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친구의 텃밭을 다녀왔다.
빈 밭을 놀리기 아쉬운 지인의 땅을 출퇴근길 오며가며 씨뿌리고 가꾸다보니 이젠 본업처럼 되었다. 이천평 가까운 땅이라니 나는 짐작도 안간다. 상추, 고추, 배추, 오이 등은 뮬론 포도에 과실나무까지 없는게 없다
도시 촌아이인 나는 풀도 꽃도 모르고 잎도 뿌리도 구분못해 핀잔을 듣지만 가기전부터 가장 신난다.
고추를 너무 많이 심어 다 딸수가 없으니 손가는대로 뜯어가래서 주말 오전 잠깐 들렀다.
허리춤까지 오는 고추밭.. 빼곡한 고춧대 사이사이 그렇게 많은 열매가 달린게 얼마나 신기하던지~~ 벌레먹고 누렇게 뜬 것들, 이미 바닥에 가득 떨어진것들 외에도 탱탱하고도 반질반질하게 달려있는 붉고 초록진 열매.
한고랑을 오고갔을뿐인데 이미 매고있던 가방 한가득이었다.
친구 신랑은 일이라 여기면 힘드니 놀기삼아 천천히 조금씩 한다는데도 그 넓은 밭이 빼곡하게 심겨져 있다. 올해 배추는 역시나 힘들었다 한다
얼마전 심은 가을 배추는 드디어 포기가 푸르게 자라있었다. 약을 치고 싶지 않아 은행을 삶은 물을 뿌리는 식으로 벌레를 퇴치하며 키운다. 그 정성이 놀기삼아라는 말이 무색하게 만들었다. 따라다니는 친구는 함께라 좋다고는 하는데 돈이라 여기면 절대 못했을거란다.
정직한 땅과 건강한 햇살과 계절 담은 바람에 잠시 놓여져 있던 나는 몇시간을 잊어버릴만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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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를 안으며/ 이해리
안지 않으면 묶여주지 않겠다는 듯
퍼들퍼들 벌어지는 잎들,
부둥켜안고 묶으면서 알았다
배추 한 포기도 안아야 묶여준다는 걸, 묶여야
속을 채워 오롯한 배추가 된다는 걸
안는다는 건 마음을 준다는 것
마음도 건성 말고 진정을 줘야한다는 걸
보듬듯이 배추를 묶으면서
쓸 곳이 너무 많았던 내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잠시 방심 했다고 죽어버린 화초들과
매일 살피지 않는다고 날아 가버린 펀드와
깜박해서 태워버린 빨래와
어느새 가버린 사람
나는 안는다고 안았지만
안긴 것들은 부족함을 느꼈던가 보다
대체 내 마음의 용량은 얼마만해야 하는 걸까
풀 먹인 옥양목소리 싱싱한 배추를
파랑파랑 묶으면서
감싸 안고 안아도 안겨지지 않던 당신이라는
서운한 바람에게 오늘은 내가 안겨 묶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