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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서울일보) 2009.8.26.(수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쏙독새에게 부치다 이영식
동네 간이우체국에서 시집을 부쳤네 등기도 속달도 아니요 야생화 그려진 우표 두 장 붙여 빨간 우편함에 밀어 넣었다네 내 시집이, 시집가는 곳은 해남 땅끝마을 후박나무가 있는 집 나무늘보 걸음처럼 느릿느릿 내 노래는 해거름 바닷가에 닿겠지 저 아무개님은 첫날밤 옷고름 풀 듯 내 첫 시집을 펼칠 것인데 기다리던 안부, 알싸한 향기는 무슨 책갈피마다 생의 비린내만 진동할 테지 쏙독쏙독- 어둠 썰어놓는 쏙독새 울음소리와 함께 시의 행간을 더듬어갈 사람 그럴수록 내 노래는 속내를 감추고 후박나무 그늘 속으로 잦아들 것인데 애인아, 땅끝이라는 지상의 주소만큼 막막함 끝에 닿는 그리움이 어디 있으랴 별정우체국 먼지 낀 창가에 서서 내 가슴에도 꽃잎 우표 몇 장 눌러 붙이고 바닷가 사서함 어디쯤 쏙독새 울음 쪽으로 귀를 기울여보네
◆시 읽기◆ 시인이 첫 시집을 묶어내는 일은 출산의 산고를 치르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 힘든작업을 거쳐서 출간된 첫 시집을 부치고 난 뒤의 심정을 한 편 서정시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늘 가까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별정우체국에서 해남 땅 끝 마을까지, 땅 끝이라는 지상의 주소만큼이나 막막할 정도로 그리운 사람에게 첫 시집을 보낸 것이다. '저 아무개님은 첫날밤 옷고름 풀 듯 내 첫 시집을 펼쳐 보고 있을 것인데....' '그럴수록 내 노래는 속내를 감추고, 후박나무 그늘 속으로 잦아들 것인데....'
쏙독새가 울고 있을 바닷가의 늦은 밤, 애인은 설렘과 기대 속에서 시집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알싸한 향기담긴 글 한줄 없이 책갈피마다 생의 비린내만 진동하는 시집을 읽고 있을 그 애인은 시들의 행간을 더듬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한편 한편의 뜻이 제대로 읽혀질까? 행여 실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두근거림 속에서 시인 역시 설렘과 함께 막막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시집출간의 경험을 가진 시인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집을 내고나면 자신의 시를 읽어주는 독자의 반응이 살펴지게 된다고 한다. 독자의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은 마치 개표결과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고, 아기의 건강한 첫울음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마치 이를 대변하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첫 시집을 부치고 난 뒤 시인의 심정을 잘 그려 놓은 시이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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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심정 이해가 갑니다,. 더 잘 살아야 할텐데
지금도 그러신데 더 잘사시게요? ㅎㅎㅎ열심히 좋은글 많이 쓰셔서 책으로 묶어시길....^**^
창작의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더 큰가봅니다..... 감사하게 더 잘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작품 모셔 갑니다
조선문학으로모셔 갑니다
좋은 글 모셔 갑니다
글 쓰는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내용이네요. 좋은 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