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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메시지】
비틀즈 노래와 존 레논의 상처
구 본 권
비틀스(Beatles)탄생은 1960년 영국에서 결성되었다. 멤버는 John Winston Lennon 과 James Paul Mc Cartney, George Harrison, Ringo Starr가 모여 팀이 되었다. 그들 노래는 음반(Love me do)이 나오자마자 싱글 차트에서 인기에 오르면서 영국을 흔들었다. 이어 <Let it be> 발표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청년들의 외로움과 아픔을 그들이 노래로 불러 주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들 노래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시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나 개인 재생 기기들 이용이 어려운 시대였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의 거리감도 크지만 대중적인 매체는 라디오 방송에 의존하였다. 세계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를 반복 청취하기 쉽지 않은 시대였다. 어디에서건 비틀즈 노래 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경청하였다. 가던 길을 멈추어 노래가 끝날 때 까지 듣던 시대는 꿈을 꾼 아이들처럼 환상적인 추억이 춤을 춘다.
그들 맴버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존 레논(John Lennon)은 항구도시 리버풀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이모 미미의 손에서 자랐다. 이모 몰래 엄마 줄리아를 여러번 찾아 갔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 없는 상처를 먹으며 살았다. 유아기에서 사춘기까지 아픔이 노래 가사에서 또는 멜로디에서 줄줄이 새어 났다. 노래에 속에 묻어나는 가사에 개성 넘치는 보이스의 특성이 지난 날 뮤지션의 장르에 완전히 벗어났었다. 노래는 사랑의 상실과 아픔의 몸짓 과 사랑받지 못한 외로운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노래였다. 특히 <Let it be >, <Imagine>, <Mother> 그리고 <Hey Jude>의 노래에 빠져 자고나면 고개를 흔들었다. <Let it be>는 목이 마르도록 쏟아내고, <Mother>의 노래는 레논의 유년 시절의 아픈 연상을 붙였다 떼었다 하였다. 멤버들의 서로 다른 개성 때문에 나타나는 묻어나는 아픔이 갈등이 있었다. <Mother> 노래 가사에 그의 아픔이 강물처럼 흐른다. Mother, you had me, /but I never had you/ I wanted you, /you didn't want me/So I, I just got to tell you/ Goodbye, goodbye/ Father, you left me,/But I never left you/ I needed you,/you didn't need me(중간 생략)끝에서 Mama don't go/Daddy come home/ <마마 가지 말아요. 데디 어머니에게 돌아와요>. 애원하는 노래는 목이 메어 중얼 중얼 할 수 없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미래 사회 사이에서 방황하던 청년들은 원시적인 장발에 알몸으로 말하고, 몸짓 저항하던 비틀즈 노래에 일어나는 충동이 순식간에 문화의 혁명으로 파고들었다. 세계 젊은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치 영향을 주었다. 문화의 변화는 기존의 문화를 흔들었다. 날이 갈수록 상상을 넘어 지구를 넘어 비틀즈를 영웅처럼 동일시하였다. 나는 어떤 모습을 모방하거나 방황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끼친 변화에 주목하였다. 그들이 약 20년간 영화, 신문이나 잡지에 보여준 첫 인상은 완전한 자유주의 모델 이었다. 그들을 보고 어릴 때부터 연상된 영국의 신사 개념이 완전히 무너졌다. 영국 거지 청년들로 보기에 적당하였다. 영국 출신들이니 신사거지들이라 부르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새로운 문화의 승리만 큼 바꾸어 놓은 그들 노래는 사람들은 놀라고 또 놀랐다. 마치 유행성 병균처럼 번져 나갔다. 사람들은 <비틀스>멤버들이 개성이 넘치는 스타일에 더 집중하였다. 그들 패션은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주의 스타일을 온 몸에 감고 다녔다. 더욱 흥미로운 헤어스타일은 집중적인 모방으로 나타났다. 긴 머리와 수염, 맨발에는 센들, 유니섹스 패선은 자유 분망한 색상과 의상들이 새로운 성문화를 주도하였다.
존 레논의 성격이 고집스러워 항상 화제를 끌고 다녔다. 재치 있고 활발하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어서 자주 울었다. 아내와 유아기 외상 치료(PST ; Primal Scream Therapy)신경증(과대 망상)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4살 연상의 일본 여성과 결혼 한 것도 모성의 상처만 큼이나 깊숙이 숨어 있는 아픔의 보상으로 나타난 애착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외로운 성장과 상처가 노래에 녹아 나온 것을 그 시대 청년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발표하는 대부분의 노래 가사와 곡은 심장까지 흔들었다. 떨리는 아픈 만 큼 돌이 킬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애착의 결손이 유년 시절의 결손이 아픔이 가사를 만들어 바꿀 수 있는 이유도 충분하다. 그들이 일생을 두고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릅에서 나타난 갈등이 결별과 레논을 미치광이처럼 동일시한 펜이 쏜 총탄에 집 근처에서 죽었다. 그런 소식으로 세계 사람들은 다시 통곡하며 울었다. 여자도 울고 남자도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한국의 청년들도 울었다. 나도 눈물을 감추며 울었다. 아직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늘이 레논이 죽은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념 앨범을 샀다. 반복하여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내가 아직도 그를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제 잊을 만 한 나이에 지금도 머리에 묶어 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모가 진정으로 만족스럽게 이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레논은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레논이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는 시기라면 차후에 어머니 와 부모가 찾아서 지난 일을 만족하게 이야기해 주다면 그 아픔은 반으로 줄고, 그가 커서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아내가 생기면 그 상처는 다시 반으로 줄어 지난 날 극복할 수 있다. 더구나 장차 자신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생의 아픔을 극복하는 중요한 경험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연구회 자문 교수 구본권, 2010년 12월 8일). 2015년 5월 17일 1차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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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야 존 레논보다 더 멋진 이 청년은 누구인가요?!
ㅎㅎ 박소영 회장님! 센스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