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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1) 별일 없는 하루가 최고의 행복이다 2026.01.01.(목)
기척도 없이 새해가 열렸다. 몇 년 전까지 새해 일출을 보러 다녔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다들 가는 데, 나만 가지 않으면 무엇인가 뒤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바닷가 일출은 번잡고 힘들어서, 청도 팔조령 정상으로 자주 올라갔다. 올해도 가까운 천을산이나 욱수골로 갈지 망설이다가 접었다. 새해 일출 나들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졌다. 지난해는 심적으로 힘들었다. 슬픈 소식이 줄을 이었고, 척추협착증으로 건강도 좋지 않았다. 행복과 불행을 많이 곱씹었다. 곰곰 생각하면 둘은 샴쌍둥이처럼 공존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로 손바닥 뒤집기와 같은 일이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란 것을 피부로 느낀다.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행복이다. P 소설가의 글에서 삶을 마감하기 전 후회하는 일의 목록을 살펴봤다. 대부분 하고 싶었던 일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많다. 첫째, 너무 일만 하고 살아온 일, 둘째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일, 셋째, 걱정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았던 일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삶을 편안함으로 고맙게 여겨야겠다. 어려움을 다행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삶이 펼쳐진다고 한다.
병오년 첫날이다. 추위가 대단하다. 종일 영하의 날씨다. 아침을 먹고 범물동에 있는 어머님 집에 갔다. 살짝 문을 여니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요양보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는다는 말이 없었기에 기다리던 어머니가 “왜 안 오느냐?”라고 요양보호사에게 전화하니, 새해 초하루라 혹시 가족들이 올까 해서 오지 않았다고 답이 왔다. 소통이 안 된 상태로 결근이다. 어머니 얼굴은 깔끔하고 정신이 맑으시다. 뵐 때마다 얼굴을 살피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집사람과 잡다한 가족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귀가 잘 안 들려 큰 소리로 대화해야 소통이 된다. 대화에서 빠진 나는 혼자 벽에 걸린 ‘반야심경’ 액자를 보며 눈으로 암송한다. 별일 아니지만 두어 번 암송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새벽마다 어머님이 암송하는 ‘금강경’은 엄두도 못 내지만, 반야심경은 교양 수준이라 입으로 흉내는 낸다. 시 암송을 좋아하는 내 DNA도 어머님께 받은 좋은 유전자이다. 95세. 백수를 향해가는 나이지만 언제나 존경스럽다. 휠체어 도움으로 사시지만, 화장실이나 부엌에는 조심스레 혼자 다니시는 어머님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탈 없이 살아가는 복은 당신의 존재 때문으로 생각된다. 차 조심하라는 어머님의 당부가 늘 마지막 인사다.
목요일은 신매장날이다. 집사람이 카트를 끌고 나선다. 10분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라 운동 삼아 혼자 걸어가려고 한다. 근데 날씨가 너무 차다. 갈 때는 빈 카트지만 올 때는 가득 채울 게 아닌가. 자존심으로 속마음은 내놓지 않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힘들지 싶다. 작년에 개장한 신매시장 주차장 시설이 좋다. 지하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함께 가기로 했다. 정월 초하루라 노전은 조용하고 붐비지는 않는다. 장날은 장날이다. 유명한 족발집에 길게 이어진 줄이 세상 살아가는 장날 맛을 보여준다. 카트를 끌고 따라 다니느라 바쁘다. 짐꾼으로 다니는 기분도 괜찮다. 부딪치는 사람 사이로 다니다 보니 어느새 카트가 묵직하다. 사과, 당근, 파, 옥수수, 감자 등 일주일 부식이 가득하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혼자보다 둘이서가 아름답고 편하다. 나이 들어서는 작은 일에도 힘들 때 도와주면 서로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이다.
늦은 오후에 동구 반야월에 있는 신서화성파크드림아파트로 차를 몰았다. 오래되었지만, 지인이 결혼 예물로 장만해 쓰던 것이라며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깨끗하게 사용한 장식장이다. 차에 실을 수 있을까? 크기를 재어보니 승용차에 억지로 들어갈 것 같았다. 세 사람이 어렵게 뒷좌석에 실었다. 조심스럽게 낑낑거리며 싣고 와 작은방에 정리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지난해 아들 둘이 아빠를 위해 좀 큰 승용차를 샀다. 나는 전에 타던 현대 소나타가 좋아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거절했지만, 연비는 좋지 않아도 안전이 최고라며 둘이서 작당을 한 결과물이다. 그게 요즘은 종종 짐차가 되었다. 본래 기능이 사람을 싣고 가는 것이지만, 자주 큰 짐을 실어야 하니 좀 그렇다. 무엇이든 필요에 따라 싣고 이동하는 것이 본분이 아닌가 달리 생각하니 괜찮아진다. 모든 것은 사람 마음에 달려있다. 삶의 편리를 위한 승용차가 아닌가. 등소평의 백묘흑묘(白猫黑猫) 이론도 떠오른다. 어쩌다 작은 방은 손자들 책방으로 변신했다. 집사람과 의견이 계속 충돌했다. 내 이론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다고 하고, 집사람은 그래도 집에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심으로 구입한 책이 양 벽면에 가득하다. 읽어야 할 손자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서관이 내 서재이고 마트가 내 냉장고라 생각하면 좋지만,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가 없다.
새해 첫날부터 허둥지둥 보냈다. 올해는 ‘느리게’와 ‘천천히’를 화두로 삼지만 잘 될지 모르겠다. 제일 힘든 것이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천성은 바꾸기 힘들어도 습관은 노력하면 고쳐진다. MBTI가 예전에는 ISFJ였는데 최근에는 ESFJ로 바뀌지 않았는가. 내향적인 성격이 노력하니 외향적으로 변했다. 좀 무심하게, 급하지 않게, 한번 생각하고 시작하기, 잘 들어주기, 상대 관점에서 바라보기 등 너무 많아서 체할 것 같다. 바로 실천은 되지 않아도 마음으로 다독이면 언젠가 근처까지 도달하리라. 기적의 하루를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2) 삶은 알 수 없고, 행복은 소소하다 2026.01.02.(금)
아침 일찍 고산3동 행정센터에 들러 경로우대 교통카드를 발급받았다. 올해 대구는 만 72세 부터 가능하다. 시내버스를 타도 ‘사랑합니다’ 소리와 함께 복지혜택을 받는다. 가슴이 철렁한다. 어쩌다 벌써 이 나이가 되었는가? 기쁨보다 서글픔이 들었다가 지나간다. 세월이 날개를 달고 지나간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새롭게 시작하라는 시기다. 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잘하고 있는 일을 더 깊이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나는 시작보다 지속을 좋아한다. 탁월함보다 지속성에 방점을 찍고 살아간다. 큰 재능은 없다.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뿐인 장점인 성실함이 내 무기이다. 습관으로 단련된 끈기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모든 일에는 관점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마음이 잔잔해진다.
경산 처형 부부와 시지 ‘낙동생오리’에서 모임을 가졌다. 언제 와도 실망하지 않는 집이다. 깔끔한 오이절임과 물김치, 부추겉절이, 궁합으로 구운 생오리가 입맛을 살려낸다. 주인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는 블로그의 후기도 많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상냥하게 대하면 상대도 좋은 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처형이 카페는 못 가본 곳으로 가자고 한다. 한참 생각하다가 가까운 대구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덕천 418’카페가 떠올랐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건너편 길에 차가 줄지어 주차한 것을 보고 검색은 해 본 곳이다. 수성구 삼덕동으로 중구 삼덕동과 동네 이름이 같다. 추운 날씨라 조용하다. 입구에서 바라본 규모에 입을 딱 벌리게 한다. 노란색으로 치장한 대문이 인상적이다. 제주도 전통집 대문처럼 중간에 세 개의 봉이 걸려있다. 실제 입구는 옆에 작게 따로 있다. 대지 전체가 천 평이 훌쩍 넘어 보인다. 멋지게 키운 키 큰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푸른 하늘을 이고 손님을 맞이한다.
입구에서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어가면 아담한 3층 건물이 보인다. 정원의 풍경에 비해 카페 건물은 가정집처럼 밋밋하고 멋이 없다. 2층에서 주문을 하고, 주로 1층과 3층을 이용하지만, 실내는 좁고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한여름과 한겨울이 아니면, 넓은 정원 곳곳에 자리한 야외 탁자와 벤치에서 차 한 잔의 운치가 그려진다. 3층 야외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도 도심 속의 시골 분위기이다. 북으로는 멀리 팔공산 능선이 굽이치고, 남쪽으로는 미술관 너머 대덕산과 범물동 뒷산인 용지봉으로 연결된다. 참 자리를 잘 잡았다. 카페라테 한 잔을 음미하고 있노라니, 건너편 눈에 익은 사람이 앉는다. 옛 직장동료인 행정실 K 실장이다. 점심을 먹고 친지들과 바람 쐬러 왔다고 한다. 반갑다. 얼굴이 예전 그대로다. 전혀 시간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편한 마음으로 지낸다고 하니 세월도 비껴가는가보다. 안부를 묻고 건강 덕담을 주고받았다. K 실장은 내 초등학교 3년 선배다.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 때 만나 동창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 아들 절친 J 의 모친이 어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들은 늦은 밤까지 장례식장에 있다가 자정 무렵 잠깐 집에 왔다. 이제 겨우 60대 초반의 나이다. 큰 병도 없었는데 며칠 전부터 체한 현상이 있어 방치했다가 심근경색이 왔다고 한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공기업에 다니는 두 아들은 출가시키고, 이제 편한 여생을 보낼 시기인데. 안타깝고 슬프고 황당하다. J 는 고등학교 시절 아들과 가창에 가서 같이 식사도 하고 잘 아는 사이다. 사람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하늘에 달렸다는 종교적인 답만 가능하다. 아들은 내일 운구도 도와주고 장지까지 갈 예정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와 시간의 차이만 있는 인생! 혼자 남은 J 의 아버지 생각을 하니 아득하고 막막할 뿐 눈물만 나온다.
