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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귀주성에 가다.(3부; 용궁,천태산오룡사,민속촌툰보마을 편)
-. 넷째 날 (안순시 6/16일) ; 용궁, 천태산오룡사, 천룡툰보마을
7시30분에 호텔을 출발 목적지 용궁(龍宮)으로 가기위해 전용차를 타고 가는데 가이드가 용궁으로
들어가는 길은 지금 도로확장공사로 어쩌면 길을 통제 할지도 모른단다. 현재 대형관광버스는 통
제되고 있는데 우리전용차는 16인승이기 때문에 잘하면 공사 길을 비켜 갈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약간의 불안한 마음으로 공사를 하고 있는 길을 통과하는데 다행이도 겨우 통과를 할 수가 있었다,
이럴 때는 예상대로 16인승차를 타게 되어 행운이었다. 먼 길을 와서 여행 일정이 차질이 되면 난
감 할 수밖에 없다. 목요산행팀에게 행운이랄 것도 없지만 하여튼 천만다행이었다.
용궁(龍宮)은 안순시에서 32km 떨어진 곳에 있는 종류석 동굴로서 동굴내부에 물이 흐르는데 수
심이 22~33m나 되고 천하기관(天下奇觀)으로 표현되는 동굴내부는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용왕(龍王)의 수정궁 같다고 하여 용궁(龍宮)으로 불린단다.
안순에서 용궁으로 가는 산속 도로는 좁아서 관광객을 위하여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교량을 넓
히거나 돌산 기슭을 깎아내는 공사는 낡은 장비와 인력으로 하고 있었는데, 취약한 조건에 공사기
간이 쉽게 끝나기는 어려울정도로 열악해 보였다.
공사로 인해 어렵게 용궁입구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8시30분쯤 되었다.
< 용궁으로 가는 입구매표소 앞>
< 용궁에서 흘러나오는 하천 옆 트래킹로드를 가고 있는 J님>
< 용궁으로 들어가기 전 동굴폭로가 보이는 곳에서 >
용궁으로부터 흘러오는 하천 옆 트래킹로드를 20여분 걸어가면 용궁으로 들어가는 아래쪽에 하천
을 건너는 다리 입구에는 2마리의 쌍룡이 조각되어 있고 그 옆에는 용궁에서 흘러나온 물이 천지
(天池)를 이루고 다시 천지(天池)의 물이 흘러넘치는 폭포수가 마치 용의 입에서 불이 아닌 물을
품어내는 형상의 폭포수가 웅장하게 용동(龍洞)을 우렁차게 울린다.
< 용궁폭포옆 쌍룡조각 앞에서 >
< 반대편에도 다리입구에 쌍룡조각이 있다>
용궁폭포를 보고 하천을 건너는 다리 앞에는 정교한 쌍룡이 조각 되어 있었는데, 다리를 건너니까
아까 본 똑같은 쌍룡이 조각이 되 있었고, 그 앞에는 30m 높이의 대형 엘리베이터 승강장이 있
었으나 우리는 그 옆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면 용궁(龍宮)입구인 천지(天池)를
만난다.
< 천지 물이 용궁폭포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
< 천지에서 보트를 타고 용궁(龍宮)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천지(天池)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큰 연못 정도로 용궁(龍宮)으로 통하는 수면과 일치하고 용궁
(동굴)입구가 있다.
천지에서 10인승 보트를 타고, 용의 궁전인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입구로 들어가면 기기묘묘한 형
상을 하고 있는 종유석에 집중하여 조명하는 불빛이 화려하게 비추고 있다.
동굴내부는 보트2대가 서로 비켜 지나갈 수 있는 수로 옆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석(奇石)들이 있
어 그것을 안내자가 설명을 하여도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신비감이 가득
한 동굴로서 여느 동굴보다도 다른 모양의 수상궁전이었다.
< 용궁동굴 내부 10인승 보트가 지나가고 있다 >
< 용궁동굴 내부에 기석(奇石)들에 조명이 화려하다>
용궁(龍宮) 동굴내부를 둘러보는 데는 20~30분정도 걸렸다. 여러 가지 형상들의 동굴내부에 산재
되어 있는 종류석 중에는 ‘동굴속에 동굴’이라는 형상 이 특이하게 보이는 등 재미있는 모양들이
많았으나 아쉽게도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설명 할 수 가 없다.
