구겨진 생의 뒷자락을 누가 그대 손을 잡아 저 강을 건너랴 스스로 돕는다는 하늘도 아직 열리지 않았다 안밖이 너무 어둡구나.
어느 노숙자의 노래 윤고영
모든 일들이 끝났을 때 또는 마지막 대사를 읊조리고 커튼이 내려질 때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를 일어서고 분주히 몸을 움직인다 펼쳐진 인생의 전을 잠시 걷우고 황망히 돌아가는 뒷모습들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갈 곳을 향해 돌아서는 그 정해진 안과 밖은 어떤 모순의 경계선일까 허물을 덮어주는 눈이 내리고 우리가 아름답게 가려질 때 그것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 축복이더냐
신문 두장의 무게
이의웅
영혼을 짓누르는 무게와 방황 만큼의 공간에 늑골 헤집는 허기와 피곤을 풀어 놓으면 민들레 눈망울이 밤마다 날 깨워 천길 번지 점프로 끌어 낸다 황사바람 불어오는 계절이면 남아 쳐진 시간은 뱀꼬리 처럼 길어지고 고무풍선 터질듯 울분의 붉은 닭벼슬이 온몸을 긁어 대지만 내 머물곳은 오로지 거기 뿐인것을 어쩌다가 낮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면 문둥이 내치듯 쫓겨나는 나의꿈 나의 보금 자리 긴 봄 날이면 통닭처럼 꼬부라진 새우잠도 자유롭지 못한 중천에 떠 있는 질기고 긴 세월이여
어느 노숙자 옥경운
구조조정에 밀리고 날마다 분노만 낚다가 어느 날 구겨진 자존심을 낚아 회를 친다, 절망을 발라내고 붙잡지 못한 어제로 포를 떠 다섯 입 삶의 무겔 꾹꾹 눌러서 허망한 오늘을 짜낸다.
절벽이던 귀가 운다 노모와 아내, 풀죽은 아이들 기도소리에 한 짐 후회를 내려놓는다.
소주 한 병과 노숙자 황라연
가을비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물기 축축이 베어나는 지하도 계단 모서리에 쭈그리고 앉아 김 오르는 사발면을 앞에 두고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긴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 돈이 없었을텐데 착한 이가 건네었나 깍지 않은 수염 감지 않은 머릿결 수염을 깍지 않아도 되고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는 곳에 그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소주를 마신 것은 그가 아니었다 한 병의 소주를 앞에 두고 평생을 부어내어도 다 쏟아지지 않을 허기진 인생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기아( 饑餓)에 대한 욕심덩어리를 버리고 사발면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넉넉한 식탁을 꾸미며 그것만이 필요한 것이라고 여분의 길이 남아 있지 않듯 그렇게 사는 것이 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노숙자의 죽음 임종린
어느 역사驛舍에서 노숙자가 동사凍死 했다는 뉴스 우리를 가슴 아프게 몰고 간다
우리나라 경제성장 세계 10위 권 이 노숙자의 죽음을 그냥 보고만 있을런가 물론 나라와 당사자의 잘못도 있겠지 그러나 하늘이 쳐다보고 있는데 우리 다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일원으로 우리가 자랑하는 자유민주주의체제 시민이기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 자를 용서 할 것인가
죽은 자는 대답이 없겠지만 묻고 싶구나
이세상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 있지만 그토록 허무하게 주저앉아 생을 포기 했느냐
우리의 큰 명절 설날이 왔는데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모르고 있었느냐
잘사는 자만이 살아 남는 세상을 원망하고 마음에 차는 일자리 없어서 방황 했지만 사회는 그대의 기질과 노력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울지 말고 일어 서야지 왜 통곡만 하고 웃을 날을 찾지 못했느냐
하느님은 험한 고난을 이겨내고 자기자신과 싸워 이겨내는 자를 인생의 승리자로 인정 축복을 내리시며 미소 짓는다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자신을 포기하는 자는 용서 받을 수 없고 이유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露宿者 (노숙자) 김수현
生의 비린내와 절망 고름처럼 달라붙어 곁에 동침하고
뼈 마디마디에 돋아난 피고름 건들면 터질 것 같은데
더 이상 날 수 없는 겨드랑이와 축 늘어진 몸뚱이
견디다 못해 벽을 바라보며 혼자 해대는 팬터마임
삶은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연습 끝없는 방황
표 상 백 창 훈
지하철역 계단 참, 한 구석 집을 잃고 넙죽 엎드린 한 노숙자 동전 몇 개, 지폐 몇 장 바구니에 담아 놓고 잃어버린 세월을 찾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무수한 세월들 구멍난 바구니 밑으로 새어나가고 담아도 또 담아도 그가 찾는 세월은 쌓이지 않는다.
