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석.사. 세 글자만으로 충분한 길

[윤 샘]

“미술품은 하나의 물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물(物)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상(像)을 갖고 이야기한다. 유식하게 말해서 오브제(objet)가 아니라 이미지(image)로 대하는 것이다.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우리 옛사람들이 곧잘 채택했던 방법의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시적영상으로 대치시켜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지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확대되고, 심화되어 침묵의 물체는 생동하는 영상으로 다가오게 하였다. 그것은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여,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인 것이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영풍 부석사편의 첫머리다. 유홍준 교수는 자신이 정한 남한땅 5대 명찰 중 부석사를 첫손에 꼽았다.

(5대 명찰에 대한 그의 비유는 해안선님의 공지글에 있다. 나는 여기에 해남 미황사와 지리산 천은사를 더하고 싶지만 아무튼^^)

“부석사 무량수전 안양루에 올라 멀어져가는 태백산맥을 바라보면 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니 부석사는 정녕 위대한 건축”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워터님의 카톡 속 '부석사 갈래?' 부.석.사. 세 글자를 보았을 때 파랗게 맑던 봄날이 떠올랐다.

2013년 3월이었다. 옅은 연두빛 속에서 품어내는 수줍은 사과꽃과 울창한 은행나무 숲을 상상하며 여유있게 걷다가 

세 단계로 이어지는 계단을 헉헉 거리며 오르고 올라 보았던 광경.

그때의 소스라치는 기쁨과 놀라운 감동이 떠올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시 가야만 했다.

유홍준 교수보다 앞서 국토 구석구석을 톺아보았던 국토기행 전문가 박태순 선생님은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말한다.

“산사라 함은 산에 있는 절을 가리키지만, 부석사는 산사의 일반상식을 지키려 하지 않고 있다. 산과 절을 한몸뚱이로 하기 위하여 산사는 수직공간의 산형에다가 수평공간의 경내를 의도적으로 장만하여 들어앉게 마련이다. 그런데 특별한 예외가 부석사이니 오르고 또 올라가야 하는 상승곡선은 경내로 접어들어도 숙어지지 않는다. 수평의 장만이 아니라 수직의 비상(飛翔) 날개에다가 당간지주와 탑, 절집들을 계속해서 매달아놓는다. 그리하여 일주문, 천왕문, 범종각, 안양루의 연속되는 오르막 행보는 상승공간이기보다 승화공간이 된다. 나 자신의 먼지와 때를 털어내는 마음속의 정화공간을 마련하여 오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발은 무겁지만 머리는 밝고 맑게 트인다.”

-나의 국토 나의 산하, 박태순

나는 산새님 워터님 마리님 막사발님과 아름다운 산하의 보고픈 많은 이름들과 함께,

하나의 장면을 만나기 위해 이번 여행을 떠난다.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 바라보는 산그림이다.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고 유홍준 교수가 표현한 그것이다.

천하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부석사를 만나 어떤 낭만을 느꼈을까?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을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그옛날 김삿갓이 섰던 그 자리에 1997년엔 정호승 시인이 부석사에 올랐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많이 들어본 시일 것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의 ‘그리운 부석사’였다.

“돌이 떠 있어요?” 처음 부석사를 만날 때 박태순 선생님께 여쭈었던 기억이 있다.ㅋ

뜬 돌 부석의 이야기,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이야기는 각자에게 남겨 드리고^^

보고 쓰다듬고 끌어안고 반했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다 아시리라.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최순우

차경(借景)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부석사의 가람배치, 역사성, 건축미를 영주 소수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등재 신청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자연을 대하는, 차원이 다른 시선을 세계에 알려주는 일도 좋을 듯하다.

해마다 거르는 일 없이 부석사를 가고 또 간 다는 미학자에 동의하지만 쉽게 나서지 못했던 발길.

사흘밤 지나고 다시 만날 사람과 풍경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존경하는 시인 이문재님이 다녀온 겨울부석사를 전한다. 조금 길다. ^^

see you~

p.s.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사당에 올라 이 아름다운 색을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옆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뿌리를 내렸다는 나무가 있고, 어쩌면 봄을 맞는 노란 꽃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신청하실 분은 다 하셨으려나? 오랜만에 삐끼 한번? 소심하게^^

월요일 휴가 신청하시고 여기여기

Click!

