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의 첫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가 내부적으로 닥친 위기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4~5절을 보겠습니다.
1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2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 놓았는데, 그의 아내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떼고 난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3 그 때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성령을 속이고 땅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 놓았소?
4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5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숨졌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부부였는데 신도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고 공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다 바치지 않고 일부를 떼어 놓았답니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알고 야단을 치자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 쓰러져 숨졌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 시간 뒤에 죽은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가 교회에 들어서자 베드로가 묻습니다. ‘그대들이 판 땅값이 이것뿐이오?’ 삽비라가 그렇다고 답하자 베드로에게서 똑같은 책망을 받고 죽었노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 소문을 들은 사람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라는 말로 끝납니다.
이 본문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을 것입니다. 이 기록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교회의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 본문에서, 부부가 죽은 이유를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을 속인 것으로 몰아갑니다.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는 것은 의무사항이 아니고 자발적인 것이므로 바치기 싫으면 바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을 속였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록자인 누가는 공동체 전체의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운 개인의 연약한 처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식으로 은근히 강요되는 금전문제로 몸살을 앓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어떤 조직이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돈은 공동체의 구성원에 의해 마련되어야 합니다. 국가건 종교조직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세금징수를 강제할 수 있지만 종교조직은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정교일치체제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국가와 종교가 하나였기에 정당하게 세금을 부과할 권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행정조직과 일체를 이루지 못한 초대교회는 세금을 거둘 정당한 권리가 없었기에 헌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신도들의 협조를 구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또는 누가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권위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서 헌금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국가와 분리된 종교조직이기에 세금을 거둘 권리가 없고 헌금에 의해 조직체를 유지해야 할 오늘날의 교회가 제정일치시대의 세금이었던 십일조를 아직도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인 것처럼 억지 해석해서 강요하고 있는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나쁜 것은 조직의 은근한 강요를 거역하기 어려웠던 연약한 신도를 희생양으로 삼아 구성원 전체를 겁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 교회의 분위기에 위압감을 느껴 거짓말을 했다는 부분까지는 사실일 수 있겠지만, 베드로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쓰러져 죽게 했다는 기록은 사실일 수 없습니다.
변명의 여지없이 이 기록은 기록자의 커다란 잘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엘리사가 자신을 놀렸다는 이유로 저주를 퍼부어 어린 아이 42명을 죽게 했다는 이야기처럼, 이 본문도 성서에 담긴 불순물입니다. 이런 불순물을 걸러내어 읽을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성서를 찢어버리는 게 나을 것입니다. 또한 이 본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설교자는 목사직을 내려놓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사도들이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런 본문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이 사도들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는 누가의 신학이 반영된 기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5장 후반부에는 사도들이 유대지도자들에 의해 다시 박해를 받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는데, 밤에 천사가 감옥 문을 열어주어 사도들은 다음날 새벽에 성전에서 다시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유대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불러 설교를 중지하라고 하지만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기에 중지할 수 없다고 응수합니다.
유대지도자들이 격분해서 사도들을 죽이려하자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인이 좋은 제안을 합니다. 사람이 계획한 일이라면 지도자가 죽으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핍박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니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입니다. 유대지도자들은 그 의견에 찬성해서 사도들을 놓아주었고 사도들은 계속해서 전도에 힘썼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