그의 잃어버린 세월은 어디서 집을 잃고 방황하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를 잃어버린 눈물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세월을 잃어버린 유랑자, 그는 오늘도 깊은 침묵 속에서 세월이 버리고 간 유랑자들을 위해 시보다 더 뭉클한 자세로 엎드린 표상. 오늘도 人生이 벽을 잡고 도시 위에 누워있다
노숙자 인생 박세문
미동도 없는 찬 서리 살점 시리는 새벽 허너적 되고 비틀 거리는 긴 여정길.
별빛도 달빛도 없는 어둑한 골목 어둠 헤매다 지친 육신 쓰러져 눕는다.
갈 곳 있어도 갈 수 없는 평온의 안식처 후회의 맘 원망의 눈매 찬 바닥 내 자리.
차가운 시선 매서운 현실에 몸살라며 구원의 손길 아쉬움에 눈물 훔치는 너와 난 노숙자 인생.
노숙자 박세문
갈증과 허기로 역류되어 오는 그리운 삶들 멈춰버린지 오래, 기억마저 서럽다 그렇다고 푸른 산이 대신해 줄 수 있는게 아니다 출렁이는 바다가 빈 가슴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식지않은 체온이 싸늘하게 찰 뿐이다 결코 박제된 도시를 우린 허물 수 없다 웅크린채 내동강치고 돌아선 삶의 일부, 자유마저 억압받는 몸뚱이 하나 퍼득거리며
노숙자 -치유될 수 없는 삶 박세문
내 자리 네 자리 찾지 말라 내 누운곳 비록 차디 차지만 내 마음만은 평온이다 내 길 그대가 밝히지 못한다면.
내 아픔 어찌 모르랴 내 상처 깊음 또한 모를리 없다오 내 가슴 찢어져도 탓하지 말라 내 흔적 그대가 위로하지 못한다면.
내 가꾼 텃밭 있었다오 내 뿌려놓은 씨앗도 있었다오 내 거두지 못한 살갗 보일 수 있다오 내 넋 그대가 치유할 수 있다면.
노숙자 -혹과 독 박세문
그들의 방과 음성, 몰골마저 여전하다 차가운 등살은 그렇더라도 시선조차 시렸다 하물며 동물의 본성인듯 늘 울컥이는 포효, 객客들의 발길을 멈춘다 심장 일부를 멈추곤 한다 생살갗 돋우며.
바람마저 스산한데 오늘도 그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어떻게 살아서 예까지 왔을까 그리고 어떤 삶으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삶을 회복하기엔 이미 늦은감이 보인다 갈라진 살갗, 핏빨 선 눈조차 희미한 것이.
혈관을 통하는 핏줄마저 보이지 않는 역전의 혹이요 사회의 독이다 행정당국의 뚫린 구멍이요 국가의 치명타다
노숙자 명서영
어둠 속 아스팔트길이 호랑이 이빨처럼 하얗게 드러나 있다 동인천 역전 뒷골목 하늘로 길을 튼 우뚝 솟은 전봇대 그 전봇대를 기댄 한 노숙자가 술 취해 있다, 한 때 그가 누비고 다녔을 길과 건물들이 각을 세우고 그 위로 노란 별들이 연탄구멍 불처럼 가물가물 타고 있다 허기진 어둠은 길을 집어삼키려는지 저 끝에서부터 밀려온 길이 나를 잡아 흔들고 덩그렇게 던져진 세상한쪽, 뻣뻣한 전봇대에 밀린 사내는 그렁그렁 기침소리를 바람 속에 뿌리며 길의 커다란 입 속에 씹혀 있다 바람은 그 사내를 넘어 내게로 불어오고 있다
노숙자 이화엽
목젖까지 치켜오르던 태엽과 나이테의 윤기를 기억하는가 밤마다 잠들었던 곳은 표정이 분해되지 않던 곳 입술이 달던 공기속에 등뼈를 재웠더니 윗집과 아랫집의 통로에서 갉아먹힌 옷과 욕구라는 밥알
땅과 무덤의 껍질들이 존재의 이불이 되었다 기어오르거나 움직이는 표피, 표현하는 온갖것들의 층계는 죽었다 결국 옥상과 타인의 손목은 혈압이었으므로
