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스냅사진 속 내 얼굴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주인공인 강아지 옆에 들러리로 서 있던 내 표정은 그간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 일 년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혼란스러운 한국 정세와 국제정치 상황을 지켜보느라 불안과 걱정으로 보낸 시간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깊은 그늘로 새겨져 있었다. "아, 내가 세상사 물결에 휩쓸려 그만 나를 잃고 말았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나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잠시 잊고 지냈던 나의 주특기, '웃음 성형'을 당장 시작하기로.
나는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둘째 손녀를 본 할머니는 그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나를 이름 대신 "저 망둥이 것!"이라고 불렀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생선 가게에서 가장 못생기고 하찮은 물고기가 바로 망둥이라고 했다. 그렇게 못난이 취급을 받으며 자랐으니 내 눈엔 항상 눈물이 달려있었고, 그런 나를 동네 사람들은 이름 대신 '울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온 어른들은, “이 집 자식들은 인물이 참 좋네. 그런데 왜 쟤가 제일 빠져?” 하며 여지없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곤 했다. 항상 듣는 말이라 딱히 상처가 되진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그 당연한 말이 조금씩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거울 속 칙칙한 내 얼굴을 보며, "이 얼굴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를 그때 처음으로 고민했다. 성형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니, 겨우 떠올린 아이디어가 웃음이었다. 어떻게 생겼건 웃는 얼굴은 그래도 다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웃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를 못생겼다 타박했던 어른들이, “생긴 건 이래도 가만 보면 얘가 제일 정이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칭찬 같은 말에 난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게 웃음의 효과인가 싶어 놀랍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웃음이 내 인생에 확고히 뿌리내린 건, '아모레 아줌마'를 보면서였다. 옛날엔 방문으로 화장품을 파는 아줌마가 있었다. 그분들의 판매 전략은 선뜻 본품을 못 사는 손님에게 일단 써보라며 공짜 샘플을 건네는 거였다. 그걸 보면서 나도 내 인생의 전략을 세웠다.
‘아!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만들려면, 나도 무언가 공짜 샘플을 줘야 하는구나!"
내가 줄 수 있는 공짜 샘플로, 그때 재빨리 떠올린 게 바로 '웃음'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난 거울 앞에 서서 예쁜 웃음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활짝 웃으면 올라가는 광대근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얼굴이 한층 밝아 보였다. 그렇게 매일 연습하자, 생각도 따라 밝아지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인간의 뇌는 억지웃음을 지어도 그걸 웃음으로 인식해 엔도르핀을 분비하고 긍정 회로를 돌린다고 했다. 그래선지 난 점점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맹연습을 통해 만든 샘플 웃음을 남발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내 옆엔 좋은 친구와 동료, 그리고 지금의 남편까지 모여들었다. 성형수술이 얼굴만 예쁘게 하는 거라면, 웃음은 얼굴과 뇌까지 좋게 만드는 그런 효과가 있는 듯했다. 거기다 돈도 안 들고 부작용도 없는 아주 무해한 성형술이었다.
그래서 난 입술 끝에 항상 웃음을 붙이고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다고 물론 매 순간 웃고 산 건 아니었다. 녹록지 않은 삶에 죽을 만큼 힘든 일도 있었고, 생을 끝내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하지만 눈물이 마를 즈음엔 난 어김없이 거울 앞으로 기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번에 잃은 것만 잃고 말자! 거기에 더해서 웃음까지 잃으면 내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웃음 하나로 겨우 버텨온 삶인데, 적어도 이건 지켜내야 내게 다시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음은 내 삶을 받치는 하나의 축이었다. 그런 웃음을 놓아버리면 내 남은 삶마저 무너질까 봐 난 무척이나 경계하며 살았다.
그렇게 지켜낸 나의 샘플 웃음이 빛을 발한 건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였다.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마다 나는 그동안 갈고닦았던 웃음을 남발했다. 어쩌면 웃음만 한 최고의 언어도 없는 듯하다. 내가 던지는 그 소박한 샘플에 마음을 연 사람들은 나를 친구로, 이웃으로 받아들여 줬고, 내게 없던 영어까지 가르쳐주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캐나다에 꽤 오래 살았지만, 난 지금도 못 알아듣는 영어가 많다. 특히 유머는 이들은 웃겨서 웃지만, 난 못 알아들어서 웃는다.
남편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엔 베트남에서 온 직원이 있다. 뭘 하라고 하면 이 친구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중에 보면 엉뚱한 짓을 해놓는다. 그 친구도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웃었던 거였다. 그의 웃는 얼굴에서 과거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 그렇게 웃으며 살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영어가 이해 안 돼도 웃고, 인생과 세상이 도무지 이해 안 돼도 웃자! 그냥 그렇게 웃으며 살다 보면 그 누구도, 하물며 삶도 우리 인생에 침을 뱉지 못하리라.
혼잡한 세상사에 휩쓸려 잠시 읽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기 위해 난 다시금 거울 앞으로 가 선다. 오늘 만날 이들에게 나눠줄 '공짜 샘플'을 넉넉하게 준비해 본다. 무난히 나눠줄 샘플로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 웃음을, 그리고 또 영어를 못 알아들을 경우를 대비해선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는 무해한 소심한 미소까지. 오늘도 내 입술 끝에는 세상에서 가장 부작용 없는 성형술로 얻게 된, '샘플 웃음'이 세심히 장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