다른 큰 사건(?)이 생겼다. 간밤에 달팽이들이 알을 50여 개 낳았다. ‘라라’와 ‘민트’ ‘코코’ 누가 낳았을까? 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자웅동체(암수 한몸)라 두 마리만 있어도 많은 양의 알을 낳는다. 사육 통 한쪽 모퉁이에 작은 팥알 크기의 살색 알이 소복이 쌓였다. 좋은 소식일까? 내일 사육 통을 큰 것으로 바꿔 어미들은 큰집으로 옮기고, 알만 작은 집에 두려고 한다. 보름쯤 지나면 새끼들이 태어난다. 대략 70-80% 정도 부화된다고 알고 있다. 상상만 해도 감당이 안 된다. 비위가 약한 나는 그저 징그럽고 한편 신비하다. 집사람에게 어떻게 처리할지 물으니, 새끼는 남에게 분양하겠단다. 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새해 둘째 날도 훌쩍 잘 지나간다. 눈 뜨니 아침이 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날이 저문다. 올해는 맑은 소식만 많이 들리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별일 없이 소소한 하루를 감사히 보냈다. 행복합니다.
3) 천천히 바라볼수록 깊어지는 아름다움 2026.01.09.(금)
아침부터 많이 망설였다. 집사람은 약속이 있어 나가고, 혼자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했다. K ***으로 낙점했다. 혼자 밥 먹기도 좋지만,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 탐구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여기는 먹고 나서 속이 편한 것이 장점이다. 가성비가 높은 실비라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내를 거치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여기서 먹는 것이 옳을까? 자존심, 체면 등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정답은 없다. 내 삶의 주체는 나 아닌가? 마음 가는 대로의 삶이 좋다. 배식받으니 남자 쪽은 자리가 없어 여자들 틈에 자리가 났다. 맞은편과 옆에 70대 후반쯤 친구로 보이는 여자들은 작은 소리로 계속 소곤거린다. “오늘 탁구장에 누가 왔다.”든가, “잘 오던 그 친구는 보이지 않네.” 등 식사 중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때였다. 갑자기 저 앞쪽에서 “콰다당” 소리가 났다. 아니, 이럴 수가! 몸피가 있는 한 여자가 어쩌다가 식판을 바닥에 엎었다. 바닥에 음식이 낭자하다. “저 여자 밥 많이 달라는 여자네.” “삼 년 동안 왔지만, 식판 엎은 것은 처음 보네.” 여기저기서 수군댄다. 그때 내 옆의 아저씨가 “오늘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군.” 한다. 그러자 앞에서 “뭐, 천당과 지옥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는데.”라고 여자가 되받는다. 혼잣말로 내면을 드러내 주고받는 말이지만, 알 수 없는 씁쓸함에 입안에 든 김치를 오래오래 씹게 한다. 직원이 황급히 물걸레로 뒤처리하니, 조용하던 식당 안에 밀려온 거센 물결이 이내 잠잠해진다.
식사 후 근처 고산도서관으로 갔다. 이사 오기 전에는 파동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파동은 대구 신천 강변에 있어 산책하다가 갈 수 있어 좋았다. 여긴 파동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장서량도 많다. 처음 이사 와서는 자주 와야지 마음먹었지만 잘되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좋아지길 소망한다.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과 최근 발간된 ‘히든 포텐셜’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읽기가 잘 안된다. 욕심 많게 두꺼운 책 두 권을 뽑아 왔기에 대충대충 수박 겉핥기로 훑어봤다. ‘싱크 어게인’은 앞부분 내용을 몇 번 보았지만, 뒷부분은 걸음마이다. 노안이라는 핑계로 책을 멀리 한 게 원인이다. 글을 쓴다고 긁적거리면서 정작 중요한 독서는 게을리하는 사이비가 내 본모습이다. 많이 고민을 하지만, 깊은 사유가 들어간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가벼운 신변잡기가 내 한계이다. 무리를 하면 좋지 않다. ‘싱크 어게인’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핵심 내용을 도표나 삽화로 정리해 놓아 이해를 돕는 것이 마음에 든다.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눈이 아프다.
귀가하면서 좋아하는 소설가 백영옥의 에세이 ‘힘과 쉼’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을 대출받았다. 요즘 집에서 중국 무협 드라마 ‘소오강호’에 빠져 있기에 책을 잘 읽을지 의문이다. 무협 드라마는 언제 봐도 싫증 나지 않는다. 결말이 뻔한 이야기라 더 정감이 간다.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의 출생, 갖은 고난 속에서 성장, 죽을 고비에서 귀인을 만나 무공과 실력이 일취월장, 절대로 죽지 않고, 선은 반드시 악을 이긴다는 것이 전형적인 특징이다. 우리 고전소설과 비슷한 점이 많기에 편하고 부담이 없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고, 많은 갈등의 사건 구성을 통해 재미있게 즐기면 된다. 007 영화나 고전 서부영화도 같은 맥락이라 즐겨 본다. ‘소오강호’도 여러 버전이 있지만, 요즘은 2018년도 37화로 된 작품에 빠져 있다. ‘소오강호’란 중국 음악 연주곡인데 제목으로 삼아 멋있다. 덕분에 ‘소오강호’ost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 연주를 듣는 맛도 좋다. 책도 좋지만, 재미있고 즐기는 삶과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오후에 간송미술관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모처럼 파동 용두골 숲에 가려다가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송미술관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광복 기념행사인 ‘삼청도도’ 전시는 지난 12월에 마무리했고 상설 전시중이다. 가을부터 다섯 번째 방문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전에 없던 새 회화가 보인다. 풍속인물화로 유명한 혜원 신윤복의 그린 두 점의 산수화이다. ‘계명곡암’(시냇물이 소리쳐 흐르고 골짜기가 어둡다.)이란 산수화는 깊은 산에서 시냇물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다. 위 상단에 ‘시냇물 소리쳐 흐르니 바람은 물 위를 스치고, 계곡이 어두워지자 비는 산으로 이어진다.’라는 제사를 음미하며 자세히 살핀다. ‘송정관폭’(소나무 옆의 정자에서 폭포를 바라본다.)은 정자에 앉아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그렸다. 자연에 푹 빠진 선비의 즐거움에 고요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란 해설이 곁들인다. 이 두 작품은 혜원 신윤복의 자세하게 묘사한 풍속인물화가 아니라서 또다른 매력을 준다. 좁은 소견이지만, 겸재 정선이나 현재 심사정 또는 오원 장승업의 산수화는 구도나 크기가 굉장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듯하지만, 이 작품은 크기도 작고 단순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그게 또 색다른 끌림이 아닐까. 다시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한 점씩 다시 보면서 해설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좋다.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자세히 오래 여러 번 조금씩 살펴보는 것이 기쁨을 배로 주는 방법이다. 힘찬 한석봉의 글과 세심하게 쓴 안평대군의 서예 작품도 멋이 있다. 중앙의 도자기는 국보로 고려를 대표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조선을 상징하는 ‘백자청화철재동채초충난국문병’이 마주 보고 있다. 음식이나 차, 술 등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하나 실제는 알 수가 없다. 이는 고려 귀족과 조선의 왕족이나 선비들의 감상용이 아니었을까 나름 짐작한다.
5전시실에서 영상으로 재해석한 ‘감응’과 ‘흐름’을 반쯤 누울 수 있는 의자에 기대어 편안하게 감상한다. 하지훈 디자이너가 제작한 ‘자리’이다. 다리가 아파서 힘들었는데 마음에 든다. ‘감응(感應)’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사군자 작품을 디지털 영상으로 해석했다. 180도 반원형의 커다란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의 파노라마는 선비의 마음이 자연 속에서 피어나는 듯 표현하고 있다. 사군자에 담긴 오묘한 느낌과 뜻을 사계절의 흐름 속에 해석한 다양한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사군자에 숨어있는 선비의 사유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10여 분이 지나, 이어서 ‘흐름’이 상영된다. 흘러가는 하루,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인간의 삶과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한 선비가 쪽배를 타고 폭풍의 바다를 가는 영상이 인상 깊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미술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무 설명도 없이 영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대로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신윤복의 ‘미인도’, 이인문의 ‘총석정’ 등 아름답다. 20여 분이 꿈결같다. 깔끔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본 듯 훈훈하고 황홀하다. 다시 석양의 시간이다. 올해 화두는 ‘느리게’ ‘천천히’로 삼았건만 쉽게 되지 않는다. 수양 부족이다. 언제쯤 느긋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열심히 보낸 하루에 감사하자. 탈 없이 보낸 이 멋진 기적의 날이 고마울 뿐이다. 내일 아침 밝은 해를 기다리며 하루를 접는다.