비록 누추하나 순수의 본질 파산했던 무릎과 창자의 갈피갈피마다 끼워두고 삶의 바느질을 시작한다 집요했던 생의 핏줄은 잘라버린다 말과 땀방울의 박자가 틀려도 늦잠처럼 평화가 날마다 찾아왔다
숨쉬는 우주가 먼지의 역사를 기록 하듯이 빛의 서정만을 고정시켜둔다
지껄이는 서류, 네가 뱉어놓은 침은 다 다 무게였어 문신이었어 이제는 대상이 없는 벌판에다 나를 심는다 영혼의 무의식속에서 자아를 볼꺼야 살구꽃의 이유와 호두나무 그 그늘로 피어날꺼야
춤추는 각설이 1 김동원
엄니 바람이 차네요 늘 타이르 셨지요 남에 맘 아푸게 말라고 선한 끝 은 있어도 악한 끝 은 없다고 아닌것 같네요 앞 만보고 등이 휜 우리 아버지들, 노숙자란 꼬리표 달고 지하도 구석에 간이역 밴취에 개처럼 뒹굴어요 달빛에 어리는 처 자식, 빈 창자를 막 소주로 달래고 눈물에 안주로 등걸 잠 을 청하네요 직장이 버리고 자식이 외면하고 처 마저 등 돌리는 엄연한 현실 일 자리를 주오 가족을 돌려 주오 이데로 재같이 삭을수 없네요, 자꾸 명치끝이 아파 오네요, 엄니.
춤추는 각설이2 김동원
오래만에 서울 나들이 지하철 역 표를 사려 줄을 섰는데 걸뱅이가 다가와 오백원만 달래요 몇날 굶었드니 눈에 뵈는게 없다고 이데로 죽자니 억울해 눈을 감을수 없다고 참말로 강도질이라도 해 얼어 죽을 염려 없고 굶어 죽을 염려 없는 가막소라도 가서 이 겨울 나야 겠데요 하 기막혀 자세히 보니 어째면 좋와요 일만 하던 주변머리 없던 새마을 역군 이예요 차마 돌아서지못해 천원 주었드니 쾡한눈 으로 처다보는데 사숨을 꼭 닮았네요
노숙자의 새벽 양해선
잠을 걷어내는 새벽 눅눅한 신문지 틈새로 몸을 휘감아 일으키는 찬바람, 무작정 거리로 나서면 인적 없는 휑한 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차량들 그렇게 급히 가야 할 곳 있어서 좋겠다
생각 없는 몸은 앞서가고 마음은 얼기설기 얽히고 있는데 희멀건 가로등 아래 바람따라 밀려왔다가 수북이 스쳐간 하루살이들, 사방을 몇 번이고 둘러보아도 서둘러서 가야 할 곳 없다 잠시라도 마음 둘 곳 어디에도 없다
기다리는 아침은 왜 이리도 더딘가
도시는 절벽으로 막아서고 산발한 거미 한 마리 가파른 새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노숙자의 편지 임정은
밤이면 천상의 꿈으로 도를 닦고 날이 밝으면 "공수래 공수거" 철학을 터득한다 철저한 현실주의, 오늘만이 존재할뿐
모든 소유로부터 격리되던 그날 저 먼저 가출해버린 "내일"이란 단어를 향해 불분명한 주소이지만 날마다 편지를 띄운다 수취인의 거부로 번번이 되돌아오고
자의던 타의든 무소유를 원칙 삼아 오직 몸뚱이 하나 살짝 내려놓은 곳 집이요 침대요 곧바로 주방이지 얽매임으로부터 해방인가 쓰디쓴 자유인가!
노숙자 이운식
어느 해 굵은 태풍이 금수강산을 짓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산야에 모든 나무들이 수난을 당했다.
모질게 자란 뿌리 깊은 나무들은 잠시 휘었다 모두 일어났으나 온실 속에서 자란 면역 약한 나무들은 한번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설 줄 모른다.
가끔 내리는 이슬비에 힘만 좀 쓴다면 일어날 성도 싶지만 한 때는 하늘을 찌르는 기상으로 날린 적이 있다며 황홀한 옛 영화의 환상만을 꿈꾸며 아예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더러는 물을 주고 지주목을 대어 일으켜 세워도 보더니 이제 그들마저도 손을 놓고 습관처럼 바라만 본다.
