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한국에서 가톨릭 건축물 185개를 설계한 독일인 신부
“하느님의 집, 하느님 백성의 집”
故알빈 신부 선종 30주기 기념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세미나 및 전시회
문의: 단국대학교 종교건축연구실 ☎ 031) 8005-3701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년 동안 한국에서 122개의 성당과 공소를 포함하여 무려 185개에 달하는 가톨릭 건축물을 설계한 독일인 故알빈 슈미트 신부(1904~1978/이하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업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알빈 슈미트 신부
대우 푸르지오 밸리(강남구 역삼동)에서 11월16일(일)부터 일주일간 열리는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하느님의 집, 하느님 백성의 집’은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2009년)과 알빈 신부의 선종 30주기를 기념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알빈 신부가 한국에서 남긴 성당 건축물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그린 삽화, 성당벽화 등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알빈 신부의 어린시절 모습과 신학교 재학시절, 간도와 한국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가족에게 편지와 함께 동봉한 사진 등도 함께 전시된다. 독일에서의 작품들과 사진들은 알빈 신부의 가족들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제공한 것이다.
‣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 전시회
- 일정: 11월16일(일)~23일(일)
- 장소: 대우 푸르지오 밸리 (강남구 역삼동 831-21, 22, 23)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
알빈 신부 선종 30주기 기념 세미나 가져(11월17일)
한복을 입고 장기구경을 하는 알빈 신부
11월17일은 알빈 신부의 선종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17일(월) 오후3시부터 전시회가 열리는 대우 푸르지오 밸리 3층 강당에서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된다. 주제 발표는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김정신 교수가 맡는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건축가 알빈신부(분도출판사)』를 발간하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알빈 신부의 건축업적을 조명한바 있다. 김 교수의 발표 후에는 가톨릭미술가회 회원들과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원들이 참여하는 자유토론시간이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형우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아빠스)와 이기헌 주교(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가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전시회 및 세미나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주최하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문화위원회에서 후원하였으며, 단국대학교 종교건축연구실에서 주관하였다.
‣ 세미나
- 일시: 11월17일(월) 오후3시
- 장소: 대우 푸르지오 밸리 3층 (강남구 역삼동 831-21)
- 문의: 단국대학교 종교건축연구실 ☎ 031) 8005-3701
- 주제: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발표: 김정신 교수 /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 알빈 신부의 생애와 건축
1. 소년 ․ 청소년 알빈(출생~23세)
알빈(Schmid, Alwin) 신부는 1904년 독일 남부 슈바벤(Schwaben)지방의 슈파이힝엔(Spaichingen)에서 태어났다.
가족사진(1909년) 오른쪽 두번째(앞줄)가 알빈 신부다
아버지 리하르트 슈미트(Richard Schmid, 1865-1934)는 매우 엄격하고 곧은 성품으로 중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였으며, 어머니 마리아 테오도라(Maria Theodora, 1866-1930)는 공예농가의 딸이다.
두 사람은 슬하에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알빈 신부는 막내였다. 장남 헤르만 요셉(Hermann Josef, 1893-1975)은 가톨릭교회 사제로 네카술름의 보좌신부를 거쳐 스튜트가르트 성 마틴성당 주임신부를 지냈으며, 둘째 아들 요셉 휴고(Josef Hugo, 1896-1916)는 스튜트가르트 대학 건축학과에 재학 중 제1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하였고, 셋째 아들 리하르트 윤(Richard Jun, 1899-1978)은 MBA출신의 공인회계사였고, 넷째 아들 오토(Otto, 1930-1978)는 서적상이었다.