4) 우연처럼 찾아온 반가운 인연 2026.01.16.(금)
어제저녁에 갑자기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을 뵙고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암사 쪽은 산행 시간이 길다. 아픈 다리를 생각하면 짧은 거리가 좋다. 나는 오르막은 잘 올라간다. 뒤쪽 와촌면 선본사 주차장을 검색하니 승용차로 50 여분 걸린다. 혼자 가면 대중교통도 괜찮다. 버스를 검색하니 ‘수성 6번’을 타고 반야월역, 지하철로 하양역에 내려 ‘803번’을 타면 1시간 20분 거리이다. 버스 환승 시간을 고려하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물과 간단한 간식도 준비했다. 모처럼 혼자 산행에 들뜬 마음이었다. 새벽에 문제가 생겼다. 집사람이 계속 코피를 쏟는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 지혈이 잘 안되어 애먹다가 다행 아침에 그쳤다. 병원 가보자고 하나 알아서 한다고 한다. 모세혈관이 파열되었던 모양이다. 아픈 사람을 두고 혼자 갓바위에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쉬웠지만 다음으로 미루었다.
집사람을 위해 점심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파동 오거리에 있는 ‘샤브향’으로 낙점했다. 이 집은 다른 ‘샤브샤브집’ 보다 깔끔하고 번잡하지 않아서 즐겨 찾던 곳이다. 오랜 시간 영업을 계속해 온 이유는 손님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11시 30분.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휙 돌아보니 준비된 신선한 채소가 마음에 든다. 전에는 육수를 매운맛, 맑은 맛 반반했지만, 오늘은 탁한 것을 싫어하는 집사람을 위해 맑은 육수만 신청했다. 기본과 풍성한 채소 샤브샤브 요리를 푸짐하게 먹었다. 점심 후, 처음에는 간송미술관에 가서 ‘흐름’과 ‘감응’ 영상을 다시 보려고 했지만, 모처럼 전에 살던 고향 동네에 왔기에 나는 용두골이 가고 싶었고, 집사람은 대자연아파트 옛 지인들을 만나기로 했다.
용두골 입구 대구 신천에는 허옇게 얼음이 얼었다. 오래전에 네 식구가 여기서 스케이트 타던 추억이 생각난다. 30여 년 전 집사람은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서 열린 ‘생활체육 전국빙상대회’에서 ‘대구애빙회’회원으로 홀로 3관왕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오늘은 스케이트는 탈 정도의 투명한 얼음은 아니다. 물막이 보를 건너가니 아래쪽에 오리 대여섯 마리와 왜가리 두 마리가 한가롭다. 사람이 옆을 지나가니 왜가리는 날개를 활짝 펴 훌쩍 날아오르지만, 오리들은 상대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반응이 없는 고놈들이 귀엽다. 산길에 들어서니 조용하다. 가뭄 탓인지 바싹 마른 낙엽들만이 흙먼지 속에 나뒹군다. 20 여분 올라가니 배드민턴장이 나온다. 잠긴 문을 열고 살짝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친하게 지냈던 Y 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무너졌다. 이사 가기 전에는 거의 매일 산에 오면 이 근처에서 운동도 하고 하모니카 연주도 한 곳이다. Y 님과 많은 이야기도 나눈 곳이다. 공을 치지는 않았지만 다른 회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특히 Y 님과는 생각의 결이 비슷했기에 얘기가 잘 통했다. 만나지 못해 섭섭했다. 다시 밤나무 숲 쪽으로 올라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원래 산행 목적이 아니었기에 중간쯤 가다가 돌아섰다. 하산길은 왼쪽 숲속 오솔길로 할지 망설이다가, 새봄이 오면 진달래가 활짝 폈을 때 그 길을 걷기로 마음먹고 올라온 길로 내려왔다. 저 멀리 아치형 다리 입구에서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썼지만, 눈에 익은 사람이다. 아니, Y 님이 아닌가? 무척 반가웠다. 세상에! 이렇게 만나다니. 다시 같이 배드민턴장으로 올라갔다.
지난해 봄에 뵙고, 처음이다. 구장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기에 이유를 물었다. Y 님이 한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난가을에 자칫 저승에 갈 뻔한 사건이다. 뱀에게 물려 죽을 뻔했다고 한다. Y 님의 손자는 우리 집 첫째 손자 **와 같은 또래이다. 천천히 사연을 털어놓는다. 지난가을 어느 날 일이다. Y 님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뱀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하루는 Y 님이 배드민턴을 치다가, 게임 쉬는 시간에 왼쪽 밤나무 숲에 들어갔다. 그때 발밑에서 80cm 정도 되는 뱀이 한 마리 스르르 지나가는 게 아닌가. 보통 때 같으면 그냥 피했지만, 그날은 갑자기 손자 말이 생각나 뱀을 잡고 싶었다고 한다. 한참 서로 노려보다가 한쪽 발로 뱀의 중간 부분을 꽉 밟고 있으니 계속 꿈틀거리다 축 늘어졌다. 지친 뱀의 머리 아랫부분을 오른손으로 꽉 잡았다. 머리 바로 밑을 잡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약간 뒤쪽을 잡았다고 한다. 뱀이 갑자기 머리를 돌려 순식간에 오른쪽 둘째 손가락을 물었다. 금세 피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깜짝 놀라 뱀을 떨쳐내고 계곡에 내려와 흘러내리는 피를 씻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보더니 여기서는 어렵다고 급히 119를 불렀다. 몇 군데 대학병원에도 받아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생긴 지 얼마 안 된 중형 병원 평리동의 ‘더 필병원’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저녁 무렵 물린 손가락이 새까맣게 탔고 오른팔 전체를 압박붕대로 꽉 묶었지만, 퉁퉁 부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뱀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뱀인지 확인하니 최고의 독을 가진 살모사가 아닌가. 본인은 까치 독사인 줄 알았다. 백방으로 해독약을 구해보지만, 빨리 구하지 못하면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 절망 속에서 빛이 들었다. 어렵게 해독약이 구해져 주사를 맞으니, 다음날 부은 곳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사는 독이 목 근처까지 가서 멈췄기에 천운으로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완치해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듣고 있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어떻게 뱀을 손으로 잡으려는 마음을 가졌을까? 정신이 보통 상태가 아니라고 치매 검사도 했단다. 다행 치매는 아니었다. Y 님은 나보다 세 살 연장자이다. 중년 시절 한 때는 관광버스를 열두 대나 운영한 사업가였다. 지금은 다 접고 손자 돌보고 공치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날 이후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한다.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지난 화요일은 갑자기 첫째 **가 유치원에서 독감이 걸렸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치료한다고 오지 않았다. 한번 오지 않았는데 그새 보고 싶었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둘째 **이와 작은방에서 그림그리기 놀이를 한다. 로켓을 그려달라고 한다. 안 보고 내가 그릴 수가 있나? 이럴 때 AI를 사용해야지. 제미나이로 검색하고 그림을 갤러리에 저장했다가 보면서 손을 잡고 함께 그렸다. 다시 살살 구슬려 쉬운 과일 그림책을 펼쳤다. 감, 포도, 사과, 복숭아를 책 보고 그리니 좋아한다. 얼마 후 태권도학원을 다녀온 첫째 **가 들어왔다. 오자마자 할아버지와 알까기를 하고 싶단다. 구석에 있던 바둑판을 오랜만에 폈다. 그가 즐겨 읽는 만화 삼국지의 전투 장면처럼 양쪽에 흑과 백 10개로 서로 진을 쳤다. 손자는 아직 손가락 놀림이 둔해 알이 똑바로 퉁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보다 낫다. 판의 형세에 따라 일어서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알을 튕긴다. 낙방해도 웃어가며 소리치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세 판을 해서 1승 2패로 내가 이겼다. 싫증이 나는지 이번에는 오목을 두자고 한다. 줄기찬 공격과 33 전법으로 5판을 했다. 손자가 3판 이기게 하니 좋아한다. 이제 TV 보는 시간이다. 정확히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아쉽다고 계속 보려고 떼를 쓰건만 나는 OFF를 누른다. 집에 갈 시간이다. 둘째 이준이는 가기 싫다고 바로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고, 요놈 참.’ 달래려고 옆에서 내가 노래를 만들어 놀렸다. “**이 동생은 삼준이”라고 하니 “동생 삼준이 없어” 대꾸한다. 나는 계속 “삼준이 동생은 사준이, 사준이 동생은 오준이…….” “구준이 동생은 누구일까?” “열준이, 십준이” 어느새 정신없이 까르르 웃으며 돌아선다. 문밖에서 차렷 자세로 인사받고 엘리베이터에 태운다. 깨알같이 소소하고 어영부영한 하루가 저문다. 이게 평범한 소시민의 자잘한 하루이다. 뭘 했는지 몰라도 시간은 잘 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별것 같은 하루이다. Y 님 사건이 충격이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 와 다행이다. 늦은 오후 청춘 탁구장에서도 즐겁게 보냈다. 승률은 보통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이 나이에 함께 경기한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자랑스럽다.
