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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 디트로이트미술관에 걸려 있는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디트로이트 산업’. 가로 24m, 세로 6m의 벽화를 한 컷에 담을 수 없어 사진을 나눠 찍어 이어붙였다. |
인간의 오감(五感)을 즐겁게 해준 최초의 자유는 이동(移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낯선 어딘가에 갔을 때 느끼는 자유 말이다.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 같은 형이상학적 자유는 사회, 국가와 같은 복잡한 구조가 나타나면서 생긴 자유이다. 전혀 다른 공간, 환경, 공기를 마주하게 되면 인간은 원초적 자유를 느낀다.
말(馬)은 인간에게 공간적 변화가 주는 자유의 기쁨을 창조해낸 동물이다. 낙타나 소도 있지만, 스피드나 거리 면에서 역시 말이다. 이동의 자유만이 아니라, 말에 탄 채 세상을 보고 말이 움직이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말은 자유이다.
말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성지인 디트로이트에 들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의 경우 많아야 인간에게 100㎞ 내외의 자유를 보장했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는 수백 수천㎞의 자유를 제공한다. 말에 비해 날씨나 환경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자유의 나라 미국은 정치·사회·문화적 분야뿐만 아니라 공간적 차원에서의 자유를 가장 먼저 획득한 나라이다. 자동차가 생기면서 모두가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됐다. 돈만 주면 자동차를 살 수 있고, 자동차가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유럽의 도로는 마차를 위한 좁은 길을 확장한 것이다. 때문에 길이 좁다. 미국은 처음부터 자동차용 도로로 출발한다. 한 차선에 두 대는 달릴 정도의 넓은 길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다.
블루칼라의 도시, 디트로이트
유럽과 달리 도로이용세나 통행세도 거의 없다. 동부·서부의 일부 도로에서 통행료를 받지만, 중부·남부·북부로 가면 모든 도로가 무료이다. 넓은 길과 무료 도로를 통해 피부로 느끼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는 이른바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3로 불리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공장이 들어선 곳이다. 미국인의,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블루칼라의 도시가 디트로이트이다. 미국식 자유는 블루칼라에서 시작됐다.
디트로이트에 들른 것은 공화당 예비선거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다. 처음 가기 때문에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갔지만, 디트로이트의 현실은 자유가 주는 활력과는 거리가 먼 도시로 변해 있었다. 중심지로 들어가자 일단 사람이 없다. 마치 동부유럽에서나 볼 듯한 볼품없는 10층 이상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자세히 보면 3, 4층 위로는 아예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무실도 주거용도 아닌, 그냥 빈 건물들이다. 오후 2시인데도 가장 번화하다는 르네상스 거리에 사람이 없다. 말로만 듣던 빅3의 참담한 현실이 디트로이트 전역에 퍼져 있는 듯했다.
파산선언 후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다시 살아난 GM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차가 안 팔리면서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이 15%로 올라간다. 미국의 평균 실업률 8.7%보다 거의 두 배 수준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불황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한국인에게 실감케 했다. 한국의 불황에 비해 2012년 디트로이트의 상황은 ‘시각적’으로 무섭게 느껴진다. 한적한 거리, 깨어진 유리창, 높은 범죄률, 스쿨버스 운행 횟수 제한, 경찰관 수 축소, 지하철 운임 상승과 운행 대수 감축…. 불황이라도 거리와 건물이 사람들로 붐비는 한국적 상황과는 다른, 뭔가 음산하고 축축하며 불안한 곳이 미국이다. 2012년, 차가운 쇠로 만들어지는 자동차 산업의 성지 디트로이트는 불황의 최전선에서 신음하고 있다.
음산한 도시를 뒤로 하고 기분 전환 겸 디트로이트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에 들렀다.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격이 높은 장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화스러운 곳이다. 미술관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끝나던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다. 일찍 화가로 성공하지만, 테니스 경기장에서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살인을 한다. 사형선고를 받지만 남쪽으로 도망간다. 말타(Malta)에서 술을 마시다 다시 살인을 한다. 나폴리로 도망가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낸다. 빛과 그림자를 강조한 카라바조풍의 그림은 해상도시 나폴리를 통해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알려진다. 렘브란트를 비롯한 17세기 화가 대부분이 영향을 받는다. 교황에게 사면을 받기 위해, 자신이 그린 성화(聖畵)와 함께 배를 타고 로마 근처로 간다. 사면 소식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가 39세로 세상을 뜬다.