알빈 신부는 라벤부르크(Ravenburg)와 뷔르츠부르크(Wrzburg)에서 김나지움을 졸업하였는데 어릴 적부터 미술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 연필화와 펜화를 즐겨 그렸다. 반면 그리스어와 라틴어 등 언어는 그에게 큰 벽이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때문에 한때 베네딕도회 성 요셉학교를 떠나야만 했으며, 1927년(23세)에 ‘Abitur’를 통과하고 졸업하였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으로 어려운데다 교사봉급으로 5형제를 교육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가끔 방학을 이모 집에서 보내는 등 어머니 집안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2. 성년 알빈, 대학-수도원-사제서품(23세~27세)
1927년에 뮌헨(Munich)대학에 입학해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베를린 프리드 빌헬름(Friedr Wilhelm)대학과 빈(Wien)대학에서 조형미술을 공부하였다. 학창시절 생계를 위해 그림 작품을 팔고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31년 5월 성 오틸리엔 베네딕도 연합회(Congregatio Ottiliensis Ordinis Sancti Benediciti) 소속의 독일 뮌스트슈바르차흐(Mnsterschwarzach)수도원에 입회하였으며 이듬해인 1932년 첫 서원(誓願)을 하였다.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중(1937년) 알빈 신부는 앞줄에서 오른쪽
당시 그는 니체의 니힐리즘(nihilism)에 심취하여 수도원을 떠나는 등 가톨릭에 대한 회의와 비판으로 방황하기도 하였으나 1933년부터 1937년까지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934년 알빈 신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묘지 디자인을 하였는데 타우형 십자가의 좌우에 부모님의 묘비석을 두고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고상을 배열하였다.(이 십자고상은 연길에 파견되자마자 그가 설계한 임시주교좌 성당의 제대십자가에 그대로 나타난다)
알빈 신부의 아버지 묘(1934년) 알빈 신부가 직접 디자인했다
1936년 3월 1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사제로 서품된 지 1년 후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937년 5월 6일 한국인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았던 만주 북간도의 연길(延吉)교구에 파견되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출발하였는데 콜롬보, 마닐라, 홍콩, 상해 등을 거치면서 동양의 풍물을 사진과 스케치로 담기도 하였다.
3. 간도 선교시절의 알빈(33세 - 45세)
간도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세기 말부터이며, 많은 조선인 교우촌이 형성되고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점차 신자수가 증가하여 1920년에는 원산교구가 서울교구로부터 분리되면서 함경도 지역과 함께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1928년에 연길지목구(延吉知牧區)로 독립하였으며, 1937년에는 대목구로 승격되었고, 1945년 해방전․후까지 23개 본당이 설립되었다.
연길수도원은 1934년 8월 1일 아빠스좌 수도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수도생활의 중심지이자 동시에 사목적인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수도자들은 목공과 철공 분야의 일을 하였고, 인쇄소를 설립하여 소년잡지를 비롯하여 교리문답서, 성가집 등 교회서적을 인쇄. 보급하였다.
1937년 6월에 간도에 파견된 알빈 신부는 오자마자 1937년 9월 5일에 초대 대목구장인 브레허(T.Breher, 白化東, 1889-1950) 아빠스의 주교 성성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던 임시성당(연길상시성당)의 내부 장식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어서 용정 하시성당의 내부 수리를 맡아 제대 주변에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로 장식하였는데, 조선식으로 그려 신자들에게 많은 감명과 친밀감을 주었다고 한다.
알빈 신부는 1년 동안(1938-1939) 용정 상시본당의 주임으로 있다가 1939년에 용정 하시본당 보좌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원래 언어에 소질이 없었던 그는 어려운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 일반 사목에 큰 성과를 남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부드럽고 깊은 성격으로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쉽게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용정상시본당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1940년에는 용정 하시 본당의 신자들을 위해 상여마차를 고안하였는데, 연길 수도원 목공소에 부탁하여 마차의 상부구조는 조선 기와집 모양으로 꾸미고, 부잣집 모양의 색칠을 하였다 한다. 이 상여마차는 멀리 떨어진 성당의 공동묘지까지 유해를 쉽게 운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신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1943년 9월부터 용정 상시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다가 광복 이듬해인 5월 20일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공산군에 체포되어 남평(南平)수용소와 하얼빈 감옥에 투옥되었고, 1949년에 독일로 추방되었다. 감옥에서 수감생활 중의 장면을 연필 스케치로 남기기도 하였다.
알빈 신부가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그린 수용소 생활 스케치
당시 연길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는 벽돌공, 목공, 건축 감독을 담당한 수사들이 있었으며 1937년부터 1945년까지 9년간 간도에서의 사목활동 중에 알신 신부 3개의 성당건축물을 설계하였다. Arnold 신부의 증언에 의하면 1940-1945년 사이에 돈화성당, 명월구성당, 연길성당을 설계하였다하나 현재 멸실되고 없다.