5) 달팽이의 걸음으로 삶을 돌아보다 2026.01.19.(화)
어느덧 김용의 원작 ‘소오강호’드라마 35부를 봤다. 조금씩 보다가 벌써 여기까지다. 이제 뜸 들이고 봐야겠다. 갈등이 최고에 도달한 절정의 막바지다. 37부가 종결이니 마지막 사건의 전개가 예상은 되지만 궁금하다. 고교 시절 무협 소설에 빠졌을 때다. 와룡생의 ‘비룡’ 전집 5권을 머리맡에 두고 무림에 빠졌다. 마지막 5권을 읽을 때는 무척 아쉬웠다. 이제 더 읽을거리가 없다는 허전함에 아껴 읽은 기억이 아스라하다. 정파와 사파의 싸움에서 정파가 이길 것은 뻔하지만 재미있다. 주인공 화산파 제자 ‘영호충’과 마교 교주 딸인 ‘임영영’이 어떻게 맺어질지, 사파의 최고수 ‘동방불패’와 오독교 교주 ‘남봉황’이 사랑이라는 가면 속에 속고 속이는 반전의 재미에 정신이 얼떨떨하다. 인간 세상의 추악함과 사랑, 음모와 배신, 끝없는 권력욕을 그와 대비되는 진정한 자유를 그린 작가가 존경스럽다. 정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화산파의 교주 ‘악불군’은 별명이 ‘군자검’이지만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다. 그의 권력욕이 절정에 비로소 드러난다. 겉으로 정의를 앞세우는 정파가 더 추악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얽매이지 않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묻고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요즘 연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정치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그들도 이런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문득 달력을 보니 정월도 어느새 19일이다. 19라는 숫자에서 아득한 과거가 살아난다. 타짜가 아닌데 19라는 숫자에서 화투장이 떠오르는 내가 비정상일까? 중학교 시절이었다. 동네 친구들과 배꼽마당 안쪽 끝에 사는 J 군의 집에 자주 모였다. 4명의 동갑 친구는 골목에서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에 흥미를 잃으면 J 집 골방으로 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전방의 군인 장교였기에 부모님은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우리는 숙제한다는 핑계로 모였으나, 숨어서 화투 놀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은 달부터 외웠다. 솔은 1월, 매조는 2월, 벚꽃은 3월……. 몇 달이 지나니 우리는 어른들이 하는 화투 놀이의 기초를 다 습득했다. 두장문 ‘섰다’부터 ‘도리짓고땡’, 놀음의 꽃(?)인 속칭 ‘구삥’까지, 영악하게 배웠고 딱지로 즐겼다. 숫자놀이와 게임 등 호기심이 유난히 강했던 나는,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확 빨려 들어갔다. 알리, 독사, 구삥, 장삥, 장사, 사륙(12,14,19,01,04,46)등 족보도 외우고 놀음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카드 놀이에 푹 빠졌었다. ‘포커’ 게임도 ‘하이 로(high Low)’와 ‘와일드’게임 등 변수가 많은 것을 좋아했다. 당시 속칭 총재인 K 음악 선생님에게 많은 방법을 배우고 함께 즐겼다. ‘훌라’ ‘런던 브리지’ ‘십자’ 등 카드 게임 하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카드의 매력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내 패보다 상대의 패를 잘 읽고 가능성에 따라 배팅한다. ‘포커페이스’의 마음을 읽어보는 첩보전과 비슷하다. 완전히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임이라 더 좋아한다. ‘구삥’에서 1과 9를 손에 잡으면 소위 ‘구삥’이라는 최고의 끗발이다. 넉 장의 화투장을 깔아놓고, 판돈을 걸고 패를 돌리면서 선을 잡은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최고의 끗발이 바로 1과 9를 받는 것이다. 지금 그때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골목과 골방의 추억이 아련하고 짠하다. 어쩌면 내 삶에서 호기심과 경쟁력 그리고 몰입의 재미와 즐거움의 출발점도 화투 놀이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도 해본다. 순전히 놀이의 경지에서 탈선하지 않고 즐긴 내가 자랑스럽다.
저녁에 집사람이 달팽이 ‘라라’ ‘민트’ ‘코코’를 깔끔하게 목욕시켰다. 제 집에 넣기 전에 사각 쟁반에 올려놓았다. 반들반들한 패각이 보석보다 예쁘다. 금와인 ‘민트’와 ‘코코’는 밝은 황금색에 흰 몸이라 보는 사람이 눈부시다. 반면 백와인 ‘라라’의 패각은 호랑이 같은 지그재그 무늬가 선명해 또 다른 맛이다. 거실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사육 통을 밀고 가출한 일이 있기에 어느 정도 속도로 가는가를 보고 싶었다. 세 마리가 20여 분 동안은 쟁반에 붙어 꼼짝을 않는다. 그때이다. ‘민트’와 ‘코코’가 쟁반 가장자리에서 조금 움찔한다. 10여 분 지나니 두 놈이 바닥에 내려왔다. ‘어, 요놈들 봐라.’ ‘민트’는 화장실이 있는 서쪽으로, ‘코코’는 베란다 방향인 동쪽으로 앉았다. 나는 TV는 건성으로 보면서 요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거실 바닥은 흰색 큰 바둑판무늬라 움직임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하는 기분으로 기다린다. 가만히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이동한다. 10여 분에 10cm 속도로 배를 밀고 전진한다. 한 시간쯤 지나니 바닥 무늬 한 칸을 지났다. 정중동(靜中動)이다. 석양에 산 넘어 가는 해보다 훨씬 느리다. 달팽이 걸음을 보면서 ‘느리게’와 ‘천천히’를 생각한다. 내 삶도 이제 저렇게 가야 하는 게 아닌가. ‘느리게’를 외치면서도 실천이 안 되는 나를 돌아본다. 삶의 브레이크를 얼마나 잘 잡느냐가 남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평범한 사람도 나름대로 과속이 많다. 멈춘 듯하면서 조금씩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슈퍼 카’도 핵심은 강렬한 엔진이 아니라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가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달팽이 걸음을 관찰하며 내일의 삶을 예측하고 그려보는 재미도 맛깔난다.
오늘은 어쩌다 이상한 일기가 되었다. 삶의 복기 과정에서 별것이 다 나왔다. 거짓이 없는 생생한 민낯이다. 돌아보니 지난날은 다 고마운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도 이런 글을 써도 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쭉정이면 어떨까? 관점과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거짓과 위선이 아니면 괜찮다고 여긴다. 돌아보고 누릴 수 있는 지금과 여기가 있어 고맙다.
6) 느리게 살아도 하루는 충만하다 2026.01.24.(토)
춥다. 춥다. 영하의 날씨가 이렇게 계속되긴 오랜만이다. 며칠 전부터 갓바위에 가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선다. 카카오맵으로 대중교통만 검색했다. 하양역에 내려 803번 타는 것은 두 번 갈아타야 한다. 근데 한 번 환승으로 영남대역에서도 가능하다. 급행 803번이 하루에 5번 운행하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좋을 듯하다. 날이 풀리기만 기도한다. 감기 기운이 살짝 있어 어제 친구와 약속도 미루었다. 이럴 때 독서해야 하지만, 휴대전화로 검색하거나 TV 채널만 돌리고 있다. 공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빈둥빈둥 지내는 것이 좋을까?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 어느 쪽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어렵다. 빈둥빈둥 삶이 내 길이다. 마음 가는대로 살고 건강한 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한 국가가 떠오른다. 한때 ‘세계행복보고서’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였던 ‘부탄’이다. 히말라야산맥 티베트고원 최남단에 있는 인구 80만이 안 되는 곳이다. 객관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국민 90% 이상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점이 부럽다. 최첨단 AI 시대에 국왕이 통치하고, 첫눈 오는 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독특한 전통을 가진 낭만적인 나라다. 이날은 사람들이 모여서 눈싸움하거나, 따뜻한 음식과 차를 마시며 자연의 변화를 즐기는 날이 된다. 한편으로는 눈이 농사에 필요한 물과 땅의 해충을 없애주는 ‘축복’이자 ‘길조’로 여기기 때문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유년 시절 시골 외가에 간 날,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외사촌과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을 불러온다.