이러다 단비가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해도 영영 일어서지 못한 채 고사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바람에 눕는 새벽 -노숙자를 노래한 시-
경록 박숙경
토우의 藝心 같은 푸르렇던 기억 한 소절도 안 되는 마른시간에 살라 꺼억꺼억 재로 날리고 찬바람조차 외면하는 삶의 폐부가 썩는 소리 덜커덩거리는 한숨 밟아서 새벽을 더듬는다.
아침의 어릿어릿 보랏빛 위를 뼛골 갉히는 쇳소리 각혈하는 술병에서 곪다곪다 응고되고, 어떤 지수 알음한 액자의 희망을 맑은 끄나풀 줍다 놓쳐 망각의 망각 유영하는 퇴락
숭엄한 이름들-家長, 아버지, 지아비-은 헛헛한 현실을 신열 앓고 덤으로 얻은 희롱에 갈 길 없어,
절름거리는 이 전설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불켜진 온화한 추억-그들의 목마른- 삶과 生과 희망에 허기져 조각으로 흐트러뜨린 채 특특한 아픔을 채워 도시의 작은 도시, 세상의 작은 세상에서 나는 소리, 허공을 뜯어 꺼억꺼억 쉰 울음 댄다 -노숙자의 새벽은 낮과 밤을 기만할 준비하기 위하여 낮과 밤은 노숙자의 느슨한 숨소리를 조롱하기 위하여-
숭엄한 기억 더듬는 새벽, 까칠한 바람에 눕는다.
여물게 하소서 황호전
헛청이냐. 공청(空廳)이냐. 어이 세운 걸사(乞舍) 드냐 월급날 쥐꼬리불만 자성스런 그리움에 노숙인 역사를 들며 주정꾼 험상 그린다
헛간이냐. 뒷간이냐. 누가 뚫은 음실(陰室)이냐 빈 통장 주판질에 한파도 나 자빠져 단봇짐 땅굴 길 골라 아랫목 꿈 세상 꾼다
헛 방랑, 헛 방심 한뎃 삶 휘휘저어 방치 건, 방사 건. 양심마져 가기전에 광에서 인심 난다는 부담(富談) 여물게 하소서
축 처진 버들 황호전
숲처럼 살고지고 역산(逆算)을 벗어 던져 노천도 까치놀에 짓 밟힌 풍전등화 과욕이 나태스러워 축 처진 버들 가질까
곰배팔이 같은 구상 탐색 못한 방석에 여투던 옹근 심신 저퀴에 똘똘말려 번민의 망상 기 따라 집나온 버들 잎 이냐
옹크린 재기의 씨 뱃구레만 뒤적뒤적 외숙의 절망가 폭포조의 난타라 해도 숨쉬는 파란피 만은 개지의 본 따지 말길.....
지하도 홍경흠
오갈 곳 없어 찾아간 서울역 지하도 전깃불이 눈을 껌벅인다.
시든 꽃들만 무성하다.
화려한 알맹이들은 외진 곳에서 푸른 빛만 떠올리고
그 옛날 삶의 터전에서 알았던 내 동료를 만났다는 친구는 떨어진 휴지조각을 밟으며 목말라 하는데 지하도에는 물이 없다.
모양 없는 발바닥은 바닥에 혀를 대고 수맥을 찾으려다 기운을 잃고 눈을 감으니 땅속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하여 속이 보이고 어느새 호수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빈 지하도는 차갑다.
노숙자 원공
조그만 보트 지나가는데 그 넓은 강물이 크게 일렁인다 노숙자의 마음이
*성동구 옥수1동 526-15 본명(김영호)
이런 사랑, 노숙자 같은 문은옥
세월아 가라, 가라 아니면 내 말을 들어 보라. 나에게 시간은 행려병자 같으니. 미치지 않아 미쳐
버릴 것 같은 내 사랑, 내 판단은 항상 빗나갔다. 갈수록 심심하게 해서 너무 심심해서 고통스러
운 내 사랑. 열차 지나는 소리엔 어릴 적 눈썰매 타던 소리도 들려 이곳을 차마 버릴 수 없거늘.
서울역 오가는 무수한 발길 속에 창녀처럼 채여도 이보다 편안한 곳이 이승 어디 있더냐. 세월
아, 세월아 너를 거꾸로 쏟아 마시면 일년 삼백육십오일 허기진 취기가 내 위장, 늑골 사이에서
긴-긴 겨울밤으로 웅크리고 있다. 너보다 더 든든했던 신문지 몇 장으로 내 혼을 덮고 잠들려 하
니 결코 건드리지 마라, 내 사랑. 한 평생 괴롭혔던 눈물도 영원히 접어두려 하느니.