< 용궁동굴, 아까 들어왔던 입구이나 지금은 나가는 출구 모습이다>
< 천지(天池)에서 용궁폭포로 흘러 들어가는 폭포수 >
용의 궁전인 용궁내부를 두러보고 나와 아까 본 쌍룡이 조각된 폭포수의 상층부로 천지에서 물이
흘러들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용궁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을 내 보이며 사달라고 조르는 사진사를 동정심
(?) 많은 내가 그냥 외면할 수가 없어 사 주었다. 흔히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일인데 가능하면 사
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진들은 오래가면 변색이 되기 때문이다.
올라 왔던 반대편 트래킹로드를 따라 매표소 쪽으로 내려오는데 강(하천) 가에서는 여유 있는 모
습으로 강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순간 낚시 좋아하는 나는 그의 얼굴에서 순박하고 편안한 모습에 그만 홀린 듯 처다 보면서 낚시에
대한 그리움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매표소가 있는 입구에서 우리는 다시 전용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천태산오룡사(天台山伍龍寺)
로 출발하였다.
천태산 그리고 오룡사는 중국에서 또 다른 지역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안순시에서 27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태산오룡사다. 명나라 시황제인 주원장이 운남을 수
복당시 군대를 주둔시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용궁(龍宮)을 출발하여 11시30분경에 천태산오룡사 입구에 도착했다.
일행들을 주차장에 잠시 기다리게 하고서는 가이드가 입장권을 사서 예뿐 아가씨와 함께 온다. 그
아가씨는 현지 가이드다, 현지 소수민족으로 관광객은 의무적으로 대동하게끔 되어 있단다.
< 천태산오룡사 가기 전 입구주차장 앞 >
< 천태산오룡사가는 입구, 그 옆 전광판이 있는 곳이 매표소다 >
< 우리 전용차에 내 옆에 앉은 현지 가이드 >
민속 옷차림의 소수민족인 현지가이드는 우리를 안내하지도 않고 천태산 올라가는 입구에서 내리
고 같이 동행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당국의 배려로 가이드는 형식절차고 대신 안내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생활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쪽 가이드가 배려를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보는 소수민족들은 모두가 얼굴 표정이 밝아 보여 좋았다.
< 천태산오룡사로 가는 길 >
< 천중지천(天中之天) 문 앞에서 J와 H >
< 망월대 앞에서 >
이제까지 보아온 큰 대륙(大陸)의 경이로움에 비해 다소 실망스런 풍경이다, ‘천태산오룡사’ 란 이
름에 걸맞지 않게 그리 높지 않는 봉우리에 돌산에 돌로 쌓아 올린 성벽이 중세 유럽의 성(城)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함이 나를 의심케 한다. ‘천중지천’문을 지나 다음관문에 오르기 전에 망월대
에 포즈를 취해 보았지만 이곳이 주원장이 서남지역의 지배를 위해 군사 요새로서의 망루인지 아
니면 달맞이하기에 좋은 위치인지 망월대라 부르고 있었다.
< 망월대 앞 S님, >
성벽이 돌로 쌓아올린 형태가 옛 군사주둔지임을 말해준다.
< 오룡사 본당 대웅전 >
< 대웅전앞 향이 엄청크다 >
대웅전에 들어서는 순간 강한 냄새를 내는 향내가 곳곳에 배어 코를 자극한다. 법당 안에는 목(木)
으로 된 불상이 있었는데 나는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불상 앞에서 삼배 합장을 하였더니 스님 한분
이 나에게 빨간 리본을 주었다.
< 법당 안에 있는 불상 >
법당과 불상 그리고 내부외부 모양새가 늘 접해 왔던 사찰(寺刹)모습과는 다르게 비춰지는 것이었
다. 명대의 한족의 고유양식을 고수하며 지켜온 고찰로 이해하자. 법당을 지나 우리는 지붕형태가 특이한 건물로 들어 가보았다.