사흘 구장에 결석했다. 사실 이 기회에 푹 쉬면 컨디션이 더 좋아지리라 생각했다. 천천히 쉬면서 한 박자 느리게 지내보자. 아니었다. 추운 날씨 때문일까? 예상과 다르다. 루틴이 깨어지니 몸도 정신도 맑지 않다. 오늘부터 운동해야겠다. 3시쯤 구장에 가니 왁자지껄하다. 아니, 오는 날이 장날인가? 임펙트 동호회 시합 날이다. 단체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중이다. 마음속으로 반가웠다. 오늘 고수들의 시합을 보며, 한 수 배울 멋진 기회가 아닌가? 청춘클럽 오후반 회원은 Y 선생님과 A 님뿐이다. 우린 한쪽 탁구대에서 한 시간쯤 우리끼리 경기를 하다가 고수들 경기를 관전했다. 대부분은 셰이크 라켓을 사용하지만, Y 선생님과 나는 펜홀드 라켓을 사용한다. 펜홀드로 치는 고수들 경기는 보기 어렵다. 마침, 펜홀드를 사용하는 W 사장님의 결승 게임이 벌어졌다. 두 분은 각각 3부와 4부 실력으로 탁구선수 출신이다. 처음부터 주고받는 공이 환상적이다. 비슷한 실력으로 공이 좀처럼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감탄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력한 드라이브와 백 드라이브가 주된 공격 무기이다. 특히 계속되는 백 드라이브에는 손목을 많이 쓰는 펜홀드의 장점을 살려 좌우로 회전하며 공격하고 방어한다. 저 경지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끝까지 공의 회전을 살핀다. 10여 년 열심히 구장에 다녔지만 8부나 9부 실력인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경지이다. 생활체육의 한계라 부럽기는 하지만 따라하기는 어렵다. 젊은 나이에 강습받고 시작했으면 좀 나아졌겠지만, 그땐 다른 일에 몰두했으니 별로 아쉽지는 않다. 지금 이 정도나마 즐길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저녁에 집사람이 둘째 손자 **이와 책을 읽는다. 재미있게 책을 읽다가 갑자기 공부를 시키고 싶은 집사람이 펼쳐진 쪽의 숫자를 묻는다. “14”라고 정확히 대답한다. 다시 뒤쪽을 펴서 묻는다. “26” 잘 대답한다. 그러다가 끝부분의 “79” 쪽을 펴서 묻는다. 그때 손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 것 좀 묻지 마.” 순식간에 한 방 맞은 기분이다. ‘뭐, 요런 놈이 있나?’ 안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애들이 크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될 터인데……. 조금씩 나름대로 잘 배워나가건만 어른의 조바심이 아닐까. 다음에 내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봐야겠다. 나는 입으로 휘파람 부는 기술이나, 혀를 ‘똑딱’거리는 소리로 유혹한다. 입 오므리는 것이 잘 안되어 힘들지만, 똑딱거리는 것은 조금 되니 재미있어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하모니카 불어주세요.” 하며 거실 탁자 위에서 하모니카를 가져온다.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경쾌한 ‘체리핑크맘보’를 분다. 그때 만화 삼국지를 읽던 첫째 손자 **가 시끄럽다고 소리친다. ‘아이고, 요놈들 봐라.’ 그냥 미소 짓고 그만둔다. 알 수 없고 질서 없는 사건이 줄지어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우왕좌왕 천방지축인 기적의 시간이 흘러간다. 답답한 듯, 답답하지 않은 하루다. 별일 없이 그냥 그냥 지나가는 삶이 다행이고 행복이다. 정제되지 않은 감성의 언어들만 전장의 총알처럼 쏟아붓는다. 민낯의 일상이다.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이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7) 살아남는 자의 강인함, 살아가는 자의 감사 2026.01.28.(수)
시골의 공기는 맑고 차갑다. 하빈 큰집 한글 강습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문양역 가는 ‘성서 2번’ 버스 기다리는 내내 얼굴이 얼얼하다. 차창 밖의 텅 빈 들판을 바라보다가 수업 중 잠깐 주고받은 말과 과정이 떠오른다.
M 님은 모범생이다.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는다. 열심히 해도 어렵다고 침울하다. 장기수인 그는 운동시간 외에는 한글 공부에만 몰입했다. 방 동료들은 바둑이나 장기 등, 잡기에 빠져도 그는 오직 책만 봤다. 노력한 만큼 진전이 없어 힘들어한다. 어언 수강한 지 일 년이 되었다. 숙제해 온 글도 첨삭 과정에서 맞춤법이 많이 틀리니 어쩌면 좋으냐고 반문한다. 내가 보니 처음보다 제법 발전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70대 노인이 아닌가. 나는 다른 이야기로 비유해 용기를 준다. “발전은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옷이 젖는 줄을 모릅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푹 젖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되는 것과 같지요. 지금 조금씩 젖어 들고 있는 과정입니다.”라고 다독인다. 매주 지나온 과거를 자서전처럼 쓰게 했다. 과제로 써온 글 내용도 좋아졌다. 솔직하지만, 감방 동료들에게 오해와 질시를 자주 받는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자기가 터득한 세 가지 원칙으로 대처하며 견딘다. 첫째 쳐다보지 않기, 둘째 말하지 않기, 셋째 적을 만들지 않기다. 오늘은 중년 시절 보일러 사업하던 이야기를 써 왔다. 고향 사람들과 모임 중, 그에게 온 전화 통화 내용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통화 중 사업비 계약서 작성에 “이억 오천만’이란 말이 오갔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네가 무슨 수억짜리 계약을 한단 말이고? 사기꾼 아닌가?” 하며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글도 잘 모르는 놈이 우리한테 과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M 님은 기가 막혔다. 분을 참지 못한 그가 몇 달 뒤 체결한 정식 계약서를 들고 와서 다시 한바탕 큰 소동을 부리고 통쾌하게 마무리한 사건이었다. 이런 얘기를 적고 있는 그를 지켜보던 방 동료가 또 비웃기 시작한다. “왜 거짓말을 지어서 쓰느냐?”라며 빈정댄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아니면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겠느냐?”라고 항변해도, 믿지 않고 쪼아대니 한숨이 난다고 한다. 보지는 못해도 감방의 풍경이 눈앞에 겹친다. 바깥 사회도 불신이 심한데 감방 안은 더 요지경 세상인 것 같다.
L 님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내가 제일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분이다. 초등 신입생 수준이라 늘 안타깝다. 일 년 전에는 겨우 자기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았다. 50대 후반의 건장한 체격을 지녔지만, 문맹이었다. 결석이 잦다. 처음에는 의욕 부족이나 게으름이 원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연을 들으니 안타까울 뿐 내가 도울 방법이 없다. 방에 있는 동료들과 봉투 붙이는 공동 작업을 하기에 혼자 빠지기가 힘들다고 한다. 눈치가 보여서 이따금 결석한다.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만 배려해 주면 좋지만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배려심이 실종된 환경이 두렵고 안타깝다. 그 나이에 한글 모르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있을까? 잔인하고 피폐한 감방의 일상이 그려진다. 꼭 필요한 공부이니 동료들에게 사정해서 양해를 얻으라는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지 않은가? 마음이 편치 않다. 독방 생활하는 40대 K는 강습자 중 유일하게 경쾌하고 말이 많다. 혼자라 외롭고 적적한 까닭이지 싶다. 차근차근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가니 진도가 빠르다. 요즘은 시집 한 권을 가지고 읽고 쓰고 해설하면서 학습한다. 모르는 한자어나 용어는 예를 들어 설명하니 맞장구치며 즐겁게 따라온다. 운전면허도 있기에 그가 할 얘기도 많다. 밖에서는 눈치로 살다가 큰 일에 연루되어 들어왔다. 재잘대지만 재미를 붙이고 의욕적이라 기분이 좋다. 세 사람의 이야기만도 가득하다.
오후에 S 내과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아침에 채혈한 혈액검사 결과 때문이다. 한 달 전에 심장이 문제가 있어 CT를 찍었다. 평소 심근경색 비슷한 증세가 있어 늘 걱정하며 살았다. 몇 달 전에 비슷한 증세로 갑자기 심장에 스턴트 시술을 한 J 님과 상담하고 검사를 했다. CT 결과는 심장동맥 좌, 우, 중간의 세 군데 큰 흐름길에서 각각 13%, 13%, 20% 정도의 동맥경화가 왔다고 진단받았다. 시술은 80% 정도의 경화가 왔을 때 시행한다고 한다. 의사는 이 년 뒤에 다시 검사를 권한다. 결과지를 가지고 내과에 갔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를 조심하고, 특히 중성지방과 저밀도 LDL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한다. S 내과 J 원장의 혈액검사 설명을 들었다. 다른 항목은 다 좋아졌다. 중성지방과 저밀도 LDL이 70보다 낮았다. 근데, A1C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나는 매년 A1C를 정기적으로 관리했다. 항상 5.9에서 6.4정도 당뇨 전 단계로 나왔기에 조심 중이었다. 지난번에는 6.0에서 이번에는 6.5가 나온 것이 아닌가. 두 번 이상 이런 수치가 나오면 당뇨약을 먹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평소대로 지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니 실망도 되고 두렵다. 다른 방도가 없다. 지금부터 조심하고 6개월 후 좋은 수치가 나오길 기대할 수밖에. 지나간 일은 잊고 내일을 생각하며 살자. 고희를 넘은 나이라 병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노화라 조금씩 낡아가는 몸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큰 병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건강하게 기본 수명을 누리며 사는 것이 천복이다. 천천히 살아가자. 자주 듣던 얘기 중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빈 큰집 이야기와 혈액검사 결과로 고민한 자잘한 서민의 하루를 보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면 예술이라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지만, 나는 사실 복기에도 허덕인다.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만 앞설 뿐 제자리걸음이다. 그냥 그냥 살아가자. 내일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지금, 여기, 더불어 숨 쉴 수 있는 기적에 고마움을 가지자. 빈둥빈둥 속에 새해도 한 달이 훌쩍 사라진다.
12부. 햇빛에 서리 반짝이는 달
1) 사랑하면 보이는 작은 기적 2026.02.03.(화)
어제저녁, 새끼 달팽이 열 마리와 부화되지 않은 알 40여 개를 분양했다. 엄마와 함께 온 초등 여학생에게는 새끼 여섯 마리와 몇 개의 알을 주었다. 멀리서 온 젊은 아가씨에게는 새끼 네 마리와 알 30개 남짓 분양했다. 그녀는 예전에 달팽이를 키운 경험이 있었다고 해서 좋았다.