謹弔 카나리아 이수화
내가 아는 失職女人 盧淑子. 한 때는 옛 대중가수 신카나리아 못지않은 뮤지컬 프리마 돈나 盧淑子. 그녀가 무색무취 有毒가스 有害여부 측정용 지하갱도 카나리아와 같은 露宿者된 까닭을 나는 알지 못하네. 다만 우리의 우리( )안 가득 차오는 무색무취의 有毒가스에 취해, 우리의 우리( )안 가득 차오는 무색무취의 有毒가스 正體가 무언지를 참으로 ‘확실’하게 알리고야만 盧淑子. 우리( )의 노래 잃곤 가아려언헌 카나리아 盧淑子. 謹弔......
우리동네 비둘기는 김원
우리동네 비둘기는 더 이상 날지않고 골목이나 공원을 말 없이 다니면서 버려진 음식물들을 뒤적이고 있다네.
신혼 빛 그 깃털은 짐승털로 변하고 봉숭아 빛 고운 발도 짐승발로 변하여 구.구.구. 따라다니던 식솔들도 없다네.
집 위에 집을 짓고 창 위에 창을 내어 사랑을 노래하던 천상의 그 모습이 어제도 내일도 없는 노숙자로 있다네.
섣달에는 군가나 부르자 김원
한 해가 다 기울고 짧은 해도 저물면 홍등가 골목같은 피맛골에 모여들어 잃었던 청춘과 같은 군가나 부르자.
세상은 축제하듯 큰길로 지나가며 가로수 고문하듯 전기꽃을 피워놓고 북소리 장단에 맞춰 흥청대고 있구나.
가정도 이웃도 나라마져 내팽개친 청량리 서울역에 널부러진 저 육신들 잠 깬듯 함깨 일어나 군가나 부르자.
생각하면 눈물난다 잃어버린 세월이여 취한 얼굴 마주하고 목청을 돋구어서 허무한 육십년대의 군가나 부르자.
주소: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1156-15 한라아파트 413-2001호 전화: 019-257-8686 이메일:wonygate@hotmail.com 노숙자
부산역 광장의 밤 이덕희
광장에는 주연배우도 없고 조연배우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만이 광장 한쪽 끝에서 나타나 다른 한쪽 끝으로 사라지는 무대가 있어 광고탑들이 빌딩 옥상에서 밤마다 쏘아보고 있다
광장에서 뒹굴던 빈 술병이 시멘트 바른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 발끝에서 대사에도 없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몇 쌍의 눈이 그 비명을 따라가며 번득이다가 애써 못 본체 눈빛을 꺼버린다
표현하기 힘든 색깔로 휘황한 광장 한 모퉁이에 버려진 신문조각처럼 구겨져 웅크리고 있는 삶이 있다
그 삶이 한 마디의 대사를 중얼거렸다 '저녁 노을 본 지 참 오래구나'
노숙의 길에서 신국현
끈 떨어진 쪽박이 서울을 담고 있네. 밤에는 별을 담고 낮에는 눈물을 주워 담네.
권력자의 위선도 가진 자의 거드름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담고 있네.
사랑도 담아보고 미움도 담아보고 인심도 담아보았네.
공원벤취, 지하도, 역전 광장에서
담을 줄 알기에 버릴 줄도 알았네. 버릴 줄 알기에 담는 지혜 깨달았네.
노숙자(露宿者) 이무권
오늘도 창밖에 찾아와 울다가는 들고양이 한 마리 언제쯤 집을 뛰쳐나온 것일까 타고난 천성으로 자유분방하게 잘도 사는 것 같은데 밤이면 찾아와 어김없이 집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고양이의 야성(野性)도 배우지 못한 마음 여린 사나이 신문지 한 장의 억지로 끊지 못한 인연들을 가리고 삶이 떼 지어 쿵쾅거리며 지나가는 통로 한 구석 낮잠을 가장하고 누워 있다
대안*이여, 천년의 세월이 한 바퀴 반을 돌았어도 그 깨우침 이르지 못하는 미련한 중생의 길은 어디가 시종(始終)입니까.
......... *대안(大安大師) : 구걸행각을 하며 중생을 교화했다는 신라 진평왕 때의 고승으로 원효대사의 스승이라고도 함.
노숙자 정정길
차단된 한쪽 생각을 요리 접고 저리 접은 지폐 한 장을 들고 메뉴판을 빤히 쳐다보며 요리 맞추어 보고 저리 맞추어 보다가 한 그릇 청하는 저 너머 지난날의 회상.