명월구성당(왼쪽)과 돈화성당
그중 돈화성당(1942)은 근대적인 개념의 성당 건물로 제대를 벽에서 옮겨 독립시키고 감실은 제대 뒤쪽의 반원형 벽감에 붙박아 놓아서 사제가 신자들을 향해서 미사를 드릴 수도 있고, 전처럼 신자를 등지고 드릴 수도 있게 하였다.
4. 수도원 미술교사 알빈(46세-57세)
1949년 독일로 추방된 알신 신부는 뮌스트슈바르차흐(Mnsterschwarzach) 수도원에 있는 중학교 미술교사로 미술과 제도를 강의하면서 벽화제작 등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교회 건축 설계에는 참여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건축개념은 당시로서는 너무 혁신적이어서 바로크 양식을 옹호하던 당시 독일 수도원 책임자들에겐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61년 한국에 다시 돌아오기 전 이 12년 동안이 그에게 있어서는 교회건축가로 변신하는 준비 기간이 되었다. 당시 독일은 2차 대전으로 파괴된 교회건축의 재건이 활발하였으며, 전례운동과 근대건축운동의 선두에 섰던 독일에선 전통적인 양식적 교회건축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념의 다양한 교회건축이 루터파 교회와 가톨릭 성당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그는 가톨릭전례와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을 연구하고 설계에 적용하였던 루돌프 슈바르츠(Rudolf Schwarz, 1897-1961)와 그의 작품에 깊이 심취하였다.
5. 왜관의 건축가 알빈(57세-75세)
알빈 신부는 장차 아프리카 선교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담(F. Damm, 卓世塋, 1900-1964)신부의 요청으로 1958년 김천 평화동성당을 설계하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렌하르트(A. Lenhard, 盧)신부의 의뢰로 문경 점촌동성당을 설계하였는데 한국적 상황에 맞춘 실용적 설계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60년에는 지베르츠(E. Siebertz, 지) 신부의 요청으로 가은성당(1961. 4 - 1961. 11)을 설계하고, 부산 분도병원의 성당도 설계하였다.
문경 점촌동성당
이를 계기로 그는 1961년 12월 15일 한국에 재입국하여 왜관 수도원에서 본격적인 건축설계와 미술작업을 하게 된다. 수도원에 마련된 설계실에서 그는 트레싱지에 직접 연필로 도면을 그렸으며, 인허가는 현지의 설계사무소를 통하였다.
보통 한 건물 당 10-15장의 도면을 그렸는데 시공이 가능하도록 자세한 치수(mm 단위)와 가구, 성물들의 스케치, 그리고 제작방법을 설명하는 스케치들이 들어있다. 동료 신부와 협력했던 수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별도의 추가 도면 없이 공사가 가능하였다고 한다.
성당 도면을 그리고 있는 모습
그가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여러 작품을 쉽게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개의 유형을 대지조건에 맞도록 응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비록 전문적인 건축 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참조할 수 있는 선례들이 당시 독일에 많았고, 전례에 대한 이해와 현대성당건축의 확고한 이념을 가졌기 때문에 이를 설계 원칙의 지침으로 활용하였다.
알빈 신부의 교회건축은 다음과 같은 5유형으로 분류된다.
(1) 장방형
움직임, 행진, 순례, 공동체를 암시하는 것으로 축을 가진 바실리카식 형태이다. 김천 평화동성당(1958), 가은성당(1961), 밀양성당(1963) 등 초기성당에서 많이 볼 수 있다.
(2) 장방형(변형)
장방형의 끝이 포물선의 열린 형태로 곡선화 되었는데 고통의 형태인 동시에 종말을 생각해 낸 존재의 형태요, 종말로 인도하는 신성한 길의 형태를 암시한다. 초장동성당(1962), 구포동성당(1964), 원평동성당(1964) 등에서 볼 수 있다.
(3) 정방형(십자형)
정방형을 원형으로 하여 대각선 방향으로 축을 변환시키거나 십자가 형태로 분할하여 구심적인 배치를 한다. 상주 남성동성당(1963), 제천 의림동성당(1964) 등에 나타난다.