< 경극에 나오는 복장차림처럼 보이는 인형(?) 앞에서>
< 건축 양식이 화려하다 >
지붕의 마루와 처마 끝을 화려한 장식을 한 사원 안에는 ‘중국의 오페라’로 불리는 경극의 복창처럼 꾸민 인형(?)이 있어 J와 나는 익살스럽게 같이 앉아서 인형과 함께 한 컷하였다.
< 도교 사당 앞에선 S님>
오룡사는 주원장이 지역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잠시 군대를 주둔 시켰다고 되어 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원으로 변모하여 지금은 불교,유교,도교가 함께 공존하는 유일한 사찰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달의 풍경을 감상하는 망월대가 있을 정도로 망월대의 달빛이 비추면 오룡사의 오묘한 풍경에 감동한 옛 시인들의 시(詩)가 전해지기도 한다. 잠깐 소개하면
“ 구름도 기이한 산봉우리도 자연이라, 달 밝은 풍경은 오룡사를 감추고 있네.”
<나무 가지에 묶여 있는 빨간 리본들 >
오룡사를 둘러보고 발길을 돌려 내려가는데 나뭇가지에 묶여있는 빨간 리본이 보인다. 올라 올 때는 빨간 리본의 정체를 몰랐으나 내려 갈 때는 그 리본의 정체를 알았다. 대웅전 법당에서 삼배합장하고 스님으로부터 받은 리본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소원성취를 비는 믿음의 표시가 아닌 가 쉽다. 하지만 나는 달지 않았다. 아니다, 달기가 쑥스러워서 인지도 모른다.
오룡사 관광을 마치고 매표소 주차장 옆에 있는 툰보 식당으로 점심을 하러갔다.
이곳 요리도 다른 곳과 별반의 차이는 없었으나 특이한 것은 잉어 같은 붕어 한 마리가 통째로 튀겨서 나온 요리가 나왔는데 아무도 먹질 않아 내가 먼저 맛을 보았는데 비린 맛을 없애기 위하여 매꼼한 매운 맛이 일품이었는데 나 외는 아무도 먹 질 않는다.
여기서 식사를 마치면 바로 옆 천룡툰보마을 둘러 볼 예정이다.
< 민속 옷차림의 천룡툰보마을 입구에 있는 묘족 여인>
< H님도 툰보마을 입구에서 폼 잡았다>
< 묘족 어린애의 천진스런 웃음 >
< 툰보마을의 거리 >
천룡툰보마을 입구를 들어서자 좁은 골목 양쪽에는 여러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工房)들이 있고 그 공방에서는 돌과 나무로 만든 공예품, 무소뿔로 만든 공예품, 그리고 주석및 은제품 가공품들이 있었고, 나이든 할머니들의 바느질로 만든 묘족의 전통 모자, 신발 등을 팔고 있었다.
< 목공예품(木工藝品)을 파는 가게 >
중국은 어딜 가나 3월이면 산과 들에 유채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가있다고 한다. 유채꽃이 여기도 예외 없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그 유채꽃은 이미 수확이 되어 마당 곳곳에는 유채씨앗을 말리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와도 같은 풍경이었으나 전통가옥은 전혀 다른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모든 가옥들이 돌로 만들어 져 있었다. 천태산오룡사의 돌산위에 성벽을 쌓아 올린 모습과도 비슷한 양식들도 있다.
원래 이 마을은 600년 전 주원장이 군대를 주둔 시킬 때 따라온 가족들이 여기서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외적의 방어용 진지 같은 모습을 한 집들도 보인다. 그런데 새로 짓는 집 일부는 현대의 편리성이 가미된 부자 집들도 있다.
< 방어 형태의 옛 장수의 집 >
< 옛날 툰보마을 학교로 지어진 건물 앞 마당>
우리나라 서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향교에 들어서니 좌우 양쪽 건물에는 수석과 화석이 전시되고 있었고, 정면건물에는 마침 민속공연을 하고 있었다.
