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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유산 가산오광대 놀이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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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스크랩 ★가산오광대
寶山 추천 0 조회 37 08.12.22 01: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가산오광대
축제기간중
가산오광대보존회
탈춤공연장, 하회마을 등
 
 
 
 


가산오광대 대사는 '강룡권' 본이 1972년에 간행된 국어국문학 55∼57 합병호(가산오광대 대사)에 실려 있고, 1974년 11월에 서강대학교 민속문화연구회 학생들이 유인한 것이 있으며, 『한국연극』1977년 1월호에 이두현 교수가 발표한 것이 있다.


가산오광대는 조선조때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서 발상한 탈놀음으로 약 2∼3백년의 전통을 가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문헌이나 기록은 없이 전래되어 왔다. 가산리는 조선시대 말기까지 조창이 있었던 곳으로 인근 7개군의 세곡을 징수하여 이곳을 통해 제물포로 운송하던 항구였으며 그 당시는 약 3백여호의 대취락지로서 큰 시장이 형성되어 인근지방을 비롯한 타지방 항구와도 교류가 많았던 곳이었으며 한때는 조창오광대라 불리우기도 하였다.
가산에는 한씨가 정착한지 11대에 이르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으며 현재 전해지고 있는 동제인 천용제의 과정에서 성황신(城隍神) 다음에 모시는 상신장과 하신장의 석장승 그리고 부락민의 생명수 구실을 하고 있는 방갈새미(井)에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리고 있다.음력 정월초하루에 모시는 천용제 직후부터 시작하는 지신밟기가 15일에 노는 오광대 놀이까지 연결되는 것을 보더라도 이 놀이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가산오광대는 그 어느 지방의 탈놀음보다 가장 최근까지 전승되었는데 1960년에 연희된 것이 최종막이었다.

가산오광대가 1960년 이후부터 중단되었던 것을 동아대학교 교수 강용권박사가 1971년에 발굴하여 재연시켰으며 1974년 경상남도 지방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가산오광대의 대사는 1972년 간행된 국어 국문학 55∼57 합병호에 강용권 박사가 쓴 것이 실려있고 1974년 11월에 서강대학교 민속문화연구회에서 유인한 것이 있으며 한국연극 1977년 1월호에 이두현 교수가 발표한 것이 있다. 복원후에는 매년 연희되어 오고 있으며 1977년 4월 제9회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0년 11월 17일 문화공보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 73호로 지정을 받고 한우성, 한우은씨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13명의 전수 장학생에게 전수교육을 이수시키고 있으며 29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한국민속가면극은 양반에 대한 서민의 반항, 남편과 처·첩간의 삼각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 파계승에 대한 풍자가 공통된 내용인데,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사자무·먹중·상좌무·오방신장무·문둥이·영노과장 등이 지방에 따라 삽입된다. 이 중에서 가산오광대에 오방신장무·영노·문둥이과장이 있음은 가산의 탈놀음이 오광대 계통의 가면극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2) 오방신장무과장은 예전에 진주, 마산, 신반, 초계 오광대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가산 뿐이니 오방신장의 춤은 한국민속가면극에서는 유일한 것이 된 셈이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서 추는 신장무는 특이한 사위로 첫과장에서 연희된다.
3) 가산오광대에는 사자무과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영노과장과 합친 것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영노과장의 대사는 딴 지방의 그것과 비슷하며 영노탈은 딴 지방의 사자탈이 그대로 영노역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노에게 양반이 잡혀 먹히는데 까지는 영노과장의 내용이며 황제장군을 잡아먹는 영노가 포수에게 사살되는 것은 통영오광대의 사자무과장과 같이 때문이다.
4) 등장인물의 수가 5인인 경우를 보면 양반과장은 거의 같으나 가산의 양반은 3인으로 특이하다고 하겠다.
그 반면에 신장과 문둥이 그리고 무당이 각각 5인씩 등장한다. 이것은 오광대라는 명칭의 연유를 오행설에 두고자하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5) 가산오광대는 경남오광대와 동계임은 분명하면서도 지역적으로 가장 가까운 진주와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 흡사하다. 한국민속가면극의 할미영감과장에 있어서 첩으로 인해 본처인 할미와 싸우는데 태반의 경우는 영감이 할미를 때리거나 걷어차서 실신시키면 할미가 죽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가산오광대에 있어서는 동티가 나서 영감이 죽으니 이러한 형상은 가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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