(4) 부채꼴(타원형)
정방형을 원형으로 하여 대각선 방향으로 축을 변환시킨 정방형에서 일부를 삭제하여 집중적인 부채꼴 형태를 이루거나 두 개의 원을 합친 타원형에 몇 개의 보조공간을 부가시켜 공간의 긴장감과 유동성을 준다. 함창성당(1965), 왜관성당(1966), 전주 다가동성당(1966), 보은성당(1966) 등 1960년대 알빈 신부가 가장 즐겨 사용한 평면유형이다.
(5) 방사형
ㄱ자형, 또는 ㅅ자형 평면 형태로 제단을 가운데 두고 2-3 개의 공간이 분리되어 평일에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박해시대 한국교회에 익숙했던 남녀석 분리 형태에 연유하며, 시골의 작은 교회에 많이 적용된다. 김천 지례성당(1968), 인천 산곡동성당(1968), 고창성당(1968) 등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대지와 한국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을 많이 하였다. 그 결과 그의 설계는 땅을 변경시키지 않고(토목공사를 최소화하였음) 주변 대지와 잘 조화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관 수도원 성당의 경우는 수많은 대안을 스케치 하고 발전시켰다.
성당 공사현장에서
한국 성당건축의 근대화와 토착화에 기여한 그는 75세 때인 1978년 11월 17일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세상을 떠난 한 해 동안에도 7개의 성당을 설계하였을 정도로 ‘하느님의 집’을 만드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설계한 작품은 1961년부터 1978년까지 17년 동안 122개소의 성당(경당, 공소포함)을 포함하여 무려 185개소에 달한다. 본국에 휴가 간 1969년과 1975년, 병환으로 수술한 1970년을 제외하면 한해 평균 10건이 넘는 가톨릭 건물을 설계한 셈이다. 특히 60세 무렵의 1963-68년에 가장 왕성한 작업을 하였으며, 이때 다양한 형태의 독창적인 성당 건물이 설계된다. 1970년대는 왜관 수도원성당(1975)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것 보다는 기존 유형들을 응용하거나 변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알빈 신부가 설계한 지례성당과 평화동성당, 함창성당(왼쪽부터 순서대로)
▣ 연혁
1904. 5. 29 |
독일 남부 슈바벤의 슈파이힝엔에서 출생 |
1927 - 1931 |
뮌헨 대학 미술사 전공 베를린 프리드 빌헬름 대학 및 빈대학에서 조형미술 수학 |
1931. 5 |
수도원 입회 |
1932 |
서원 |
1933 - 1937 |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공부 |
1936. 3. 1 |
사제서품 |
1937. 5. 6 |
만주 북간도의 연길교구에 선교사로서 파견 |
1937. 6 |
연길 임시주교좌성당 제단 내부 장식 |
1937 - 1946 |
용정 상시본당, 용정 하시본당 등에서 사목 돈화성당, 명월구성당, 연길성당 설계 |
1946. 5. 20 |
공산당에 체포 남평 수용소 생활 후 독일로 추방(1949. 12) |
1949 |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기숙 중학교 미술교사 |
1958 |
담(F. Damm, 1900-1964)신부의 요청으로 김천 평화동 성당 설계 |
1959 |
렌하르트(A. Lenhard)신부의 의뢰로 문경 점촌 성당 설계 |
1960 |
지베르츠(E. Siebertz) 신부의 요청으로 가은성당 설계 |
1961. 12. 15 |
한국 재입국 후 왜관수도원에서 작업 <한국에서의 건축미술활동> 건축설계 : 본당 82개소, 공소 30개소, 채플 10개소, 학교 16개소, 병원 1개소, 기타 46개소 등 185개 건물 / 벽화 : 왜관 수도원성당 제단 벽화 등 벽화 10여 개소 / 성미술 : 십자가, 감실, 세례대 등 전례기물 디자인 다수 |
1978. 11. 17 |
심장마비로 왜관수도원에서 별세, 왜관수도원묘지 안장 |
2007. 11 |
「건축가 알빈신부」출간(분도출판사) |
2008. 2. 18 |
제13회 가톨릭미술상 특별상 수상 |
▣ 참고기사
알빈 신부 건축 업적 조명한 ‘건축가 알빈 신부’ 저자 김정신 교수 (가톨릭신문 2008-01-06)
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40166
"건축가 알빈 신부를 아십니까? " (평화신문 2008-01-13)
한국 성당 건축 근대화, 토착화의 '아버지'
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235228&path=2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