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환도뼈 약속’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24장 1~7절을 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아 보는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어라.
3 나는 네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두고서 맹세하기를 바란다. 너는 나의 아들의 아내가 될 여인을,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가나안 사람의 딸들에게서 찾지 말고,
4 나의 고향, 나의 친척이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나의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찾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여라."
5 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며느님이 되실 여인이 저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주인어른의 아드님을 데리고, 주인께서 나오신 그 고향으로 가야 합니까?"
6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절대로 나의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 말아라.
7 주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나의 아버지 집, 내가 태어난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나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너의 씨에게 주겠다' 하셨다. 그러니 주님께서 천사를 너의 앞에 보내셔서, 거기에서 내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재산을 관리하는 종을 불러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알아보라고 명합니다. 자기 아들이 가나안 원주민 여인과 결혼하면 그들과 피가 섞여서 결국 조상의 혈통을 잇지 못하고 가문이 사라져버릴 것을 우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에게, 자기 고향 하란으로 가서 신부감을 데려오라고 지시하며, 손을 다리 사이에 넣고 맹세하게 했습니다.
새번역성경에 ‘다리 사이’ 라고 되어 있는 이 말은, 개역한글판에는 ‘환도뼈’ 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생식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생식기에 손을 대고 약속하는 건 후손들에게까지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번성할 수 있느냐 가나안 원주민 종족에 섞여 사라지느냐 하는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이어가는 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민족의식과,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이 있었기에 주변의 소수 민족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에도 이스라엘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에 도착한 종은 우물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인에게 물을 달라 했을 때, 나뿐 아니라 낙타들에게도 물을 준다면 그 여인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삭의 아내로 알겠습니다.” 종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이삭의 가까운 친척뻘 되는 리브가라는 소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타나 종이 기도한 대로 행동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부임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이 본문은 설교자들에게 종종 인용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자에게 좋은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결국에는 좋은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늘 의지하고 동행하며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런 식의 설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전설로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였다는 걸 안다면 그렇게 용감하게 설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연결시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구체적으로 대화하시고 친히 예비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종이 그랬던 것처럼 꿈이나 환상 같은 신비체험으로 하나님과 구체적으로 의논하고 대화하며 교제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적인 방법에 의지하지 말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겨라.
정말 그럴까요? 이런 식의 연결은 매우 위험합니다. 고대인들이 인식한 신은 인간처럼 활동하는 신이었습니다.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고 자기를 따르고 섬기면 복을 주고 따르지 않으면 화도 내고 그렇게 인간사에 일일이 간섭하는 신이었지요. 이스라엘이 이해한 하나님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역시 화도 잘 내고 복도 잘 주시고 심지어 질투까지 하십니다. 아예 하나님 자신이 ‘나는 질투하는 여호와’ 라고 친히 말씀하시는 부분이 구약성서에는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고대인의 신 개념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겨야 한다는 신앙으로 간 것까지는 좋은데, 과학의 발전과 학문의 성과, 합리적인 판단까지 인간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무시하는 이상한 신앙형태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발견됩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고백에 의하면, 현대과학도, 의학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다른 생명체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만이 가진 이성, 그 소중한 이성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과학과 의학과 이성을 소중히 여기고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소중한 선물들을 무시하고 그저 하나님만 의지하고 매달리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에 이웃들까지 함께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0년 초반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재난에서 많은 교회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가 맹목적인 믿음보다 합리적 이성을 더 귀하게 여기지 않는 한, 이런 식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