달팽이알을 낳은 지 5주가 지난 월요일이었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다. 자세히 살펴야 보이는 새끼는 앙증맞고 귀엽다. 다슬기 새끼 같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가 꼼지락거린다. 처음에 두 마리가 보이더니, 며칠 지나니 열 마리가 넘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본 나는 처음에 부화를 강하게 반대했다. 부화가 시작되면 새끼 수십 마리가 꼬물거리며 연이어 나온다고 한다. 감당할 수 없이 많이 나오니, 일찍 대처하라고 키워본 사람이 경고한다. 집사람에게 물었다. “이제 어쩔 거니? 계속 알에서 나오는데 다 키울 자신이 있느냐?” “몇 마리만 남겨 놓고 분양시키면 된다. 요놈들이 언제 어떻게 나오는지 관찰하려고 한 일이다.” 태평하게 얘기한다. 결국 손자들이 커 가는 것을 보라고 세 마리 새끼만 딴 통에 넣고 기르기로 했다. 이제 집에는 어미 세 마리, 새끼 세 마리만 키운다. 예쁘고 귀엽기는 하지만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달팽이 키우는 데 정성을 쏟는 집사람에게 손자들은 ‘달팽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배설물이 가득한 사육장 청소, 상추와 호박 등 먹거리 준비, 단단한 패각을 유지하기 위해 삶은 달걀껍데기도 작은 절구에 찧고 분말처럼 갈아서 먹이에 섞어 준다. 삶은 껍질은 일일이 흰 막을 걷어내야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고 흡수가 된다고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집사람과 ‘간송미술관’ 산책길에 나섰다. 얼마 전에 일주일 휴관을 했다. 작년에 전시한 작품들을 걷어내고 새 작품으로 교체 전시하기 위해서다. 예전에 전시된 작품은 여러 번 갔기에 나름대로 상세히 감상했다. 화요일 오후라 주차장이 한산하다. 입구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의 일부인 ‘주사거배’(술집에서 술잔을 들다) 걸개그림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술집에 모여든 술꾼들의 순간을 포착했다. 도포 차림의 선비와 노란 초립을 쓴 붉은 옷의 무예청 별감, 깔때기를 쓴 나장까지 서로 다른 계층의 인물이 한 자리에 어울렸다. 담장에 핀 분홍 꽃과 대청에 들어가는 선비가 조화를 이룬다. 주모의 산뜻한 남색 치마가 혜원 특유의 섬세한 인물 묘사와 색채감각이 어우러져 조선 후기 활기찬 생활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전시실에 들어서니 작가 미상의 ‘봉황도’가 첫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19C 유숙이 그린 호랑이 그림 두 점이 반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용맹함을 상징하고 마을을 지키는 산신으로 여겨졌다. 나쁜 기운을 막는 벽사의 기능이 있어 부적이나 그림으로 그려 집에 걸어두기도 했다. ‘심곡쌍호’(깊은 골짜기의 한 쌍의 호랑이)는 호랑이와 표범을 그렸지만, 간결한 배경처리로 호랑이를 돋보이게 한 작품이다. 작가 특유의 세밀한 필선으로 털의 질감과 무늬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옆의 ‘포유양호’(젖먹이는 어미 호랑이)는 호랑이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다. 그림 속의 호랑이는 새끼를 지키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는 긴장감 어린 모습이다. 이어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몇 점이 기다린다. 길거리에서 나들이 나온 여인들에게 탁발하는 승려를 그린 ‘노상탁발’과 입구에서 본 ‘주사거배’ 또 다른 두 점의 그림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관객을 유혹한다. 국보로 지정된 《혜원전신첩》은 조선시대 양반의 풍류와 행락, 기방의 세태와 여인들의 생활, 남녀 간의 연애 등 풍속을 그린 30여 점의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중 네 점만 선보였다. 서예는 자하 신위의 71세 작품이 돋보인다. 행서 대련으로 웅혼한 필치에 감동한다. 당시 고희를 넘긴 나이에 이렇게 멋진 필력을 보이니 존경의 마음이 절로 난다. 중앙에 새로 선보인 청자와 백자도 아름답지만, 내 생각으론 예전의 작품이 더 좋았다고 여겨진다.
2전시실에 들어섰다. 이번의 특별전시는 오원 장승업의 명작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이다. 자유 분망한 성격인 장승업의 일화는 미소짓게 한다. 병풍을 그리라는 고종의 어명을 어기고 궁궐을 세 번이나 뛰쳐나간 이야기와 술과 미인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천하의 풍류객으로 알려졌다. 성격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함께 삼원 중의 한 명이 아닌가? 스승 없이 오로지 독학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천재 화가이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서예가 오세창은 “오원은 그리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신운(神韻)이 생동한다고 큰소리쳤는데 그 말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평하였다.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앞에 한참 머물렀다. 중앙 왼쪽에 신선 닮은 세 사람이 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오른쪽에는 남색 상의를 입은 동자가 낮은 자세로 앉아 개울을 바라본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기암과 산세를 여백의 미를 살려 조화롭게 배치해 놓았다. 왼쪽 위에 심전 안중식 화가의 발문이 있다. “이는 장승업 선생이 중년에 그린 작품이다. 인물과 나무 바위의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 평생 그린 인물이 많지 않지만, 이 폭과 같은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니 참으로 보배라 할 수 있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휘호하시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오원의 생애 중 1897년에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위에는 동농 김가진이 ‘三人問年圖’라고 제목을 써 놓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세 노인의 나이 자랑 이야기다. 어릴 적에 천지를 만든 창조신 반고와 친했던 기억이 있다는 첫째 노인, 바다가 뽕나무밭으로 변할 때마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집에 두었는데, 그것으로 만든 집이 10채가 되었다는 두 번째 노인, 삼천 년에 한 번 열리는 복숭아를 먹고 버렸는데 그 복숭아씨가 곤륜산의 높이와 같아졌다고 자랑하는 세 번째 노인의 자랑이다. 이 허풍 가득한 대화는 끝없이 깊고 넓은 세상사에서 한낱 나이같이 사소한 것마저도 이겨보겠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전하기 위해 쓴 글이다.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역설적이다. 노인의 이야기만큼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이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전한다. 멋있고 재미있다. 작품의 배경과 시대, 그림이 무엇을 얘기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감상한다. 세세한 설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고 기웃거리는 일도 작은 기쁨이다.
정조 때 유한준 님이 김광국의 화첩인 《석농 화원》에 써준 발문에서 유홍준 선생이 의역한 글을 떠올린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앞으로는 더 사랑하는 눈으로 세상을 봐야겠다. 오늘도 작은 기적의 날을 재미있게 보냈다.
2) 어머니의 낡은 다리, 아들의 무거운 마음 2026.02.09.(월)
어제 오후에 갑자기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베란다에서 넘어졌는데 움직이기가 힘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예, 알았어요. 곧 가겠습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정신없이 범물동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내내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평소 허리가 좋지 않아서 휠체어 도움으로 사시는 분이다. 일요일은 요양보호사도 쉬는 날이라 혼자 계신다. 이제 넘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던데. 정신이 아득했다. 빨리 가서 119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아파트 문을 열었다. 다행이었다. 당신은 침대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눈만 감고 계셨다. 사실은 3일 전에 넘어졌다고 한다. 당시 엉덩이와 머리를 부딪혔으나, 병원 진료 후 조금 좋아지셨다고 한다. 왜 그날 바로 연락하지 않았냐는 말에 내가 걱정한다고 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듯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아팠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내 손자만 신경을 더 쓰지 않았던가. 부끄럽고 슬프다.
월요일 10시. 정형외과 의사는 두 번이나 찍은 X-레이 사진을 돌려본다. 지금은 큰 문제가 없으니 약 잘 드시고, 금요일까지 상태를 지켜보다가 계속 아프면 그날 CT를 다시 찍어보자고 한다. 노화가 주범이다. 다리 근육이 없으니, 서 있다가도 언제 푹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절대로 맨몸으로 움직이지 마시라고 당부하는 수밖에 없다. 정신은 맑으나, 몸이 너무 낡아 삶의 조화가 되지 않는다. 지난주에도 작은 마찰이 있었다.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는 늘 자식 걱정으로 살아간다. 평생 김천 직지사 말사인 S*암에 기도를 올리고 사신 분이다. 신심이 너무 강한 탓일까? 끊임없이 날아오는 기도행사에 적극적이다. 아무리 자식들 안녕을 위한 일이라도 지출은 좀 줄이라고 만류하지만 어렵다. 당신 먹거리는 몇천 원도 아끼면서, 기도비는 수십만 원씩 보낸다. 노령연금으로 생활하시는 분이 너무 과하다고 해도 강한 신념은 꺾지 못한다. TV를 즐겨보던 당신은 지난해는 아동보호 도움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직접 전화해서 매달 3만 원 자동이체도 한 분이 아닌가. 의지대로 사시는 마음의 행동이라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못하고 통하지도 않는다. 따라가지 못하는 이기적인 내 마음만 까칠하고 힘들다. 움직일 때 반드시 실버카를 잡고 움직이고, 계속 조심하라는 당부만 남기고 돌아섰다.