개판보다 더 못한 정치판의 부정부패를 한 것 씹으면서 이런 비리만 없었어도 세계화를 하루쯤 먼저 앞당길 수 있을 것인데 하며 한탄하는 듯 신문지를 깔고 앉자 소주에 눈물을 타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꾸역꾸역 마시고 있는 왕년의 검객으로 한때는 잘 나가는 사람 이였으리라.
노숙자의 밤 정숙인
하얀 눈발들이 서로 부딪혀서 흘러드는 지하의 거리 바람도 설 자리를 잃은 듯 배회하고 있다 날짜도 지워진 신문지 위에 시린 하루가 누워있다 벽을 타고 흐르던 아침의 핏기는 분해되어 버리고 손가락 끝으로 잡히는 허상 볼품도 없이 일그러진 불빛들만 욕망의 그늘 속으로 떨어진다 인기척마저도 돌아 누운 밤 언제부터 페달이 풀린 것일까 쉽게 부서지는 것이 삶은 아닌데 어둠에 쌓인 길목 이렇다 할 이정표도 없이 뒤안을 기웃대는 바람 같은.
*문학춘추 통권 제48호 신인상 수상작 가운데 한 편임.
노숙자 崔順子
탑골 공원 후미진 담 장 아래 봄 햇살 따사롭고 봄바람 살랑 인다
눈부신 태양 아스팔트 달구지만 노숙자 가슴은 여전히 시린 겨울
하늘은 날마다 흐리고 내일은 없다 가야 할 둥지 망각의 늪에 허우적거리고 마른 가슴 적셔줄 눈물조차 없다
도시의 흙먼지 등짐 지고 한 날의 종점인 지하철 모퉁이 찬 바닥 새우잠 들면 남루한 육체 벗어놓는 꿈 꾼다
눈뜨면 먹어도 배고픈 허기 누가 왜 그를 노숙자의 길로 내 몰았는가
허깨비의 분노 崔順子
12월 24일 성탄 전야 서울역지하도 후미진 공간 노숙자의 유일한 은신처 교회 찬양대가 찬양한다
이성을 잃어버린 젊은 노숙자 비틀비틀 걸어와 한 노인의 얼굴을 발로 찬다 힘없이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노인 히죽거리며 걸어가는 청년
꿈을 버리고 희망 접으며 사람이기를 포기한 그들은 허깨비
그들이 버린 꿈 찬비 젖어 흘러갈 때 우리는 어디 있었는가 그들의 희망 조각날때 우리는 무슨 생각했나
서울역 완행열차 돌아가자 소리쳐도 넘치는 분노 울컥거리는 허깨비
하늘은 어디를 보며 빛은 어디를 향하는가 이기적인 우리가슴 차디찬 겨울바람 아직 새벽이 먼 허깨비
원남동의 한 노숙자 이시환
얼마나 누더기를 껴입고 입었는지, 얼마나 찢어진 천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감았는지 흡사, 우주복을 입고 기우뚱거리는 것처럼 그녀는 어기적 어기적 인도를 다 차지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 있고, 때가 절은 얼굴엔 반백년 이상의 풍상에 시달렸음직한 주름들이 역력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아홉 시 삼 사십 분경에 종로4가 쪽에서 원남동을 거쳐 서울대 병원 후문 쪽으로 걸어가지만, 나는 같은 시각에 버스를 타고 서울대 병원 후문 쪽에서 원남동을 거쳐 종로4가 쪽으로 출근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원남동 네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녹색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원남동 네거리 짧은 횡단보도를 지나고 긴 꽃길을 지나 창경궁 돌담 모퉁이 벤치에 앉아서 아침햇살을 쬐며 담배꽁초를 아주 길게 길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그 벤치에 앉아 엉덩이를 덜썩거리며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면서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난히 추운 겨울 한 철이 한반도를 휩쓸었어도 그녀는 용케도 살아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고, 콘크리이트 유리빌딩이 숨 막히게 하여 이곳 어디 내려앉을 곳도 없지만
절룩이는 비둘기조차 뒷골목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우리와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내듯이 그녀도 혹독한 겨울을 살아내서 봄을 맞이했다.
누더기 대신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바뀌었고, 긴 머리칼도 짧게 손질되어 있었다. 여전히 한 손엔 뭔가로 가득 채워진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서.....
그녀는 오늘도 원남동 네거리 신호등 앞에 서서 녹색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벤치에 드는 아침햇살을 온몸에 쬐기 위해서, 그리고 버스에 갇혀서 실려가는 나 같은 사람과 빌딩에 갇혀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담배꽁초를 길게길게 빨기 위해서......