살인자 화가, 카라바조
미국 미술관은 보통 카라바조의 그림을 구입하지 않는다. 전시도 꺼린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화가 중에 남의 목숨을 뺏은 사람은 참 드물다. 스스로 자책하면서 자살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른다. 살인을 행할 만큼 파괴적 성격을 가진 화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워싱턴 국립예술미술관에는 카라바조 그림이 한 점도 없다.
디트로이트미술관의 카라바조 그림은 이탈리아 전시관에 있다. ‘마르사와 메리 마그다레네(Martha and Mary Magdalene)’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창녀로 있다가 예수로부터 구원을 받는 막달라 마리아의 회개 장면을 담고 있다. 밝은 세상으로 돌아오라는 마리아의 여동생인 마르사의 간절한 요청에 답하는 장면이다. 살인자 화가라는 오명을 씻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겠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회개를 통해 카라바조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보여 주려는 그림처럼 느껴졌다. 명과 암,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분명한 카라바조 특유의 화풍을 읽을 수 있는 그림이다.
“여기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그림을 가장 먼저 피난시킬지 모르겠다!” 옆에서 함께 그림을 보고 있던 60대 미국인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순간, 정색을 하면서 필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현관 쪽 그림을 안 본 모양인데, 거기 간 뒤에 판단하는 것도 늦지 않을 듯한데? 물론 비상시라 하더라도 옮길 수 없는 그림이지만….”
굵은 귀걸이와 금목걸이로 장식한 여성이 자리를 뜨는 순간, 뒤에 앉은 미술관 스태프에게 현관 쪽 그림의 정체를 물어봤다. “아직도 안 봤단 말인가? 여기 들어오는 즉시 제일 먼저 보는 그림인데….”
지하 주차장을 통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현관 쪽 그림을 놓친 듯했다. “리베라!”라는 말을 흘려들으면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오감 아니 육감조차 압도하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본 그 어떤 그림보다도 ‘크고 단단하고 무겁고 힘찬’ 그림이다. 은은한 조명을 통해 읽는 내면의 그림이 아니다. 파도가 치고 폭풍이 몰아친다. 아니 지진과 해일이 밀어닥친다. 숨을 곳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만나는 그림이다. 속삭이는 듯 달콤한 쇼팽의 야상곡이 아닌, 황제 나폴레옹의 얼굴에 붉은 와인을 뿌리는 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이다. 아우성, 거친 숨소리, 굵은 땀방울, 충혈된 핏빛 눈동자가 떠오른다.
공산주의자가 그린 ‘디트로이트 산업’
동서를 잇는 출입구 위와 남북으로 마주 서 있는 두 벽면 전체가 그림이다. 벽화이다. 가로 23m, 세로 5m 크기이다. 가로 24m, 세로 6m에 달하는 바닥은 흰색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돼 있다. 햇빛이 투영되는 큰 유리창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말로만 듣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이다. 2002년 개봉돼 화제가 된, 영화 ‘프리다(Frida)’의 주인공인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 멕시코 화가이다. 남미의 피카소라 불리는, 벽화를 주로 그린 화가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디트로이트미술관 현관에서 만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그림은 ‘디트로이트 산업(Detroit Industry)’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디트로이트 산업의 중심이 자동차 산업인 만큼 벽화의 대부분은 자동차 공장을 다루고 있다. 디트로이트 산업을 구성하는 의약·제약·화학 관련 그림도 있다. 공장뿐만 아니라 보트나 농업 현장도 부분적으로 볼 수 있다.
벽화가 워낙 크고 방대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볼지부터 정해야 한다. 미술관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림의 구석구석을 설명한 앱이 미술관 전용 아이패드를 통해 서비스된다. 무료로 대여해 준다.”