< 민속공연에 관광객이 관람 하고 있다 >
< 향교(鄕校)로 지어진 건물이 지금은 화석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
< 건물내부에 생전에 처음 보는 식물 화석이다>
< 벽면을 가득채운 큰 동물화석 >
민속 공연장 옆 건물에는 화석이 전시되고 있었다. 화석이란 말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들어가 보았다. 말로만 들었던 화석을 직접 내가 볼 줄이야! 행운이라 생각이 들었다.
현관 1층 좌측 방에는 식물화석(植物化石)이 여러 점 액자에 넣어져 전시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면서 화석이 되었는지 내 눈을 의심 할 정도였다.
우측 방에는 방 벽면에 가득한 크기의 동물화석(動物化石)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보존 상태가 완벽해 보였다. 그 화석은 공룡의 시조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관람객이 없는 혼자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음 일정 때문에 시간이 없어 그냥 나왔지만 분명 가치 있는 자료로서 아직 잘 알려지지 않는 게 아쉽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소시민들도 감상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귀한 화석을 보았다는 기쁨에 마치 보배라도 훔쳐 나오는 것 같은 발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나왔다.
< 민속공연장 앞에서 건방진 폼 >
민속 공연장 앞에는 시원한 고목나무 그늘 아래서 관광객이 둘러 앉아 감상을 하고 있었지만 일정에 쫓긴 우리는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다음 일정은 전용차를 타고 약 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귀양을 거처 다시 중경으로 가야 한다. 우리일행은 13시 30분에 중경으로 출발 하였다.
전용차를 타고 6시간 동안 가는 길은 만만하지는 않은 거리이나 전용차로 이동하는데 길 드려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차 창밖 관광을 즐기면서 갔다.
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목요산행팀 멤버 S님이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웃겨주는 바람에 지루함을 덜어주기도 했고 간이 휴게소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팩 소주로 기분을 전환하기도 하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 안순에서 중경으로 가는 길에 새로 지은 흰색 집들 >
안순에서 중경으로 가는 길 고속도로(?)옆에는 2~ 3층으로 된 흰색페인트를 칠한 새로 지은 집들이 지역마다 눈에 띠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집들은 모두가 빈 집이거나 간혹 노(老) 부부가 사는 집들이다.
이는 허름한 옛집들이 새로 도로가 생기면서 미관을 해치니 우리나라에서도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초가집을 슬레이트집으로 바꾸었듯이 그런 맥락이 아닌가 쉽기도 하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은 돈을 벌려고 모두 도시로 나가고 부모만 남는 것이 대부분인데, 새로 집을 짓게 되면 정부에서 30% 무상 지원하고 자식들이 보태어 짓는다고 한다. 자식들이 언젠가 고향에 올 것으로 생각하고 미리 새집을 지어 놓는 샘이다.
귀주성에서 중경으로 들어가자면 높은 고지의 산들을 여럿 관통해야 하며, 그 산을 넘고 터널을 지나 귀주성 경계를 지나는 시각은 18시25분쯤 되었다.
길고, 짧은 터널을 30분 동안에 17개나 통과 하였고 그중 긴 터널은 4.5km나 되는 것도 있었다.
중경시내로 들어가는 데는 아직도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불가마도시라 그런지 고온다습한 날씨는 안개가 산을 덮고 소낙비까지 온다.
지형은 마치 알프스 골짝이 를 연상케 하기도하고 고속도로는 간혹 대형 화물차만 지나가고 한산하다가 갑자기 차량이 늘어난다. 중경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는데 메모지에 터널을 통과 할 때마다 표시를 한 기록을 보니 터널 숫자가 귀주성 경계를 넘어 여기까지 오는데 21개나 되었다. 대단한 산맥을 넘은가보다.
소낙비에 마치 세차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전용차를 타고 중경시내를 들어가니 벌써 조명이 밝혀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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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국 귀주성에 가다 3부의 용궁동굴등 멋진 풍경과 상세한 기행문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용궁은 정말 용의 궁전으로 착각 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여일이 지난는대 대장님의 글을 보면서 머리에 주마등 처럼 머리를 스치는 군요.
그때 장면을 생각하며 더위를 잊으렴니다. 글 감사 함므니다.사랑 합니다.
그때는 당신이 동행하여 더 뜻이 깊었습니다.
당신은 좋은 친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