-2004. 11. 7. 16 : 15
신문지 한 장의 무게
이시환
폭염 속 공원 벤치에 널브러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신문지 한 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버려지는 족족 물이 살얼음이 되는 거리에서, 지하도 모퉁이에서, 버려진 신문지 한 장 속으로 온몸을 숨기고, 부끄러움조차 잃어버린, 그 마음까지 숨겨도
하룻밤 새 목숨을 보장해 주지도 못하지만 그 얇고, 그 가벼운 신문지 한 장이야말로 구겨진 채 버려진 깡통 같은 이들에게는 두터운 이불이 되고, 깊은 그늘이 되어 주네.
그런 신문지 한 장의 가벼움과 그런 신문지 한 장의 얇음만도 못하는 나는, 냄새나는 그들의 얼굴과 눈빛을 외면하고 돌아서며 침을 뱉으면서도 밤새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안녕을 걱정하네.
-2004. 11. 05. 23: 24
던져진 話頭 -안국역의 한 노숙자
이시환
정확히 말해서, 西紀 2004년 11월 9일 오후 10시 5분,
(아니, 이곳이 한반도이니까 檀紀를 써야지, 단기를!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 아니겠어?)
檀紀 3337년 섣달 초아흐레 亥時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지하도 중간쯤에 한 노숙자가 가방을 베고 다리를 구부린 채 옆으로 누워있다. 그의 얼굴엔 검게 자란 수염이 무성하다. 그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젊은 여자의 요염한 나신과 전화번호가 적힌, 내가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며 길거리에서 보았던 명함 크기의 남성 유혹 광고물을 유심히도 들여다보고 있다. 아니, 앞뒷면을 돌려가며 상하좌우를 玩賞하고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을 포착, 훔쳐보게 된 행인들은 한결같이 몇 걸음씩을 지나쳐서야 킥킥거리며 수군댄다. 마침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는, 여고생 두어 명도 몇 걸음 못가서 그만 킥킥거리고 만다.
-2004. 11. 9. 23: 10
거리의 천사 이 강 수
우리는 거지를 거리의 천사라 불렀던 적이 있다. 이 말은 아주 역설적인 말이다. 거지는 집도 절도 없으니 집에 불이 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집수리에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을 걱정 안 해도 된다. 귀중품이나 살림이 없으니 도적 맞을 걱정도 없다. 고급 옷을 입지 않았으니 옷이 상할까, 무엇이 묻을까 조심 안 해도 된다. 식량이 없으니 밥 할 수고도 없다. 마누라가 없으니 잔소리나 앙탈부림을 듣지 않는다. 그저 때가 되면 구걸을 하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된다. 배가 곱으면 얻어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가고 싶으면 가고, 누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 할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상팔자이다. 그래서 거지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거리에 천사라 불렀다.
거지를 걸인(乞人), 동양아치, 비렁뱅이 라고 도 불렀다. 걸식자(乞食者) 들은 인류사회에 전쟁, 재해, 질병 등으로 인해 어느 나라나 다 있다. 성경에도 걸인은 수도 없이 나온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제국에서부터 오늘날 최고의 물질 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에도 걸인은 존재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도 저 멀리 삼국 시대부터 걸인이 있었다는 기록이있다. 백제 제30대 무왕(600-641)이 거지로 꾸미고 신라에 들어가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오기 위해 서동요(薯童謠)를 지어 부르게 한 것이나, 근세조선 헌종 때 천주교 신도들이 외국 신부를 거지로 꾸며 밀입국시킨 것 등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학정이나 재해로 집을 떠난 유민들은 힘이 센 자는 도독이 되고, 기운이 약한 자는 거지가 되었다. 그들은 수십, 수백의 무리를 지어 집단을 이루기도 했고 소집단 패들은 각설이 패가되어 장바닥을 돌며 장타령을 부르며 생활했다. 절간에서 마을로 내려온 걸승(乞僧)은 목탁을 치며 복을 빌어 주고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거지들과 비슷한 솔장수패, 솟대잡이패, 쳉이장수패, 용천뱅이 문둥이패 들이 있어 나무나 풀 부리로 만든 가구와 말총제품들을 메고 다니며 팔아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인해 깡통을 찬 거지들이 부쩍 늘었으나 5.16후 정부와 종교단체, 사회단체의 노력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1997년 시작된 이른바 IMF 외환위기로 인해 하루아침에 사업체와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 앉은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노숙인(露宿人)라 부른다. 거지를 공식 명칭으로는 ‘부랑인’이나 ‘행려병자’라 불렀다. 이들은 시민 생활의 명랑화와 범법자 등 불순자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갱생원에 강제 수용되었다. 그러나 IMF로 수 천명의 실직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니 정부나 사회복지단체 들은 이들을 ‘실직노숙자’라 부르며 기존의 부랑인 정책과는 구별된 정책을 펴게 되었다. 또 ‘놈 자(者)’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어 ‘노숙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걸인과는 다르다. 어였한 중소기업의 사장이었고, 대기업의 직원이었으며, 경영자였다. 경제 성장과 함께 한때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국가의 외환위기로 하루아침에 사업은 부도가 나고 또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나 앉은 사람들이다.