아이패드가 미술관, 음악회에서 활용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경험하기는 처음이다. 자세히 보니까 아이패드를 보면서 설명을 듣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벽화에 관한 설명은 전부 10개 분야로 나눠져 있다. 벽화에 관한 구체적 설명, 화가 디에고 리베라, 벽화가 그려질 당시의 상황과 배경, 벽화에 얽힌 에피소드 등이 주된 내용이다.
얘기는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아니, 세계 자동차 산업의 선두주자에 해당하던 제2대 포드 회장 에드젤 포드(Edsel Ford)는 디트로이트미술관 현관에 실릴 벽화를 리베라에게 부탁한다. 리베라는 당시 세계적 벽화 화가로 알려져 있었다. 에드젤 포드가 요구한 벽화의 조건은 단 하나이다. 디트로이트 산업과 관련된 그림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리베라와 부인인 프리다가 디트로이트로 날아온다. 포드 공장 내부와 디트로이트 전체를 한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벽화의 내용을 구상한다. 1932년 7월에 작업에 들어간다. 9개월 만인 1933년 3월에 완성된다.
벽화에 쏟아진 비난의 목소리
벽화가 완성되자 포드 경영진과 디트로이트의 유력자들이 참관한다. 다음날 디트로이트 신문에 실린 평을 보자.
“구상 면에서 수준이 너무 낮고, 바보스럽고 천박하고, 디트로이트 노동자를 비하하고, 무엇보다도 미국적(Un-American)이지 못한 그림이다.”
신문의 미술평론가는 지금 당장 벽화를 파괴하라고 주장한다. 비난의 목소리는 신문만이 아니라, 디트로이트 정치가와 경영진으로부터도 나왔다.
“미국인 화가도 많은데, 왜 리베라에게 엄청난 돈을 주면서까지 저질 벽화를 만드는가?”
에드젤 포드는 밀려드는 비난에 대해 짤막한 글로 대응한다.
“나는 리베라의 이상과 영혼을 존경한다. 그의 생각을 디트로이트의 이상과 영혼에 맞추었다고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비난의 목소리가 강해질수록 벽화를 보러온 관람객 수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오픈한 지 1주일이 지난 뒤 일요일 하루 만에 무려 1만명의 관람객이 밀려든다.
리베라 그림의 핵심은 남북 벽면에 실린 두 개의 벽화이다. 두 벽화는 포드자동차의 ‘리버 로지 공장(River Rouge Plant)’ 내부와 주변을 그린 것이다. 지금도 활동하는 공장이다. 남북 벽화는 윗부분에 흑인·백인·동양인·인디언을 상징하는 4명의 여성 나상(裸像)이 들어서 있다. 남과 북 벽화에 각 2명씩으로, 네 여성의 손에는 철·석탄·석회암·모래가 쥐어져 있다. 산업의 근간인 강철을 만드는 소재들이다. 4명의 여성 중 백인은 리베라 자신의 조수를, 흑인은 리베라가 묵었던 호텔 종업원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 한다.
여성 바로 밑에는 강철의 소재가 되는 4개 자원의 원천인 지층과 마그마 등이 그려져 있다. 이어 바로 아래는 벽화의 중심에 해당하는 포드 컨베이어 벨트 공장이 들어서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모습이 보인다. 설계하고 닦고 조립하고 기름 치는 모습이 전면에 펼쳐진다. 톱니바퀴와 대형엔진이 화염과 수증기를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
포드가 만들어낸 포드 시스템, 즉 컨베이어를 통한 기계적 조립 공정 과정이 벽화 속에 나타나 있다. 벽화를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심하게 말하자면 노동자를 쥐어짜는 듯한, 착취하는 모습이 벽화 전면에 드리워져 있다.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경영진과 힘들어하는 흑인 노동자의 모습도 벽화 속에 숨어 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동쪽 출입구 위 벽화는 방독면을 쓰고 있는 노동자가, 서쪽 출입구 위 벽화에는 프리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자궁 속에 든 어린이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벽화의 이미지는 뭔가 음산하고 비건전하게 느껴진다. 미술평론가가 말했듯이 비미국적(Un-American)인 그림처럼 느껴진다. 기계적으로 일하면서 착취를 당하는 반자본주의 성향이 짙은 벽화이다.