겨울 부석사

-이문재

먼 길 달려와 축시 읽고 나자

텅 빈 사과밭 문득 보인다, 붉은 것들을

익히고 난 나무, 나무들 사이로

젊어, 부석사 가는 길

신행하는 청춘의 이마에 터지는 빛 알갱이들

폭죽처럼, 시간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예서 서 줘야지, 서야지

배흘림기둥이 되어 버린 중년들

축시 후렴은 까맣게 잊고, 숨이 차

당간지주에서 한 번 쉰 다음 안양루 오르는데

아, 거기 삿갓이 먼저 와, 삶의

삶인 것의 거죽을 확, 벗겨 내고

소백산 능선들을 보라, 오래 나무에

새겨 놓았으니 한 번 보라, 한다

능선들의 파노라마를 향하여 한 배흘림기둥이 말한다

부석사는 저녁노을이 좋다, 아직

덜 나온 배흘림인 나는 천군만마로 가득

저 트인 산록을 덮쳐 올 눈보라도

괜찮을 것이라고 중얼 중얼

젊어, 돌아앉은 무량한, 무량의 부처는

아직 뵙지를 못하고 답사만 무량, 중얼 하다가

어, 부처가 돌아앉았다면, 그렇다면

아, 세상도 돌아앉은 것, 나도 돌아서 있는 것

중얼, 중, 얼 하다가

삿갓의 시력과 시야에만 마음 쓰는데

또 한 배흘림 부처 앞으로 돌아간다.

돌아앉은 부처 앞에 오체를 투지하는

한 생애의 옆모습이 보여서

젊어, 젊은 나는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안양루 지붕이 삿갓으로 보일 때쯤

돌아앉은 부처에게 나는, 다시 돌아앉으라고

세상을 정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중얼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몸을 던져 놓고, 돌아나온다

뜬다는 것은 높이가 아니다

부석은 하나의, 그러나 분명한 틈일 뿐이라는

부석의 소리가 그때 들려 왔다, 높이 뜨면

날아가는 것, 낮게 떠 오래 있어야 하는 법이라는

무거운 부석의 소리가

사과꽃 필 무렵, 다시 가서 보리라

저 불화(不和)의 가람을

부석의 불화

부처의 불화

부석과 부처의 불화

당간지주와 배흘림의 붛롸

무량수전과 절집들의 불화

사과꽃과 용맹정진과의 불화

삿갓과 나의 불화

나와 무수한 나의 불화

불화끼리의 불화, 불화 불, 화, 저

이 모든 불화들이, 그런데

아, 불화(佛畵)

만다라가 아닐 것인가.

* 박태순 선생님은 이문재 시인의 부석사르 이렇게 해설해주셨다. 긴 시 속에 녹아 있는 의미들을 내 스스로 파악이 쉽지 않아 의존했던 글이다. 도움 되기를.

이 시의 화자는 일단 대도시에서 모처럼 소백산으로 찾아오는 중이다. 먼저 풍기의 인삼 도매상가를 지나 소수소원을 방문하고 선비촌을 구경했을 것이다. 그리고 죽계천을 찾았을 것인데, 소백산은 오늘의 서정 기행자를 경탄케 하니 저절로 ‘소백산 축시’가 아니 나올 수 없다. 그러다가 소문으로만 들었던 ‘풍기 사과단지’의 거대풍광의 사과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 얼굴들이 빛을 터뜨리는 붉은 사과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부석사를 이윽고 찾아가는데 ‘폭죽처럼 시간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고 이 시는 읊고 있다.

1천5백년 가까이 고여 있던 부석사의 지질학적 시간층을 폭죽처럼 터뜨려 앞을 가로막게 하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일까. 부석사가 저장해놓고 있는 시간들은 ‘불교산수 공간’ 속에 질서정연하게 채워져 있는 것만은 아니었던가. 부석사의 시간과 공간은 특수한 데가 있다.

“배흘림기둥이 되어 버린 중년들/ 축시 후렴은 까맣게 잊고, 숨이 차∙∙∙∙∙∙”라고 읊는 시구가 수상쩍기 이를 데 없다. 왜 ‘축시 후렴’을 까맣게 잊고 숨에 차 있는 것일까.

이 시는 죽계천으로 오르면서 이미 ‘소백산 축시’를 읊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부석사 일주문을 지나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올라갈 적에는 ‘축시 후렴’마저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일지? 시의 심리상태가 아리송하다.

‘소백산 부석사 축시’야말로 누구나 저마다 부르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이 시는 부석사의 ‘불교산수’가 참으로 독특한 사원조경을 품어 안고 있음을 읽고 있다.

하지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이 시인은 엉뚱하게 포착하고 있다. 시인은 그냥 헤프기만 한 관광객들 때문에 정작 무량수전의 ‘배흘림’이 엉뚱하게 싸구려 눈요기로 치부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보이기도 한 것 같다. 중년 사내의 배불뚝이 배를 연상케 하는 시어가 살짝 '하이킥'이다.

‘저 불화(不和)의 가람’이라 운을 떼어놓고 나서 ‘이 모든 불화들이, 그런데/ 아, 불화(佛畵)/ 만다라가 아닐 것인가’ 하고 매듭을 짓는데 시인은 화엄 만다라를 민주시민의 담론으로 뒤집어서 읽고 있다. 일즉다(一卽多) 다즉일을 내세운 의상의 <화엄 일승 법계도>는 위계질서의 수직구조 세상이지 수평사회의 열린 구조는 아니라 파악하는데, 시인은 부석사에다가 너무 많은 고뇌를 얹어 보았던 듯 하다.

-소백산 유람 시문 모음 中, 박태순/국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