삶에서 걱정 없이 살 수는 없다. 잠시 잊고 지낼 수는 있다. 돌아오는 내내 여러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당신은 근육이 고갈된 상태이다. 70대 후반에 큰 허리 수술을 한 후 지팡이에 의지해 몇 년 동안은 고만고만하게 지내셨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이 소멸 직전이다. 억지로 지탱해 온 다리 근육이 텅 빈 상태가 아닌가. 살짝 만지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마른 낙엽 한 줌 같다. 언제 가만히 서 있다가도 푹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정신과 건강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장수 시대는 무늬만 요란한 침대 위 삶이다. 걱정만 앞설 뿐 대책이 없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라는 ‘윌 로저스’의 말만 머릿속에 맴돈다.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지금 당장 입원이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며칠 동안 달팽이 ‘라라’가 사육 통 바닥 흙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민트’와 ‘코코’는 부지런히 사육 통 위에 붙어 재롱을 부리는데 ‘라라’는 흔적도 없다. 아뿔싸! 통을 뒤집어 본 집사람이 탄식한다. 뽀얀 알이 수십 개가 모여 있다. 요놈들이 돌아가며 알을 낳는다. 지난번에 부화된 새끼를 분양한 것까지 합치면 벌써 4번째로 알을 낳았다. 달팽이 할머니가 너무 열심히 돌봐준 탓일까? 내가 처리하지는 않지만, 너무 자주 알을 많이 까니 미운 생각이 든다. 요놈들의 마음을 누가 알겠냐? 그들도 생존본능의 법칙에 알을 낳았을 것이다. 부화해도 이젠 분양할 곳도 별로 없다. 당근 알림에 공지해도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다. 하트만 몇 개 날리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 생명체를 올렸다고 경고만 받고 바로 내렸다. 안타깝지만 지난번에 하던 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주만 지나면 구정이다. 당분간 어머님 상태는 매일 살펴봐야겠다. 진통제와 주사 도움으로 조금씩 좋아지셨지만, 내일은 알 수가 없다. 기도하고 찾아뵙고 순리대로 풀리기만 소망한다. TV에 소개되는 효자 아들 같은 효심이 없는 나는, 그저 “어머님 죄송합니다.”라는 빈말만 가슴에 안고 산다. 싸늘한 겨울 하늘 허공에 흩어지는 바람만 허허(虛虛)하다.
3)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내려놓은 욕심 2026.02.14.(토)
오늘은 신나는 날이다. 한 달 전부터 마음만 먹던 일을 실행했다. 경산 와촌 선본사 쪽에서 갓바위 부처님 참배 가는 길이다. 예전에 검색한 ‘803번’ 버스는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하고 하양역에서 차 출발시간 맞추기가 좀 힘들어 보였다. 운행노선을 다시 검색하니 영남대역에서 ‘급행 803번’이 하루에 5번 운행하고 있다. 두 번째 출발시간인 ‘9.15’분 영남대역에서 ‘급행 803번’ 버스를 탔다. 경유지가 주로 ‘압량읍 행정복지센터’ ‘진량읍 행정복지센터’ ‘와촌면 행정복지센터’ 등 관공서를 거쳐서 가는 코스이다. 미세먼지가 심해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별로였지만 팔공산에 접어드니 모든 것이 새롭다. 10여 년 전 아들이 잠시 공부했던 ‘최신 고시원’을 스쳐 지나니 마음이 울컥했다. 마지막 갓바위 주차장에서 내린 손님은 9명뿐이다. 모녀간에 온 듯한 여자 두 분과 나머지는 60대 이후의 남자 등산객이다. 10.25분, 갓바위 정류장에 얌전히 도착한다. 천천히 배낭을 점검하고 산길을 걸었다.
팔공산은 형상이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그중 갓바위가 있는 관봉은 날개에 속해 경사가 다른 곳보다 가파르다. 내가 갓바위 부처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이다. 불교 신자인 아버지를 따라 갓바위를 처음 올라간 기억이 아스라하다. 그 당시는 산행길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인 공산면 백안에서 내렸다. 동화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북지장사(?) 쪽으로 가기도 하고, 좁고 긴 산길을 하염없이 걸어 갓바위 부처님을 뵈러 간 추억이 있다. 대학 1학년 때 과 등산 모임인 ‘암충’에서 갓바위를 같은 코스로 올랐다. 지금은 관암사나 경산 선본사 방향을 통해 가장 많이 쉽게 올라간다.
갓바위까지 거리는 1km가 되지 않는다. 선본사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를 지난다. 비스듬히 누운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좌우로 길게 이어진 석등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잠시 올라가니 왼쪽 능선으로 임도 형식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선본사 옆 포장된 계단길로 올라갔지만, 오늘은 지난해부터 대중 공양간 공사 중이라 갈 수가 없어 아쉬웠다. 흙길은 다듬어진 세련된 길이 아니라 정감은 있지만, 좁고 바닥에 딛는 통나무가 미끄러워 노인이나 아이에게는 위험하다. 20여 분 오르니 마지막 철계단으로 이어진다. 임시로 연결된 길이라 좌우 폭이 좁고 경사가 심해 노약자들은 조심조심 오른다. 정체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철계단이 끝나는 곳의 해우소에서 근심을 풀어놓고 숨을 고른다. 이제 100여m 거리이다. 선본사 대웅전 앞 석탑에는 10여 명의 불자들이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빈다. 유리광전(琉璃光殿)을 돌아가니 드디어 갓바위 부처님을 접견한다. 10.55분. 좁은 길에 힘들게 치고 올랐지만, 복잡해서 30분이나 걸렸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 천여 번의 봄, 가을이 지겨웠을까? 당신도 언제부터인지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 부처님도 세상이 고달파서 그런지 알 수 없다. 자신에게 변화를 바라면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꽃 피고 낙엽 지는 계절 따라 엎드린 중생들을 굽어보시고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으리라. 나는 오늘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고개를 들어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우러러본다. 수인은 석가모니와 같이 항마촉지인의 불좌상이나 우리에게는 약사여래불로 더 익숙하다. 어머님의 건강도 빌고, 척추 협착으로 힘든 나도 빌고, 가족들 안녕을 빌어야겠다. 근데 이 많은 욕심을 들어주실까? 하나만 택하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하지? 이런저런 상념 자체가 신심이 부족한 내 민낯이다. 그냥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정성껏 절하고, 두 손 모아 기도드리고 내려가자. 사실은 아픈 다리로 여기 올라온 것이 벌써 부처님 복 받은 일이 아닌가?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또 다른 복이다. 다음에 계속 올라올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된 것도 큰 행운이다. 받은 복이 가득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뭘 더 바랄까?
내려오는 길은 고맙고 경쾌한 발걸음이다. 17분 걸렸다. 다리가 좀 아파도 오르막 내리막은 예전과 같이 다닌다. 아파트 16층 계단 오르기 습관 덕분이지 싶다. 선본사 입구 벤치에서 집사람이 싸준 점심을 먹었다. 따뜻한 물과 전복죽, 과일 맛이 꿀맛이다. 12.00시 정각 ‘803번’ 버스를 타고 하양역에 내려, 지하철로 환승 해 반야월역에 도착했다. 다시 ‘급행 10번’으로 갈아타서 시지역에 13.30분에 정확히 안착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귀가했다. 고맙다. 내일도 오늘 같기를 소망하며 갓바위 부처님 참배를 마무리한다.
4) 손자의 졸업식, 감사로 채운 하루 2026.02.20.(금)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감사의 날이다. 오후 2시. 맏손자 우주의 고운유치원 졸업식에 갔다. 태어난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자라다니! 우리 집안의 큰 축복이다. 삶이란 강물같이 유유히 흐르지만 돌아보면 빠르고 신비롭다. 손자 유치원 졸업 참석을 얘기하는 바보 할아버지가 한편은 부끄럽고, 한편 자랑스럽다. 남들은 “뭐 그런 하찮은 일에”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평범한 소시민인 내게는 이 또한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이지 않은가? 먼 이웃의 큰 사건보다도 의미가 깊은 일이다. 나는 조부님 얼굴도 보지 못했다. 6.25 전, 부모님이 결혼하시기 전에 조부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맏아들 민수도 두 살 때 자기 할아버지가 하늘의 별이 되셨다. 2대가 할아버지 기억도 없고 얼굴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우주와 나는 인연의 단단한 끈이 이어졌기에 오늘 같은 고마운 날을 누린다.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다. 미래의 운명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주어진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기다리는 존재이다. 앞날도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지길 기도드린다.
13.50분. 유치원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부모가 참석하고 나처럼 조부모까지 축하하러 온 사람들로 식장은 가득하다. 무슨 명문대학이나 박사학위 졸업도 아니건만 축하객의 표정에는 웃음과 행복이 넘친다. 요즘은 결혼도 많이 하지 않고 아이도 잘 낳지 않는 시대라 아이의 유치원 졸업은 더 뜻깊은 모양이다. 졸업생이 40여 명이나 된다. 어엿하게 학사모를 쓰고 졸업장을 받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다. 식장 전면에 설치된 스크린 화면을 보면서 원가도 제창하고 졸업생 답사도 참새처럼 읽는 모습이 대견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지만 한글은 읽힌 듯하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몇몇 아이는 가만히 있질 못한다. 담임선생님만 울컥해 말이 막히지만, 천방지축인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댄다.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그들의 본모습을 보며 참 지도하기 힘이 들겠다는 생각만 든다. 귀엽게 보면 좋지만, 걱정도 된다. 준비해 간 축하 꽃다발을 안고 생긋 웃는 손자가 오늘따라 훨씬 예쁘고 어른스럽다. 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선생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 귀가했다. 다음 화요일에는 둘째 이준이도 어린이집 졸업을 한다.