1886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리베라는 남미를 대표하는 공산주의자 중 한 명이다. 영화 프리다에도 나오지만, 러시아혁명 후 트로츠키가 프리다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은 공산주의자 남편 리베라 덕분이다. 리베라가 공산주의에 빠진 것은 유럽에서 화가수업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20대와 30대,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를 돌면서 그림공부를 하는 동안,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던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다. 동시대에 태어난 피카소 역시 공산주의에 빠진다.
러시아혁명 직후인 1921년 멕시코로 돌아온다. 스페인에 맞서 싸운 멕시코혁명을 주제로 한 벽화를 그리면서 세계적 명성을 갖게 된다. 후에 러시아혁명 기념일에 참가하고 멕시코 공산주의 운동의 중심에 선다.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고 성직자들을 암살하려는 단체를 지원하기도 한다.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하고, 그중 두 번은 21살 연하의 프리다와 한다. 이혼했다가 다시 결혼하고 다시 헤어진다. 리베라가 디트로이트에 온 것은 명성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이다.
포드 회장이 공산주의자이던 화가에게 그림을 맡긴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930년대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독일 전체주의를 막을 수 있는 방패로 받아들여졌다. 공산주의를 찬미할 수는 없지만, 독일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동지쯤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정부도 소비에트를 비난하지 않았다. 한국 독립 과정에 나타난 포츠담선언, 카이로선언을 보면 소비에트는 미국의 친구이다.
벽화에 담긴 100년의 일기
소비에트는 자신의 집단공장에 기계적 공정 과정인 포드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한다. 포드시스템은 소비에트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한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여졌다. 자연히 포드와 소비에트는 좋은 관계를 갖게 된다. 1929년 경제공황이 불어닥치면서 미국 공장 내에 공산주의 운동이 위력을 발휘한다. 노동조합이 강화되고 경영진에 대한 테러도 일상화된다. 리베라의 벽화는 경제공황이 터진 지 2년 뒤에 발주된다. 노동자들의 입김이 극에 달했을 때이다.
공산주의 화가를 불러들여, 거꾸로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이 벽화의 목적이라 볼 수 있다. 무조건 막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출구를 열어두는 식이다. 벽화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한 치 양보 없이 대치하던 포드자동차 내 노사분규는 공황이 끝나가면서 화해무드로 전환된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포드는 다시 세계 자동차의 선두주자로 부활한다. 1980년대 일본이 자동차 강국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세계를 주름잡는다.
지나치면 화가 된다. 1930년대, 자유의 상징인 자동차는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를 질식시킨다. 1990년대부터는 거꾸로 노동귀족이 출현하면서 미국 국민의 자유를 압박한다. 노동조합이 강화되면서 급료가 수직으로 오르고, 복지수준도 회사 사장급으로 올라간다. 외형은 블루칼라지만 속은 화이트칼라이다. 노동에 지친 조합원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력제인 비아그라까지 구입해 나눠 줄 정도이다. 경쟁력이 땅에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 유령도시로 변한 디트로이트 중심지가 증거이다. 2012년 리베라가 살아있다면 노동자에 대한 복지비용으로 인해 출고 전에 이미 자동차 한 대당 2500달러가 붙어있는 디트로이트 빅3의 현실을 어떤 식으로 그려낼까?
인간의 오감을 즐겁게 해준 20세기 최고 발명품의 현장, 빅3의 어제와 오늘, 생산성과 효율성의 의미, 이념과 예술의 간격, 소비에트와 미국과의 전략적 우정, 노동자와 경영자, 디트로이트의 내일…. 고전적 의미의 그림에서 찾을 수 없는, 80여년 전 리베라가 그린 벽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인류가 쌓아온 100여년간의 일기(日記)가 네 개의 벽면에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