빚쟁이는 몰려오고 집과 모든 재산은 차압되었으니 갈곳이 없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래서 지하도나, 공원, 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자선단체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얻어먹으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손 내밀어 구걸을 안 하니 거지가 아니다. 이들을 거리로 내 몬 것은 자신들의 능력에도 책임이이겠으나, 그보다는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책임 또한 면키 어렵다. IMF 체제로 인해 전국의 노숙자는 6,000 명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4,3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수용할 쉼터를 103개 처에 3,160명을 입소시켜 숙식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숙자는 수용시설을 외면하고 거리를 헤매며 생활하고 있다. 청년 실업이 크게 늘어나면서 취업하기가 쉽지 않고, 부모들이 노숙자 이니 자녀들도 노숙자가 되는 실정이다. 10대나 20대의 노숙자도 전체 노숙자에 10%에 해당된다고 한다. 가을비가 온 후 날씨가 제법 쌀쌀해 젓다. 밤늦은 시간 서울역 대합실에는 양복차림에 불룩한 배낭을 맨 사람, 겨울용 점버에 스포츠용 가방을 맨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성이고 있다. 30대의 한 젊은 노숙자는 6월부터 역 주변에서 일자리를 찾으며 생활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이미 포기했고, 주위에 신세지기도 싫어 앞길이 막막해 장기 노숙자가 될 것 같다고 했다. 35세의 박씨는 영등포 역 일대에서 월15만원씩 내고 고시원 에서 생활했으나 돈이 떨어저 거리로 나왔다고 했다. 불편 하지만 먹고 자는걸 해결하게 되니 그런 데로 지낼 만 하다고 한다. 장기 노숙자가 늘면서 이들처럼 젊은 층이 이에 가세하는 선진국형 노숙 형태가 시작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정적인 주거지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도는 여성을 ‘홈리스 여성’이라고 부른다. 여자들은 신체적 특성 때문에 노숙 할 수 있는 조건이 못된다. 여자들이 노숙인이 되는 것은 남편의 학대, 카드 빚, 남편의 사업 실패 등으로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 했으나 적은 임금으로는 자식들과 생활이 어려워 찜질방, 여관 등에서 전전하다가 여성 쉼터나 보호시설에 수용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수용시설이 충분치 않아 거리로 나오게 되는 수가 있다. 이들 중 소수는 생계를 위해 성 매매도 한다. 또 그들은 남자 노숙인 들이나 근처 폭력배에게 윤간을 당하거나 인신 매매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 홈리스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여성 수용시설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리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과 아울러 그들 자녀의 대책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거리 노숙자는 미국에서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엄마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뉴욕의 220개 노숙자 쉼터를 조사한 결과 이들 시설에 수용된 어린이 16,500명을 포함해서 38,400명의 집 없는 사람들이 수용돼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숫자는 실제 거리에서 먹고 자는 수 천명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작년에 뉴욕에 갔을 때 나는 거리의 노숙인을 보면서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었다. 공원, 건물 계단 입구, 상점 앞, 지하철 환기구 위, 지하철 역 등 가리지 않고 웅크리고 잠을 자는 노숙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가족 노숙자도 간간이 보였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진 자들도 있다고 한다. 다만 그들은 뉴욕의 집 값이 너무 비싸 집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노숙을 하는 경우라고 한다. 이런 문제는 불안한 고용 시장과 치솟는 주택가가 주요 요인이다. 전세계 어디든지 있는 거지, 노숙인, 부랑인, 행려병자들이 줄어들고 모든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누리며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불가능 한 것인가? 눈이 올 것 같이 꾸물대는 서울역 앞을 날씨와 같이 답답한 마음으로, 추위에 움츠린 노숙인 곁을 지나쳐 발걸음을 옮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