요즘 티비위키로 중국 드라마 ‘측천무후(왕이 된 여인)’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측천무후와 관련된 드라마는 많이 보았지만, 이번 편이 마음에 쏙 든다. 대부분 중국 최고의 수사관인 적인걸의 행적과 연관된 것이지만 지금 보고 있는 40부작은 오직 측천무후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이야기이다. 당 태종 이세민의 궁녀에서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당 고종 이치의 황후로 등극하여 전개되는 드라마이다. 측천무후의 성품이나 자질은 완벽하게 미화한 부분도 많지만, 마음에 드는 점은 무대나 궁궐의 어전 모습이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1,500여 년 전 일이 아닌가. 후궁들의 시기와 암투, 신하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벌이는 지략싸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조선 왕조 때 왕비열전의 축소판을 보는 기분도 든다.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나지만, 탄탄한 고증을 거친 사실을 바탕으로 뼈대를 세운 듯하다. 황제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현실 정치인들에게 많은 귀감을 주는 극이라 생각된다. 오늘 30살에 황후가 되기까지 11부 정도 보았지만, 이어질 전개가 무척 기대된다. 측천무후는 66살에 황제가 되어 80살에 삶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50여 년을 권력의 정상에서 통치한 전무후무한 여걸이다.
저녁에 손자들이 오는 날이다. 일주일에 세 번이나 오니 떨어져 있어도 한집에 사는 느낌이다. 먹거리를 준비하는 집사람이 고맙고 대단하다. 벌써 일 년이 지나지 않았는가. 어쩌다 일이 생겨 못 오는 날이 있으면, 다음 날에 바로 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다고 손자들이 대체 휴일 챙기듯이 안 빠지고 온다. 정이 그만큼 많이 들었다는 증거라 힘이 들어도 기분이 좋다. 오늘도 둘째 손자 **이는 먼저 오고 첫째는 5시에 태권도학원에 갔다가 왔다. 한창 밖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닐 시기지만 현실은 허용하지 않는다.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쩔 수가 없다. 잡다한 것을 전수하려는 내 욕심도 과하지만, 미지의 세상에서 뒤처진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미있고 건강한 삶이 최우선이다. 평범한 삶의 주문을 외우지만, 평범의 기준 그 자체가 높아 쉽지 않다. 8시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니 하루가 정리된다.
9시쯤 난데없이 보이스톡이 울렸다. 자세히 보니 미국에 사는 초등 동기 Y이다. 크게 친하지도 않고 평소에 연락도 없었는데 무슨 일일까? 그녀는 젊은 시절 미국에 이민가서 자수성가한 친구이다. 카카오톡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이따금 소식을 전한다. 몇 해 전 한국에 왔을 때 하모니카에 대해 통화한 기억이 있다. 자기가 사는 곳에는 강습하는 곳이 없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내가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연주했기에 아는 정보를 주고받았다. 오늘도 연주에 필요한 하모니카 종류를 묻는다. 주로 복음인 트레몰로로 연주하지만, 크로매틱이나 다이아토닉에 대해서도 알고 싶단다. 3월에 한국에 오면 자세히 알려 주기로 했다.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니, 요즘은 태국 치앙라이에 있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는 태국서 3개월 지내고 봄에 잠깐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에서 7개월 지내는 모양이다. 골프를 좋아하기에 치앙라이는 겨울 한 시절은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내게 골프를 즐기면 오라고 한다. 내겐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친구도 있구나’ 하며 쓴웃음 짓는다. 오후반 청춘 탁구클럽에나 열심히 다녀야겠다. 이 나이에 즐겁게 탁구 경기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닌가. 적적한 시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니라 ‘하모니카 부는 할아버지’로 삶을 즐긴다. 별일 없이 보낸 기적의 하루가 고맙다.
5) 홍매화 피는 날, 삶의 향기를 생각하다 2026.02.28.(토)
이월의 마지막 날이다. 하늘은 쾌청하고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아파트 담벼락의 백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린 지 제법 지났다. 해마다 이맘때면 홍매화를 찾아 나선다. 탐매(探梅) 여행에 나선 사람들은 홍매화 하면 양산 통도사 영각 앞의 ‘자장매’를 먼저 찾는다. ‘자장매’는 보통 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통도사까지 갈 여건이 되지 않은 나는 달성군 ‘남평문씨인흥세거지’의 홍매화를 주로 찾는다. 여기 홍매화는 3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여 중순에 만개한다. 매화는 봄의 전령사로 모진 추위를 겪어야만 맑은 향기를 내는 꽃으로 알려져 누구나 좋아한다. 문득 매화 사랑이 남다르다고 전해지는 퇴계 이황 선생이 생각난다. 매화를 인격체로 대하고 유교적 덕목을 얘기한 분으로 매화에 대한 일화가 많다. 단양군수로 재임할 때 선생을 흠모했던 기생 두향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이별의 정표로 그녀가 준 매화를 선생은 도산서원에서 극진히 보살핀 일화도 떠오른다. 지금도 도산서원에는 ‘도산매’란 이름으로 봄마다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매화가 유명하다.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라는 퇴계의 유언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수목원 입구 ‘동이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세거지에 도착하니 벌써 주차장은 빼곡하다. 원래 인흥사라는 명당 절터에 문익점의 18대 후손이 구획 정리하여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흥사 삼층 석탑만 홍매화 정원에 남아있다. 주말에다 모처럼 날씨가 쾌청하기에 가족끼리 연인끼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목화밭 앞 문익점 선생 동상 옆길을 돌아가면 삼층 석탑과 함께 홍매화 정원을 만난다. 가장자리의 대여섯 그루의 홍매화가 만개해서 은은한 듯 타오르는 붉은 꽃이 관람객들의 탄성을 불러온다. 중앙의 수십 그루 홍매화는 아직 꽃망울만 맺고 만개할 날만 뜸들인다. 아마 한두 주쯤 지나면 활짝 피지 않을까. 천천히 가까이서 보고, 향기도 맡아보고 또 멀리서 보면서 나름대로 감상한다. 그냥 ‘좋다’라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돌아본다. ‘광거당’ 쪽으로 걸어가니 예쁜 앵무새 두 마리를 데리고 온 부부를 만났다. 홍매화 앞에 자세를 취한 앵무새가 깜찍하다. 전문 사진작가들이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누른다. 촬영대회는 아니지만 요즘은 곳곳마다 취미로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많다. 틈새에 끼어 휴대전화로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뭐 작가가 따로 있나? 요즘은 휴대전화 사진 화소가 많기에 화질이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구도만 잘 잡고 창의성이 있으면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은 ‘인수문고’가 있는 ‘수봉정사’ 문도 활짝 열어놓았다. ‘수봉정사’는 독립운동가 문영박선생을 기리기 위해 1936년에 지어졌다. ‘수백당(守白堂)’ 앞마당 가운데 용트림 하는 듯한 멋진 소나무가 관광객을 맞이해 더 고풍스러운 멋을 준다. 평일에는 잘 개방하지 않았는데 활짝 열린 마당에 들어오니 기분이 좋다. 매년 여러 번 방문하지만 여기 들어오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흙탑으로 쌓은 굴뚝도 내가 사랑하는 건축물이다. ‘수백당’ 골기와와 지붕너머 ‘광거당’ 주변의 소나무,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의 조화는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 마치 서울의 궁궐 한쪽 모퉁이에 서 있는 기분이다. ‘수백당’ 마루에 앉아 건너편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아늑하고 평화롭다. 순간순간이 내 삶의 절정이다. 지금 여기 앉아 멍하니 있는 것도 기적이고 꿈결같다. 문밖을 나와 매력적으로 이어진 좁고 긴 흙담 길을 산책한다. 지금도 주민이 살고 있는 집이 많아 조용히 돌아봐야 한다. 대구시장을 역임한 문희갑 님이 사는 집은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입춘방이 단정한 예서체로 관광객들을 매료시킨다.
‘수봉정사’ 서쪽에 인흥원이란 연못이 있다. 푸른 하늘과 묵은 한옥, 소나무의 아름다움이 물에 비치는 환상적인 연못이다. 못을 돌아 입구의 목화밭을 따라 천천히 살펴보면서 세월을 산책한다. 다시 홍매화 정원에 발을 멈춘다. 관람객도 많아졌고 그새 좀 더 핀 느낌이다. 가까운 사문진 나루터나 마비정을 방문하려다가 다른 일이 생겨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 안에서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花一生寒不賣香)”라는 말을 곱씹으며 삶을 다시 생각한다. 맑고 푸른 새봄의 정취를 만끽한 멋진 하루였다. 정원 전체 활짝 핀 홍매화를 즐기려면 보름 뒤쯤 다시 와야 하지 않을까.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먼저 핀 매화는 지겠지. 기적의 하루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